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반사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3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품절


옛날 영국의 한 유명한 미스터리 작가는 등장인물의 대부분이 범인인 소설을 썼다. 아이의 '불운한' 죽음과 비슷한 사건을 딴 데서 찾으라면 그 미스터리 소설밖에 없을 것이다. 그랬다. 언뜻 불운한 사고로만 보이는 아이의 죽음은 사실 살인이었다.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합세해서 죄 없는 아이를 죽인, 더할 수 없이 이상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 죽음의 특이성을 알아채는 이 없이, 현장에는 누가 두었는지 알 길 없는 꽃만 놓여 있다. 범인들은 오늘도 자신들이 죽음으로 내몬 아이 따위는 깨끗이 잊은 채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5~6쪽

딱 한 번이야, 딱 한 번. 가야마는 속으로 되풀이했다. 상습적으로 휴게소에 쓰레기를 버리는 비상식적인 사람과는 분명 죄의 무게가 다를 거야. 달리 방법이 없었으니 이번 한 번만 봐주시길. 누구한테 그러는지, 가야마는 속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11쪽

고조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고조는 가족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핏줄만 이어져 있다고 다 가족은 아니다. 정신적인 유대관계가 있어야 진짜 가족이라 할 수 있지 않나. 그렇다면 고조에게는 가족이 없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충분한 애정을 쏟지 못한 고조는 당연한 응보로 지금 고독을 맛보고 있다. -22쪽

겨우 목이 아프다고 응급실을 찾다니 약간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 했다. 그래서 일부러 증세가 심한 척했지만, 이렇게 한가하니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싶기도 했다. 남한테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야간진료라는 기발한 생각을 해낸 사람의 특권이라고 자신에게 변명했다. -39쪽

딱히 시청이나 이 직원에게 유감은 없지만, 가즈요는 공무원한테는 아무리 불만을 퍼부어도 괜찮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공무원은 편하게 돈 버는 직업의 대명사나 마찬가지니 이렇게 채찍질을 해주는 것도 시민의 의무라고 마음대로 판단했다. -78쪽

한 가지 알게 된 게 있었다. 인간의 운명은 아주 사소한 일 하나로 갈린다는 사실이다. (중략) 운명이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지, 손으로 만지듯 생생하게 실감했다.
어떻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시청사를 나와 정처 없이 걸으며 가야마는 여전히 생각했다. 사소한 일로 운명이 좌우된다면, 그만큼 어딘가에서 톱니가 잘못 맞물렸더라면 겐타는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생각해도 소용없는 줄 알지만 역행하는 사고를 멈출 수가 없었다. -382~3쪽

한 사람 한 사람이 대는 '사정'은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이렇게까지 서로 이어지면 총체적인 죄의 크기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책임은 작은 게 사실이지만 결코 제로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랐다. -425쪽

난 세상 사람들의 아픈 곳을 찌른 것이다. 마침내 그런 결론을 내렸다. 비판 메일의 내용처럼 가야마가 규탄한 '사소한 이기주의'는 누구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 결과가 우연히 한 사람의 죽음으로 연결되었기에 특별하게 보일 뿐, 몇백만 몇천만의 사람들은 날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리라. 그것을 가리켜 '죄악'이라 규탄한 가야마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린 것인지도 몰랐다. 넌 뭐가 그리 잘났어, 하는 반발심이 비판 메일의 등 뒤에 비치는 것 같았다.
가야마의 의욕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회, 그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는 건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주장만 하면 어느 시점에 파탄이 난다는 것은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해도 알 수 있지 않나.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부러 상상력을 죽이고서 아무것도 못 본 척하는 것인가. 손안에 있는 코딱지만한 권리가 그토록 사랑스럽단 말인가. -4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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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1-0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 2012년 흑룡의 해,좋은일만 계시길 바라며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그리고 신년 새해 용꿈 꾸시라고 용 한마리 선물로 보냅니다
\▲▲/
( ^^ )
<(..)>
<(▶◀)>
<( = )>
<( = )>

━┛┗━

이매지 2012-01-03 08:59   좋아요 0 | URL
하핫, 카스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좋은 책 많이 만나는 한 해 되시길!

