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낸 책 말이다. 

꼭 작가가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할 말 있으면 쓰고 싶고, 이야기를 너무 좋아해 드라마, 영화, 뮤비, 책, 다큐, 노랫말을 가리지 않고 분석하는 내가 정말정말정말 우연히 공저 1인으로 참여하게 된 [100인의 책마을]은 며칠전 겨우 나름 '내 책'(내 책만은 아니지만!)이 나온 걸 아신 아부지 손에 들려 있다. 아부지가 머무시는 사업장에 가져다뒀으니 아버지 손에 있는지 그저 그곳에 널부러져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이제서야 말인데 자꾸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영 어색하고 부끄러워서(내 글 빼고 다 좋습니다, 라고 늘 이야기하지만!) 안하고 싶은데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거기 내가 분명히 블로그 주소를 적었고, 심지어 알라딘 서재 주소인데,(책을 소개하는 분야의 도서이고, N블로그보다는 인터넷 서점과 연결된 여기가 더 좋을 거란 판단에! 당시 나는 아무도 댓글 하나 적어주지 않는 여기 서재 주인이었고, 내보내기 기능과 연결된 덕에 방문자는 지금보다 훨씬 많았으니, 비슷한 글이 올라가는 여러 개의 블로그 중에 이 블로그 주소를 택한 건 순차적 선택이었다.) 이 책을 보고 거기 적힌 내 알라딘 서재 주소를 입력해 찾아온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그래서 내 팬이 된 사람은? 나는 어느 누구 한 사람에게라도 영향력이 있는 사람인가?

뒤늦게 책이 보고 싶다. 당시엔 진심이지만 타인이 보면 겉멋 잔뜩 든 이탈리아, 애인 운운하는 프로필도 그렇고, 세상 책 다 읽어본 척 자신만만한 본문도 그렇고, 으악! 아 이건 진짜 부끄러운 못할 짓.(하지만 내 글에는 늘 책임을 진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부귀영화 누리는 베스트셀러 작가 아닐지라도 나는 행복했다. 온전히 내 이름이 박힌 책보다 부끄러움이 덜했고, 뿌듯함이 컸고, 덕분에 완성도까지 누군가에게 떠넘길 여지가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진짜 작가들은 자기가 쓴 책을 놓고 어떤 생각을 할까. 쓸 땐 온갖 심혈을 기울인답시고 매달렸지만, 막상 책으로 나오자 펼치지도 못하고 읽지도 못한 채 머뭇거리다 점점 구석으로 밀려난 책이 반년이나 지난 이제서야 어째서 보고 싶어질까? 이제 객관성을 충분히 확보했기 때문?

당시, 누군가에게 선물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지인 몇에게 소식은 전했지만 내 글이 있어서 그들이 다 읽어주리란 기대는 안했다. 심지어 안읽었으면 하기도. 작가가 자기 책을 읽어달라고 애원이나 구걸하지 않는 건 당연하니까 그렇게 했다. 마지막 자존심 뭐 그런 거랄까? 아하하. 그래서 책이 지금 있었으면 내 글을 다시 읽어보고 마음을 다잡고 자만하지 말자, 했을텐데 없다. 책은 없다. 서점에는 있는데 내게는 없다. 지난 늦여름, 책이 출간될 때 내 책을 내가 사지 않은 건 어색해서였지만, 들여다보면 자존심이었다. 어쨌거나 한 권쯤 구입했었음 좋았을텐데.  

모든 건 추억으로 부활한다. 부활 노래는 유난히 지나간 추억과 흘러간 세월을 아쉽게 붙잡는 노랫말이 많아서 간혹 듣는다. 나는 지나간 내가 그립지는 않다. 나를 들여다보고 앉아 토닥이며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다. 그렇다고 따르지 못할 꽃에, 오르지 못할 나무에 매달려 낑낑대고 싶지도 않다. 뒤돌아보고 후회하는데 치우쳐 갈 길을 내지 못하면 그것도 문제고. 그래서 당장 열 권이라도 주문하고 싶은 내 생애 첫 단행본은 역시 안 보기로 결정한다. 그건 시장에 있는 게 어울리는 거다. 나 그땐 그랬었지, 하면서 묻어둘 뿐. 지난 여름은 거기 있고, 나는 여기 있는 거다. 나는 지금을 믿는다. 지금을 잡고 서 있다. 올해 역시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길 빌지는 않으련다. 그것이 거쳐야할 과정이면 나는 그냥 그 속에 있어야 하는 거겠지. 그 안에서 날갯짓을 시도하면서. 하지만 조금이라도 내게 머무르거나 머물렀다 떠나갈 행운이 있다면 딱 살 수 있는 만큼이었으면 좋겠다. 우연히 찾아왔던 기회 그리고 희망처럼. 누구에게나 운명 또는 낭만으로 여겨지는 여우비처럼. 

가슴을 허하게 하면서 평소 느껴보지 못한 어떤 뜻모를 공허함이나 낯선 감정 같은 것을 가져다줄 이야기를 읽고 싶다,고 아까 문득 생각했다. 아니면 혼자 부에노스 아이레스나 브라질리아에 가고 싶다고. 그곳에서 나와는 사는 세계가 전혀 다른 낯선 사람을 만나 기를 받고 싶다고. 내게 감동주는 이야기는 대부분 비현실이나 초현실에 기인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도 해가 바뀌고 한 살 더 먹은 후였다. 그동안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이전에 나는 이런 내가 싫었는데 이젠 바로 이런 것들이 날 살아가게 한다는 걸 알겠다. 그래서 책을 열 권이나 샀는데 모두 소설이었고, 모두 아련하게 보였다. 리스트는 비밀. 또는 블라인드. 난 배우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신비주의와 사생활 숨기기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 모든 걸 오픈하는 솔직한 사람이 늘 부럽지만 살면 살수록 나는 그 편이 아니라는 걸 실감할 뿐이다.(이건 내가 솔직한 사람이라는 성향과는 별개다. 나는 비교적 겉과 속이 비슷한 사람이지만, 그걸 티낼 수 없는 자리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나답게 사는 것이란 매해 내게 주어지는 목표고, 나는 늘 외면해왔다. 올해는 이뤄보자. 눈에 보이는 덩어리 큰 속물근성 목표말고 나만 아는, 그래서 더 크고 소중한 목표를.  

잡으려 하지 말고 늘 떠나보내면서 살자. 탐내지 말고 늘 가진 걸 버리면서 살자. 말로 상대를 머물게 하려 하지말고 침묵과 분위기로 상대를 사로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해봤는데, 내가 해가 바뀌고 일주일 내내 올해를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내내 머리속에 맴돌던 큰 결심은 마지막 구절인 것 같다. 침묵하는 법, 침묵하면서 말하는 법, 나를 내세우지 않고도 나를 빛나게 하는 법. 이것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고, 올해 목표다. 궁극적으론 삶의 목표겠지. 20대의 끝에 섰다.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그럴 수 없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 내가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이 되는 것 이상이니까. 그게 먼저일 수밖에 없다. 나이를 먹을 수록 누굴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말하고, 행동하고,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건 정말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For me. 나를 위해. 내가 행복하면 모두 행복하도록.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1-07 09:06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너무 좋은 글이예요...
나를 위해,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 아름다워요.

그리고, 부끄럽게도 저 책을 가지고 있고 다 읽었는데 아이리시스님 글이 있었는지 지금 알았어요..ㅎㅎㅎ
알라딘 서재를 제대로 시작하기 전에 사서 읽었어서 그런가요ㅎㅎ
갑자기 아이리시스님이 더 좋아질려고 해요ㅎㅎ
(얼른 가서 다시 읽어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아이리시스 2011-01-07 13:35   URL
(다시 안 읽으셔도 되는데, 흑흑)
생각 많이 안하고 행동하려고 해요. 원래 생각이 많아서 뭘 많이 놓치거든요.
어젠 지구끝에 보내준대도 안가고 슬픈 이야기 읽고 싶은 충동이 강했는데
오늘은 부에노스 아이레스랑 브라질리아 당장이라도 가고 싶어요. 어쩔;;

현맘 님은 지금도 충분히 저 사랑하고 계신데 이런, 나 자꾸 더 사랑스러워지면,ㅋㅋㅋ
큰일났네요. 푸하하하하^^

2011-01-07 12:04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7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7 12:09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7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7 12:21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7 1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7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7 2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1-07 12:31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너무 창피해져 버려서.
이 책 말이죠, 선물 받았는데. 그런데 제가 아는 분들이 세분이나 글을 쓰셨는데, 저는 아직도 못 읽었군요.
이래서야.... 정말 창피해지는군요.

오늘 아침은 이런 저런 일로 의기소침해지는 날입니다. ㅠ

아이리시스 2011-01-07 13:50   URL
오늘 아침 무슨 일이 있으셨는데요?
어제 즐거우셨어요? 아하! 참, 어제,, 나들이 이야기 전해주셔야죠.(이젠 막 강요하는)
이 책은 좋은 책이지만 굳이 꺼내 읽으시란 뜻은 아닙니다.ㅋㅋㅋ
아, 저도 스텔라님이 이벤트하는 거 막 보고 그랬는데, 마고 님도 그때 받으신건가?
당시 저는 서재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었거든요.
갑자기.... 완전 창피해진다.. 저는 이제 그만 이따 들을 동영상 강의 교재 주문하러 갑니다.
이 시간에 하루배송은 없을 듯한데.. 에잇, 또 늦었어요. 이런;;

마녀고양이 2011-01-07 16:53   URL
아이리시스님, 시험 일정 나온거죠?
언제예요? 마음 바빠지겠네...?

아이리시스 2011-01-07 20:36   URL
따뜻해지는 봄에 시험이 있어요. 그리고 그건 작년부터 알고 있었는데 모른척 했을 뿐이죠. 흑.
마음이 바쁘고, 행동은 굼뜨고, 여전해요.^^

마고 님도 올해 계획하신 일 다 잘 되셔야 해요. 꼭.
저도 대학원은 학부 졸업하면서 가려다 떨어져서 그냥 포기해버렸는데 관심분야가 많아요.
그런데 취미로 이것저것 알고 싶은 것도 많아서 그게 꼭 학문이랑 연결되어야 하는지 헷갈려요.

어쨌든, 제 힘을 다해 기를 불어넣어 드립니다.
아자!^^

2011-01-08 14:55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8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1-01-08 23:47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이 귀띔해주셔서 아이리시스님 부분을 읽었어요. 정말 좋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여성작가들과 겹치기까지...그리고 제가 바로 아이리시스님의 팬이 되었답니다.ㅎㅎ
글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어쩜 이리 예쁘게 잘 하시는지 부러워요.^^

아이리시스 2011-01-09 01:27   URL
예쁘게 봐주시니 그런 거예요. 저 기억나요.
제가 제일 먼저 부끄러워하면서 귀띔해드린 게 꿈섬님이잖아요.
아마 당시 꿈섬님이 먼저 와서 말 걸어주신 덕에 좀 자신감을 갖게 됐었죠.^^

섬님은 댓글만으로도 얼마나 예쁜 분인지 짐작이 가요.
상냥한 언니 같아서 너무 좋거든요.
부럽다니, 이리 예쁘게, 아하하. 완전 기분 좋아여. 감사해여.^^
저 막 날아갈 것 같아요.

메리포핀스 2011-01-09 16:13   댓글달기 | URL
100인의 책마을 읽고 있어요.
아이리시스님, 찾아봐야징~ ㅎㅎ
반갑습니다.

아이리시스 2011-01-09 23:00   URL
포핀스님 반가워요.^^
봤더니 저도 가끔 서재 놀러갔더라구요.
이제 더 자주 가야겠네요,ㅎㅎㅎ

감은빛 2011-01-10 23:54   댓글달기 | URL
후후 맨 처음 아이리시스님 서평보고 즐찾 누르면서 누굴까 궁금해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네요.
(나중에 정체(?)를 확인하게 되어서 확실하게 알았지만요. ^^)
신경숙의 <깊은슬픔>은 제게도 큰 영향을 끼친 작품입니다.
그런 제목을 필명으로 쓰는 사람이니, 당연히 저랑 공감하는 내용이 많을 것 같아요.

근데, 댓글을 읽다보니(비밀댓글은 뭐 알수가 없지만....)
제가 이 글에 댓글 다는 첫번째 남성인가요?
아이리시스님은 여성들(언니들)에게 인기가 많군요! ^^

아이리시스 2011-01-11 02:43   URL
ㅋㅋ, 언니들이 절 예뻐라하는 걸까요? (그래도 전 남자한테 사랑받고 싶어요. 아하하.)
맞아요. 우리 그렇게 알게 되었죠?^^
어쩌다보니까 이 책에 대한 페이퍼 한 번 더 쓰게 됐어요.
<깊은슬픔> 너무 좋지 않아요? 그거 간혹 영화를 되게 찾아다니는데 구해지지 않데요.
책은 생각날 때마다 자꾸자꾸 읽어서 영화도 보고 싶었거든요.
남자분인 감은빛님도 좋아하신다니, 어떤 느낌인지 꼭 얘기나눠보고 싶어요.

근데요, 비밀댓글은 남자예요. 음하하.
거기다 동갑내기 친구랍니다.^^ (여기 서재에서 만난)
늦었는데 안녕히 주무세요!

루쉰P 2011-06-27 15:36   댓글달기 | URL
아! 세상에 이미 책에 자신의 글을 올리셨군요. 와!! 역시나 서재는 깊이 깊이 찾아봐야 겠어요. ㅋㅋ '꿈을 거슬러 올라가면 언제나 그녀들이 있다'를 쓰셨군요. 악!! 너무나 대단하세요. 어쩐지 글을 너무 잘 쓰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책이 출판돼 있을 줄은 몰랐네요. 우왕 정말 놀랬어요. ^^
근데 고민은 아이리시스님의 글만 보고 싶은데 이거 원 방법은 없는지 좀 비열한 독자인 듯. 케케케 그래도 한 권 정도는 아이리시스님도 사 놓으셨어야 하지 않는지란 생각을 해요. 인생의 추억이잖아요. 아무래도 좋은 글을 많이 쓰시기에 앞으로도 정말 아이리시스님의 책이 나올 것 같은 이 느낌! 너무 너무 늦었지만 정말 축하드려요!! 책세이라 음..멋있어요!

