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동주와 채 열 시도 안 되어 일찍 잠이 들었더니 오늘 새벽 두 시 반에 눈이 떠졌습니다. 어제 하루 쉬었더니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책을 좀 읽다가 다섯 시 반쯤인가 주말농장으로 향했습니다. 아내와 딸이 자고 있기도 하지만 원래 비도 오고 해서 오늘은 혼자 다녀오리라 마음 먹었었던 터였습니다.

장마철이라 비가 잦습니다. 오늘도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오는 농장에 도착하여 차문을 여니 맑은 산 공기를 머금은 빗내음에 코가 즐거워졌습니다. 푸른 내음 가득한 곳에서 깊은 숨을 들이쉬는 이 기분, 아 서울 어느 곳에서나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말 그대로 꿈이겠지요.

지난 주에 잡초를 뽑고 밭을 갈아 엎어 오늘은 따로 할 일은 없고, 수확만 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빈 밭에 잡초가 조금 자라기는 했으나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삽으로 다시 갈아 엎었습니다.

가지가 탐스럽게 열렸습니다. 올해 첫 가지를 수확하는 날입니다. 몇 그루 심지도 않았는데 제법 많이 열려 큰 놈으로만 열 개 정도 땄습니다. 지난 주에 시들시들하던 깻잎도 비를 많이 먹어서인지 싱싱했습니다. 고추도 제법 자랐고 방울 토마토도 꽤 열렸습니다.

가지를 보더니 아내가 좋아합니다. 오늘 우리 가족 처가에 놀러가는데 가서 보여주고 싶답니다. 우리 가족 안심하고 먹을 농약 하나 치지 않은 깨끗한 먹거리를 수확했다는 즐거움보다 아내의 웃는 얼굴을 보는 마음이 더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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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여는 역사 - 한중일이 함께 만든 동아시아 3국의 근현대사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회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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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KBS의 〈TV, 책을 말한다〉에서 한·중·일 세 나라 공동역사편찬위원회가 만든 《미래를 여는 역사》를 다뤘습니다. 이 자리에서 집필에 참여한 신주백 교수는 “목차 정하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렸다. 모인 54명이 모두 역사전문가였지만 서로의 나라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목차를 정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니 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진통이 만만찮았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출간 과정을 종합해보면,  2001년 한·중·일 세 나라의 역사학자와 시민단체 인사 54명이 만나 4년여의 연구와 준비를 거쳐 만들었습니다. 2002년 3월에 중국 난징에서 첫 학술회의를 시작해서 10여 차례가 넘는 국제회의와 심포지엄을 거쳤습니다. 그러나 의견 수렴이 쉽지 않아 신 교수의 말처럼 2003년 2월 도쿄회의, 9월 베이징회의를 거쳐 같은해 11월 서울회의에서야 비로소 전체 목차와 서술 원칙에 합의하고 실제 서술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2005년 5월28일 드디어 역사적인 역사책이 탄생했습니다.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각각 출간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열흘 만에 7만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벌써 4쇄째 인쇄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정도 팔렸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이 책의 발행사인 한겨레신문사에서 전국 모든 학교와 역사 교사에게 책을 기증했다고 합니다. 예스24와 교보문고 등 여러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를 보니 역사 부문에서 공히 현재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습니다.