2012-01-04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5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5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5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12-01-05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 제가 한발 늦었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이젠 베테랑 편집자 되셨지요?
전 참 님이 부럽네요
님이 대학교 다닐때부터 서재에서 뵈었는데 공부하고 어떤 일을 할 까 고민하시고 그러다가 만난 일
정말 근사하고 부러워요.
덕분에 저도 좋은 책 많이 소개도 받고 선물도 받았었지요.
갚지도 못하는 은혜
늘 마음에 담고 잊지 ㅇ낳고 고마워만 하네요

이매지 2012-01-05 17:56   좋아요 0 | URL
베테랑은 아니고 그냥 연차만 들었습니다. 하핫.
정말 하늘바람님과는 대학 시절부터 왕래했었군요. ^^
그때는 없었던 태은이도 태어나고 뭔가 신기하네요.
하늘바람님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올해는 정말 좋은 일이 가득하셨으면...^^
 
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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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맛남이다. 누구든 일생에 잊을 수 없는 몇 번의 맛난 만남을 갖는다. 이 몇 번의 만남이 인생을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 만남 이후로 나는 더이상 예전이 나일 수가 없다. 그런 만남을 그저 흘려보내놓고 자꾸 딴 데 가서 기웃대며 불운을 탓한다. -4쪽

사제의 정리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사람들은 아무도 스승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학생은 있어도 제자가 없다. 물질적 교환가치에 의한 거래만 남았다. 마음으로 오가던 사제의 도탑고 질박한 정은 찾아볼 길이 없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슬퍼한다. 이 글을 쓰는 까닭이다. -6쪽

세상에 그저 이루어지는 관계는 없다. 가는 정 오는 정이 켜켜이 쌓여 관계를 만들어간다. 진심과 성의라야지, 다른 꿍꿍이가 들어앉으면 중간에 틀어지고 만다. -17쪽

궁함을 안 뒤라야 저서할 수 있음을 비로소 알겠더구나. 반드시 지극히 총명한 인사가 곤궁한 지경을 만나, 하루 종일 흙덩어리처럼 앉아서 사람 말소리나 수레나 발자국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지 않게 한 뒤에야, 경전과 예학의 정밀한 뜻을 비로소 얻을 수 있는 법이다. 천하에 이 같은 공교로움이 있겠느냐? 대개 옛 경전을 검토하고서 정현과 가규의 주장을 살펴보니 거의 매번 잘못 풀이해놓았더구나. 독서의 어려움이 이와 같으니라. -29쪽

-선생님! 그런데 제게 세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꼭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합니다. 저 같은 아이도 정말 공부할 수 있나요?
-그렇구나. 내 이야기를 좀 들어보렴. 배우는 사람은 보통 세 가지 큰 문제가 있다. 너는 그 세 가지 중 하나도 없구나.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민첩하게 금세 외우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가르치면 한번만 읽고도 바로 외우지. 정작 문제는 제 머리를 믿고 대충 소홀히 넘어가는 데 있다.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하지. 둘째, 예리하게 글을 잘 짓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질문의 의도와 문제의 핵심을 금세 파악해낸다. 바로 알아듣고 글을 빨리 짓는 것은 좋은데, 다만 재주를 못 이겨 들떠 날리는 게 문제다. 자꾸 튀려고만 하고, 진중하고 듬직한 맛이 없다. 셋째, 깨달음이 재빠른 것이다. 대번에 깨닫지만 투철하지 않고 대충 하고 마니까 오래가지 못한다. -34~5쪽

새해가 되었다. 군자는 새해가 되면 반드시 마음과 행실을 한 차례 새롭게 다잡아야 한다. 내가 젊었을 때 설날이 되면 언제나 미리 1년의 공부 목표를 정하곤 했다. 예를 들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책을 초서할 것인지 등을 말이다. 그런 뒤에 이에 따라 실행하였다. 어쩌다 몇 달 뒤 사고 때문에 예정대로 할 수 없게 되더라도, 선(善)을 즐거워하고 앞을 향해 가려는 뜻만큼은 스스로 또한 덮어 가릴 수 없었다. -50쪽