아이리시스 2011-06-28 04:51   URL
저 책 요전에 출판될 때 받은 거 다시 집으로 왔어요. 제 글은 썩 읽음직한 멋진 글은 아니에요. 당시 수정본을 갖고 있지만 보여드리진 않을거예요. 당시엔 그럭저럭이었지만 지나고보니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아요. 물론 제 글을 제외하면 이 책은 꽤 멋진 책이지만요. 책을 소개하는 책이라니 멋지지 않아요? 어려운 말도 없고 어려운 내용도 없거든요. 분야별로 책을 읽으며 엑스표 치며 지워가는 맛이 있을 거예요. 취지는 참 좋았다고 지금도 생각해요.^^

파란생각앤 2011-09-16 21:49   댓글달기 | URL
와,,축하드려요..저는 원체 게으르고, 낯가림도 있는 편이라(?), 댓글을 잘 쓰지 못하는 편이지만, 먼저 아는체 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답방이란 명목으로 와서 이렇게 쑥스럽지만 남겨봅니다. 아이리시스님의 글들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저 책에 님의 글도 있다니 읽어봐야겠어요...앞으로 자주 찾아보고..종종 댓글도 달아볼께요. 여름같은 가을날 평안하시고, 건강하세요^^

아이리시스 2011-09-16 18:49   URL
댓글 달아주지 않아도 좋아요. 리뷰가 굉장히 많은데 제 관심책들도 많고 그래서 파란생각앤님 서재 너무 좋아요. 따뜻한 수다쟁이 아니에요? 앤님은. 고마워요. 이제 맘껏 댓글 달고 말 걸어도 좋겠어요, 앤님 서재에서. 맛있는 저녁 드세요!^-^
 

두 번째 폴란스키다. 알라딘 서재 글 마실이 여행이라도 되는 것마냥 쏘다니던 때가 어언 옛날 얘기. 언젠가부터 처음과는 달리 이웃 몇 빼고 불특정 다수의 서재 글들을 잘 안 읽게 되었다. 시간이 없다. 대신 한겨레21 사이트도 가고 씨네21 사이트도 가고 칼럼도 읽고 사설도 읽고 기사도 읽으면서 비문학 읽기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다. 비문학 순서배열에서 꼭 한 문제를 틀린다. 맘이 급해서 후다닥 내 마음에 드는 답을 찍는가 보다. 다시 읽어보면 전혀 틀릴 만한 게 아닌데 자꾸 그런 현상이 벌어져서 속상해서 읽기 연습을 해서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결론에 닿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읽는 게 아니고 '요점 찾기'다.

 

한자는 하루에 틈나는 대로 밥 먹기 직전이나 직후에 눈으로 쓰윽 읽기만 해도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된다는데 그것도 귀찮아 죽겠다. 한자는 정말 너무너무 어처구니 없는 글자다. 일본어를 배울 때도(나는 중급 회화반까지 이수) 올라가면 갈수록 한자 때문에 미치겠어서 아는 언니가 한자능력시험 2급에 합격할 만큼 했다기에 시험접수까지 했는데 시험은커녕 공부도 제대로 못해서 아예 안갔다. 줄기차게 토익도 치러 다닐 때였는데 남의 나라 언어로 대체 뭘한 건지( '') 놀랍게도 언니는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독종이었고 나는 그냥 보통 사람이었으니 당연한 결과. 내 생각에 나는 국어를 (감으로도) 잘 하는 편이고 책도 비교적 속독하는 편인데 어째서 다른 것도 아니고 순서배열이나 주제 찾기에서 틀리는지 대체 나는 왜! 매일 사설 한 편을 정독하는 습관을 들이면 나아진다고 해서 우리 집에 네 개나 오는 신문을 종종 펼치지만 별로 좋은 기사는 없다.

 

어제는 이 세상이 너무 무섭고 겁난다며 중학생 딸을 학교에서 낚아채 집에 데려와서 자물쇠를 20개나 달고 4년이나 감금한 학대 엄마가 1면에 실렸다. 내가 보기엔 학대라기 보다 망상증인데 어쨌든 그 기사의 주제는 아동 학대로 이것 말고도 몇 개의 사례가 더 녹아있었다. 누가 엄마에게 돌을 던지리. 이만 하면 나는 얼마나 맘 편한지. 망상증이 그 엄마만의 것이라고 우기지는 못하겠다.

 

어쨌든 로만 폴란스키는 계속 되고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나는 시킨다고 하지도 않는다) 안되는 글빨로 대작을 쓰려고 한 게 문제, 시간이 많이 흘러 나도 시들해졌다. 영화는 좋았는데 좋다고 잘 써지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중간에 홀려서 오드리 햅번 영화 보기를 실천할 뻔. 이건 오래된 꿈인데 어째서 지금. 제동을 걸긴 해서 [로마의 휴일]만 또 한 번 본다. 나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로마가 내가 본 로마보다 더더더 백만 배 좋아.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진실의 입, 젤라또까지 전부 다! 그 영화를 보고 있으면 희망과 미래와 꿈과 행복 모두가 내 앞으로 걸어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로마는 썩 낭만적인 도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파리에 비하면!) 나는 지구상에서 로마가 제일 좋고 로마가 제일 대단하고 로마가 제일 로맨틱하다고 여긴다. 로마는 내 모든 것.(응?) 

 

<오드리 햅번 영화 보기>는 전부터 [가십걸]의 세레나와 블레어가 세상에 둘이 전부였을 때(그러니까 둘 사이에 "남자"라는 것이 인생에 끼여들지 않았을 때) 일요일마다 브런치([섹스 앤 더 시티]에서부터 따라다니는 그놈의 브런치!)를 먹으며 하는 일. 나도 세레나나 블레어 같은 친구랑 해봐야겠다고 다짐했는데([청바지 돌려입기]는 싫다고 하니) 새삼 같이 할 친구가 없어ㅜㅜ 싫다고 박박 우기던 친구는 거제에서 일하고 있다ㅜㅜ

 

 

 

 

 

 

 

 

 

사실 "로만 폴란스키"는 만만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도 있고 스탠리 큐브릭도 있고 라스 폰 트리에도 있는데, 짐 자무쉬도 있고 빔 벤더스도 있는데 로만 폴란스키 정도면 우월하지! 대중에게 각인된 작품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보편적 스토리와 감성을 갖추었다는 뜻도 되니까.

 

그런데 [비터문]을 볼 때 예상과 달라지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직감하고는 출처 모를 압박에 짓눌리고 있다. 세상에, 주객전도 되었다.

 

'영상분석'은 카메라 기법을 공부하는 신문방송학과 전공과목이다. 그 학기에 내려온 과제는 영화 100편(50편?)을 보고 감상문을 쓰는 거였다. 학기 마치고 제출해야 하는데(그래도 이게 광고 카피 제출보다는 쉬웠다) 여기서 감상문은, 흔히 말하는 감상이 아니라 오로지 '감독'의 눈으로 카메라를 통해 보고 분석한 보고서를 말하는 것. 지금처럼 DVD도 흔하지 않아서 정해진 목록에 있는 고전영화를 매일 비디오 대여점을 들락날락 거리며 10개씩 빌려와 보곤 했다. 안 보고 그 숙제를 할 재간이 없었다. 그 당시 영화를 볼 때는(무려 극장엘 가도) 배우,내용,감독,배경은 다 뒷전이고, 항상 카메라 안에서 어떤 프레임을 만들어 내는지만 봤었다. 3개월간 영화 50편이면 이틀에 한 편은 영화 보고 분석하고 정리해서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단 얘기다. 그래도 그때는 재밌기만 했는데!

 

 

드디어 [차이나타운]이다.

 

 

 3. 차이나타운 (Chinatown, 1974)

 

 

나라마다 존재하는 "낡고 퀴퀴한 냄새가 날 듯한 낮은 곳"의 이미지를 지닌 차이나타운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휴머니즘 영화일거란 기대는 완벽하고 처절하게 무너져내렸다. 거기다 런던에서 들렀던 차이나타운의 이미지가 희미하게나마 남아있어 멋대로 그은 선이 있건만 그것들이 뭣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두 시간 약간 넘는 러닝타임 중 절반을 지루해, 재미없어, 하면서 어떻게 끝까지 봐야할지 난감해 시간을 죽이다 마침내 세 번인가 네 번 끊어서 보는 기염을 토했다. 비로소 엔딩자막이 오르자 대견한 마음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무 것도 기대한 것 없다 생각했는데 뒤늦게야 고요하고 강렬한 반전이 휘몰아쳤다. 아, 마지막 10분의 폭풍 감동을 위해 두 시간의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왔구나. 지루함에 몸이 뒤틀리던 순간이 있었는지 기억하기 어려웠다. 이야기는 후반부에서 폭발한다. 예상도 못했던 훌륭한 비밀이 들통나면서 초반의 손해본 감정을 모두 보상 받는다.  

 

[차이나타운]은 느와르 분위기가 물씬한 탐정영화다. 뻔한 분류지만 초반의 지루함, 공간적 배경이 차이나타운인 것, 어둡고 퀴퀴하고 마초적인 분위기까지 단번에 설명할 수 있어 일석삼조다. 왜 그토록 지루했었는지 알 것도 같다. 주먹다짐 혹은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남자들의 뒷골목 세계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적응 못한 채 질척거렸던 거라고 스스로 진단했다. 너나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어야 성립되는 시뻘건 복수가 꿈틀대는 화면이 싫어서 보기를 그만둘까 망설였다는 것도 알았다. 본격적 스릴러도, 공식에 걸맞는 탐정영화도 아니지만 [차이나타운]은 느와르,액션,스릴러,미스터리를 포용하는 드라마였다.

 

어느 부인이 사립탐정 기키스를 찾아와 남편이 외도하는 것 같다며 뒷조사를 부탁한다. 기키스는 수력발전소의 임원을 맡고 있는 멀레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는데 놀랍게도 진짜 부인(에블린)이 찾아와 의뢰인이 가짜 부인이었음을 알린다. 멀레이에게 사귀는 여자가 있었다는 흥미로운 사건을 파헤치던 찰나, 멀레이가 시체로 발견된다. 익사 상태에서 발견되는 바람에 자살인지 살인인지 소문만 무성했는데 댐의 물을 방류하는 문제로 발전소에서 누군가와 트러블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반대측 의견을 가진 누군가가 살해한 거라 의심하기 시작한다. 멀레이와 에블린의 아버지 크로스가 예전에 동업자였다는 사실에 그를 찾아갔지만 멀레이의 숨겨진 여자를 찾아달라는 부탁만 듣는다. 그즈음 기키스는 어렵지 않게 발전소 동료에서 부인 에블린으로 살해용의자를 옮겨버린다. 탐정놀이는 서서히 무르익어가고 점점 진실에 다가서는 듯하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단서는 수두룩하지만 어느 곳에도 단서 아닌 것이 없기에 단서다운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는 기키스에게 미망인이 되어버린 에블린은 그저 여인일 뿐이다. 기키스는 에블린의 도발적 아름다움에 잠시 홀린다. 짧은 홀림. 진실은 거침이 없다. 사랑이라 느낄즈음 에블린을 따라간 어느 집에서 멀레이의 애인인 캐서린을 보고는 에블린을 다그치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캐서린은 에블린의 동생이다. 숨겨진 비밀의 크기가 워낙 커서 당사자인 에블린조차 숨기려 했던 이야기는 딸이자 동생인 캐서린을 아버지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차이나타운의 사립탐정 기키스는 비로소 차이나타운에서 시작한 탐정놀이를 마친 후 다시 차이나타운으로 돌아간다. 차이나타운은 비열하리만치 슬픈 곳. 별 뜻 없어보이던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차이나타운의 거대하고 다양한 담론, 그만큼 믿기 힘들고 질척거리는 삶. 웃음보다는 비극을 팔아야 살 수 있는 삶. 무겁게 들고 있어도 결국 내려놓게 되는 것. 에블린의 삶을 애도할 겨를 없이 되돌아가는 기키스의 발빠름에서 희열 아닌 슬픔이 느껴진다. 아버지의 욕심에 의해 남편을 잃었고, 딸을 지키려 애쓰다 목숨 마저 놓아버린 에블린.

 

차이나타운에서는 없는 일 빼고는 모두 있을 수 있다. 없는 일을 뺐는데 어떻게 모두냐고? 거기엔 모든 것이 배어 있다. 밑바닥 삶부터 희망 잃은 꿈까지, 없는 게 없다. 없는 게 없다는 것은 없는 것만 없지 있을 것은 모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열하고 질척하고 남루하더라도 그곳은 누군가 목숨 다해 살아가는 곳이다. 그래서 살아숨쉬는 곳이다. 노래가 떠올랐다.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중락)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수 없죠 내 삶의 끝에서" 이 노래, 한 번도 진지하게 들린 적이 없었지만 비로소 날아오른다는 것이 말로만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차이나타운]이 단 한 번도 희망이나 웃음을 얘기한 적이 없기에 비극과 절망에 가슴 벅찼다. 쉽진 않지만 어렵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오묘하게 안심시키는 힘조차 감독의 의도 아니 역량이었을까.

 

 

 

 

 4. 테스 (Tess, 1979)

 

 

 

 

 

 

 

 

 

 

 

 

 

나는 어쨌거나 세계문학전집 = 민음사 ,

라고 아직도 생각하는 1인이라서 다양한 전집에 별로 관심이 없다.

