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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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 한 세권쯤 읽은 듯한 기분이다.

여름방학과 추석 등등이 겹쳐서 거의 한달을 끼고 살았던 것 같다.

600페이지의 분량에 내용도 들여다 보기 전에 컥 숨이 막혔지만,

도대체 이 책이 왜 그렇게 인기가 있는 건가? 궁금했다.

독서모임 회원들도 꽤 많이들 읽고 있었는데, 그리 어렵지 않다는 말에 용기내어 도전!

역시, 글을 읽어나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어려운 걸 해냈지 말입니다! ㅋㅋ


 

내 손 크기와 딱 맞는 손지문 표지.

나도 호모 사피엔스란 증거?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이란 부제는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공감할 수 있다.


 

p. 10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 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


 

p. 21~26

생물학자들은 생물을 종으로 분류한다.

동물을 같은 종으로 구분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서로 교배를 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번식가능한 후손을 낳으면 된다.


호모 사피엔스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과에 속한다.


'인간human'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는 '호모 속에 속하는 동물'이고,

호모 속에는 사피엔스 외에도 여타의 종이 많이 존재했다.

 

우리는 뻔뻔스럽게도 스스로에게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란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모두가 호모 속에 속해 있었다.

모두가 인간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이들 종을 단일 계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p. 28~33

자연선택은 이른 출산을 선호했다.

사실 다른 동물과 비교할 때 인간은 생명유지에 필요한 많은 시스템이 덜 발달된 미숙한 상태로 태어난다.

 

인간의 사회적 능력이 뛰어난 것도 이 덕이요,

특유의 사회적 문제를 안게 된 것도 이 탓이다.


게다가 인간은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교육을 받고 사회화할 수 있는 기간이 어떤 동물보다 길다.

 

인간은 용광로에서 막 꺼낸 녹은 유리덩어리 같은 상태로 자궁에서 나온다.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게 가공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우리가 아이을 교육시켜 기독교인이나 불교도로도, 자본주의자나 사회주의자로도,

호전적 인물이나 평화를 사랑하는 인물로도 만들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인간이 먹이사슬의 정점으로 뛰어오른 것은 불과 10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면서부터였다.

중간에서 꼭대기로 단숨에 도약한 것은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이에 비해 인간은 너무나 빨리 정점에 올랐기 때문에 생태계가 그에 맞춰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일부학자는 익혀 먹는 화식火食의 등장, 인간의 창자가 잛아진 것, 뇌가 커진 것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다란 창자와 커다란 뇌를 함께 유지하기는 어렵다.  둘 다 에너지를 무척 많이 소모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불을 일으키는 장소와 시기를 선택할 수 있었으며, 수많은 용도로 불을 이용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불의 힘은 신체의 형태나 구조, 힘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것이었다.



 

p. 39~41

관용은 사피엔스의 특징이 아니다.

현대의 경우를 보아도 사피엔스 집단은 피부색이나 언어, 종교의 작은 차이만으로도 곧잘 다른 집단을 몰살하지 않는가.


지난 1만 년간 호모 사피엔스는 유일한 인간 종이었다.

(...)

어쩌면 우리 조상들이 네안데르탈인을 전멸시킨 이유가 바로 이것인지 모른다.

그들이 우리가 무시하기에는 너무 친숙하고 관용하기에는 너무 달랐다는 것.

사피엔스의 탓이든 아니든, 사피엔스가 새로운 지역에 도착하자 마자 그곳의 토착 인류가 멸종했다는 사실이다.

 


 

p. 48

직접 보거나 만지거나 냄새 맡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는 사피엔스뿐이다.


 

p. 66

사피엔스가 발명한 가상의 실재의 엄청난 다양성 그리고 그것이 유발하는 행동 패턴의 다양성은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의 주된 요소가 되었다.

일단 등장한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 발전했으며, 그 멈출 수 없는 변화를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p. 122

오늘날 학자들은 중동 농부들이 자신들의 혁명을 수출한 게 아니라

농업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완전히 독자적으로 생겨났다는 생각에 합의하고 있다.


 

p. 124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 범인은 한 줌의 식물 종, 밀과 쌀과 감자였다.

이들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지, 호모 사피엔스가 이들을 길들인 게 아니었다.


 

p. 134

초기 농부들이 예측하지 못한 것이 또 있었다.

아이들에게 모유를 덜 먹이고 죽을 더 많이 먹이면 면역력이 약해져 영구 정착촌이 전염병의 온상이 되리란 사실이었다.

그들은 또한 단일 식량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이지면 가뭄에 더욱 취약해진다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다.


 


 

p. 147

송아지의 종이 수적으로 성공한 것은 개별 개체들이 겪는 고통에 그다지 위안이 되지 못한다.

