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100장면
박은봉 지음 / 실천문학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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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식목일에 발생한 양양 지역 대형 산불이 아직 진화되지 않았나 봅니다. 천년 고찰 낙산사를 전소시키고 국사책에서 보던 7층 석탑과 많은 보물들을 태웠습니다. 재난 사태를 선포하고 주민들이 비상 대피하고, 군부대 탄약고 주위에 비상 방어망을 치고, 조금 전 새벽부터는 불길이 설악산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길목을 막고 있다고 합니다. 어제 하루만 23건의 산불이 발생하고 많은 이재민이 생긴 탓에 차라리 식목일을 없애버리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에 어서 불길이 잡히고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게다가 신라 문무왕 11년(671) 의상(義湘)에 의해 창건되어 1,300여 년을 지켜온 낙산사가 불길에 휩싸여 쓰러져가는 모습은 충격이었습니다. 제발 더 큰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한시라도 빨리 불길이 잡히기를 기원합니다.

《개정판 세계사 100장면》을 읽고 있습니다. 100 장면 중에 80 장면을 읽었습니다. 나머지 스무 장면은 오늘 출근길에 마저 읽어볼 생각입니다.
이 책의 초판은 아마 91년 경에 나온 것 같고, 96년에 개정 초판이 나와 개정판만 27쇄를 찍은 베스트셀러입니다.
머릿속의 역사 지식이 샐닢같아 늘 책을 주문할 때마다 쉽게 읽을만한 역사책이 없을까 살펴보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이 책을 구하게 되었는데, 계속해서 묵혀두다가 이제서야 보고 있습니다.

벌써 15년 전에 초판을 발행한 이래 계속해서 출간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책 읽는 선배가 '좋은 책은 나중에라도 재출간되니 미리 읽지 못해 마음 조급할 필요가 없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비록 이런 책을 두고 명작名作이라 하기는 뭣하지만 세계사 지식이 정리되지 않은 저와 같은 사람에게는 한 눈에 사건과 흐름을 동시에 정리할 수 있는 매우 의미있는 역사책이 될 것 같습니다. 지구본을 옆에 두고 책을 읽어갔습니다.

예전에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를 읽고, 비록 고등학교 세계사 책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나 가볍게 세계사를 훑어보는 데에는 꽤 유용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재미로 치자면 《세계사 100장면》이 책이 한 수 위입니다. 게다가 각 장면을 시작할 때마다 동시대의 우리나라 역사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어 많은 참고가 됩니다. 무엇보다 역사적 사건을 해석하는 시각이 뚜렷하다는 점에서 두루뭉술하게 객관적 사실을 나열하려 한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보다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 제국주의에 의한 아프리카의 분할을 서술하는 부분을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와 《세계사 100장면》을 비교해보겠습니다.

"아프리카 분할에는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참가했는데 중심은 1875년에 이집트에서 수에즈 운하의 관리권을 획득하여 이집트와 케이프타운 식민지를 잇는 '종단정책'을 전개한 영국과, 알제리에서 사하라 사막을 가로질러 아프리카 동해 연안에 이르는 '횡단정책'을 전개한 프랑스였다."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中 〈콩고에서 시작된 폭풍과도 같은 분할〉편 p.269

"결국 아프리카는 순식간에 서구 열강의 식민지 혹은 보호령이 되어갔다. (...) 아프리카의 지도를 보면, 나라간의 국경선이 다른 대륙과는 달리 일직선을 곧게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를 분할하면서 정복국의 편의에 따라 마음대로 경계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원주민의 삶은 처참하게 파괴되었다. 그들에게 유럽의 백인이 가져다준 것은 학살과 노예사냥, 착취와 굴종뿐이었다." 《세계사 100장면》中 〈바다를 이은 최초의 운하〉편 p.292~293

이 글을 읽고 아프리카 지도를 다시 보니 정말 자로 그은 듯 나라 경계가 뚜렷하였습니다. 마치 어릴 때 땅따먹기 놀이할 때처럼요.