 

로만 폴란스키에 대한 단상

 

미성년 그것도 열세살짜리 소녀와의 섹스스캔들(이라고 해도 강간, 이건 본인이 인정하고 도피생활했던 경력), 임신 8개월의 아내가 [악마의 씨]라는 영화에 의해 비방 당한다 생각했던 찰스 맨슨의 추종자들이 인종범죄를 꿈꾸며 저지른 일에 무참히 살해당한 일 같은 무성한 스캔들(또 있다, 로만 폴란스키는 참 많은 것을 겪은 사람)을 견디고도 영화감독으로서는 최고의 위치에 오른 이제 노장의 예술가다. 영화를 선별할 때 비교적 너무 오래된 영화는 보기 힘들 것 같아 뺐더니 초기작들이 많이 빠졌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혐오]나 [궁지] 같은 건 따로 챙겨봐야겠다고 결심. (몇백만번째 결심인지!)

 

나도 편견에 자유롭지 못한 별볼일 없는 사람이라서 작가나 감독, 배우가 보여지는 직업으로 살아갈 때 자신이 겪고 느낀 것을 부정하거나 꾸준히 감추기란 굉장히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한다. 부러운 직업이지만 그래서 감히 꿈꾸지 못한다. 나를 온전히 내보이는 것과 그러고도 숨겨야 하는 것과 남은 것을 신비로움으로 간직하는 것 또 보여주는 것이 삶을 짓누를 거라고 생각한다. 상이나 인정, 칭찬 그런 것은 인색하거나 내 영역을 벗어나 존재하는 직업군. 그래서 영화는 위대하나 개인적 부도덕함에 대한 비난을 피해갈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하며 미숙한 인간인 나도 종종 비방을 보탠다. 그래도, 그래도 영화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요.(갑자기 높임)

 

 

토머스 하디의 [테스]는 정말로 꼬꼬마(유치원 때나 초등 저학년) 시절에 읽었다. [하이디]도 읽고 [마리 앙투와네트]도 읽던 바로 그 시절에.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도. 방문판매가 성행하던 시절, 누군가 좋은 책을 소개하러 오면 엄마는 동화,자연,과학,위인전 가리지 않고 꼬박꼬박 사줬다. 내가 조금씩 크면 그걸 팔아 새로 나온 전집을 또 사줬고 그래서 남은 게 고등학교 때부터 가지고 있던 지금의 70권짜리 한국문학,세계문학 전집이다. 여기 웬만한 건 다 있어서 대학 때 되게 편했다. 오래된 전집이 여전히 책장 몇 칸을 지키고 있는 건 따스하다.

 

아마 책이 좋은 지도 몰랐던 시절에, [소공녀] 동화책을 엄마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주던 시절에 난 소공녀 만큼이나 테스의 운명을 슬퍼하며 읽고 또 읽으면서도 이게 성인 소설이라고는 생각을 안했던 것 같다. 야한 장면이 나오면 그냥 좀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후에 다아시가 나오는 [오만과 편견]과 히스클리프가 나오는 [폭풍의 언덕]을 내처 읽으면서 [테스]도 그저그런 연장선상에 놓인 애정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이 그렇고 샬럿,에밀리 자매가 그렇고. 내 기준에서 애정소설은 문학성을 따지기가 싫은 것이다.(로렌스나 사드 같은 작가)

 

 

 

 

 

 

 

 

 

가끔은 아무 생각 안해도 되는 애니를 한 편씩 보는 중.

 

[테스]는 내게 여전히 [폭풍의 언덕] 보다는 못하고 [오만과 편견] 보다는 나을 것이다. [차이나타운]의 마초들은 싫지만 광기어리고 제멋대로인 히스클리프는 좋으니까. 하병무의 [남자의 향기]에는 [테스]를 함께 읽는 선생님과 제자의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초등학교 때 실화를 다뤘다는 [남자의 향기]의 폭풍인기가 대단했고, 그건 명백히 애정소설인데 초등학교 때 읽었다. [퇴마록]도 그보다 더 어릴 때 읽으면서 바들바들 떨었는데 그러고보면 우리 집에는 어릴 때부터 책이 참 많았다.

 

[테스]는 BBC 드라마 버전의 [더버빌가의 테스]가 있고, 로만 폴란스키의 [테스]가 있다. [테스]의 여주인공(나스타샤 킨스키)을 주연으로 발탁하는 조건으로 영화 찍는 내내 성노예로 부렸다는 로만 폴란스키에 대한 소문은 공공연했다. 여주인공이 엄청 이쁜데 나라도 애가 탔겠다. 연약하고 하늘하늘하고 후- 불면 푹- 쓰러질 듯한 보호본능을 부르는 몸매에 앙탈까지 부리는 성깔있는 여자가 어찌 탐나지 않을까.(로만 폴란스키든 극중 더버빌이든!) 내가 송윤아와 결혼한 이후의 설경구가 나오는 영화를 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로 로만 폴란스키가 싫을 수도 있겠다. 감독을 둘러싼 무수한 스캔들을 무시할 수도 없고, 작품과 연결시키지 않을 수도 없다. 하지만 영화에 대해 쓰기로 한 동안 모든 것을 깨끗이 잊었다.

 

테스 역의 여배우 나스타샤 킨스키는 진짜진짜진짜진짜 엄청 예뻤다.(내가 좋아하는 영화 [파리, 텍사스]에도 나온다) 예쁘다고 말하는 기준이 각자 다르다는 건 알지만 [테스]가 1979년 작이고, 이 여배우가 1961년 생이라면 당시 열아홉 살. 지금 화면으로도 이렇게 예쁘다면 이 미모는 가히 내 기준에서 오드리 햅번을 능가하는 외모다. 제대로 잘 늙었는지는 모르겠다. 기억이 안난다. 나스타샤 킨스키는 '테스' 역으로 세계적 스타덤에 오르게 되면서 골든 글로브 신인 여배우 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후 그녀의 연기인생과 활동이 퍽 대단했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소문 때문일 수도 있고, 불운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테스는 몰락한 가문의 후손인 아버지의 뜻대로 가난한 집안형편에 도움이 되기 위해 먼 사촌뻘 되는 부자 더버빌 가의 하녀로 보내진다. 예쁘고 단정하고 날카롭고 앙탈까지 부리는 테스의 아름다움에 반한 주인 아들 알렉은 장미 한 송이로 유인하고 말에 태우고 달리기를 반복하다 질리자 품안에 들어오지 않는 그녀를 강제로 범하고 만다. 알고보면 가문을 돈주고 산(납속책,공명첩도 아니고!) 이 집안은 테스와 아무런 연관도 없다. 테스는 수동적이고 연약한 여성으로 그려지지만 이때만은 단호하다. 이대로 더이상 이 집에 있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돌아가려 하지만 쉬울 리 없다. 그녀는 돈을 벌어 집안에 보탬이 돼야 하니까. 그래서 고향의 목장에서 소 젖 짜는 일을 도우며 돈을 벌기로 한다. 동네 목사 아들 엔젤은 날마다 나무 위에 올라가 아름다운 악기를 분다. 온 마을의 공기를 감싸는 감미로운 음악에 모두가 안락하고 황홀하다. 어리지만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순결한 테스에게 호감을 가진 그가 청혼하자 테스는 받아들인다.

 

 

줄거리를 세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결혼 첫 날, 순결에 관한 문제로 테스와 엔젤은 다투고, 테스의 과거에 분노한 엔젤은 브라질로 떠나버린다. 여전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테스는 구애하는 알렉에게로 가서 부유한 삶을 바라지만 뒤늦게 이렇게 된 것 모두가 알렉 때문이라는 원망을 주체 못하고 그를 칼로 찌른다. 방해꾼을 물리치고 서로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깨달은 테스와 엔젤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다, 로 끝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아.. 순결 이데올로기! 이 닳고 닳은 남자 다르고 여자 다른 도덕성의 잣대에 대해 토론하자면 귀찮으니까 일단 여기서 마무리한다. 여성성과 남성성, 사회가 정한 성별에 대한 도덕성의 기준을 학습시키는 19세기 말 영국에서 탄생한 [테스]가 지금 우리가 가진 성별에 대한 이데올로기와 별 다를 바 없어서다. 순결을 도덕성과 착각해서는 안 되고, 순결이 곧 여자라는 등식도 성립될 수 없다.

 

혼자 사는 친구는 엄마가 일찍 들어가라, 왜 외박했냐고 하면 종종 되받아쳤다. 서른이 다 되어가는 딸이 외박 좀 한다고 세상 무너질 것도 없고 안 될 것도 없잖아. 맞는 말. 서른이 되어가는 여자가 밤을 어디에서 보낼 지는 엄마가 아니라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외박하는 게 무서운 게 아니고 외박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 더 무서운 거야, 엄마. 독립한 지 꽤 오래된 친구는 엄마 딸인 건 맞지만 내 시간은 내 것이라는 독립성 짙은 규칙들을 고수했고, 엄마와도 나누기 싫어했다. 서른 된 여자가 밤을 어디에서 보낼 지 선택하는 건 축복이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순결 이데올로기는 없다. 엔젤은 목사의 아들이고 신학을 오랫동안 공부한 것도 맞고 형제들 모두가 같은 길을 걷는 와중에 그만은 좀 다른 교리로 세상을 보려 한다. 그래도 조금은 깨어있는 사람일 것. 하지만 그는 망설이고 망설이다 터뜨린 테스의 과거를 용서하지 못한다. 순결을 잃은 것이 용서받아야 할 과거일까. 그런 시대가 있었던 것도 그런 시대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알지만 여자에게만 고수되는 원칙이 불공평하다. 아, 내가 만나는 상대가 순결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품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여기서 말하는 순결의 의미는 보통의 순결과는 좀 더 다른 문제로.

 

예쁜 화면과 고즈넉한 분위기로 고전 내음을 물씬 풍기지만 예나 지금이나 [테스]는 불편하기만 하다. 그녀는 좀 더 사랑 받으면서 훨씬 더 행복할 권리가 있었다. 영화 [황무지]의 커플은 두 사람의 만남을 반대하는 여자의 아버지를 죽인 후 트렁크에 싣고서 자가용을 타고 빙빙 돈다. 총을 장전하고 나무에 집을 짓고 아무데서나 사랑을 나눈다. 그들은 때로 짐승 같다. 테스와 엔젤이 알렉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 다녔다면 이 영화 속 키트와 홀리 같았을 것 같다. 순순히 자신이 갈 길을 가는 테스의 마지막을 지켜줄 수 있는 빛나는 가치는 무엇일까. 오래도록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구차달 2012-02-11 05:37   댓글달기 | URL
와, 꾸준한 글쓰기 대단하십니다. 전 막상 뭔가 끼적거리려 해도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 오르지 않아. 시답잖은 잡담만 늘어 놓고 말거든요. 그 뿐이니까. 세계문학전집에 과연 편승할 수 있을런지 몰라도 전 열린책들 장정이 없어서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을 좋아해요. 오로지 그 뿐입니다. 하하. 물론 열린책들에 없는 책은 민음사가 다음 우선 수위에 오릅니다.

외박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 더 무섭다. 그것도 그렇군요. 헐. 전 외박은 필요 없고 방에만 있고 싶어요.


dreamout 2012-02-11 08:07   댓글달기 | URL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라스 폰 트리에, 짐 자무쉬, 빔 벤더스, 로만 폴란스키
저는 이들의 작품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들의 이름은 참 좋아해요. 이 이름들을 발음하면 마치 딴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이 들어요. 어떻게 이런 멋진 이름들일까요..
 

들어가는 말. 안녕?

 

그러니까 이 페이퍼의 목적은 골라보는 재미가 쏠쏠하게요!(벌써 3탄인데 이제 와서 왜 말하는 거니ㅜㅜ)

저는 하루 한 편을 고수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해도 세상엔 영화가 너무 많아요, 으흑흑)

제가 드라마를 끊으면 더 많은 영화를 볼 수 있고, 폭풍 리뷰도 쓸 수 있겠습니다만.

다만 정신 차리고 봤다는 표시하는 단상일 따름입니다.

 

 

스무살, 극장 옆자리에 앉아 귓속말을 하느라 귓가를 살짝 스쳐가던 차가운 그애의 입술을 기억한다. 아니, 그 감촉을 기억한다. 무슨 영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극장을 나와 들어간 해운대의 한 닭갈비 집에서 그애가 퍼주던 밥그릇을 넘겨받을 때 스쳐지나던 손끝의 감촉을 기억한다. 우린 친구였다. 그는 해병대에 입대했다. 몇 번 편지가 오갔다. 어느날 그애는 사라져버렸다. 그 이후로 다시는 볼 수 없었다.

 

<퍼스널 이펙츠>는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을 기다리는, 남겨진 이들의 간절함을 그린다. 일상이 일상이 아니라도 특별한 시간마저 쌓이고 또 쌓이면 그마저 일상이 된다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을까. 살해 당한 가족을 둔 남겨진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는 한도끝도 없지만, 비교적 최근에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다 자살한 아들을 못 잊는 형과 부모의 이야기인 전수찬의 <오래된 빛>을 읽었었고, 비루한 현실이 참다운 현실이고 굳이 또 시간을 버티며 살아가더라는 진실을 글로 대면하는 건 좀 힘든 일이었다. 소년 같은 애쉬튼 커처. 생각보다 나이가 많구나.

 

 

 

존 르 카레의 원작이 있다는 걸 안다. 웬만한 팬이면 다 알 것이다. 읽지 않고 영화를 보면 빈틈이 보이거나 이해가 어렵거나 노멀하게 느껴질 거란 예감은 들어맞았다. 절반은 지루했고 후반은 이야기를 따라가려는 의지를 상실했다. 어느새 등장인물, 배경, 스토리 다 놓쳤다. 이름 다 까먹었다. 눈을 떼지도 않았는데 내 머리에 구멍이 났나 보다. 스파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릴러 장르 중 하난데, 아쉬웠다. 그게 매력일 수 있다. 영국의 모던함과 클래식함, 반듯함. 황홀하게시리 부다페스트도 가고! 대체 스파이가 뭘했길래 쫓아다녀야 하지, 생각했을 정도니 내게는 애초부터 스파이 축출에 대한 의지가 없던 거나 마찬가지. 나쁜 관객.