책 내용을 보면, 우리 시각에서는, 그리 새로운 내용이 없습니다. 침략과 억압을 당한 우리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 '시각' 자체는 우리가 늘 교육받아왔던 관점입니다. 중국 입장에서 보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피해자라는 단순한 관점을 벗어나면 눈여겨 볼만한 내용이 꽤 많습니다. 우선 개항 전후의 동아시아 상황을 비교적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일본이 서서히 제국주의적 속성을 강화해 나가며, 결국에는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제국주의, 파시즘 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전체 4장과 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4장에서는 2차 대전 후의 동아시아 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A급 전범 재판인 됴쿄 재판과 전후 일본의 배상을 위한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의 문제, 한·일 국교 수립 과정의 문제를 짚고 있습니다.
참,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 교과서입니다. 이 책의 종장 제목을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하여〉라고 정한 것도 삼국의 청소년들이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과거를 덮고' 미래지향적으로 사고하라는 충고는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아 있는 개인 보상과 배상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여성 인권 운동, 역사 교과서 문제, 야스쿠니 신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의 가해와 피해의 역사를 정면에서 바라보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지만 "사실과 마주하지 않고는 미래의 평화를 만들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인류가 전쟁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교훈을 얻어 비참한 과거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주장하는 일본의 정치가는 이러한 인식에서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중국과 한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는 이 책은, 정작 일본에서 많이 읽혀져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지, 지금의 정황을 보건데 그리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이 책을 제대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역시 힘이야!'라는 식의 또 다른 우승열패의 의식에 매몰되지 않고, 반전평화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제발 전쟁만은'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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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만 볼 수 있다면 - 헬렌 켈러 자서전
헬렌 켈러 지음, 이창식.박에스더 옮김 / 산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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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가 넘어서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장마철이니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오는 거겠죠. 그러나 장맛비 치고는 좀 약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내 기억 속의 장마는 몇 날 몇 일이고 계속되어 언제 그칠지 알 수 없는 지리한 비의 연속이었습니다. 장마철인데도 우산 없이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은, 이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얘기가 샜습니다. 새벽에 내리는 빗소리에 잠시 마음을 빼앗겼나 봅니다.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아도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느껴집니다. 비로 인해 특별한 아픔을 겪지 않은 이상, 누구든 빗소리를 들으면 상념에 빠지지 않나 생각합니다. 편안함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새벽 첫 전철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 꼭두새벽에 첫 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아마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생각과 목적으로 그 차를 타고 있을 것입니다.
오토바이 소리가 들립니다. 아마도 조간 신문을 배달하러 온 것이겠죠. 매일같이 신문을 가져오는 얼굴 없는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얘기가 계속 새고 있습니다. 나의 오감이 조금씩 살아나는 느낌입니다. 이제 막 덮은 책 때문인 것 같네요.

헬렌켈러의 자서전을 읽었습니다.
위대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늘 두 가지 생각을 합니다. 하나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러기에 좀 더 분발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번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말 할 수 없었던,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극복하여 삼중고(三重苦)의 성녀’라고 추앙받는 헬렌 켈러의 자서전을 읽었습니다. 헬렌 켈러에 대해서는 굳이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듯 합니다.

이 자서전은 헬렌 켈러가 스물 셋의 나이, 그러니까 래드클리프 대학에 재학중일 때 쓴 글입니다. 시한부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닌 이상 보통 사람들 같으면 스물 셋에 무슨 자서전이냐고 하겠죠. 참고로 헬렌켈러는 1880년에 태어나 1968년에 저세상으로 떠났으니 여든 여덟까지 장수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한창 나이인 스물 셋에 자서전을 썼습니다.

부끄럽게도 그녀는 스물 셋의 나이에 제가 앞으로 수십 년을 더 살아도 느끼지 못할 인생의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역자는 후기에서 이 글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천년을 살 듯 하루를 산 그녀의 빛나는 삶 앞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역자의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삶을 살다간 이에 대해 독서노트를 쓴답시고 어설프게 평評한다는 건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저에게 헬렌 켈러는 너무나 친숙하여 그러나 정작 아무 것도 제대로 아는 게 없었던 존재였습니다. 장애를 극복한 의지의 인간, 그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도와 준 설리번 선생에 대한 일화 - 아마도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죠, 학교에서 배웠으니 너무나 친숙한 것일테고, 역시 학교에서 배웠으므로 딱 그 정도까지밖에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하는 이 정도의 문장으로 그녀가 겪은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제 아무리 셰익스피어라고 할지라도 그녀의 삶의 무게를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로지 당사자인 그녀만에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글을 읽다가 보면 가끔 그녀가 안 보이고 안 들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녀의 글 곳곳에 '듣는다' '본다' '읽는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손을 통해 느낀 촉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오로지 후각과 촉각을 통해 본 세상이 어찌 눈과 귀로 보고 들은 세상보다 더 실감날까요.

그녀의 글을 읽으면 가끔 소름 돋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암흑 속에서, 글과 말을 익혀가는 과정, 문학과 외국어를 알아가는 과정, 잠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상상해보지만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이 상황은 전전율율戰戰慄慄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감동이 아니라 두려움입니다.