저처럼 역사 지식이 일천日淺하다고 스스로 생각하시는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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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느린 걸음
바스카르 차크라보티 지음, 이상원 옮김 / 푸른숲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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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말 봄이죠?
주말에 도봉산에 잠깐 다녀왔는데 봄 산행을 나온 사람들로 바다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봄이 그리웠나 봅니다.
달력을 보니 오늘 하루 일하면 또 내일이 휴일이네요. 힘을 다해 열심히 일해도 지치지 않는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혁신의 느린 걸음》을 읽었습니다. 벌써 한참 전에 읽기 시작했었는데, 이제서야 다 읽었습니다. 중간부터 읽자니 기억이 나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읽었습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혁신이 '느린'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가 실제 '시장에 들어가 자리잡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1928년 GE가 처음 TV를 개발했지만 1960년대가 되어서야 각광받기 시작했고, VCR도 1956년 미국의 앰펙스라는 회사에서 처음 개발했지만 1980년대가 되어서야 확산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라클과 IBM,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야심찬 프로젝트 - NC(Network Computer)가 실패하고 반면 팜 파일럿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책에는 통상적으로 혁신이 중요하다는 따위의 원론적인 이야기는 없습니다. 오로지 혁신을 성공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혁신의 성공 법칙을 밝히는 데에 '게임이론'이라는 틀을 통해 새롭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게임이론의 핵심은 '상호연결성'입니다. 이 개념은 '한 개인의 전략적 선택은 다른 사람의 결정에 의존한다'는 속성에 근거합니다. 스타크래프트를 연상하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혁신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혁신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상호 연결된 세상에서 참가자들의 행동과 선택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현실이 매우 긴밀한 상호 연결 상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 유지 상태' 즉 '균형 상태(equilibrium)'을 깨는 것이 혁신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균형 상태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기업이나 소비자 등 시장의 핵심 참여자들이 각기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동시에 남들도 모두 그러할 것이라 기대할 때 나타나는 역동적인 정지 상황'

처음 볼 때 다소 어려운 듯해도 다시 읽으면 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전략적 선택이 결국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좌우된다는 것이 균형 상태 개념의 핵심입니다. 참여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한 개인의 선택은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하게 되어 현상을 유지하려는 상태, 즉 '균형 상태'가 더욱 공공히 유지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새로운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도 살까?"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쉽게 동의하실 거라 믿습니다. "이런 걸 누가 사겠어?" 하고 있다가 주위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사기 시작하면 드디어 나도 사게 됩니다. 이 상태가 바로 균형 상태가 깨지는 단계입니다. 이렇듯 팽팽한 균형상태가 깨지기 위해서는 '최소 수준 이상의 다수(critical mass)'에게 혁신이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정말 모두에게 이로운 합리적인 신기술이 많이 있지만 이를 철저하게 외면하는 의료계의 현실을 보면 '균형 상태'가 얼마나 견고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의료계를 선진화할 해결책이 많이 나와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의연한 기존의 방식·관행이 바뀌지 못하는 이유를 어떤 분석가는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변화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성적으로 움직이는 산업이 아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저자의 생각은 다릅니다. 저자는, 의료계는 '철저히 이성적이다'라고 말합니다. 의료계의 각 참여자들은 나머지 사람들이 어떤 식의 이기적인 행동을 보일 것인지 철저히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때에만 행동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너무나 이성적인 행동이 의료계의 균형 상태를 유지하고 '최소 수준 이상의 다수'를 확보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혁신이 시장에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혁신가들은 시장 구성원들의 비이성적인 행동 - 실은 매우 이성적인데 말입니다 - 을 원망하며  '혁신의 느린 걸음'에 좌절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저자는 혁신을 시장에 성공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을 다음과 같이 네 단계로 설명합니다.

(1) 목표로 하는 최종 판세를 명확히 정의합니다. 즉 혁신이 시장에 도입되었을 때의 최종 모습을 (가급적 구체적으로) 예측해야 합니다.
수 많은 변수(시장 참여자)들의 선택 상황을 고려하여 '실현 가능성'과 결과에 대한 만족도에 근거하여 최종 판세를 예측하는 것! - 처음부터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2) 최종 판세로부터 출발하여, '역으로' 현재의 균형상태를 깨기 위한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합니다. 즉 최소 수준 이상의 다수에게 퍼져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한한 자원을 가질 수는 없으므로 이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3) 네트워크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칠 수는 없으므로, 혁신가는 영향을 확산시키는 지렛대 역할을 해줄 누군가를 찾아야 합니다. 이런 중개자의 도움 없이 혁신을 성공시키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4) 이렇게 수립된 전략을 실행하되, 동시에 다른 선택의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합니다. 늘 선택의 결과는 불확실합니다. 최후의 승부수를 던진다는 것은 언제나 도박에 가깝습니다. 이 때를 대비하여 혁신가는 다른 대안을 마련해둬야 합니다. 대안을 두지 않는 것 역시 대안입니다.

