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즘으로 읽는 한국 헌정사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69
김욱 지음 / 책세상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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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네이버 백과사전은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을 요약하여 한 마디로 “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주의”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즘을 풀어 설명하면서, 위와 같은 요약 정의가 사실은 불합리하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일방적인 비난을 통하여 마키아벨리는 정치가는 그의 정치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어떠한 수단을 사용하여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처럼 일반인에게 인식되었고, 그러한 생각이 마키아벨리즘을 낳게 되었다. 그리하여 역사상의 모든 음흉하고 비열한 행위는 모두가 마키아벨리즘의 실천이라고 간주되었으며, 마키아벨리 자신이 마치 무슨 음모가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였다. 이는 어떤 인간의 사상이 그 인간의 참다운 의도를 떠나서 세상 사람들에게 단편적으로만 이해되고 비난받는 것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그의 사후에 이와 같은 운명에 처해진 것을 빗대어서 “마키아벨리의 인생은 그의 사후에 새로 시작되었다”는 말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네이버 백과사전)

‘인간의 사상이 그 인간의 참다운 의도를 떠나서 세상 사람들에게 단편적으로만 이해되고 비난받는 것의 본보기’라고 말할 만큼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보편적’입니다. 마키아벨리즘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와 같은 요약 정의의 뜻으로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저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 책은 마키아벨리와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승만에서 노무현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헌정사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실’의 방법론을 말한 마키아벨리즘을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시도는, 최소한 저에게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진정한 마키아벨리즘, 마키아벨리스트가 어떠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고, 그 잣대를 가지고 역대 한국의 군주(대통령)들을 평가하는 대목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여가며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마키아벨리즘의 핵심은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 있습니다. 위에서 이미 정의했듯이 흔히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을 마키아벨리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책의 앞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려 했던 바는 사리사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천박한 처세술이 아니었다.”(p.25) 다시 말해 마키아벨리가 말한 것은 모든 목적이 아니라 ‘좋은’ 목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선악의 가치 판단이 필요없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으며, 오히려 끊임없이 선악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좋은 목적’은 곧 ‘국가’입니다.

저자의 말을 종합하면 마키아벨리즘은 이러한 것입니다.
“나쁜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좋은 목적을 달성해야한 한다는 현실에 근거한 방법론”입니다.
좋은 목적과 나쁜 수단의 관계에 관한 마키아벨리의 인식은 이 땅의 민초들도 익히 알고 있는 평범한 진리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사리사욕을 위해 마키아벨리를 들먹이는 사이비 마키아벨리스트에 의해 한낱 권모술수의 처세론으로 격하된 것입니다.

저자의 주장, 즉 책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생략하겠습니다. 마키아벨리즘과 반마키아벨리즘의 변증법, 마키아벨리스트와 사이비 마키아벨리스트, 법치와 반법치, 법 없는 세상의 역사적 실패 등 어느 하나 따로 떼어내서 말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또한 이런 방법으로 제가 이 책을 통해 느낀 바를 결코 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혼란’과 '흥분‘의 제 기분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으로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저의 평가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얇지만, 저의 세계관을 흔들 만큼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결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면서도,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인한 정신적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고 있지 못한 저에게 이 책은 중요한 텍스트가 될 것 같습니다. 한동안 놓고 있었던 사회과학 책 읽기에 이 책이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 같습니다.
(언뜻 떠오르는 다음 글 읽기의 순서는 마키아벨리 → 그람시 → 알뛰세르 순이 될 것 같습니다.)

뱀발 1)
〈책세상 문고〉의 〈우리시대〉 시리즈의 특징은, 어려운 주제에 쉽게 다가가고자 그 분량은 작지만, 본질적으로 결코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이 책 역시 그러합니다. 마키아벨리즘에 대해 지나치게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한 번 읽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속 시원히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읽는 자의 지식의 얕음이 결정적 원인이지만 말입니다.

뱀발 2)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주문했습니다. 이 책에서 조각조각 인용해놓은 구절을 읽다가 보니 전체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기 때문입니다.