 

원작을 읽는 게 나았을 것 같다. 꽤 좋은 평을 받고 있었는데 나 혼자만 싫어하게 생겼으니, 이 위대한 캐스팅에도 마음이 단 한 톨도 호의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쉬운 일이잖아. 등장인물이라도 파악하고 가라던 어느 평론가의 충고는 맞았다. 냅다 덤벼서 될 일이 있고 안될 일도 있는 법. 근데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용의자 넷을 얘기하는 것 같은데.. 다 보고도 모르는 나는 멍청이ㅜㅜ

 

 

체르니 50번까지 피아노를 배우고 바흐,모차르트,슈베르트,베토벤까지 레슨 받을 때, 어려운 것만 치면 지겨울 거라며 선생님이 쥐어준 연주곡집에 '사랑의 찬가'가 들어 있었다. 그땐 <라 비앙 로즈>의 에디트 피아프(1915-1963)의 곡인지 몰랐지만(경음악인 줄 알았음) 147센티미터의 키에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이 여자의 전기영화를 나는 꽤 가슴에 품고 살았다. 전기영화를 어려워 하던 시기엔 굳이 남의 일생을 욕심낼 필요가 없어 보지 못했고, 모두 좋다고 엄지를 치켜 들었을 땐 괜한 질투에 멀리했다. 온 삶이 영화가 되는 일생은 대체 어떤 것인가. 아티스트들의 전기를 나는 꽤 좋아하지만 '프리다', '카미유 끌로델' ,'바스키아', '클림트', '아르테미시아'는 늘 지루하거나 우울하기만 했다. 난 역시 타인의 인생 따위엔 별로 관심 없는 인간인 걸까.

 

주로 화가들의 삶에서 가수의 삶으로 넘어와보니 적어도 듣는 귀가 지루하지 않아 감동적이었다. 듣고만 있어도 세상 다 가진 듯하니, 굳이 그녀의 비극과 희극에 팔랑거리지 않아도 되었다.

 

 

 

남자들이 없어도 여자들의 인생은 반짝거릴 거예요. 언젠가 사랑을 해야 더 예뻐진다 말하던 어른들이 있었다. 사랑을 나눠야 할 나이에 사랑을 나눠야 예쁜 호르몬이 나와 예쁘게 해준다고. 믿지 않았지만 나이를 먹을 수록 알게 되었다. 그래, 사랑하지 않는 여자보다는 사랑하는 여자가, 사랑을 모르는 여자보다는 사랑 받는 여자가 예쁘긴 하지. 그런데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 나오는 여자들은 모두 남자 없이도 반짝거린다. 내가 검지에 낀 큐빅 박힌 백금 반지처럼 반짝반짝 눈부시게. 토마토는 생으로 먹는 게 좋은데 튀긴 토마토를 상상하다가 잠시, 어린 시절 패스트푸드 점에서 시작되었다 끝나곤 했던 소개팅(먹는 곳과 노래방으로 점철된)과 우정과 사랑이 떠올랐다. 아홉 살의 피아노와 장미, 열여섯 살의 원피스와 빼딱구두, 열일곱의 첫 키스, 열여덟의 우정, 커서 다시 만난 남자 아이들의 자취방 같은 것들. 그땐 타락이 아니라 일탈이었는데 쓰고보니 타락이 따로 없군. 자꾸만 싱긋 웃음 짓게 되는 두고두고 꺼내봐도 좋을, 누구나 다 좋아할 가슴 뜨거운 이야기.

 

여자에게는 최고의 영화가 맞지만 남자에게도 그런지 내가 아는 남자에게 실험해 봐야겠다.

 

 

 

여전히 학계 다툼도 있는 걸로 알지만 '유대인'에 대한 기준은 무엇일까. 유대인 학살이 종교전쟁이었을까, 민족전쟁이었을까, 인종전쟁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나와 다른 무언가를 가진 사람을 없애버려야 한다는 목적의식 없는 이상향의 발로였을까. 바벨탑을 쌓으려 한 건 바로 우리인데 이제는 탑을 무너뜨리겠다고 나대고 있으니 변고가 따로 없다.

 

<사라의 열쇠>는 유대인 학살에 관한 한 닳고 닳은 초보 영화다. 그나마 식상하지 않게 하는 게 '열쇠'라는 주제어인데 사라가 동생을 벽장에 숨기고 벽장열쇠를 들고 집에서 끌려나올 때부터 엔딩이 자꾸 그려졌다. 의미하는 바와 울림은 크지만 생각보다 단조로운 영화다. 열쇠는 결국 '뿌리'를 찾아내는 열쇠였고, 사라의 인생을 반추하는 상징이었다. 사회문제, 국제문제, 역사문제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에게라면 아주 쉽고 유익하게 다가갔을 영화다.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는 독일이건 폴란드건 프랑스건 식상한 게 사실이지만 볼 때마다 울컥거린다. 이제 킬링필드를 자처한 크메르루주 정권이나 독재자 차우셰스쿠를 그리는 21세기적 시각의 영화를 보고 싶다.  

 

 

드라마와 유럽편을 보고 또 보고 그랬던 시간이 있었죠. 노다메의 귀여움과 그녀가 치는 '반짝반짝 작은 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거든요. 그녀는 마음으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맞았어요. 치아키는 그녀를 독려하면서 꿈을 찾아나가는 훌륭한 지휘자였고요. 다시 만나니 더 좋았어요. 나이를 먹었지만 그들도 나도 달라지지 않았더라고요. <노다메 칸타빌레>를 이제 완전히 보낼 수 있게 됐어요.

 

질문.

 

최종악장이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 연주도 있나요? 있으면 귓속말로 좀. 노다메와 치아키와 피아노를 보내기가 정말로 싫어요. 엉엉.

 

 

 

곧 입춘이구요. 봄이 온대요. 그럼 또다시 여름이 오겠죠. 당신이 기다리는 여름은 어떤 여름입니까? 이런 여름?

 

<여름의 조각들>은 집안 대대로 오래된 물건을 수집해온 어머니의 75번째 생신날, 서로 다른 곳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한데 모인 시간을 담아낸다. 시골마을(인지는 모르지만) 마당이 푸른 초원으로 뒤덮여 손자,손녀들과 강아지들이 뛰어놀아도 자연스럽기만 하다. 어머니는 얼마 안 남은 생을 정리라도 하듯 아들에게 자신의 재산이자 추억이자 삶인(오르세 미술관도 탐내는!) 고가구와 미술품의 처리를 부탁하지만 삼남매는 귀담아 듣지 않는다. 갑작스레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어머니가 남긴 물건의 거취를 고민하는 삼남매. 이제는 당신의 것이 곧 내 것입니다. 물건이 곧 추억입니다. 추억을 돈으로 바꿀 수는 없죠. 삼남매가 과연 길을 잘 찾아갈까요?

 

하늘로 돌아가기 전에 당신은 무엇을 남기고 싶나요?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

 

 

그래서 그랬다. 코드가 맞는 영화를 만나면 오프닝 1-2분 안에 빠져들어 시간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좀 더 이야기를 해줬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법. 지금껏 본 존 말코비치의 영화들은 다 좋았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의외로 본 게 별로 없네.

 

<마지막 사랑>의 무대는 아프리카 북동부 모로코의 항구 탕헤르에서 시작한다. 이 사하라 여행은 돌고돌아 다시 탕헤르로 돌아온다. 꼭 가보고 싶은 곳. 척박하고 황량하기 그지없이 모래 아니 흙먼지만 날리는 폐허 같은 아프리카 땅인데 바로 그 순간이 황홀경이 된다. 파리 날리고 비위생적이고 좁고 더럽고 황폐한데 그곳에서 사랑을 나누는 포트와 키트의 은밀한 행위가 몽환적이다. 하늘과 땅, 단지 두 사람만 존재하는 천국처럼 여겨진다. 로드무비식 구성을 따르지만 결혼 10년의 권태기 극복과 예술에의 영감을 열망하는 욕망에서 시작된 여행이므로 결국 '욕망'에 관한 영화다. 욕망 조절에 관한 영화다. 중간중간 보여지는 오리엔탈리즘 시각과 후반부 대사 없는 날것의 사하라, 아프리카 풍경이 뇌리 깊숙한 곳에 박힌다. 불편한 진실마저도 몽환적인 아름다운 작품. 연인들은 꿈꾼다. 떨어질 듯한 푸른 하늘 아래 섹스해봤으면 좋겠다고.

 

 

 

<아르테미시아>(1593-1651/1653)는 카라바조(1571-1610)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 최초의 여성 화가로 기록되었다고 하는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유명한 그림이다.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 시대의 화가로 명암법을 이용하는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았고, 아버지 또한 화가였다.(오라치오 젠틸레스키) 그는 시대에 걸맞게 벽화 작업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딸의 재능을 이용한다. 여성의 예술가로서의 재능이 거의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 예술학교 입학을 거부 당하자 제자 탓시에게 그녀의 지도를 부탁한다. 훗날 그로부터 배운 명암법을 비롯한 많은 기법들이 작품세계에 영향을 미쳤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그녀는 20세기가 될 때까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영화는 그녀의 일생이라기 보다는 스승 탓시와 사랑에 빠지는 아르테미시아를 그리고 있는데 실제로는 둘이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 그녀가 강간을 당한 거라고 한다. 고작 열 일곱 정도였던 아르테미시아를 건드린 탓시를 용서 못하는 오라치오는 법정 재판에 딸을 세워 강간 당했음을 밝히기로 한다. 손가락에서 피가 배어나올 정도의 고문을 당하면서도 그녀는 탓시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못 견딘 탓시가 강간을 시인하면서 그들의 불 같은 사랑은 끝난다. 영화가 실제와 달랐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랑과 강간이 한끝 차이라는 건 보기 나름일 것이다. 그녀는 어렸지만 분명히 자신의 욕망을 알고 있었던 걸로 영화에서는 그려진다. 실제로는 그녀가 피해자라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가 탓시로부터 영향을 받아 그림을 그렸고, 재능이 뛰어났지만 까미유 끌로델처럼 남자(아버지)의 그들에 가려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딸이 인정 받아 날아가버리는 것을 아버지가 원치 않았을 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녀의 그림 중 아버지 것으로 남겨진 작품이 있다고도 하고, 여성 화가를 인정 못하는 시대인식 때문에 그녀는 300년이나 없는 사람으로 미술사에서 지워져 있었다. 그녀의 일대기 전체를 그리지 못한 영화는 아쉽지만 탓시 보다 카라바조가 그녀를 뒷받침 하는 든든한 배경 검색어인 걸 볼 때 그녀의 작품 또한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아르테미시아 역을 맡은 이탈리아 배우 '발렌티나 세비'가 아주 예쁜데 이 작품 이후 그다지 언급할 만한 작품이 없어 아쉽다.

 

[아르테미시아]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 1593년 7월 8일 - 1651/1653년)는 이탈리아의 초기 바로크 시기의 여성 화가로, 카라바조의 강렬한 명암법에 많은 영향을 받은 여러 화가들 중 하나이다. 그녀는 10대 때부터 미술에 관한 재능을 보이기 시작하여, 화가였던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에 의해 미술 수업을 받는다. 초기 바로크 시대의 여성들은 미술을 공부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으나, 그녀는 23살 때 최초로 피렌체 디세뇨 아카데미아의 회원이 되는 영예를 얻었다. 그녀는 여성화가로서 처음으로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작품을 그렸는데, 당시에 이러한 주제의 그림들은 여성의 능력 밖이라고 여겨졌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 (1614-20) 캔버스에 오일 199 x 162 cm

 

 

그녀가 17살이 되던 해에 그녀의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는 후원자이자 친구였던 타시 (Tassi)를 강간상습범으로 고발했는데, 이후 아르테미시아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부도덕한 여자로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그녀의 작품에서도 보이는 강인함과 열정으로 당대의 여러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 (피렌체 우피치 박물관 소장) 와 같은 명작을 남겼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오늘날에 이르러 여러 비평가와 학자들에게 재발굴되고 있는데, 그녀의 여러 작품들이 강인한 여성을 주제로 하고 있는 것을 꼽으며 그녀를 최초의 페미니즘 화가라 부르기도 한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그녀의 작품을 주문했던 한 고객에게 이러한 편지를 써 보내기도 하였다.

"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시이저의 용기를 가진 한 여자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생애>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1593년 7월 8일에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아버지이자 화가였던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장녀로, 오라치오는 카라바조 학교의 대표자들 중 가장 뛰어난 한 사람이었다. 아르테미시아는 아버지의 화실에서 처음으로 회화를 접했으며 그녀의 남동생들보다 훨씬 뛰어난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드로잉과 유화, 색을 섞는 법에 관해서 아버지에게 배우게 된다. 그때 당시 유행하기 시작했던 카라바조풍의 강렬한 명암법과 색감 스타일, 주제 등은, 아버지인 오라치오에서 아르테미시아에게까지 넘어간다. 그러나 아르테미시아는 이러한 화풍과 당시 전형적인 회화의 주제에 관해 오라치오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첫 작품은 수산나(1610년작)로 그녀가 17살이 되던 해에 완성되었는데, 아버지의 많은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 추정되고 있다.

 

1612년, 그녀의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남성들이 전부였던 미술학교에 입학을 거부당한다. 이 시기에 아버지 오라치오는 아고스티노 타시와 로마의 대저택을 꾸미는 공동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리하여 오라치오는 토스카나의 화가였던 그를 고용하여 아르테미시아를 개인적으로 가르치게 했다. 이 과정에서 타시는 그녀를 강간하게 된다. 그 이후 타시는 그녀의 명예를 위하여 그녀와 결혼하기로 약속했으나, 훗날 약속을 이행하기를 거부했으며 그로 인하여 오라치오는 타시를 고발하게 된다.