이 책은 위 네 가지 단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의 핵심은 '균형 상태'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새로운 혁신에 관심을 가지지만 결국은 '남들이 그 혁신을 수용할 때에만' 자신도 수용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 -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늘 잊어버리는 이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통적으로 전략을 논할 때에 우리는 '다르게 생각하기(Think Different)'를 주로 강조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이 세상에서 다르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혁신을 성공시키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이제는 '균형 상태를 생각하기(Think Equilibrium)'가 더 필요한 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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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 '수유+너머'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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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치겠습니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그들이 그립습니다. 그들의 '지식 꼬뮌'이 한없이 부럽습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들만의 방식에 깊숙이 매료되어 빠져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이런 사무치는 감정을 느끼게 된 데는 아마 저자 고미숙의 특유의 종횡무진 명랑한 '말빨'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녀가 전해주는 그들의 삶의 방식과 열정이 부럽습니다. 여기서 그들이란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말합니다.

"본디 땅 위에는 길이 없다. 누군가 지나가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라고 노신 선생이 말했습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지식 공동체'라는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고미숙으로부터 시작된 '수유리 공부방'과 이진경으로 대표되는 '서울사회과학연구소'의 운명적인 만남과 변신·합체·진화의 과정을 통해 길이 생성되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시조와 잡가 따위를 연구하는 고전문학 연구자와 가장 전위적 담론을 모색하는 사회과학자 사이의 은밀한 접속, 그리고 탈바꿈(=변태?)의 과정. 그 과정에서 경계는 사라지고 지식은 늘 새롭게 배치됩니다.

그런 지식이 그들만의 세미나를 통해 공개되고 공유됩니다.
노마디즘, 열하일기, 천의고원, 푸코, 들뢰즈/가타리는 그들이 즐겨하는 주제입니다. 그 외에도 많습니다. 너무 많아 옮기기가 민망합니다. 아주 최근의 강좌 또는 세미나 제목을 몇 개 옮겨 보겠습니다.
'노마디즘'과 '선(禪)의 관문(關門)', '빛에 대한, 빛에 의한, 빛으로 보는 세계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급진성, <에티카>', '지속과 생성의 철학, <물질과 기억>', '<西遊見聞>을 읽는다 Ⅱ', '지젝 with  헤겔', '근대의 감각과 시각성-<소년>과 <청춘>의 창(窓)', '실크로드로 떠나는 사진교실' 등... (www.transs.pe.kr에 가면 자세한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가히 '세미나 게릴라'라는 이름이 붙을만 합니다.

그 게릴라들이 쏟아낸 책들입니다. 알라딘과 예스24에서 뒤져보았습니다.