뱀발 3) - 메모해 두고 싶은 몇 구절

우리는 마키아벨리즘을 숭상하면서 마키아벨리즘을 비난한다. 그러므로 훌륭한 마키아벨리스트는 반드시 마키아벨리즘을 비난해야 한다. 마키아벨리도 이 천형 같은 고독, 마키아벨리즘의 고독을 피할 수 없었다. (p.158)

최소한의 희망으로서의 ‘법치주의’가 민중의 법적 헤게모니를 통해 강제 규범을 실천 규범으로 전화시켜 우리를 궁극적으로 ‘법(강제) 없는 세상’으로 안내할 것이다. (p.162)

세상은 정확히 이기적인 우리의 마음이 허용하는 한에서만 한걸음 한걸음 진보해나갈 수 있다.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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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식물이 사람을 살린다 - 웰빙시대의 새집증후군 치료법
손기철 지음 / 중앙생활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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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 어린이집에 함께 다니는 딸 친구가 입원을 했습니다. 갑자기 시력이 떨어져 부모의 속을 새까맣게 만들었습니다. 정확한 원인을 알 수도 없다고 합니다. 다행히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직감적으로 새집증후군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름알데히드를 비롯하여 수많은 유해물질의 방출로 인해 원인 모를 병이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두통, 식욕부진 등의 증상 뿐만 아니라 면역력이 약한 어린 아이에게는 면역 체계에 혼란을 줄 수도 있고 호르몬 이상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스트레스에 의한 호르몬 이상 등의 장애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실내식물이 사람을 살린다》는 책을 읽었습니다. 생활의 거의 90%를 실내에서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실내 환경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딸 친구의 갑작스런 입원 소식까지 듣고 보니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지금까지 실내에 식물 두기를 꺼려했습니다. 식물은 광합성과 호흡의 주기가 있어, 밤에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난번에 베란다에 채소를 심어봤더니 흙과 채소에서 벌레가 발생했는데, 이에 민감한 아내와 딸이 한동안 가려움증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녹색 식물과 늘 함께 생활하고 싶지만 마땅한 방법을 알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이 책은 식물과 인간과 환경의 관계, 식물의 생리 작용, 실내 식물의 기능성, 기능성 실내 식물의 종류 등을 매우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단순히 실내 식물의 재배법과 근거가 희박한 효능 등을 짜깁기해서 엮은 책이 아닙니다. 책을 읽으면서 식물이 실내 환경에 어떤 식의 영향을 주는지, 그 원리와 기능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가장 큰 두 가지 고민을 해결했습니다.

흙과 식물에서 발생하는 미생물과 벌레에 민감한데....

알레르기에 민감한 가족에게 꼭 필요한 무균 배지培地 하이드로볼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제3부에서는 기능성이 검증된 15가지의 기능성 실내 식물을 따로 정리해 두고 있습니다. 이 식물들은 기능성이 매우 뛰어난 데다 하이드로볼 수경 재배가 가능한 식물이어서, 실내 식물로는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식물은 밤에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해롭다?