아이가 글을 읽는 것이 대개 9년이다. 여덟 살부터 열여섯 살까지가 그때다. 하지만 여덟 살부터 열한 살까지는 아는 것이 어리석어 책을 읽어도 맛을 모른다. 열대여섯 살쯤 되면 이미 음양에 대한 기호가 생겨 여러 가지 물욕으로 마음이 나뉜다. 실제로는 열두 살부터 열네 살까지 3년간 독서한다. 하지만 이 3년 중에도 여름에는 무더위로 괴롭고 봄가을로는 좋은 날이 많다. 아이들은 놀기를 좋아해서 모두 능히 독서만 할 수가 없다. 다만 9월부터 2월까지의 180일간이 독서하는 날이 된다. 3년을 합쳐 계산하면 540일이다. 여기에다 세시(歲時)의 놀이와 질병이나 우환으로 방해받는 날짜를 빼면 실제로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3백 일이다. 이 3백 일은 하루하루가 보배구슬 같고, 하나하나가 금옥과 다름없다. -63~4쪽

학문이란 무엇이냐? 우리가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옛사람은 학문이야말로 으뜸가는 의리라고 말했지. 내 생각에는 이 말도 문제가 있다. 마땅히 '유일무이한 의리'라고 바로잡아야 한다. 어떤 일이든 법칙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이 되어서 배움에 뜻을 두지 않는다면 그 법칙을 따르지 않는 것과 다름없지 않겠니? 그래서 금수에 가깝게 된다고 하는 것이지. 명심하도록 해라. -66~7쪽

다산은 결코 만만한 스승이 아니었다. 한없이 자애롭다가 새치름 삐치기도 잘했다. 나무랄 때는 만정이 똑 떨어질 만큼 매서웠다.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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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니가 보고 싶어 tam, 난다의 탐나는 이야기 1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1년 11월
구판절판


유사 이래 모든 언니들의 가르침대로, 세상엔 두 가지 종류의 남자가 있다.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남자와, 평생을 함께할 엄두는 도저히 나지 않지만 지구가 멸망한다면 마지막 하루를 함께하고 싶은 남자. 재화가 용기를 생각할 때, 용기는 언제나 후자였다. 두 사람은 오래 친구였고, 잠시 연인이었으며, 이제는 멀리서 소식을 듣는 사이일 뿐이다. 그럼에도 재화는 가끔 용기를 생각했다.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볼일이야 없겠지만, 그 녀석이 어디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소행성이 맹렬히 날아오고 있다는 소식에 찾아라도 가지, 하고 말이다. -9~10쪽

이렇게 직구를 던지는 꼬마라니. 용기는 웃고 말았다. 여자친구는 변화구를 던지는 적이 없었다. 여자친구는 변화구를 던지는 적이 없었다. 당돌하게, 온당하게 사랑해달라고 요구해왔다. 처음에는 사실 부담스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이내 쉽고 직선적이어야 진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순리인 양 잘 굴러가야 맞는 거라고 말이다. 꼭 사랑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일이 다 그렇지 않은가. 패기 없는 젊은이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역경을 이기고 성취해낸다든가 하는 거, 별로 하고 싶지 않다. 될 일은 쉽게 된다. 이뤄질 사랑은 쉽게 이뤄진다. 약간 어려워지는가 싶어도 고비조차 순하게 넘어간다. -28쪽

그런 기억들을 떠올려도 이제는 슬프지 않다. 헤어진 지 너무 오래된 거다. 한때의 친밀감을, 단념한 지 너무 오래. 친밀감이란 기분 좋은, 심지어 약간 맛있는 냄새가 나는 향초 같은 거다. 오래 초를 켜두어 드디어 집 안에 향이 밸까 싶었더니 사악한 계절풍이 모두 씻어가버렸다. 그토록 쉽게 사라진다.
단념, 품었던 생각을 아주 끊어버리다…… 그건 사실 꽤 굉장한 행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지 않는 생각을, 기억을 잘라버릴 정도의 행위란 스스로를 위해서나 타인을 위해서나 대단한 것이다. -33쪽