 

재판은 7개월간 지속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타시가 그의 아내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며, 그의 처제와 간통을 하고 오라치오의 작품을 훔쳐내려는 것을 계획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재판 도중 아르테미시아는 부인과 진찰대에서 검사를 받아야 했으며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것은 그녀의 말이 진실임을 증명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로, 만약 그 사람이 모진 고문 와중에서도 같은 말을 한다면 그것은 진실이라는 당시의 보편적인 관점 때문이었다. 이 재판 이후 타시는 1년 형을 선고받게 되고, 이 이야기는 훗날 20세기의 페미니스트들의 아르테미시아에 대한 생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1612-1613년작)는 나폴리에서 전시되었는데, 생생하게 표현된 잔인성이 주는 인상은 아르테미시아가 겪어야 했던 고통에 대한 정신적 복수심을 나타낸다고 해석되었다.

 

재판이 있는지 한달이 지난 후, 그녀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오라치오는 플로렌스의 한 화가인 피란토니오와 그녀를 결혼시킬 준비를 한다. 그녀가 플로렌스로 이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테미시아는 카사 부나로티의 청탁을 받아 왕실화가가 되었으며 메디치 가문의 찰스 I세의 후원을 받게 되었다. 이시기에 그녀는 [Madonna col Bambino(The Virgin and Child)]를 그렸다고 여겨지며, 이 작품은 현재 로마의 스파다 겔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플로렌스에서 지낼 당시, 아르테미시아와 피란토니오는 4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낳았다. 그러나 그녀의 딸인 프루덴지아만이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아 1621년 아르테미시아와 함께 로마로 돌아온다. (그 때 당시 아이들의 이른 죽음은 일반적인 일이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죽고나서 프루덴지아의 삶에 대한 것은 알려져 있지 않다.

 

 

출처-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건 뽀너스.

 

[카라바조]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 1571년 9월 29일1610년 7월 18일)는 이탈리아 밀라노출신의 화가이다. 태어난 마을의 이름인 카라바조(Caravaggio)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삶은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이며 위험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1600년 로마 미술계에 갑자기 등단했다. 그 이후 그는 어떠한 수입이나 후원자도 없었으나 그는 극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초기에 발표된 그에 관한 비평은 1604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 앞의 3년간의 삶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비평은 이렇게 말한다. "2주간의 작업 후 그는 데리고 다니는 하인과 함께 한 두 달간 칼을 들고 테니스장 여기저기를 으스대며 다녔고 싸움이나 논쟁에 개입되기도 하였다." [1] 그러다가 1606년 5월 29일 테니스 경기도중 말다툼 끝에 상대인 젊은 남자를 살해하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그는 현상금이 걸린 채 로마를 도망쳐 나왔다. 이후에도 1608년 몰타에서 말다툼에, 1609년나폴리에서 또 다른 말다툼에 개입되었다. 이런 요인들로 인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이 그를 고의로 살해한다. 다음 해인 1610년에 그의 10여 년간의 활동을 뒤로한 채 포르토 에콜레(Porto Ecole)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극적인 조명과 사실적인 묘사로 바로크 양식의 탄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초기에 사실적이고 파격적인 주제들로 인해 비난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으나 점차 인정받게 되어 유명해진다. 로마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미술의 흐름을 급격히 변화시켰다.

 

사망 후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20세기에 들어서 재발견되어 거장으로 재평가되었다.

 

 

출처-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오랜만에 화가 검색하니까 재밌다. 한동안 친구 탕기님 블로그에서만 미술사 공부를 했는데 원래 아는 게 없는 나는 아주 뒤죽박죽 엉망진창이다. 사실은 어느 시대에 어떤 화가가 있는지도 모른다. 카라바조를 처음 가르쳐준 것도 탕기님. 창고에 물건이 들어있는데 꼭 필요한 물건과 버려야 할 물건이 한 곳에 들어서 못 찾는 상태가 내 머릿속. '머릿속' 할 때 사이시옷이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 맞춤법/표준어 공부 머리 터지게 하는 나도 맨날 헷갈리고. 에잇.

 

나가는 말. 안녕.

(아직 페이퍼 쓰다만 거 몇 개 더 남았어요)

음, 책이 좋아요, 영화가 좋아요?




 
 
소이진 2012-02-08 00:06   댓글달기 | URL
이야, 하루 한편을 어찌 본단말입니까... 저는 한 편을 삼일 쪼개서 그것도 겨우 보는데 말이어요.
제 눈에는 노다메 칸타빌레가 쏙쏙 들어오지 뭡니까!! 마침 저 그거 볼라고 드라마를 다운 받아놨지 뭡니까!!
저 진짜 치아키 선배 너무 좋아하지 뭡니까!! 피아노는 더 좋아하지 뭡니까...
정말 너무 재밌어 보이느거 있죠.
예술가에 관한 것 저는 알지도 못하고 추천할 만한 재량도 못되니, 나가는 말 굳밤.

:)

아이리시스 2012-02-10 23:33   URL
목록을 잘 택하면 시간이 후딱 가도 모르게 볼 수도 있는데요, 보려는 목록이 아주 집중이 힘들어요. 그래서 저도 하루에 한 편은 못 봐요. 내내 영화만 볼 수도 없고. 희망사항.

노다메는 소이진님 나이에 꼭 봐야 해요. 강추!!! 저는 만화책은 못 봤어요. 드라마만 봤는데 우에노 주리 완전 좋아해요^^

굿나잇, 소이진님.

Shining 2012-02-08 14:46   댓글달기 | URL
<라비앙 로즈>같은 영화를 보면 영화화 될 수 밖에 없는 삶이구나, 하면서도 타인의 삶을 내것처럼 흡수하긴 어렵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마 전기영화가 불편하거나 지루한건 그런 게 아닐까요?
저 너무 오랜만에 왔죠^^; 차차 글 읽고 댓글 남길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아이리시스님 :-)

아이리시스 2012-02-11 00:04   URL
우왓, 샤이닝님이다, 어디갔다 오셨어요? <라비앙 로즈>를 다 목소리 높여 칭찬하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어릴 때도 위인전 읽기가 진짜 싫었는데 그것과 같은 현상이기도 해요! 또 한 편으로는 부럽잖아요. 영화화 될 수밖에 없는 삶.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연휴 때부터 내내 못 본 것 같아요. 기다렸잖아요. 저도 차차 놀러가서 글 읽을게요. 좋은 주말!!

양철나무꾼 2012-02-08 17:17   댓글달기 | URL
문화생활 끊고 산지 '쫌' 됐어요~
애인이 졸업도 하기 전에 고등학교 pre-school에 가버리는 바람에~ㅠ.ㅠ

본 영화도 있고, 보고 싶은 영화도 있고, 제가 사랑하는 영화도 두 편이나 있네요~^^

전 쫌 알려진 유명한 사람말고요~
한때 서른 몇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 앙드레 프레빈과 결혼 했던 안나 소피무터나,
주제 사라마구의 부인,
밀레니엄을 쓴 '스티그 라르손'의 동거녀 등이요~^^


아이리시스 2012-02-11 00:08   URL
요즘에는 그런 게 있어요? 원래 졸업하기 전까지는 완전 노는 시간들인 줄 알았는데..( '')
양철나무꾼님이 사랑하시는 영화 두 편 중 한 편이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맞죠? 저는 천재ㅋㅋㅋ

앙드레 프레빈은 누구고 안나 소피무터는 누구..ㅠㅠ
아.. 스티그 라르손의 동거녀는 사실혼 관계라 <밀레니엄> 저작료가 그녀에게 한 푼도 안간다는 얘기 들었어요. 어디서 봤어요. 그 여자가 다음 이야기 초고들을 갖고 있다고 스티그 라르손 저작권을 자기에게도 보유하게 해주면 공개하겠다고 한 것도요.

고마워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마녀고양이 2012-02-08 19:27   댓글달기 | URL
<노다메 칸타빌레>는 영화를 먼저 보았는데,
남주를 보고 기절하게 웃었거든요. 그런데 만화를 보니, 영화랑 완전 똑같은 표정인거예요.
참 신기한게, 우리나라는 만화를 영화화할 때 그런 캐릭터 표정을 나름으로 소화해서 하는데
일본 영화는 만화 표정을 굉장히 충실하게 옮겨서 연기하더라구요... 영화에서 치아키 맡은 배우, 넘넘 좋아~

난 전기랑 전기 영화 무지 좋아하는데,, 오호,, 라고 해서, 내 심리가 뭐예요 이러지 마세요. ㅋㅋ
(이미 아이리님의 댓글 연상이 되서 말이징~)

아이리시스 2012-02-11 00:12   URL
맞아요, 일드 주인공들 좀 그래요ㅋㅋ 우리와 다르게 만화나 애니 원작으로 드라마를 워낙 많이 만드는데 유치하지 않을까 하면서도 이상하게 빠져들어요. 저는 제가 학원물을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메이의 집사> 보고 알았어요. 저는 그런 걸 정말로 좋아하더라고요^^

치아키 맡은 배우 계속 보고 싶었는데 이후에는 작품들이 다 별로더라고요.
오호, 심리가 뭐예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기 싫었는데 요즘은 좋아지고 있어요. 이름을 딱 떠올리면 어디서 뭘했고 무얼 남겼는지 그런 것들이 백과사전처럼 튀어나오게 하고 싶어요^^

말없는수다쟁이 2012-02-09 15:20   댓글달기 | URL
책이 더 좋아요. 책도 영화도 둘 다 그냥 넘기고 싶은 부분이 있는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책이 좋아요. 책은 넘기고 싶은 부분마저도 나름의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무래도 영상의 힘은 막강한 것 같아요. 책은 잔잔하게 그 분위기가 남는다면, 영화는 뚜렷하게 한 장면이나 울음소리가 남으니까...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깊은 얼굴이 느닷없이 떠오르고 말이에요. 그나저나 저 역시 하루 한 편은 무리에요. 하루에 한 권 책보기도 어려운데 ㅎㅎ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페이퍼, 이틀에 걸쳐 읽었네요 ㅋㅋ (그러고 보니 이거 3부네요. 페이퍼계의 전쟁과 평화? ㅋㅋ)

아 그리고... 아이리시스님 서재 오면 왜 자꾸 보고 싶은 영화리스트가 늘어나는지 ㅠ ㅠ
이번 주에는 <천국의 아이들>을 꼭 볼 거에요!

아이리시스 2012-02-11 00:47   URL
책보다 영화보기가 더 쉽지 않아요? 집중 나름이긴 해도 시간은 책보다 영화가 덜 걸려요. 저는 책읽기는 하루에 50p, 영화는 1시간ㅋㅋㅋ 뭐 이렇게 정해놓지 않으면 무작정 시간이 흘러가더라고요. 페이퍼계의 전쟁과 평화는 이걸로 막 내렸습니다. 요즘은 영화 한 편도 못 봐요. 그나마 책만 몇 페이지씩..

오, 좋은 현상이네요. 보고 싶은 영화리스트 늘어나는 거요!
<천국의 아이들> 보기 화이팅! 숙제예요!!

꽃도둑 2012-02-09 16:23   댓글달기 | URL
크크 전 영화보다는 책이 좋아요. 영화는 끌려다니다 보면 정신을 차릴수가 없고..
책은 비교적 냉정하게 볼 수 있어서 현혹(?)되지 않아요.. 비교적 제정신으로 있게
만드는 책이 더 좋아요. 여백도 많고....상상의 공간도 넓고 제멋대로고...ㅋㅋ
위에 것 중에 <라비앙 로즈>하고 <여름의 조각들>만 봤는데 특히 라비앙 로즈의 에디트 피아프 역할을 맡았던
여배우의 연기는 정말 압권이었어요. 특히 피아프의 목소리는 아,,중독성 있어요..


아이리시스 2012-02-11 01:10   URL
꽃도둑님 말씀도 맞아요. 책은 영화와 달리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니 장점이 있어서 좋고 상상의 공간이 있어 좋고 내가 갖고 다닌다, 읽어준다 같은 나 우위의 느낌을 가질 수 있네요. 저는 한때 영화를 많이 좋아했고 원래 영상매체에 관심이 많았어요.

<라비앙 로즈>는 왜 당시에 못 보고 혼자 뒤늦게 빠져가지고.. 파리에 가고 싶어요^^ 저 좀 샹송을 좋아해요. 불어의 중국어와 비슷한 솰라솰라 하는 게 듣기 좋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맥거핀 2012-02-10 16:22   댓글달기 | URL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보러갈까 생각중이었는데(아마도 제목이 어려워서 망할 듯..;) 아이리시스님 말을 듣고 보니 좀 미리 예습을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정보 감사! 저는 덕분에 풍성한 영화감상 하겠습니다.캬캬.

아이리시스 2012-02-11 01:12   URL
맞아요. 꼭 예습하고 가요, 맥거핀님. 평론가가 쓴 글에서 본 거예요. 평론가가 아니었을 수도 있고요. 이제는 책도 읽기 싫어졌어요. 텍스트 하나를 이것저것 보는 편이 아니라서 이대로 이 작품은 평생 남을 거예요, 흑. 다 보고 저에게 이해 좀 시켜주세요. 제가 좀 멍청한가 봐요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cyrus 2012-02-10 23:09   댓글달기 | URL
<아르테미시아> 저 영화, 재미있겠어요, 여성 화가의 작품이랑 일대기가 드라마틱해서 영화 속의
아르테미시아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요. ^^

그리고 저는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지만 그래도 영화가 좋아요 ^^

아이리시스 2012-02-11 01:18   URL
아르테미시아가 예쁘게 나와요. 일대기를 다룬 영화로는 좀 부족하지만 시루스님도 그림 많이 보시니까 좋아하실지도 몰라요. 잊혀졌다 새롭게 복기되는 여성화가라고 해서 관심이 좀 있었는데 저 일 있은 후에는 예술 아카데미에도 들어가서 재능을 뽐냈나 봐요. 그동안은 남성화가 중심의 미술사에서 의도적으로 가려지고 지워졌었던 거래요.