대개의 식물은 낮 동안 광합성을 합니다. 이 때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게 됩니다. 반면 밤에는 광합성을 중지하고 호흡(respiration)만 하게 되는데, 이 때는 사람처럼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게 됩니다. 제가 평소에 실내 식물 두기를 꺼렸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인장과 다육식물은 이와는 반대로 밤에만 기공을 열고 이산화탄소를 축적하는 역할을 합니다. 반면 낮 동안에는 거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구요. 따라서 일반 관엽식물과 함께 선인장을 함께 두면 매우 이상적인 환경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특히 선인장은 그 크기가 작지만 이산화탄소 교환 속도는 키 큰 관엽식물에 버금갈 정도입니다. (선인장이 없더라도 밤에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양이 매우 적기 때문에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책에는 이런 모든 내용이 실험 결과 그래프와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저의 두 가지 큰 고민은 해결했는데,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실내 식물의 가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꽃배달”이라고 쳐보세요. 그리고 아무 업체나 골라 “관엽식물” “공기정화식물” 등의 카테고리를 눌러 보세요. 웬만한 관엽 식물은 80,000~100,000원 이상입니다. 저런 거 집 구석구석 갖다 놓으려면 몇 십만원은 훌쩍 넘어갈 겁니다. 물론 다른 데 소비하는 것보다는 훨씬 유용하고 궁극적으로는 훨씬 경제적인 것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경험상 어떤 일이든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무턱대고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때 유행했던 베란다 정원이 실내 환경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않고, 오히려 겨울에 식물이 동사하여 애물단지로 전락한 사례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좀 찾아봤습니다. 싸게 구할 수 있는 곳.
지금까지는 딱 두 군데 발견했습니다. 아직 주문을 해보지 않아 제대로 배달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가 먼저 해보고 제 블로그(www.itmembers.net)에 그 결과를 공개하겠습니다.
먼저 인터가든(www.intergarden.co.kr)이라는 곳인데, 다른 꽃배달 업체처럼 화려하지 않은 대신 가격이 비교적 저렴했습니다. 무엇보다 책에서 꼭 필요한 실내식물이라고 말한 스파티필름, 싱고니움같은 것은 개당 3,000원~3,500원이면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관련 있는 회사인 것 같은데, 인터넷화초배달(www.whacho.co.kr)에서는 실내의 각 장소별 유용한 화초를 분류하여 판매하고 있어 더 편리합니다. 종류도 더 많구요.

발품도 팔고 지식 동냥도 좀 더 해서, 보다 저렴하게 친환경적인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습니다.

*
기능성 실내식물 15가지

  1. 관음죽 : 병충해가 거의 없고 실내 공기질을 개선하는 데 좋다. 이산화탄소 제거율이 특히 좋다.
  2. 네프롤레피스 : 실내 상대습도를 측정하는 일종의 지표식물 역할을 한다. 실내 휘발성 물질 중 포름알데히드 제거에 탁월하다.
  3. 대나무야자 : 증산량(수분방출량)이 매우 높다. 겨울철 실내 습도를 높이는 데 탁월하다. 휘발성 유기물질을 제거하는 데도 탁월하다.
  4. 드라세나 : 일명 행운목. 여러 면에서 골고루 평균 이상의 기능을 한다.
  5. 벤자민 고무나무 : 휘발성 유기물질 중 포름알데히드,자일렌,벤젠,질소화합물,오존을 제거하는 데 효과적이다. 낮 동안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므로 공기정화에도 좋다.
  6. 산세베리아 :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 인기 비결은 바로 음이온을 많이 내뿜고, 밤에 인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다육식물이기 때문. 포름알데히드를 제거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7. 선인장 및 다육식물 : 밤에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변경주, 비화옥, 화재 등이 있다.(싸다^^)
  8. 스파티필름 : 수경재배에 적당하고 증산량이 높아 실내 온열환경을 조성하는 데 꼭 필요하다. 여러 휘발성 유기물질을 제거하는 데도 효과적이어서 최고의 실내 기능성 식물이라 할만하다.(가격 검색 결과 다른 어떤 식물보다 쌉니다! 별 다섯 개!!!) 가스렌지 옆에 꼭 둬야할 식물.
  9. 싱고니움 : 증산작용이 매우 좋고 여러 휘발성 유기물질 제거에도 효과적이다.(이것도 스파티필름 못지 않게 저렴합니다^^)
  10. 아이비 / 히데라 : 증산량은 많지 않지만 휘발성 벤젠과 포름알데히드 등 휘발성 유기물질 제거에 좋다. (가격 비교를 못해봤는데 이 종도 저렴할 것 같습니다^^)
  11. 왜성대추나무야자 : 다른 야자류와 비슷.
  12. 인도고무나무 : 실내 미세분진 제거에 효과적이고 포름알데히드 제거에 좋다.
  13. 파키라 : 증산작용이 높아 습도유지에 좋다. 빛이 약하거나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은 곳에서도 광합성을 잘하기 때문에 공기가 탁한 실내에 두면 좋다.
  14. 황야자 : 증산량이 많아 실내습도 조절하는 데 최적의 식물. 1.8미터 크기의 황야자는 하루 1리터 정도의 수분을 방출한다. 최근 들어 최고의 환경 친화적 식물로 자리매김 중이다.
  15. 꽃이 있는 분화 식물 : 포트멈, 거베라 등. 증산작용이 활발하고 포름알데히드, 벤젠, 암모니아 등을 제거하는 데 효과가 있다. 녹색 식물과 함께 두면 불안감이 해소되고 스트레스 상태의 심신을 회복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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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07-01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음죽과 산세베리아, 스파티필름을 그 중에서 추천해요. 잘 안 죽고 값도 저렴(산세베리아는 요즘 인기가 높아서 좀 세지만)하고 님의 리뷰에서 밝혔듯이 실래공기 정화에 좋은 것 같아요. 관음죽은 화장실에 둔다고 해요. 암모니아 냄새를 없앤다나요? 저는 그냥 거실에 두고 있지만요. 예쁘게 잘 키우세요.