《열하일기, 웃음가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고미숙),《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고병권),《계몽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권용선),《나츠메 소세키 문학예술론》(황지헌 옮김),《나츠메 소세키 문명론》(황지헌 옮김),《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진은영)《국민국가의 정치적 상상력》(정여울),《book+ing 책과 만나다》(수유연구실+연구공간'너머'),《근대적 시. 공간의 탄생》(이진경),《연애의 시대》(권보드래),《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진은영),《들뢰즈와 문학 기계》(고미숙),《심연을 탐사하는 고래의 눈》(정선태),《근대성의 경계를 찾아서》(서울사회과학연구소),《인텔리겐차》(퍼슨웹),《한국근대소설의 기원》(권보드래),《철학극장, 욕망하는 영화기계》(고미숙),《노마디즘 1,2》(이진경),《근대주체와 식민지 규율권력》(김진균),《 필로시네마 혹은 영화의 친구들》(이진경),《근대적 시.공간의 탄생》(이진경),《철학의 외부》(이진경),《이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이진경),《수학의 몽상》(이진경),《맑스주의와 근대성》(이진경),《철학의 탈주》(이진경),《탈주선 위의 단상들》(이진경),《철학의 모험》(이진경),《일본 근대의 풍경》(연구공간 '수유+너머' 옮김),《니체, 천개의 눈 천개의 길》(고병권),《비평기계》(고미숙),《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고미숙),《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권용선),《일본 문학의 근대와 반근대》(정선태 옮김),《가네코 후미코》(정선태 옮김),《아시아라는 사유공간》(류준필 옮김),《옛 시 읽기의 즐거움》(김풍기),《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고병권 옮김),《카프카》(이진경 옮김),《근대적 주거공간의 탄생》(이진경),《동양적 근대의 창출》(정선태 옮김),《개화기 신문 논설의 서사 수용 양상》(정선태),《문화읽기 : 삐라에서 사이버문화까지》(고길섶),《18세기에서 20세기 초 한국시가사의 구도》(고미숙),《자본을 넘어선 자본》(이진경),《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이진경 옮김),《근대계몽기 지식 개념의 수용과 그 변용》(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1880-1918》(박성관 옮김),《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진은영),《장자, 영혼의 변화를 위한 철학》(김경희 옮김) 등등등... 헉헉...

대충 잡아도 이 정도입니다. 찾아도 찾아도 끝이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사랑하면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립니다. 이들에게 학문의 '경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고미숙은 이렇게 말합니다. "학문의 영역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즉, 한 사람이 얼마나 뛰어난 지적 성취를 이룰 수 있는가의 여부는 천재적 영감이 아니라 얼마나 지속적으로 지적 열정을 견지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열정을 견지할 수 있는 그들에게 앎이란 즐거움이고, 삶을 구체적으로 살아 움직에게 하는 원천으로서의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앎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욕망 - 이것이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시작이자 끝일 것입니다. 혁명이건 구도건 그런 열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법이니까요.
그들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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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독서광의 생산적 책읽기 50 - 미래를 위한 자기발전 독서법
안상헌 지음 / 북포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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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니홍조雪泥鴻爪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이나 진흙 위의 기러기 발자국이 시간이 지나면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제가 독서노트를 쓰는 것도, 읽고 나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입니다. 널리 공유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어느 독서광이 《생산적 책읽기 50》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사람 사는 모습이 천차만별이듯이 책 읽는 모습도 서로 다른지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책을 읽는지 궁금하여 사봤습니다. 분량이 그리 부담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몇 일에 걸쳐 책을 읽었습니다. 나의 책 읽는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말들이 많아 때론 긍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의문을 가져가며 느릿느릿 읽었습니다. 책 곳곳에서 급하게 책을 읽지 말라고 충고하니, 아는 내용이라고 무심코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습니다.

"다급하게 책을 읽는 버릇을 가진 사람은 좋은 책을 천천히 읽어나갈 때의 묘한 힘을 결코 알지 못한다.-로망 롤랑"(p.85)
"'오늘 안에 이 책을 꼭 다 읽어야 돼!'라고 생각하며 읽는 사람은 책읽기를 의무감으로 하는 사람이다. 의무감으로 책을 읽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읽다 보면 책읽기의 재미가 반감되고 자세히 읽어보면 깊은 의미가 있는 것들도 자칫 그냥 넘어가기가 쉽기 때문에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p.222)

이와 같이 저자는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 그리고 해서는 안 되는 자세 등을 49개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마지막 하나는 독자가 직접 자신만의 독서법을 써보라며 남겨 두고 있습니다.
쉰 개의 글은 독서와 관련된 짧은 명언으로 시작하는데, 때로는 저자가 쓴 본문보다 더 와닿기도 합니다. 그리고 글이 끝날 때마다 [나의 독서노트]라는 꼭지가 있어 글 주제와 연관지어 50 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책 읽는 모습과 생각도 들을 겸, 게다가 이렇듯 구성도 아기자기하여 읽는 데 지루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기껏 잘 읽고 책을 덮으니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읽으면서 줄 긋고 접어 놓은 부분을 다시 훑어봐야 했습니다. 아마도 저의 독서 수준은 저자가 말하는 책 읽기 1단계인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많이 읽고 많이 기억하려는 단계이다. 이 단계를 투입과 산출의 비율로 이야기하자면 산출보다는 투입이 월등한 비율을 차지하는 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 하지만 이 단계에서는 이상하게도 많이 읽고 느끼려고 할 뿐 몇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만큼 머릿속에 각인되는 것들은 별로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축적된 것이 워낙 부족하기 때문이다. 단지 많이 읽고 느끼는 것이 '재미'있는 단계이다."(p.63)