진화적 성공과 개체의 고통 간의 이런 괴리는 우리가 농업혁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p. 149

'내 집'에 대한 집착과 이웃으로부터의 분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자기중심적이 된 존재의 심리적 특징이 되었다.


 

p. 152~3

미래에 대한 걱정은 생산의 계절적 사이클뿐 아니라 농업 자체의 근본적 불확실성에도 뿌리를 두고 있었다.


농부들이 미래를 걱정한 것은 단순히 걱정할 이유가 더 많았을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농사 스트레스는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대규모 정치사회 체제의 토대였다.


모든 곳에서 지배자와 엘리트가 출현했다.

 

이렇게 빼앗은 잉여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p. 156

'협력'이란 말은 매우 이타적으로 들리지만 항상 자발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평등주의적인 경우는 드물었다.

인간의 협력망은 대부분 압제와 착취에 적합하도록 맞춰져 있었다.


 

p. 165

우리가 특정한 질서를 신뢰하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믿으면 더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상상의 질서란 사악한 음모도 무의미한 환상도 아니다.

그보다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p. 170~176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조직화하는 질서가 자신들의 상상속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주된 요인은 세가지이다.

1. 상상의 질서는 물질세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2. 상상의 질서는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

 

3. 상상의 질서는 상호 주관적이다.

(...) 상호주관이란 많은 개인의 주관적 의식을 연결하는 의사소통망 내에 존재하는 무엇이다.

단 한명의 개인이 신념을 바꾸거나 죽는다 해도 그에 따른 영향은 없지만,

그물망 속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거나 신념을 바꾼다면 상호 주관적 현상은 변형되거나 사라진다.

(...) 역사를 움직이는 중요한 동인 중 다수가 상호 주관적이다. 법, 돈, 신, 국가가 모두 그런 예다.



 

p. 196

인류는 어떻게 자신들을 대규모 협력망으로 엮었는가?


그것은 인간이 상상의 질서를 창조하고 문자체계를 고안해냈기 때문이다.

 

상상의 질서는 중립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

그 망은 사람들을 서열로 구분된 가상의 집단으로 나눴다.


 

p. 211

대부분의 사회정치적 차별에는 논리적, 생물학적 근거가 없으며,

우연한 사건이 신화의 뒷받침을 받아 영속화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훌륭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p. 216

​문화는 자신이 오로지 부자연스러운 것만 금지한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 부자연스러운 것이란 없다.

가능한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처음부터 자연스러운 것이다.

정말로 부자연스러운 행동,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행동은 아예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금지할 필요가 없다.

 

진실을 말하자면,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이라는 우리의 관념은

생물학이 아니라 기독교 신학에서 온 것이다.



 

p. 218~9

여성의 자연스러운 기능은 애를 낳는 것이라는 주장, 동성애는 부자연스럽다는 주장에는 그다지 타당성이 없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규정하는 법과 규범, 권리와 의무는 대부분 생물학적 실체보다 인간의 상상력을 더 많이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남성male과 여성female으로 나뉜다.

(...) 하지만 '남자man'와 '여자woman'는 생물학적 범주가 아니라 사회적 범주를 지정한다.


생물학이 아니라 신화가 남녀의 역할, 권리, 의무를 규정하기 때문에,

'남성성'과 '여성성'의 의미는 사회에 따라 크게 달랐다.


소위 '남자다운' 속성과 '여자다운' 속성의 내용은 상호 주관적이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p. 237

사람들은 점차 평등과 개인의 자유를 근본적 가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두 가치는 서로 모순된다.

평등을 보장하는 방법은 형편이 더 나은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이외에 없다.

모든 개인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면 필연적으로 평등에 금이 간다.


 

p. 259

글쓰기가 행정활동을 강화할 필요에 부응해서 발달했던 것처럼,

보리 화폐는 경제활동을 강화할 필요에 부응해 발달했다.



 

p. 266

종교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믿으라고 요구하는 반면에,

돈은 다른 사람들이 뭔가를 믿는다는 사실을 믿으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 돈은 인류가 지닌 관용성의 정점이다.

돈은 언어나 국법, 문화코드, 종교 신앙, 사회적 관습보다 더욱 마음이 열려 있다.

인간이 창조한 신뢰 시스템 중 유일하게 거의 모든 문화적 간극을 메울 수 있다.

종교나 사회적 성별, 인종, 연령, 성적 지향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유일한 신뢰 시스템이기도 하다.

돈 덕분에 서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p. 298

오늘날 종교는 흔히 차별과 의견충돌과 분열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개체다.


 


p. 322

일신론적 종교의 제일 원리는 "신은 존재한다.  그분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인 반면

불교의 제일 원리는 "번뇌는 존재한다.  나는 거기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이다.


 


p. 324~9

수많은 자연법칙 종교가 근대에 새로이 등장했다.

자유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 국가사회주의가 그런 예다.