날마다좋은날 2005-07-05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고맙습니다^^
틈틈이 하나씩 장만을 해야겠습니다.

ceylontea 2006-06-29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저도 식물에 의한 공기정화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서적을 찾고 있었어요.. ^^ 식물이 공기청정기보다 훨씬 좋을거야 라고 막연히 생각중이었거든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지난 두 주 동안 주말농장에 가질 못했습니다. 일부러 게으름을 피면서 가지 않은 것도 아닌데 늘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오늘은 기필코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아내도 잠깐 동행하겠다고 하네요. 마침 폐렴 증상이 있던 동주의 몸도 상태가 아주 좋아진 듯하여  세 식구가 모두 갈 수 있게 됐습니다. 소풍 가는 기분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농장은 지지난 주에 비해 훨씬 더 푸르렀습니다. 집집마다 모두들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았습니다. 우리 밭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예상은 어느 정도 하고 있었지만, 저런~, 온통 잡초 투성이 밭이 되어 있었습니다.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밭을 갈아 엎을 생각으로 왔지만 막상 눈 앞에 펼쳐진 모습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바로 삽을 들고 와서 잡초 밭을 갈아 엎기 시작했습니다. 푸석푸석한 흙에서 먼지가 피어 오릅니다. 시금치와 상치는 먹을만한 것 얼마만 따냈습니다. 고추와 방울 토마토, 깻잎, 가지가 자라는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갈아 엎었습니다. 갈아 엎은 곳에서 잡초를 골라냈습니다. 잠깐 왔다 가리라 생각했던 아내도 예상 외의 상황이 벌어진 것을 감지하고는 호미를 들고 거들었습니다. 고추와 토마토, 깻잎, 가지가 자라는 사이 사이에 난 잡초를 캐냈습니다.

곧 비가 올 하늘에 다행히 햇볕은 없었으나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겨우 세 평 될까말까한 그 밭에 잡초를 뽑고 땅을 고르는 데 한 시간 반이나 걸렸습니다. 출퇴근 길에 집과 지하철 역 사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 운동의 전부인 제게 오늘 하루는 꽤나 무리한 듯합니다.

밤이 되니 장맛비가 내립니다. 낮에 두고 온 우리 밭이 떠오릅니다.
농장에서의 일 뿐만 아니라 이래 저래 힘 쓸 일이 많았던 오늘, 비록 몸은 좀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첫 장맛비처럼 후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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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06-27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텃밭이 세 평이라면 엄청난 농사군요. 저도 예전에 손바닥만한 땅 뙤기를 부친 적 있는데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부리면 당장에 표가 나더라구요.
아..갑자기 그리워지네요. 금방 따서 먹는 풋고추가 참 맛있었는데...

