-
-
Flower & Tree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과 나무 이야기
마리안네 보이헤르트 지음, 마리아-테레제 티트마이어 그림, 이은희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개천가에 가면 요즘 흔하게 볼 수 있는 꽃 중 하나가 엉겅퀴다. 자주색 꽃이 피어났기 때문인데 아마도
여름 내내 그 자리를 지켜낼 것이다. 어릴 때부터 자주 들었던 엉겅퀴를 알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으
며 또한 이처럼 자주 볼 수 있게 된 것도 불과 얼마 되지 않았다. 집에서 조금만 걸어나가면 개천가가
보이는 곳으로 거주지를 옮겼기 때문이다. 그곳에 놓인 앙증맞은 돌다리도 신기했고 오염된 환경으로
약간의 냄새를 풍기는 물이 때로는 맑은 것도 신기했다. 그러나 역시 이름을 아는 식물을 만날 때가
가장 즐겁다.
식물에 관심이 있어서 관련 책을 찾던 중 지식이 아닌 흥미로 다가올 만한 책을 찾았다. 꽃과 나무라는
이 책의 내용은 해당식물의 자생지라던가 식물학적 분류에 의한 정리가 아닌 해당식물 고유의 역사를
안고 있었다. 꽃말이나 특징이 담담한 수채화와 함께이다. 사람보다 먼저 이 땅에 자리 잡은 꽃과 나무
이야기는 그저 이름만 알고 있던 식물에서 상징과 표시를 보편적인 정보 그리고 동서양에서의 의미
차이까지 전한다. 물론 저자의 말처럼 서양 기독교 전통과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유추된 관점임은 아쉬
운 부분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저자가 서양인인 것을. 고대신화(그리스·로마뿐 아니라 게르만 신화까
지도)나 예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괴테의 자연론에 관심이 있다면 더 흥미로울 것이다.
단지 예쁜 식물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문화, 예술, 자연 과학, 종교까지 식물의 특성과 어우
러져 있다. 그러니 식물학적으로 원한다면 식물도감이 편하겠으나 그 밖의 것을 원한다면 충분히 그 욕
구를 채워줄 것이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의 코드를 더 이해하고자 하거나 타로 등의 식물적 의
미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책에서 배운 내용을 살짝 들여다 보자.
올리브의 상징은 신과 인간의 화해, 평화, 피 흘리지 않은 승리(월계수가 초기에 피 흘려 성취한 승리에
대한 속죄의 표시였다 한다.) 등이다. 고대 시대부터 신성하게 여겨져 스파르타인은 기원전 5세기 중엽
아테네를 파괴했으나 신들의 복수가 두려워 올리브 숲만은 건드리지 않았다. 열매에서 나는 오일은 우
리나라서도 대중적으로 사용한다. 특히 그리스권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자연의 산물이다.
샤프란 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섬유 유연제가 아닐까? 향이 좋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샤프란은 제
우스와 헤라의 신혼잠자리에서 사용한 향이었다. 연꽃은 지금도 끊임없이 고결하게 추앙되며 귀엽고
신비한 보라색의 아이리스는 백합과 마찬가지로 강한 의미가 있는 꽃으로 서양 정물화 등에서 서로 다
른 계절에 피는 꽃들이 하나의 유리병에 꽂혀있는 바니타스(유리병은 인생의 무상함을 드러냄.)라는 중
세서양의 예술대상물이었다.
또 서양 시에서 알게 된 물푸레나무 이야기, 올망졸망 붙어 피어있는 히아신스가 급속한 생성과 소멸의
상징이며 대신 완전하게 꽃이 개화했을 때에야 비로소 향기가 퍼진다는 사실도 알았다. 서양영화에서
남녀가 겨우살이 나뭇가지 아래서 키스를 나누는 이유는 행운 때문이며 음식점 계산대에 서비스로 놓
인 박하사탕에서 박하의 의미는 손님에 대한 환대라는 사실도 재미있다.
서양결혼식에서 신부가 은방울꽃 부케를 드는 상징은 행복과 사랑이었으며 레몬을 이야기한 실러의 말
도 기억에 남는다.
즙이 많은 별모양의 레몬을 짜면,
인생의 가장 안쪽 부분에서는 신맛이 난다. (172쪽)
말로만 듣던 개암나무열매가 헤이즐럿이라는 사실, 이 책의 그림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은행나무! 또
은행나무 잎이 책을 해충이나 곰팡이로부터 지켜준다니 올가을에는 은행잎을 이용해볼까 한다.
식물학자들에게 가장 똑똑한 식물이라 불리며 극지방의 얼음벌판서부터 뜨거운 열대지방에서도 볼 수
있는 식물은 바로 난초였다. 특히 난은 동양과 서양의 관점이 다른데 서양에서는 섹스심벌이다. 과연
생각해보니 양란이라 불리는 난의 외관은 어쩐지 관능적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버드나무의 상징 중 하나는 비를 부르는 마법으로 그 하늘거리는 가지가 비를 부
르는 것은 아닐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향수는 싫어도 장미향만큼은 좋아하는데 식물의 역사에서
장미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마침 붉은 장미는 요즘 흔하게 피어있으니 그 향기에 취해도 좋겠다.
페르시아에서는 장미와 책이 자주 비교된다고 한다.
책은 장미와 비교될 수 있는데,
책은 한 장 한 장 눈여겨보는 독자에게 마음을 열기 때문이다. (327쪽)
패랭이꽃을 개량한 품종이 카네이션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적다 보니 길어졌는데, 재미있는 내용
들이다. 그저 읽고 지나가는 내용이 아닌 다른 것으로의 확장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히는 기회를 얻었
다. 책을 통해 영화나 책 등에서 생소하게 느끼던 감정을 다소나마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보티첼
리의 그림에는 그 식물이 있었고, 상징은 무엇이었으며 역사적 배경은 어떠했는지를…. 처음에는 단순
히 꽃말이나 쓰여 있으려니 하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런 식의 접근도 좋았다. 몇 달 전 읽은 <르네상
스의 비밀>에 담긴 기호, 상징을 되새겨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꽃을 생각하는 순간은, 바로 그 꽃이 나를 부르는 순간임을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