영화를 많이 보지 않지만 영화가 좋아요, 라고 말하는 시루스님은 독서량도 웬만한 사람 뛰어넘잖아요. 신기해요. 욕심쟁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대부분 끝을 알지 못한다. 그 끝을 어렴풋이 안다고 말하는 이도, 믿는 이도 모두 결국 또렷하게 그 끝을 알 수는 없다. 가봐야 끝이고 끝이 되었을 때 우린 그게 끝인 줄 모른다. 알고나면 이미 늦는다. 그런데 이 영화들은 우리마저도 끝이 어딘지 아주 잘 알고,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이야기다. 우리는 그것을 비극이라 부르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현실을 잘 몰랐던 때와 마찬가지로 도울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프가니스탄은 4단계 여행금지국가, 이란은 2단계 여행자제국가로 외교통상부 <해외안전여행> 홈페이지에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다. 1,2,3,4단계 국가가 쭉 나열되어 있는데 일단 두 개만 하자. 죽어도, 반드시, 꼭, 가야할 이유가 없는 곳. 공교롭게도 더 가고 싶고 알고 싶은 곳.

 

이제 그 땅의 여자들이 어째서 그렇게 살아가는지 눈 감고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잘 안다. 하지만 영화와 뉴스를 통해 접하는 게 그들의 실상 전부다. 물론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전부다. 이보다 더한 상황이 버젓하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자꾸 눈돌리게 된다. 채널을 멈추고 찾아보게 된다. 중동,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핍박과 비윤리에 관심가질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이슬람 과격파의 비도덕성을 비난하게 되지만 그런다 해서 그곳 여자와 아이들,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남자들의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여기 한 편의 아프간 영화. 문학으로는 [천 개의 찬란한 태양]과 [연을 쫓는 아이]의 카불 출신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가 있지만 영화로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천상의 소녀>가 처음이다. 이전에도 아프간 영화는 있었고, 이후로도 있어왔을 것이다. 다만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 후 제작되어 칸 영화제에서 호평 받은 영화가 [Osama]라는 원제의 <천상의 소녀>다. '오사마'는 소녀의 정체를 아는 어떤 소년이 소녀를 감싸기 위해 거짓으로 지어낸 남자이름으로 제목이기도 하다. 감독은 탈레반 붕괴 후 아프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의해 탄압받는 여성과 여성해방투쟁으로 가난에 시달리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주인공 레일라 역의 여자아이는 길거리에서 즉석 캐스팅 됐고, 엄마와 할머니 역할의 배우는 포로수용소에서 만났다고 한다. 소녀는 영화에 출연하겠냐는 말에 영화가 뭔데요? 되물었고, 탈레반 붕괴 후 자신의 영화가 아프가니스탄의 실상을 알리는 역할을 하리라 믿었던 감독은 국제사회의 무관심에 상처 받았다. 아쉽거나 슬프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나 말 속에 체념이 섞여있음을 짐작했다. 아프간 문맹률은 여전히 높고, 세계의 지원도 미미하다고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던 감독이 전했다.(이 모든 내용을 감독의 인터뷰 기사로 보았다)

 

이 영화는 투박하고 부석거린다. 모든 거리와 건물이 헐벗었고 늘 폭격 맞는 땅 답게 풀한포기조차 없어 삭막하기 그지 없다. 툭툭 치며 다가오는 흔들리는 화면은 세련되지 않아도 폭발하는 힘을 지녔다. 뼛속까지 진실이라는 명확함이 주는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소녀의 두려움이 서린 눈빛은 또래가 가져서는 안되는 안타까움을 담아낸다. 낯설고 황량한 중동 땅으로 우리를 안내할 때 무려 시적이고도 신비롭다. 금지된 땅, 자유와 생명이 버려진 곳. 그 땅에서 <천상의 소녀>는 탄생했다.

 

폭격으로 아버지가 죽은 뒤 소녀의 집에는 생계를 이을 남자가 없다. 식구라곤 달랑 늙은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레일라 뿐.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여자의 몸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 땅의 여자들은 오로지 알라 신이 부여한 자격을 가진 남자에 의해서만 의식주를 이어갈 수 있다. 할머니와 엄마가 레일라에게 제안한다. 가만 있어도 우린 죽을 거고, 들켜도 죽지만 들키기 전까지는 괜찮다고. 두려움을 숨기지 못한 채 떠밀리다시피 남장을 한 레일라는 일터에 나간다. 그즈음 군사훈련 명목으로 남자 아이들이 징집된다. 연약하고 호리하고 예쁘장한 소녀가 우직하고 그악스런 남자들과 소년들 틈에 섞여 있다. 목욕 시간을 무사히 넘기지만 아이들의 놀림과 수근거림이 계속되는 한 들키는 건 시간 문제. 결국 재판이 열리고 공개처형 당할 위기에 처하자 한 남자가 나서 자기가 데려갈테니 아이를 처형시키지 말아달라 하고 재판장에게 받아들여진다. 늙은 남자는 집으로 데려가 꽁꽁 잠긴 빗장을 열고 그녀를 가둔다. 이미 여자와 아이들이 여럿 가둬진 남자의 집. 레일라는 애원하지만 알고 있다. 더이상 자유를 찾지 못할 것이며, 다시는 소년이 무지개를 건너면 소녀가 되고, 소녀가 무지개를 건너면 소년이 된다는, 남자와 여자는 똑같다는 할머니의 오래된 옛날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 거라는 것을.

 

덩치 큰 늙은 남자가 목욕통에 몸을 담근다. 겁에 질린 여자 아이의 다리 아래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이 순간 여자가 된 것이다.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 영화는 어느 것 하나 해결하지 않은 채 레일라를 내동댕이 친다. 희망적 결론을 염두에 뒀던 감독이 현실적 결론으로 바꾸기로 결심한다. 운명에 순응할 것인가, 대항할 것인가. 순응하면 살고 대항하면 죽을텐데, 이곳이 저곳보다 낫다는 보장이 있을까. 꺾여버린 날개로 모든 여자가 "신이시여, 어째서 여자를 만드셨나요" 만 하고 있기에도, 맞서기에도 이들이 치러야 할 희생이 너무 커 보인다. 부당함에 치가 떨린다. 다큐 보다 진한 현실감, 두려움과 공포로 흔들리는 레일라의 눈빛, 황량하게 파괴되고 척박하게 메말라버린 땅을 구경하는 게 내가 한 일 전부다.

 

 

 

 

 

 

 

 

 

 

 

 

 

 

한편, 이란 영화 <천국의 아이들>은 전혀 다르다. 이 영화는 놀랍게도 '구두(운동화)'와 '마라톤' 만으로 아이들의 모든 것을 표현해낸다. 세속에 찌든, 가난이란 이름 앞에 고개 숙이고 자존심 굽힌 우리들을 진짜 천국으로 데려간다. 모든 것은 오빠 알리가 여동생 자라의 구두수선을 해오다 감자 사러 들른 사이 숨겨둔 구두가 없어지면서 시작된다. 자라는 울먹이고, 알리는 자기 운동화를 오전 등교인 자라가 오후 등교인 알리에게 넘겨주면 둘 다 걱정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다고 설득한다. 부모님에게는 숨기기로 하지만 혼이 날까봐 그런 것만은 아니고, 다시 빚을 져야하는 아버지가 걱정돼서다. 알리와 자라에게는 갓난 동생이 있고, 엄마는 허리를 다쳤으며, 아빠는 허드렛일을 하며 돈을 벌지만 넉넉치 못한 형편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가난을 모르는 이 아이들의 예쁜 마음은 운동화가 도랑에 빠져도, 등교시간에 늦었다며 추궁 받아도 굴하지 않고 그 씩씩함과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돌파한다. 대단하다.

 

어느 날 학교 내 마라톤 대회의 3등 선물이 운동화라는 것을 본 알리는 꼭 동생에게 운동화를 선물해주겠다며 죽을 힘을 다해 달리다 결국 1등을 하고 만다. 중동 그러니까 이란 영화 중에서는 제법 알려진 편이고, 1997년도 영화라 연식도 꽤 된데다, 큰 사건 없어 보이면서도 큰 울림 주는 희망적 주제로 좋은 평을 받는 영화다. 15년이나 지났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요즘 세태에 딱 들어맞기까지! 그저 가난 이야기로 볼 수도 있겠지만 <천국의 아이들>은 좀 더 나아가 '구두(운동화)'나 '마라톤'이 철저히 상징과 비유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어른용이래도 손색이 없다.

 

자라가 학교에서 자기 구두로 보이는 신발을 신은 여자아이를 보고도(확신하고도) 말하지 않은 것, 알리에게 알려 함께 그 여자아이의 집 앞에 몰래 찾아간 것, 가난한 여자아이의 맹인 아버지를 보고 발길 돌린 것, 거리낌 없이 여자아이와 친구가 된 것. 이 모든 것이 아이들의 것이라기에는 벅찰 만큼 눈부시다. 혼자서 돌파하려 마라톤에 나간 것이나 힘들게 결승선을 밟은 것, 동생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부모님에게 징징대지 않은 것 등 사실 어느 시점부터는 어른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아이들 시선으로 돌파하는 현실과 부조리, 희망에 대한 영화다. 사랑스럽고 어여쁘다. 작은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걸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짠해온다. 시작부터 끝까지 뭐 하나 잘라내거나 버릴 부분 없는 영화.  

 

 

1편의 명성이 자자했다. 대학 때 '부조리'에 관한 설명이 필요할 때마다 단골등장한 작품이었으니! 실제로도 많이 컸겠다. 1997년도면 나도 열다섯 살인데, 알리는 그보다 몇 살이나 어릴지. 극중에서는 아홉 살 정도로 나오는데. 어쨌든 눈물 짠한 그 남자아이도 지금은 20대 청년이 됐겠다. 세월은 마법 같은 것.

 

 

그리고 배경지식은 전혀 없지만 <천국의 아이들 2-시험 보는 날>이 2005년에 나왔다. 전편보다 나은 속편 없을텐데^^;;

 

일단 이 영화를 확보해 놓고 나중에 봐야지! <거북이도 난다>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도 가지고 있는데 나중에 봐야지! 이러다가 중동으로 가는 여행가방 쌀 것 같기 때문에. 이러다가 조만간 때려치우고 어디로 갈 것 같으니까. 나는 그런 거 잘 하고 이젠 별로 망설임도 없다.

 

우리는 결혼해서 이민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아이 없이 서로만 바라보고 살지, 아님 명절이나 아플 때나 친구들이 자식 자랑하거나 자식 걱정할 때 너무 쓸쓸해질테니 딸 하나만 낳아서 예쁘게 키우자던가,

 

어제 <신들의 만찬>에서처럼(드디어 짜증나는 <애정만만세>와 재미없는 <천번의 입맞춤>이 끝나고 <무신>과 <신들의 만찬>이 시작했다) 평생 지중해 크루즈를 타보자던가(물론 드라마는 국내 크루즈), 연금 꼬박꼬박 챙기든가 아주 나이가 많이 들어서 연금을 퇴직금으로 챙겨가지고 암스테르담에서 묵을 때 봤던 마음씨 좋고 따뜻하고 예의 바르고 지성적인 게스트 하우스의 노부부처럼 늙어가자던가. 뭐 그런 꿈들을 재빨리 실현시킬 수 있다. 있겠지! 있어야지! 있어야 한다.

 

 

 

어째서 중동과 아프리카에 자꾸 관심이 가는지, 일부러라도 국제사회 섹션을 찾아 읽고 여기 봐봐, 이런 일도 있대, 하면서 내 삶으로 자꾸 끌어오는지, 마우스 커서도 아닌데!!! 그래도 이들의 처절한 삶과 고통의 아픔, 자유를 위한 투쟁, 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사활을 건 싸움이 절대 내 것이 되지가 않는다. 내 것이 될까봐 두렵지만 내 것이 아니라서 안도하지만 내 것이 되지 않는 것이 때때로 그래서 내가 그들을 즐기는 대상으로 여기는 걸까봐, 그들의 아픔을 통해 조금 불행한 내 삶도 행복하다고 반추할까봐 죄스럽다.

 

학창시절 무용 선생님이 내준 숙제에는 무용공연을 보고나서 써야 하는 감상문이 있었다. 친구들과 무려 학교 바깥으로 어른없이 외출할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너무 기쁜 나머지 문화회관에서 맛난 것도 사먹고(그래봐야 김밤,핫도그,어묵,떡볶이,코코아,음료수 정도였을!) 수다 삼매경으로 시간을 보내다 드디어 들어가 앉은 객석에서의 무용은 사실 지겹기만 한 지루한 예술이였다. 그때 예술은 모두 지루했다. 여중생에게 전위예술은(하물며 그림,음악 또한) 그냥 사람이 움직이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는 스물 두 살에 부산에서 열린 샤갈 전과 달리 전에서 뭔가를 느꼈고, 인상파 거장전을 스물 네 살에 보고는 전율마저 느꼈다. 그 후 유럽 삼대 미술관과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모던, 초상화 미술관, 자연사 박물관, 빈 미술사 박물관, 고흐와 렘브란트 미술관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감동면에서는 단연 벨베데레의 클림트와 쉴레가 최고였다.