헬렌 켈러에게서는 무서울 정도의 전율을 느꼈다면, 감동은 정작 설리번 선생으로부터 느꼈습니다. 헬렌 켈러의 자서전은 설리번 선생의 자서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녀가 '읽었다' '들었다'라고 할 때 그 옆에는 늘 설리번 선생이 있었습니다. 헬렌 켈러의 손바닥 위에 설리번 선생이 쓰는 그 언어로 세상의 반을 알았던 것입니다. 설리번 선생은 헬렌 켈러의 분신이자 그림자였습니다.

"날마다 선생님은 나와 함께 수업을 듣고 한없는 인내로 내 손에 선생님들이 말하는 내용을 모두 써주셨다. 공부하는 데 새로운 낱말이 나오면 일일이 사전을 찾아 설명해주셨고 점자로 되어 있지 않은 책이며 노트들은 몇 번이고 거듭 읽고 또 읽어주셨다. 그 일이 얼마나 지루할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p.167)

'읽고 또 읽어주셨다'는 것도 실제로 소리나게 읽은 것이 아니라 헬렌켈러의 손에 써주었다는 말입니다. 이 자서전만으로는 설리번 선생이 언제까지 헬렌 켈러의 곁에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곱 살에 처음 헬렌 켈러를 만나 이 자서전이 끝나는 스물 세 살 때까지만 하더라도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설리번 선생이야말로 성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물 셋의 자서전 마지막 구절은 이러합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나 이제 그 제약이 드리운 그늘 아래서도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의 길을 평안하고 행복하게 걸을 수 있다."(p.252)

어려운 단어가 없으니 문장을 이해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저 말뜻을 깨닫기까지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 알 수 없습니다.

*
헬렌 켈러의 스승 - 앤 맨스 필드 설리반에 대해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설리번 선생에 대한 자료가 참 빈약하네요.
그러나 어떤 글을 보니 설리번 선생이 헬렌 켈러의 곁을 48년 동안이나 지켰다고 합니다. 그녀도 시각 장애로 절망하여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고 하네요.

비록 기독교적 색채가 짙은 글이지만 설리번 선생의 자료 중에서 가장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어 여기에 옮겨 싣습니다.

미국 보스턴의 한 정신병원에 불쌍한 소녀가 수용되어 있었다.
소녀는 갑자기 사람들을 공격하는 정서불안 증세를 보였다. 의사는 소녀에게 '회복 불가능'이란 판결을 내렸다.
'작은 애니'로 불린 이 소녀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모와의 연락도 완전히 단절되어서  고독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병원에 한 늙은 간호사가 있었다. 이 늙은 간호사는 매일 과자를 들고 애니를 찾아와 위로해 주었다.
"애니야,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한단다." 늙은 간호사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그녀를 위해 6개월 동안 한결같이 사랑을 쏟았다.  
그때부터 애니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며 밝은 웃음을 되찾게 되었다. 그 후 정상적인 몸으로 돌아왔다.
바로 이 여인이 설리반이다.

어느날 설리번은 신문기사를 읽고 중대한 결심을 하였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의 헬렌켈러라는 어린이를 돌볼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설리번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이 어린아이의 평생의 스승이 되었다.  
설리번은 늙은 간호사가 자신에게 베푼 사랑을 헬렌켈러에게 쏟았다. 설리번은 헬렌 켈러를 48년간 개인지도한 여성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아기 때 어머니가 죽고,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으며 하나뿐인 동생도 병사하였다. 그러자 안질이 악화하여 실명하였다. 두번 자살을 기도하였으나 구명되었다.
그러나 설리번은 훌륭한 지도자를 만났다. 바로 바아바라 목사였다. 목사는 절망적인 설리번에게 십자가를 가르쳤다. 십자가를 믿을 때 과거에는 종지부가 찍히고 사랑과 소망으로 사는 하나님의 나라가 새롭게 전개되는 구원의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설리번은 보스톤 파킨스 맹학교에 들어가 6년간의 분투 끝에 최우등생으로 졸업하고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 수술을 하여 성공하였다.
설리번은 맹농아 3중고의 짐승 같은 소녀 헬렌 켈러의 가정교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원하여 싸우기를 48년간, 모든 고통받는 인류에게 소망의 등불이 된 위인 헬렌 켈러를 길러낸 것이다.
헬렌 켈러는 학습과 생활지도만 아니라 설리번 선생의 신앙적 감화가 컸다고 한다.
필라델피아 템풀 대학이 헬렌 켈러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할 때 설리번에게도 박사학위를 수여했는데 그것은 예수의 십자가가 이룩한 그 어느 학위보다도 고귀한 학위였다.