인생이 테트리스라면, 더이상 긴 일자 막대는 내려오지 않는다. 갑자기 모든 게 좋아질 리가 없다. 이렇게 쌓여서, 해소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안고 버티는 거다. -54쪽

마음을 얘기하고 사랑을 얘기할 때는 역시 진지해야 해, 재화는 텔레파시를 통해 용기에게 말했다. 어디서 어떤 어린것을 사랑하고 있든 간에 조심해서 사랑을 말하길. 휘발성 없는 말들을 잘 고르고 골라서, 서늘한 곳에서 숙성을 시킨 그다음에, 늑골과 연구개와 온갖 내밀한 부분들을 다 거쳐 말해야 한다고.
그게 아니면, 그냥 하지 말든가. -107쪽

쉽게 사는 것 같아 보이는 행운아들도 사실은 피똥 싸게 어려운 게 아닐까? 정말 쉽다면…… 불공평한 거다. -149쪽

나는 오늘도 네 좌표를 알지 못해. 우리의 좌표가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알지 못해. 네가 나빴는지, 내가 나빴는지, 우주가 나빴는지 알지 못해. 그렇게 말할 필요가 있었다. -164쪽

여튼, 잘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서는 함부로 판단해선 안 되겠다고, 용기는 뒤늦게 생각했다. 영원히 알 수 없을 세계라면 특히. -177쪽

"좋겠다, 언니는. 누군가의 정답이라서."
"정답은 무슨, 오답이면 어떡하나 걱정된다."
"결혼할 용기가 있으면 정답인 거야. 계속 정답으로 지켜나가는 거지. 난 누군가의 유사답 정도는 되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한 번도 정답은 못 되어봤네."
선이가 빨대 종이로 반지를 만들어 재화 손가락에 끼워줬다.
"너도 누군가의 정답일 거야. 그 누가 아직 풀이를 제대로 못한 모양이지."-182쪽

그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 권의 불완전한 책으로 세상을 조금 더 돌아다니는 것. 대단한 책도 아니고 뒤틀린 농담 같은 내용이지만 뭐 어떤가. 사실 세상은 너무 끔찍한 곳이라, 끔찍한 것들을 모두 제거하고 나면 남는 것이라고는 좋은 농담들 몇 개 정도일 것이다. -217쪽

생명력 있는 이야기는 결국 읽는 이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농담이 되는 것 같아요. 몇 년 전, 연하 남자친구를 만나는 친구에게 다른 친구가 「메밀꽃 필 무렵」을 인용하여 "너 애숭이 빨문 죄 된다!" 일침하는 걸 보고 깔깔거렸던 기억이 나네요. 지나치게 긍정적인 직장 동료를 두고 "쟨 아큐인가?" 하고 비아냥거릴 때의 쾌감이란…… 또 파괴적인 연애에는 『폭풍의 언덕』 농담이 빠질 수 없겠죠. "아주 그냥 히스클리프 났네, 났어!"

이렇게 소설이 종이의 질량마저 버리고, 대신 세기를 뛰어넘는 에너지를 얻으면 농담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낯모르는 시간과 공간까지 날아가,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의 입속에서 슈팅스타처럼 톡톡 터지고 싶어요. 이야기가 그렇게 살아남는 것만큼 놀라운 일이 어디 있을까요. -24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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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12-22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재기발랄한 스토리같아요

이매지 2011-12-22 00:32   좋아요 0 | URL
재기발랄한 연애 이야기예요! ㅎㅎ
추천추천! ㅎㅎ
 
새엄마 찬양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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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악을 왕의 망토처럼 차분하게 두르고 다녀야 한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감지하지 못하는 체하는 후광처럼.
대기의 투명한 진흙 속에서도 흐려지지 않는 윤곽은 타락한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형식에 관한 최고의 악이다.
- 세자르 모로, 『죽도록 사랑하기』-9쪽

'난 사랑과 관련된 것에는 온갖 종류의 편견을 가지고 있어.' 그는 마음속으로 고백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그 어떤 편견도 버릴 마음이 없었다. -47쪽