이들은 종교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이데올로기라고 칭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용어상의 문제일 뿐이다.

만일 종교를 초자연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한 인간의 규범과 가치 시스템이라고 정의한다면,

공산주의는 이슬람교에 비교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종교다.

 

불교도들은 자연법칙이 고타마 싯다르타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믿는 데 비해,

공산주의자들은 자연법칙이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믿었다.


우리는 세상의 신념들을 신 중심의 종교과 자연법칙을 기반으로 한다고 주장하는

신없는 이데올로기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유신론적 종교는 신에 대한 숭배에 초점을 맞춘다.

인본주의적 종교는 인간, 좀 더 정확하게는 호모 사피엔스를 숭배한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는 인간을 신성시하지만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사실 일신론적 신앙에 근거를 두고 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상은 모든 영혼이 하느님 앞에 평등하다는 일신론적 확신의 개정판이다.



 

p. 342

그러면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

물리학이나 경제학과 달리,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p. 343

역사가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증거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그런 이익을 측정할 객관적 척도가 없기 때문이다.


 

p. 356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p. 384

죽음에 여전히 핵심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유일한 근대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다.

가장 시적이고 필사적인 순간에 민족주의는 민족을 위해 죽는 사람은

누구나 민족의 집단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약속한다.



 

p. 399

중국인과 페르시아인에게 부족했던 것은 증기기관 같은 기술적 발명이 아니었다.

(그거라면 공짜로 베끼거나 사들일 수도 있었다)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서구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형성되고 성숙한

가치, 신화, 사법기구, 사회정치적 구조였다.

 


 

p. 425

중요한 점은 과학이 제국에게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근대 유럽인들은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은 언제나 선이라고 믿게 되었다.

(...)

게다가 제국에 의해 축적된 새로운 지식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피지배 민족을 이롭게 하고

이들에게 '진보'의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제국주의자들은 자신의 제국이 거대한 착취 사업이 아니라 비유럽 인종을 위해 시행된

이타적 프로젝트라고 주장했다.

 


 

p. 439

진보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리적 발견, 기술적 발명, 조직의 발전이

인간의 생산, 무역, 부의 총량을 늘릴 수 있다고 믿는다.



 

p. 486~7

대서양 노예무역이 아프리카인을 향한 증오의 결과가 아니었던 것처럼,

현대의 동물산업도 악의를 기반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그 연료는 무관심이다.


산업화된 농업의 비극은 동물의 주관적 욕구는 무시하면서 객관적 욕구만 잘 챙긴다는 점이다.



 

p. 493

비만은 소비지상주의의 이중 승리다.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고(적게 먹으면 경제가 위축될 테니) 다이어트 제품을 산다.

경제성장에 이중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p. 512
지난 2세기 동안 친밀한 공동체는 말라죽었고,

그에 따른 감정적 공백을 채우는 역할은 상상의 공동체가 맡게 되었다.

상상의 공동체가 부상한 사례 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국민과 소비 공동체이다.

국민은 국가가 만든 상상의 공동체이다.

소비 공동체는 시장이 만든 상상의 공동체다.



 

p. 543

역사를 통틀어 가난하고 압박받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안해온 것은

적어도 죽음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는 믿음이었다.


p. 571

생명공학이 네안데르탈인을 정말 부활시킬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막을 내리게 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우리가 우리의 유전자를 주물럭거린다고 해서 반드시 멸종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게 될 가능성은 있다.



 

p. 592

인간은 새로운 힘을 얻는 데는 극단적으로 유능하지만

이 같은 힘을 더 큰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매우 미숙하다.

우리가 전보다 훨씬 더 큰 힘을 지녔는데도 더 행복해지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문한 책이 도착했을때 면지에 있는 사인을 보고 헉!

사인회 하고 난 남은 걸 보내준건가? 왠지 떨렸더랬다.

속았다. 인쇄본이란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그렇다고 책 내용이나 읽는 동안 느낀 감정이나 생각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인류의 역사를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특히 농업혁명과 종교에 대한 시각이 새롭고 흥미로웠다. 

인류학, 사회학, 생물학 등 분야를 넘나드는 방대한 양이었다.

마치 5부작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이었다.

장면이 연상될 만큼 쉽게 풀어쓴 것 같다.

다만 제국주의 이후 나오는 세계사적 사건들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어서

배경지식이 없으면 무얼 말하는 지 모르고 지나칠 부분들이 상당히 많았다.

 

워낙 방대한 양에다 잘 모르는 분야이기도 해서 메모와 밑줄을 그어가며 읽긴 했는데

몇마디로 정의하긴 힘들것 같다.

한 두번쯤 다시 볼 생각은 해야겠다.

<총, 균, 쇠>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고 하는데 사놓고 그대로 꽂혀만 있던 책인데

이젠 도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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