설리반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자기 자신의 필요만큼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할 때 사랑은 시작된다. ”는 말을 하고 자기자신부터 실천에 옮긴 사람이다.
설리반은 자신의 일생을 마치는 날까지 48년간이란 긴 세월을 헬렌 켈러에게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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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유시민을 만나다》 독서노트를 보냈습니다.
이런 글을 쓸 때면 늘 고민이 됩니다. 사회적, 정치적 이슈를 가진 글은 부득이하게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바로 댓글을 달아 주신 박희혁님과 문동렬님의 글에서도 그 차이가 드러나구요.

어떤 분은 이 글로 인해 더 이상 독서노트를 받지 않으시겠다고 수신거부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제가 유시민에 대해 아직 모른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대개의 독자들이 그러하듯 제 글을 선별적으로 읽거나, 아예 읽지 않거나, 가끔 생각나면 한 번 읽어보십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수신 거부 또는 스팸 필터에 넣어버리기도 하구요. 당연한 반응이라 생각합니다.

이 즈음 해서, 저 스스로 글쓰기의 원칙을 정립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독자들의 호불호의 반응에 따라 애초의 제 원칙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야 처음 제가 원했던 지속적인 글쓰기 - 이를 통한 지식공유가 가능하리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제 글은 부득이하게 설익은 상태입니다. 아직 지식과 경험과 사고의 깊이가 깊지 않은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날마다 책을 읽으며 그때그때 리뷰하는 글의 성격상 철저한 자료 조사나 연구 없이 하나의 텍스트(책)에 근거해서 글을 써야하는 상황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첫 번째 이유가 핵심이죠.
마음 같아서는 강준만 교수나 정혜신 박사의 글처럼 많은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싶습니다만, 조사만 한다고 해서 좋은 글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그릇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제 그릇이 아직 그 정도가 되지 못합니다. 적어도 앞으로 10년 동안은 쉬지 않고 책을 읽으며 '이 짓'을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제 의견은, 한 사람이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느낀 중간 결과물일 뿐입니다. 그러니 저 스스로도 늘 불만족스럽고 부끄럽습니다. 알면서도, 이것이 제가 쉬지 않고 세상을 알아가는 최선의 방법이며, 함께 공유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것만큼 힘든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정치적, 집단(또는 계급적) 이해 관계를 표현할 경우 술자리에서 주먹질까지 오가는 싸움이 되기도 합니다. 가치관이 분명할수록 어떤 의견에 대한 호불호의 감정이 격해질 수 있습니다. 당연한 것이겠죠.
그렇다고 해서, 제 생각이 설익었다고 해서, 책을 읽고 줄거리만 정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 역시 정치적인 의사를 지닌 호모 폴리티쿠스의 일원인지라 그때그때 제 의견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발전이 없을 것 같아서입니다. 그 순간의 생각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누군가로부터 비난을 받거나 꾸지람을 듣더라도 그건 성장통의 일종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말씀을 해 주시는 분들이 무척 고맙기도 하구요.

일례로, 제가 예전 글에서 박정희를 반동적 근대주의자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 말은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의 저자가 한 말입니다. 저는 그 말에 동의를 했을 뿐입니다.
그 때 제 의견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씀하신 분이 계십니다. 과거의 역사는 '그 당시의 상황과 기반'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인정합니다. 제 생각이 짧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저는 제 의견을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있습니다. 지난 주에《마키아벨리즘으로 본 한국 헌정사》를 읽으면서 느낀 건데요, 박정희를 '실패한 마키아벨리스트'라고도 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근대에 군사 정권이 독재를 했던 나라는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보기 드물게 박정희 군사 정권 하에서 경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아무리 평가절하한다고 해도 이 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눈을 내부에만 고정할 것이 아니라 외부로 넓혀 비교한다면, 박정희를 마키아벨리스트에 비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좋은 목적'을 위해 '나쁜 수단'을 썼다고 인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후에 '나쁜 수단'이 곧 목적이 되어 그것을 유지하기에 급급하여 딜레마에 빠졌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또 한편으로 그가 정권을 잡기 전후 사정을 좀 더 파헤쳐 보면 그것이 '좋은 목적'이라 보기 힘든 면이 많습니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좋은 목적'은 곧 '국가'인데, 국가가 아니라 개인의 처세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행보였습니다. 이 부분 제가 좀 더 시간을 두고 심도 깊은 공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저의 생각은 아직 덜 정리되어 있고 - 앞으로도 제대로 정리될른지 모르겠지만 - 저런 생각들 중에서 어느 하나만 툭 뽑아내어 독서노트에 덧붙입니다. 만약 박정희를 '좋은 목적'을 위해 부득이하게 '나쁜 수단'을 사용한 비운의 마키아벨리스트였다고 평가했다면, 아마 현재 독자들 성향 분포상 더 많은 수신거부 요청이 왔을 것입니다^^ 어떤 의사 표시를 하시든 자유입니다. 주변에 널리고 널린 것이 명문이요 미문인데, 설익은 글을 읽어야 하는 괴로움이 오죽하겠습니까.