이 단계를 넘어서야 '적게 읽고 많이 생각하는' 2단계, '적게 읽고 많이 쓰는' 3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2,3단계에서 말하는 '적게'가 어느 만큼인지 잘 모르겠지만요.

어떤 연유에서든 책 읽기를 시도하려는 분, 책을 꾸준히 읽기 위해 노력했지만 도무지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분들께 권해 드릴만한 책입니다.
그러나 이미 책 읽는 재미를 충분히 느끼고 있는 분들께서는 굳이 읽지 않으셔도 이미 경험을 통해 알만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렇더라도 다른 사람의 책 읽는 모습이 궁금하다면 한 번 가볍게 읽어볼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애착이 가는 한 문장.

"그런 의미에서 실천적인 책읽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모두 중독자들이다."(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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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트렌드 - 변화의 물결
김경훈 외 지음 / 책바치(와우밸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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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자리를 통해 소개드린 트렌드 관련 서적만 해도 《대한민국 소비 트렌드》, 《마케팅 어드벤처》,《60 TREND 60 CHANCE》, 페이스 팝콘의 《미래생활사전》등이 있습니다.
사업을 하거나 마케팅 직종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트렌드 읽기'는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는 어부들이 내일 날씨에 신경을 쓰는 것만큼이나 꼭 필요한 정보 습득 과정입니다.
트렌드 읽기를 시도할 때의 심정은 어부들이 어군탐지기를 사용하여 고기떼를 쫓아가고자 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물고기떼의 규모와 위치를 말해주는 어군탐지기와는 다르게 트렌드는 전체적인 물 흐름만을 말해 줄 뿐입니다. 그 흐름은 대개 '이미' 알고 있거나 주위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상일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트렌드를 '예측'하기 위해 이런 책을 읽지만 실상 이런 책은 현재의 트렌드를 '분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시작되어 '분석'이 가능한 현상들 가운데, 그래도 이러한 현상이 10여년 이상 지속될 것 같은 '강한' 흐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책의 효용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측'은 커녕 정작 '현재의' 흐름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막연하게 느끼고 있는 흐름들을 명쾌하게 분석하여 그 흐름을 '인정'하는 과정도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큰 흐름에 역류하는 모험 따위는 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 책은 스무 가지의 트렌드를 소개하고 있는데, 저자는 이 스무 가지의 흐름이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트렌드임을 확인하기 위해 두 단계의 과정을 거쳤다고 합니다. 우선 확실한 '심리적 동기'가 있는가를 살폈습니다. 그 동기로 인해 최소 10년 간 지속될 수 있는 흐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사회적 토대'가 마련되어 있는지를 살폈습니다. 사회적 토대 위에 강한 심리적 동기가 있어 향후 10여 년 동안 지속될 것 같은 흐름을 스무 가지로 추렸습니다.

제가 트렌드 관련 서적을 소개드릴 때마다 '화장실에 두고 읽을만한 책'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처음 읽을 땐 '아하~'하고 맞장구를 치게 됩니다. 그러나 대개 그것으로 끝나고 맙니다. 중요한 것은 '그래서 현재의 사업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당장 업무적으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나 개인의 미래를 위한 설계까지 상상할 때에 이런 책이 제 효력을 발휘합니다.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에 화장실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습니다^^
만약 회사라면, 가능하면 여럿이 함께 읽고 그 느낀 점을 얘기하고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하는 텍스트로 삼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이 책에 소개된 스무 가지 트렌드를 요약하려 했으나 오늘도 아침 시간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여 서둘러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사업 기획, 마케팅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이라면 이 책에 대해 큰 기대는 하지 않되 그러나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큰 기대를 하지 말라는 것은 대개 '아는'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이고, 그래도 꼭 읽어보시길 권하는 것은 그 흐름을 확실하게 '정리하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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