 

모르는 예술도 한 번에 눈에 확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그때 지루했던 무용공연에서도. 4.19를 형상화 시킨 단체 무용이었는데 고요함과 적막함, 소용돌이 치는 분노와 절정, 다시 찾은 희망 순서로 이어지는 멋진 작품이었다. 나중에 붉은 장미 꽃잎이 무대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데 정말 핏빛 절규처럼 여겨져 눈물까지 글썽일 뻔 했다. 무용을 모르지만 무용은 아름다운 예술이었다. 이 영화들이 그때 본 무용과 다르지 않다. 희망과 자유를 가볍게 그리려 하면 할 수록, 오히려 가볍고 발랄하게 현실을 반추할 수록 점점 더 그때 바닥에 떨어지던 붉은 꽃잎이 떠올랐다. 붉은 피, 처절한 욕망, 그것들이 모두 상처와 자유를 상징하고 있음이 또렷이 느껴졌다.

 

 

아픔과 슬픔과 분노 같은 것들이 문화적 코드가 되기란 쉽다. 영화,문학,무용,음악 마저도 그것들을 극복하려 탄생한 부수물들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지만 문화란 그게 다인 것이 아닐까 하고. 누군가를 이해하도록 돕고, 나의 트라우마를 끄집어 내고, 남의 상처를 이해하는, 또는 우리가 이루고 싶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 소통하고 노력하는 과정. 이 모든 것이 문화예술이라면, 아프간과 이란 영화는 그 절정에 있다.

 

사실 서른이 되기 전에는 아프리카와 남미 빼고는 세계 지도 어느 대륙이든 한 번씩 발 담글 수 있을 줄로 알았다. 특히 아프리카 희망봉. 쿠바와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브라질리아. 칠레, 콜롬비아, 페루. 새들이 가서 죽었다는 로맹가리의 그 페루 말이다. 그러려면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가 필수일텐데 짧은 시간에 되는 게 아니니까 [러브 스토리 인 하버드]에 나오는 김태희처럼 1년 동안 준비하다 김래원을 두고 휑 하니 꿈을 찾아 가버릴 수 있는 그런 여자가 되어야 하나, 뭐 그런 생각들.

 

같은 것을 보아도 스물 살에 보는 것과 서른,마흔,쉰에 보는 것이 여러가지 의미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며 살았다. 위험하지만 그런 곳에서도 꿈을 키우는 중동은 아프리카나 남미 보다 더 두렵지만 다이내믹 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이젠 감히 꿈꾸지도 못한다. 초콜릿과 바나나와 사탕수수를 캐내며 살아내는 아프리카와 남미 소년보다 [천상의 소녀] 오사마가 이 순간 내게는 더 안쓰럽다. 일을 해도 목숨 걸고 성별 바꾸어 해야 하는 현실이라면 거긴 희망이 티끌 만큼도 없는 거니까. 남자에게만 매달려 사는 여자들이 행복한 꼴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내가 탐내면서 곱씹고 신비해 마지 않을 그런 대상의 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 이 곳이 아닌 곳을 사랑한다. 힘은 없지만 그곳이 지금 보다 조금씩 좋은 쪽으로 달라지기를 바란다. 어떤 체제, 전통, 관습에 의해 고통 받고 희생 당하는 이들이 차차 자기 권리를 찾아가서 우리 만날 수 있기를. 작은 기도로 큰 꿈을 바랐다. 나는 그랬다.

 

 

 

 

 

 

 

 

 

 

 

 

 

 

 

 

 




 
 
말없는수다쟁이 2012-02-06 16:58   댓글달기 | URL
선 리플 후 감상요~ (짜장면 곱빼기요~ 말투 같죠? '') <천국의 아이들>이 한눈에 들어오네요. 제가 어렸을 때 9번에서 (kbs1) 틀어준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올라요. 주일학교인가, 애들이 학교에는 안 가고 성당 같은 데서 공부를 하는데... 영화는 매 달마다 챕터가 구분됐어요. 그리고 주인공 꼬마의 할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 있고요. 운동회날 아이가 달리기를 1등으로 들어와서 할아버지 품에 안기는데 그 순간 할아버지가 모래바닥에 털썩 쓰러져요.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할아버지의 영혼과 아이가 마주하는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그 장면이 떠오르네요.

요즘에는 알라딘에서 글쓰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생각하고 있어요. 이상하게 알라딘에서 글쓰는 건 완벽한 요리를 내놓아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조금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다른 블로그와는 다르게, 책을 둘러싼 공간이잖아요. 그리고 너무나 훌륭한/좋은 글들이 많고. 책을 읽으면서도 이 책에 대해 어떻게 글을 쓸까, 이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되고요. 조금 더 자유롭게, 솔직하게, 생각하고 표현해야겠어요.

월요일이네요! 저는 감기몸살 기운으로 인해 오늘 하루 방콕행입니다!

아이리시스 2012-02-06 17:38   URL
제가 수다쟁이님 글 좋아하지만 코난 보면서 더 그런 생각 했잖아요. 수다쟁이님 글은요, 따뜻하게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꼭 있어야 할 다음 문장이 그 다음에 오는 것 같아요. 신기해요! 그러니까 그런 생각 안해도 될 것 같아요. 대학 때 저는 인문쪽 전공하는 그러니까 문과생과는 절대 연애하지 말자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저와 비슷한 사람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알라딘에 대부분 책을 좋아하고 책과 비슷한 일하고 관련된 일하는 분들이 많지만, 바깥에 나가면 그와는 상관없는 일 하는 분이 또 얼마나 많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제가 책을 좋아하면 그애는 운동을 좋아해야 해요! 그애는 어려운 책을 저보다 더 집중력 읽게 읽어내거든요. 책을 많이 보지 않아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그리고 걔는 공대생이었어요. 저도 '이과반'이었으니까요.

수다쟁이님 보면서 그 생각은 조금 바뀌었어요. 학교 다닐 때 이쪽에 아무래도 남자가 귀하잖아요. 나와 똑같은 동갑내기를 만나 도서관에서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국가 얘기하면서 도서관 데이트를 하고 싶어요. 드라마 [컬러 오브 우먼]에 그런 첫사랑 추억을 지닌 커플이 나오고 있어요. 좋아하는 구절까지 같아서 얘기하며 저 사람이 나고, 내가 저 사람이구나 이렇게 느끼며 사랑했대요. 소중한 첫사랑의 추억이잖아요?!
^_______________^

아파요? 푹 쉬어요. 난 또........ 도서관에............................................ 오늘은 세 시간 자고 8시에 깨서 도로 잠이 안 와서(더 자야 했는데!) 하루 열다섯시간 카운트를 끊으려고 해요! 그러면 고시 붙는다는데.............( '')

말없는수다쟁이 2012-02-06 17:48   URL
아, 저도 도서관 다녀왔어요. 방콕 아니네요 ㅎㅎ
열 다섯 시간 카운트... 힘 내세요. 고승덕은 고기도 갈아먹었대요. (응? ㅋㅋ)

그리고 고마워요, 아이리시스님.
너무 망설이지는 말아야겠어요.

마녀고양이 2012-02-06 19:51   댓글달기 | URL
천국의 아이들이랑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참 영화가 좋았어요.
그 나라의 영화가, 이렇게 아름답구나 하고, 매일 싸움만 하고 무식한 테러만 일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가
역시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 맞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아이리님, 요즘 글 꾸준하게 쓰네요?
난.... 심드렁 심드렁,,, 아하하, 요즘 좀 그래요... 예쁜 페이퍼 감사, 쪽~

아이리시스 2012-02-07 17:12   URL
영화가 좋았어요! 근데 저 영화들이 극장상영할 때 저는 뭘하고 있었을까요? 만들어진 것보다 훨씬 이후에나 들어왔을텐데 저는 고전을 탐닉하느라 그랬나...............라고 하기에는 그다지 본 게 없고..

이건 쓰기 시작한지 좀 오래된 페이퍼예요! 지금 로만 폴란스키 포함 한 다섯 개 정도 있어요! 바로 써서 올렸다면 글이 이것보다는 짧고 정리되었을텐데. 요즘은 모르겠어요. 쓰는 게 남는 거다 이러면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yrus 2012-02-06 20:59   댓글달기 | URL
제가 본 중동 관련 영화 중에서 기억나는게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요.
초딩 때 본거라 내용이 기억 안 나지만 긴 제목이 유난히도 기억이 나네요.
그 때 그 영화를 보면서 중동의 아이들이 천진난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아이들이 테러에 의해서 동심이 사리지고 있는 중동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해요.

아이리시스 2012-02-07 17:15   URL
제가 지금 못 보고 있는 게 그건데 좋나 봐요. 좀 다른 시각의 영화도 필요할텐데 매번 현실고발 아니면 아이들의 희망을 노래하는 영화만 10년 넘게 이어지니, 참 그곳도 현실개선이 언제될지 캄캄해요.

중동 아이들이 눈 크고 거슬린 피부에 참 예쁘장하게 생겼잖아요. 그 아이들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걸 보면 진짜 미치겠어요. 지켜주지도 못할 거면서 그 땅에서 아이들은 왜 그렇게도 낳는 건지..

그래도 태어난 걸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

소이진 2012-02-07 17:06   댓글달기 | URL
저는 중동 관련 영화는 본 것이 없지만 워낙 한비야님의 책을 많이 읽다보니 환경은 많이 접하고 있어요. 아마 중동 여성들이 할례를 받지 않나요? 아니었던가... 하여튼 중동의 삶은 그 어떤 매체로 접해도 뼈 아프네요. 아무리 석유가 많이나고 부자들이 많다지만 하구한 날 전쟁에, 기근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다들 알고있겠지요?

아이리시스 2012-02-07 20:44   URL
저는 지구 세바퀴 반 보고 싶은데 그거 읽으면 진짜 현실도피 같아서 참고 있어요. 오래 참았는데 소이진님은 그거 봤어요? 학교 다녀왔어요? :)

응, 할례는 한비야님이 추천한 [사막의 꽃]을 예전에 읽었어요. 사우디 같은 곳은 진짜 부자나라잖아요. 공무원들이 세 시간 일한다고도 해요. 엄청 큰 집에 살고요. 이건 들은 얘기라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래도 항상 사람이 모자란대요. 돈만 있지, 집만 크지, 사회 제반 시설과 문화 시설이 하나도 없으니까 타국에서도 그걸 뻔히 알면서도 선뜻 들어가 살지를 못한대요.

전쟁의 중동 뿐만 아니라 다른 중동도 그다지 살 곳이 못되겠더라고요. 가만 앉아 있어도 석유로 돈을 펑펑 버는데 누가 일을 해서 발전을 시키려고 하겠어요. 자국에서 안하니까 다른 나라가 들어와서 엄한 사업들이나 하고.................(왜 얘기가 이리로............)

맥거핀 2012-02-10 16:32   댓글달기 | URL
<천상의 소녀>는 예전에 '칸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수상쩍은 DVD 콜렉션으로 본 영화네요. 뭔가 아주 힘들었던 영화로 기억하고 있어요. 탈레반을 저주하던 노래도 생각나고..그 이후에 며칠간은 다른 것을 봐도 계속 이 영화가 생각났기도 했구요...그래서 예술은 우리에게 늘 정치적인 태도와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요? 당신은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그것을 '좋은 예술'은 끊임없이 묻는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리시스 2012-02-10 23:30   URL
좀 거북한데요, 전에 <더 스토닝 오브 소라야.M> 보다는 나았어요. 그 투석형은 제가 본 모든 영화 중 가장 끔찍했어요. 그러고보면 저 되게 비위 좋은 것 같은데.. 그 남자가 아니었다면 소녀도 끔찍하게 죽었겠죠? 여자가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 남자에게 얹히는 거라니, 사실은 그게 제일 곤혹스러운 영화였어요.

그나저나 DVD 콜렉션도 보신다니( '') 우앗, 정말 영화를 사랑하시는군요. 저는 의외로 많이 못 봤는데 제목만 많이 알고있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말을 오스카와 보냈다. 오스카 와일드 말하는 거 아니고, 자꾸 현빈 얘길 하게 되는데 현빈 사촌형 오스카(윤상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아홉살 소년 오스카. 영화도 나온다기에 더이상 미룰 필요는 없겠어서. 이 책은 [아이리스]에도 나왔다. 김태희랑 이병헌이 소파에서 애정행각을 벌일 때. 그 드라마를 열심히 본 건 아닌데 그 장면은 또렷하게 봤다. 뿐만 아니라 내용에 대한 대화도 얼마간 나눈다. 결국 소통과 치유의 얘기라고 이병헌이 김태희에게 대답해준다. 그때도 아, 그 책.. 했다. 교수님 얼굴이 먼저 떠올랐지만!

 

사실 토요일밤에 진즉 오스카는 떠나 보내고야 말았지만 그 아쉬움을 말로 다 못한다. 아.. 영원히 안 끝났으면 했다. 다 좋다는 데는 역시 이유가 있구나. 나는 그 반대도 많이 겪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넘어가기로 한다. 좋다면 좋은 거고 안 좋으면 안 좋은 거지 꼭 이유가 있어야 할까? 여기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도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사실 초판이 나온 2006년도부터 늘 읽기를 시도했다. [아이리스]로 화제가 됐을 때도. 하지만 그즈음의 나는 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디에서 뭘 했는지는 모르지만 다른 것들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어쨌든 나와 이 책의 인연은 그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교수님이 우리 학교에 처음 오신 해. 봄 학기 이론강의를 듣던 해. 그 해 가을의 강의 계획표. 강의 계획표 속에 이 책이 있었다. 많은 책이 강의 1회차부터 마지막차까지 빼곡 했는데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와 이 책이 기억난다. [마담 보바리], [백년의 고독], [율리시스] 비롯한 엄청난 수의 고전소설이 있었고, 아마 그때 이 책을 사뒀을 것이다. 내가 가진 책들은 대부분 그때 샀다. 지금으로선 구판이 되어버린 왼쪽 버전으로. 