글을 쓰고 보니, 제 독서노트가 범인이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임을 이해해달라는, 구차한 변명처럼 보이네요. 아~ 이것이 지금의 제 한계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글은 제가 거의 '의무적으로' 글쓰기를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글쓰기 원칙을 되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글을 읽어주시고, 때때로 의견을 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훗날 제 사고의 폭과 깊이가 확대되고 지적 성취감과 삶의 질이 높아진다면, 이것은 순전히 제 글을 읽어주시면서 보이지 않게 힘이 되어준 여러분들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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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을 만나다 - 항소이유서에서 소셜 리버럴리스트가 되기까지, 지승호의 인물 탐구 1
지승호 지음 / 북라인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올 초에 지승호의 인터뷰집 《마주치다 눈뜨다》를 읽으면서, 인터뷰집도 단행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오히려 논리적 글쓰기를 통해 완성된 책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묻고 대답하는 것 자체가 이미 현장감을 담고 있어, 저자의 화려한 수사修辭를 보태지 않더라도 충분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책 만드는 수고가 홀로 글쓰기하는 것보다 덜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단순히 시간만 놓고 보더라도 이 책이 나오기까지 4년 정도 소요된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지승호의 인물 탐구 1〉이라는 시리즈명으로 미루어 보아 앞으로도 ‘한’ 인물의 집중적인 인터뷰를 통해 책으로 엮는 작업이 더 있을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 한 두 번의 가벼운 인터뷰 내용을 옮겨 적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 책에는 유시민과의 4년에 걸친 여섯 번의 인터뷰 결과와 정혜신, 한홍구, 김정란, 유시춘의 유시민을 바라보는 생각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이를 통해 유시민의 ‘말’의 변천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유시민을 바라보는 다양한 - 물론 매우 우호적인 사람들의 입을 빌었지만 - 시선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결과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뷰 전문 작가로서의 직업 의식과 성실함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위에서 말의 변천 과정이라고 표현했으나, 아직 유시민은 말 바꾸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말’이란 비교적 무거운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제 생각에, 유시민은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결코 스물 여섯 청년의 가슴으로 쓴 〈항소이유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돌려 읽은 이 구체적인 물증(?)은 유시민을 유시민‘답게’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 것입니다. 과거의 신념을 헌 신짝 버리듯 하는 사람도 많지만, 유시민을 아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듯, 그는 결코 그럴만한 성격의 위인이 못 됩니다. 강준만 교수의 우려처럼 “선한 의지가 지나쳐 부끄러움을 느낄 능력조차 없는 멸사봉공 정신 중독자”인 그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조금의 의심도 없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은 부록으로 〈스물 여섯 청년 유시민의 항소 이유서〉를 담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 봤습니다. 누나 유시춘의 말처럼 ‘26세의 청년이 영어의 몸이 된 처지에서 참고 문헌 하나 없이 써내려간 글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돈된 미문’입니다. 역시 마지막 문장에서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에 더욱더 내 나라를 사랑하는 본 피고인은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라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격언인 네그라소프의 시구로 이 보잘것없는 독백을 마치고자 합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이것이 바로, 아직까지 그가 ‘싸가지 없다’는 욕을 들으면서까지 분노하고, 아래 위 구분하지 아니하고 날선 소리를 내뱉는 까닭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승호의 우려처럼, 현실 정치의 각박함 탓인지, 점점 잃어가고 있는 듯한 예전의 유머와 여유를 되찾기를 바랍니다. 운동가이자 지식인 유시민에 대한 존경에서 시작하여 현재의 정치인 유시민을 아끼고 지지하는 한 사람의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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