날마다좋은날 2005-06-29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고추가 익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열리려나 모르겠구요^^
주말농장을 하는 이유 중에 게으르지 않게 살기 위함도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제 게으름을 확인하는 날이었구요. 고추 따면 나중에 사진 올릴게요~ 그림으로라도^^
 

딸도 자고 아내도 잠든 밤에 비디오를 봤다. 낮에 아파트 앞 비디오 가게에서 빌렸는데, 갈 때마다 머쓱하다. 신작 한 편 빌리고 500원짜리 동전 하나 달랑 건내려니, 빌려가면서도 미안하다. 요즘 콩나물도 한 봉지에 1,000원이다.

그건 그렇고, 오랜만에 울어봤다. 주먹이 우는 게 아니라 내가 운다.
이런 상황이 정말 싫다. 둘이 싸우면 내가 응원해야 할 사람이 있어야할 게 아닌가. 어느 누구도 편들 수 없다. 속으로 욕이 나온다. 젠장, 왜 없는 놈들끼리 저리도 처절하게 싸우는가.

이혼'당하고' 술에 취한 최민식에게 천호진이 말했다. "세상에 사연 있는 사람 너 하나 뿐이 아니다"
아버지 영정 앞에서 류승범이 말한다. "아버지처럼 안 산다. (...) 아, 씨발, 못 이기면 어떡하지?"
영화가 현실에 가까울수록 마음은 불편해진다.

도대체 결론이 어떻게 날까 궁금했다. 제발 어느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말기를 바랐다. 가슴이 너무 아플 것 같았다. 이게 내 상상력의 한계다.

피터지게 싸우고, 결국은 어느 하나가 지는 싸움이었지만, 그러나 슬프지 않다.
유성환(류승범)은 이겨서 이루었고, 강태식(최민식)은 져도 이루었다. 이겼지만 울고, 져도 웃는 저 모습. 일단은 해피 엔딩이다. 영화가 현실과 다소 거리를 둘 때 내 맘은 오히려 편안하다.

*
<주먹이 운다> 영화정보 ☞ 바로가기

**
유성환(류승범)의 실제 모델 ☞서철 관련 기사 보기

강태식(최민식)의 실제 모델 ☞하레루야 아키라 관련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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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공부의 즐거움 - 고전에서 누리는 행복한 소요유
이상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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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인 김춘수는 ‘도덕경 비밀클럽’의 핵심 멤버입니다. 이 비밀클럽에는 시인 박남수, 유치환, 서정주, 유하를 비롯하여 《토지》의 박경리까지 모두 멤버입니다. 이들은 모두 노자 클래스에서 비밀수업을 받았습니다. 아직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 비밀클럽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좀 더 주도면밀한 특단의 수사가 필요합니다.

이 해괴한 주장의 주인공은 《옛 공부의 즐거움》의 저자 이상국입니다. 있지도 않은 ‘비밀클럽’을 들먹이다 못해 특단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그 황당함에 배를 잡고 쓰러질 뻔 했습니다. 그러나 저자 이상국의 예리한 눈에 포착된 증거가 그의 주장을 탄탄히(!)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먼저 핵심 멤버인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꽃〉입니다. 그러나 이는 노자의 도덕경 첫머리를 베끼거나 패러디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도덕경의 첫머리는 이러합니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어려운 한자는 없으나 해석하기는 만만치 않습니다. 몇 년 전 도올의 노자 강의가 ‘개그쇼’일 뿐이라고 맞장 뜬 평범한 아줌마 이경숙과 도올의 논쟁이 아니더라도, 도덕경은 알듯 말듯한 말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나 ‘도덕경 비밀클럽’ 핵심 멤버인 김춘수는 시로서 절묘하게 그 뜻을 풀이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無名
그는 다만 / 한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天地之始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有名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 萬物之母

세상은 이름 없이 시작되었지만, 이름이 세상을 낳았다는 이 오묘한 뜻을 김춘수는 현대어로 완벽하게 재현해 냈습니다.

시인 박남수도 이 클럽의 평범한 멤버 이상의 간부급입니다.
그의 시 〈새2〉와〈새3〉을 연속으로 봅시다.