 

 

 

 

 

 

 

 

 

 

 

 

 

그리고 나는 그 수업을 듣지 못했다. 않았다는 말이 더 옳을 것이다. 마지막 학기였는데 채워야 할 학점이 많이 남아서 비교적 알차게(?) 보이는 자료와 책 빡빡한 수업 대신 좀 더 수월해 보이는 철학과 윤리수업을 택했다. 소설이론이나 감상, 창작 수업이 어렵고 철학이 쉬웠다는 게 아니고 철학과 수업이 온라인으로만 진행됐기 때문이다. 통학 시간이 편도 1시간 반, 왕복 3시간이 넘는데 친구들 대부분이 안 오는 학교를 혼자 꾸역꾸역 다니기가 뭐했다. 함정임쌤 수업이었는데 봄학기에 들은 소설이론 수업에 매료 되었기에 좀 더 소수정예인 전공선택 과목을 꼭 듣고 싶었다.

 

하지만 4학년에 학구열 불태울 의지가 내게는 없었고, 결국은 그렇게 졸업을 했다. 일찌감치 내게 창작 의지(능력은 물론!)가 없다는 건 확인했으니 대학원에 갈 필요도 없었다. 실제로 대학원에 지원하긴 했는데 다른 학교, 다른 전공이었다. 오만한 나는 확신 없는 원서지원, 면접까지 봐놓고 떨어지고도 차라리 다행이라 말했다. 취미로 공부하는 게 아니라면 대학원은 반드시 그게 아니면 안될 사람이 가야 한다. 거길 갔어도 나는 지금 흔들렸을 것이다. 그건 원래 그런 자리였기 때문이고 지금의 나는 그것에 대해 공부할 생각이 없고 다른 것에 대해 몰두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풍의 언덕]과 미칠듯 잠자지 않고 몰두할 대상을 찾으라는 교수님 말에 집중했다. 어디론가 떠나라는 말도! 그래서 졸업 전 급하게 그녀가 알려준 코드대로 유럽여행을 떠났다. 아무도 없고 무엇 하나 몰랐지만 오로지 용기 뿐. 다녀온 후의 나는 그 전과는 달랐다. 물론 많은 의미 혹은 다른 의미로.

 

 

첫 출간이 2006년 8월. 이 책은 정확하게 그 해에 나왔음을 확인한다. 기억은 틀릴 수 있지만 역시 책은 거짓말을 하지 않구나. 시간은 더욱 거짓말 하지 않는다. 못하는 거겠지. 거짓을 말할 수 있는 건 결국 사람 뿐일 테니까.

 

왜 이렇게 수다스럽냐! 책 제목이 수상한 데도 이유가 있었다. 몇 번이나 절반쯤 읽다가 놓아버렸기 때문에, 그것도 재미 없어서가 아니라 아예 독서 자체가 이어지지 않는 나날들이었으므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나는 새삼 심하게 빠져들었다. 아홉살 꼬마. 세상의 모든 것을 알아버린 아홉살 꼬마에게로 한없이 감정이입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비교적 어린 작가의 기발함이 대단하다고도. 몸이 커버린 어른이 아홉살 아이가 되기가 쉬운 일일까. 난 늘 그게 제일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말은 대체로 산만하게 지내는 편인데(의욕만 가득차서는 아무 것도 못하고!) 이번 주엔 집중력이 높아져서 책이 잘 읽혔다. 물론 좋은 작품들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내 경우는 그래서는 아닌 것 같고 하여튼 내 집중력과 의지가 짱!(이 말이 하고 싶었음)

 

헤르타 뮐러도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폈다 덮었다 하면서 끝을 못본 채로 몇 년 흐른 책이다. 책상 아래 구석진 곳에 억지로 쌓아놓은 책더미 가장 안쪽에 있었는데 사실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숨그네]는 없다. [마음짐승]도 없다. 리뷰대회 참가하겠다고 샀는데 읽지도 못한 걸 보면 썼을 리도 없고 그런데 책을 펼치면 너무나 익숙한 문장들이 쏟아지는 걸 보니 읽으려고 하긴 했던 모양이다. 신기하네. 더 신기한 건 지겨울 만도 한데 몇 년이나 앞부분을 읽고 있다는 것이다. 시적 문장이라는 평은 한 치도 어긋남 없고, 있을 만한 자리에 있을 단어와 문장이 놀랍도록 완벽하게 구사되어 있다는 점에서 또 한 번 놀란다. 그러니까 이번엔 반드시 끝을 보고야 말테다. 불끈!

 

리뷰를 쓰고 싶다. 어려울 수록 리뷰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험에 의하면 어려울 수록 휘발이 빠르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나를 기록이라도 해놔야 의미있는 시간들로 남는다. 한데, 망설이게 된다. 제대로 이해한 걸까. 이게 전부일까. 그러니까 이건 분명 잡담이다. 이 글 어디에 책에 대한 이야기가 있단 말인가. 이래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난 또 뭘 더 할 수 있을까.

 

 

 

 

 

 

 

 

 

 

 

 

 

 

 

 

모든 책에 대해 이런 식으로 추억을 쓴다면 한도끝도 없을 만치 쏟아질 것이다. 이야깃거리나 역사가 없는 책은 없다. 문득 알게 된다. 어떤 식으로든 무엇으로든 누구에게서든 영향을 받고 있구나.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것에 영향 받고 있구나. 내가 [폭풍의 언덕]을 모든 사랑고전 중에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그때 온 밤을 투자해 꼼꼼히 밑줄 치며 읽고나서 작성했던 보고서와 발표 때문이고, 그녀가 수업시간에 보여준 오래된 영화 때문이고, [마담 보바리]를 잊지 못하는 것은 파리와 아저씨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기 시작하면 난 아마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오스카보다 백 팔십 삼만 배 더 수다스러워질 지도 모른다.

 

책이 아니고 드라마라면! 드라마 아니고 음악이라면!

 

 

책을 좋아해서 좋은 점은 언제 어디서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그건 내가 지어내지 않아도 그들이 이미 이야기 했으므로 그것만 들려주면 되는 일이라 지독히도 쉬운 일. 내게는 가장 쉽고도 즐거운 일.

 

[지상의 양식]은 금요일밤 자려고 누워 폭풍처럼 읽어내려갔다. 사실은 폭풍읽기는 좀 오랜만이어서, 한 달 내내 영화만 보던 내가 드디어 독서버전을 좀 되찾았나 싶을 정도로 기뻤다.

 

1월 마지막 날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와 [사라의 열쇠]를 본 후 영화는 도통 들어오지 않아 2월 첫날과 둘째 날에 [마지막 사랑]과 [천국의 아이들] 그리고 [아르테미시아]를 보고 [셜록] 시즌2를 봤다. 그리고 더빙판을 KBS에서 재빨리 하더라, 오호라! 주말엔 일본 드라마 [스트로베리 나이트], [럭키 세븐]도 보기 시작했다. 일드 얘기를 하니 갑자기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 밤새 보면서 엉엉 울었던 [남극대륙]이 다시 생각나네^^;; 이동욱과 제시카가 키스하는 [난폭한 로맨스]를 보고 [해를 품은 달]을 보고 [드림하이 2]를 보고 내가 안본 건 이제 [샐러리맨 초한지] 뿐인가. 동생이 그게 엄청 웃기고 재밌다고 꼭 보랬는데!

 

 

 

 

 

 

곧 짧은 감상평이나 페이퍼를 쓰려고!

 

 

 

좋은 영화가 네 편 뿐인 것도 아니지만 네 편 모두 좋은 영화다! [마지막 사랑]은 19금이지만 그래도 좋은 영화! 덕분에 아프리카 희망봉에 대한 로망은 쉽게 접히던데 오래 전 영화니 지금 아프리카는 달라, 이러면서 또 막 꿈꾸고. 언제 갈지도 모르면서 일단 예전 책 찾아놓는다. 찾아와서 새로 읽는다. 다르게 읽힌다.

 

 

 

 

영화 [마지막 사랑] 중에서 

 

 

 

푸하하, 내가 가진 책 중에 이런 게 있다.

 

책 얘기가 아니라 영화 얘긴데, 후반 30분간 제대로된 대사 없이 아프리카 이방 도시의 생활모습과 사하라를 건너는 장면을 보여준다. 오, 사하라 사막의 황홀함이 이런 것이구나. 이전까지 예술가 부부의 권태로운 일상 탈피 아프리카 여행기가 펼쳐지고 있었는데 뭔가를 느낄 듯했던 남편(존 말코비치)이 장티푸스로 죽어버린다. 혼자 남은 아내가 계속 여행을 할지 말지 고민하다 어디론가 간다. 모래 알갱이가 별빛처럼 반짝인다. 낙타는 우아하게 걷는다. 숨소리는 황홀하게 타오른다. 태양이 작열한다. 온 세상이 고요하다. 부드러운 공기가 온 세상의 공기를 휩쓸어 갔다 다시 밀어내는 것만 같다. 그러면 결국 같은 공기란 말인가. orz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ㅉㅉㅉ

 

당시에 이 책을 로망 섞인 질투로 대충 흘려 읽었다. 이제는 오로지 사심으로 읽어야지. 여행(책이라기엔 뭣하지만)기가 이런 식으로 훗날 유용하게 사용될 줄이야!

 

그리고 [마지막 사랑]은 약간씩 불편한 오리엔탈리즘 시각만 빼면 아름답고도 슬픈 영화다. 욕망에 관한 영화이면서 떠남과 돌아옴의 영화다. 내려놓아라,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서 뜨끔하면서도 좋다. 몸으로 부딪쳐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하게 한다. 마치 [지상의 양식]의 지드처럼.

 

 

또 뭐 다른 게 없나 싶어 새초롬하게 이것저것 보다가 결국은.

 

 

[성서]를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종교가 없다보니 얘길 들려줄 사람도 없고 그 어떤 시각도 몰라서 나는 성경책도 샀지만 이 책을 제일 편하게 읽어낸다. 이건 '말씀'이 아니라 내겐 그냥 '이야기'이므로.

 

 

몇 년 전에 내가 샀던 성경책은 이거였는데. 온라인 서점이 아니라 기독교 전문서적 파는 곳에서 샀었다.

 

 

 

 

 

 

그 사이 새로운 판본으로 개정돼서 나왔지만 내 것도 똑같이 생겼다. 귀여운데 눈 아파서 죽을 것 같은 단점. 여러 사이즈가 있지만 내 껀 좀 작아서 내가 미쳤구나, 이런 기분이었다.

 

지드가 자꾸 성경 속 '양식'을 비틀고, 나는 원래 성경도 모르는데 비트니까 더 모르겠고, 각주가 백 칠십 만개 달려서 그걸 자꾸 읽다보니 흐름이 끊겨서 더 어렵고. 하여튼 이런 독서.

 

 

 

월요일이 스멀거리고 있다. 모처럼 집에서 시체놀이 한다.

일어나자마자 종편에서 해주는 [나의 결혼원정기]를 보면서 수애의 열애설에 대해 얘기했다.

 

엄마, 열 다섯 살 이상 차이 나는 남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왜?

어리지도 않은 여자가 늙어갈 일만 남은 남자를 왜 사랑할까?

본인들이 펄펄 뛰면 어쩔 수 없잖아. 진짜 사랑한다면 축복 받고 싶을텐데 배우들도 참.

같이 자는 현장을 덮칠 수도 없잖아. 아니라잖아. 그냥 믿지 뭐.

 

 

뭔가 더 있는데 이건 쓰지 않는 게 좋겠어. 들킬 거야. 들키면 부끄러워..( '')( '')

그래서 나머지는 이다음에!




 
 
소이진 2012-02-05 16:24   댓글달기 | URL
아, 무척길어요 ㅋㅋ 이쯤되면 끝나겠지? 했는데도 넘쳐나는 이야기거리가 대단하신걸요.
헤르타 뮐러를 무척이나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아이리시스님의 평을 읽으니 당장 사버리고 싶군요.
시적문장이라. 번역본에서 얼마나 대단한 시적 문장들이 쏙쏙 들어올지 궁금해지는걸요?
나는 소설이론이라는 강의가 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대체 그 강의는 어느 대학을 가야 들을 수 있는거죠?!

아이리시스 2012-02-06 17:10   URL
현대소설론. 국문과와 문창과 공통수업이요 :)

소이진님 학교 갔다 왔어요? 저게 짧은데도 좀 어렵거든요. [숨그네]가 제일 두꺼우니 그걸로 사요! 두꺼우면 아무래도 스토리가 있지 않을까 하고요( '') 보지도 않고 막 권하고ㅜㅜ

안 끝나요, 난 점점 더 길게 쓸거예요. 아무도 못 읽게.....................( '')

stella09 2012-02-05 18:26   댓글달기 | URL
영화 서비스 없어지고 영화에 대해 얘기하고 싶으면 DVD로 얘기해야 하는 건가요?ㅠ
그럼 이달의 리뷰 영화 부문은 DVD로 대치되는 걸까요?
알라딘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심히 궁금하다능.
물론 적립금 제도 바뀌고 나서 영화에서 당선되는 거 포기한지 오래지만.ㅋ
성경책은 나이가 들수록 큰 걸 선호하게 되더군요.
젊었을 땐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것도 좋았는데.
큰거 사서 읽으세요.^^


아이리시스 2012-02-06 17:13   URL
그렇구나, 스텔라님 예리하시네요. 없어져야 맞겠죠. 저는 원래 DVD를 많이 애용했어요^^

성경책이 귀여워서 샀지만 볼 때마다 창세기 천지창조와 노아의 방주에서 포기한다는ㅋㅋㅋ
만약 볼 거면 큰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제가 예전부터 성경책 노래 부르니까 군대에 있던 걸 몇 개 갖다줬는데 그애가 갖다준 것도 다 작더라고요. 창작하는 사람에게 성경은 그야말로 고전이라고!

근데 저는 거의 몰라요. DVD라도 사서 봐야할까 봐요. 구약성서.

2012-02-06 19:54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7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