'그 작은 소리들도 역시 당신이야, 루크레시아. 그것들은 당신만이 지닌 독특한 화성이고 울려 퍼지는 당신의 몸이야.'-51쪽

"행복은 존재해." 그는 매일밤 그러는 것처럼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그랬다. 행복이 가능한 곳에서 행복을 추구하려 한다면 그건 사실이었다. 가령 그곳은 자신의 몸과 살아하는 여인의 몸이었다. 혼자서 목욕할 때도, 그토록 열렬히 갈망하던 사람과 침대에서 몇 시간 혹은 몇 분을 함께 보낼 때도 그랬다. 행복이란 일시적이고 개인적인 것이지 결코 집단적이거나 공공의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한 경우에 행복은 둘로 나뉘고, 극단적으로 드문 경우에만 셋으로 나뉘는 법이었다. 행복은 조개 속 진주처럼 인간에게 완벽함의 신기루나 섬광을 제공해주는 특정한 의식이나 전례의 의무 속에 숨겨져 있다. 우리는 그런 행복의 부스러기에 만족해야만 불가능한 것을 얻으려고 애쓰면서 고통이나 절망 속에서 사는 것을 면할 수 있다. -52쪽

그녀의 육체를 가장 잘 요약해주는 단어는 바로 '부풀다'라는 말이다. 나의 외설적인 이야기 덕분에 감정이 솟구친 나머지 그녀의 모든 것이 곡선이 되어 부풀고 굽이쳐 올라가며 적절하게 부드러워진다. 그것이 바로 훌륭한 취향의 사람이 사랑을 나눌 때 자기 파트너가 지녔으면 하고 바라는 단단함의 정도이다. 즉 넘쳐흐를 것 같지만 마치 잘 익은 과일이나 갓 치댄 밀가루 반죽처럼 탱탱하고 유연하며 탄력성을 유지하는 부드럽고 풍부한 육체.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런 부드러운 느낌을 '모르비데차'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빵에 쓰일 때조차 음탕하게 들린다. -121쪽

나는 불행하지 않으며, 남들의 동정을 받고 싶지도 않다. 나는 지금 이대로의 나에 만족하며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있다는 사실은 물론 커다란 위안이 된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역사상 지금과 같은 순간에, 우리에게 그토록 많은 일이 일어난 지금, 그런 것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래, 아마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물어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살아남았고, 이 추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일부가 되었다.
사랑하는 당신, 나를 잘 봐. 나를 알아보고 당신 자신이 누구인지 인식하도록 해. -147~8쪽

불가능한 사람을 사랑하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 법이지.
-204~5쪽

"마리아, 넌 야심이 부족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태어났는데 어쩌란 말인가? 나는 사는 것 자체가 좋고, 세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단순하고 소박하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의심할 여지 없이 나는 그렇다. 그건 내가 항상 골치 아픈 일을 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도 어느 정도 열렬한 소망은 가지고 있다. 가령 나는 내 산양이 결코 죽지 않기를 바란다. 산양이 내 손을 핥을 때면, 나는 언젠가 그 산양이 죽을 것이고, 그러면 내 가슴은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는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또한 나는 아무도 고통받지 않기를 바란다. -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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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 사진관 - 하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네오픽션 / 2011년 11월
구판절판


인간을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냐? 타인의 행복만큼 효율적으로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억울해서 게임에서는 실력을 발휘했다. 에이이치는 원래 '노리고 맞히는' 계열의 운동은 잘하는 편이었다. 이성을 노리고 맞히는 시도는 안 해봤지만. -90 쪽

하나짱은 사람을 많이 만나봐라. 세상을 좁게 살지 마.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363쪽

장례식이란 고인의 삶의 방식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남은 인간들의 본성을 까발리는 장이지. -369쪽

불안이라고 하면, 문장을 쓸 때는 대개 '부풀어 오른다'는 말이 따라붙는다. 너무 빤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진실이었다. 몸속에서 이상야릇한 풍선 같은 게 생기고, 그것이 점점 부피를 키워갔다. 안쪽에서 내장이 압박당하는 느낌이었다. -4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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