새는 울어 / 뜻을 만들지 않고, / 지어서 교태로 / 사랑을 가식하지 않는다.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
매양 쏘는 것은 /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새의 울음이 아름다운 건, 그 뜻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새가 예쁜 건 교태를 지어 사랑을 가식하기 때문이 아니다. 저절로 아름답고 예쁘다. 아, 저 새 속에 아름답고 예쁜 무엇이 있겠구나. 포수는 그걸 붙들려고 총을 쏘지만 피에 젖은 새만을 손에 쥘 뿐이다.

아마 박남수는 도덕경의 이 구절에 심히 감동을 받았나 봅니다.
天下皆知美之爲美,斯惡已
天下皆知善之爲善,斯不善已

천하가 모두 아릅답다고 알고 있는 것이 위미爲美(꾸며진 아름다움)이며, 이것은 꼴사납다(나쁘다).
천하가 모두 선하다고 알고 있는 것은 위미爲美(꾸며진 선)이며, 이것은 선이 아니다.

그 외에도, 유치환의 〈바위〉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을, 서정주의 〈꽃밭의 독백〉은 '천문개합天門開闔 능무자호能無雌乎를, 박경리의 〈대추와 꿀벌〉, 유하의 〈사랑의 지옥〉은 총욕약경寵辱若驚 귀대환약신貴大患若身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이상국의 《옛공부의 즐거움》을 읽는 즐거움을 전해드리기 위해 책 내용 중 일부를 인용했습니다. 옛공부가 어찌 즐거울 수 있는지, 그 실례를 보여드리지 않고서는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제 즐거움을 전할 길이 없을 것 같아서입니다.

문장에는 고문도 없고 금문도 없다던 연암의 말이, 비록 고문에 천착하지 말라는 뜻이지만, 저는 문자 그대로 문장에는 옛글이나 지금의 글이나 구분을 두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옛문장이든 지금의 문장이든 결국은 그것을 읽는 사람의 몫입니다. 이 책의 저자와 같이 옛문장과 옛사람 속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것이 단순한 즐거움이든 인생의 깨달음이든, 그 무엇이든.

이 책은, 옛공부든 무엇이든 자신의 눈으로 진실되게 바라볼 때에 진정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누구에게나 옛공부가 즐거울 수는 없습니다. 이상국이 옛공부가 즐겁다고 말한 것은, 옛공부의 맛을 알았기 때문이고, 그 맛을 알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노력과 지식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즐거움도 밑천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추사체가 있기 전에 옛서체의 원형을 찾기 위한 추사의 노력이 먼저 있었듯이 말입니다.

저자로부터 공부하는 자세, 그리고 즐거이 세상 사는 법을 한 수 배웠습니다.


*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말

지나간 일은 바꿀 수 없음을 깨달았지만 앞으로 올 일은 바로 잡을 수 있음을 알았다. 실로 길을 헤매되 그 아직 멀지 않았나니, 지금은 옳으나 어제는 틀렸음을 깨달았다. - 도연명 귀거래사

동양화는 풍경을 그리지 않는다. 풍경을 바라보는 눈, 그 시선이 자아내는 깊은 마음의 여정을 차곡차곡 담아둔다.

연암의 아들 박종채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는 항상 문장에는 고문도 없고 금문도 없다고 하시면서, 한유나 구양수의 글을 모방하고 반고나 사마천의 뜻을 본떴다 해서 우쭐거리거나 으스대면서 스스로 대단하게 여기고서 지금 사람을 하찬게 볼 게 아니라 오직 스스로 자신의 그을 써야할 뿐이라고 하셨다.”

군자가 공부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공부를 통해 그칠 줄 아는 법(知止)을 터득하기 때문이다. - 화담 서경덕

추사는 청나라에 가서 단단히 배우고 왔다. 깨진 비석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바로 이 글씨의 ‘원형’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었다. 추사체라고 하는 글씨는 바로 이 고격과 개성이 만난 극미의 경지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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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블로그 : http://blog.joins.com/isomk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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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이경숙이 해석한 도덕경 (일부)
http://bluecabin.com.ne.kr/data_store/noja_clouds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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