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공유하라! 스포츠 한국사
김학균.남정석.배성민 지음 / 이콘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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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나보다 늦게 귀가하는 남편이 며칠 전 브라질 월드컵 3차예선 쿠웨이트전이 열릴 때 문자가 왔다.

" 여보 축구보면서 한 잔 해야되니까, 빨리 와." 그래서 다른 때보다 일직 퇴근하여 집에 가보니 이미 치킨과 맥주를 사놓고 쿠웨이트전을 보고 있었다. 속으로 축구를 매일 하면 다른데로 안새고 집에 일찍 들어오는 착한 남편이 되겠구나 ..싶었다.

 

내가 처음으로 스포츠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때이다. 명동에서 근무하던 시절 바로 옆 시청에서 응원전이 펼쳐질 때에도 시큰둥하였는데 남편의 성화로 시청 길거리 응원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때 , 하필이면 상대팀이 이탈리아였으니, 이탈리아 토티의 무대포 몸싸움에 분개하며 결국 연장전까지 가고 나서야 승리하였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느껴본 스포츠가 준 감동이었다. 가슴 벅찬 감동으로 집에 돌아오던 날 , 스포츠로 하나된 느낌은 비단 나뿐이 아니었는지 처음 보는 사람과 어깨동무하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허그를 나누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땐 우린 분명히 하나였다. 스포츠는 그렇게 눈물이자 희망을 , 감동과 함께하는 즐거움이자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위로의 이름으로 역사를 써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추억은 출퇴근시절 스포츠신문을 옆구리에 끼고 전철을 타던 기억이다. 두시간 거리를 출근하였던지라 그 오가는 시간에 킬링타임용이었던 스포츠 신문덕에 긴 시간의 출근시간이 즐거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스포츠 신문 1면에 나는 기사들이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면도 없지 않았지만, 심신이 피곤한 시절의 스포츠신문을 읽는 것은 하나의 유희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스포츠 신문의 전성시대는 80~90년대로 한국 경제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던 성장의 시대와 맥락을 같이 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었을 당시에는 스포츠는 하나의 유희로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반면 사회분위기는 가볍고 음란한 시대였다. 스포츠, 섹스, 스크린의 이니셜을 딴 3S는 무거운 시대의 배설구 역할을 했다. 이런 시대의 분위기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스포츠스타는 이만기, 강호동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의 불행한 죽음인 헝그리복서 김득구의 죽음은 어두운 시대를 잘 보여주는 가슴아픈 시대비극과 함께한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김득구는 어렸을 적 가출하여 복서가 되지만 1982년 가을 링에서 맨시니와 맞붙은 경기에서 불귀의 객이 된다. 헝그리 복서의 전형으로 불렸던 그는 강원도 거진에서 단돈 3000원을 들고 가출한 뒤 구두닦이, 제과점 기술자, 버스내 행상등 닥치지 않고 일을 하다가 결국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복싱을 시작하게 되는데 배고픔을 잊기 위해 싸운 김득구가 승승장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가난을 벗어나고자 하는 투지가 한 몫을 했다, 그러나 경기 중 맨시니의 오른 쪽 라이트를 맞고 넘어진 후 의식을 잃는데 이 경기에서 가출한 뒤 처음으로 김득구의 복싱하는 모습을 보러 출국한 어머니를 만나지 못한 채 죽었기 때문에 더 슬픈이야기이다. 그러나 김득구가 남긴 유산은 지금 돈의 가치로 10억정도. 살아서 부자인 적이 없었던 그가 죽어서 많은 유산을 어머니에게 남기지만, 어머니는 72일 만에 고향에서 자살하고, 마지막 경기를 치뤘던 맨시니 역시 링을 떠나며 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게다가 당시 경기 주심을 맡았던 리처드 그린도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7개월 뒤 자살했다. 모든 이들이 비극으로 끝난 김득구의 투혼은 스포츠사에는 한국 프로복서의 투혼의 상징으로 세계 프로복싱사에 값진 이름을 남겼다. 그의 비극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시대가 경제개발과 경제성장을 통해 물질적인 풍요와 부를 이룬 부유층이 있었지만 , 반면에 농촌과 도시 빈민들은 여전히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다는 자본주의의 사각지대의 존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격동의 80년대를 거치면서 해마다 6월은 민주화와 관련된 사건이 있었던 터라 늘 복더위만큼 무더웠지만 1998년 그때만큼은 달랐다. 해방 이후 압축 성장기를 보내며 앞으로 전진만 했던 대한민국이라는 뜨거운 '엔진'이 급속도로 식으면서 처음으로 불어닥친 IMF 구제금융 신청은 건국 이후 최고의 국난으로 불린다. 거의 패닉 상태에 빠져 있던 국민들에게 5월 중순 미국에서 불어 닥친 '박세리 열풍'은 스포츠 개인의 영광을 뛰어넘어, 사회 전반적으로 엄청난 파급 효과를 주었다. 이 시대의 박세리의 성공 신화는 상처받은 국민들의 마음을 치료해주는 치료제이자 거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후 박세리의 행보는 한국에 '세리 키즈'세대를 탄생시키게 된다. 이때부터 아마도 골프가 일반사람도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서 각광받기 시작했던 것이 아닐까한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세계 최고의 명승부를 펼쳤던 여자핸드볼 선수들의 감동실화 << 우리 생애의 최고의 순간>>이란 영화를 보며 홀로 밤새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우리가 잠시 즐기는 스포츠란 이름안에는 우리의 삶이, 우리의 역사가, 우리의 아픔을 기억해주는 묘한 울림의 경기이다. 공 하나에 자신의 모든 의지를 담아두려하는 야구선수나, 스윙에 혼신을 다하는 골프선수의 모습에서도, 복싱에 가난을 벗어나려 하는 처절한 몸부림을 통해서 , 그들이 혼신을 다하는 그 찰나의 순간을 공유하게 될 때, 우리는 스포츠를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스포츠는 언제나 감동과 동의어로 다가오게 된다. 다시 한 번 과거 시청앞에서 목터져라 응원하며 스포츠와 하나되었던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때의 감동을 재현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선물처럼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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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다 죽다 - 정사情死의 정치학 혹은 지독한 순정이나 아련한 절망의 형식
박종성 지음 / 인간사랑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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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사랑 때문에그 사람 때문에 내가 지금껏 살아서 오늘 오늘이 지나서

그 사람 다시 볼 수 없게 되면 다시 볼 수 없게 되면 어쩌죠
그 많은 인연에 왜 하필 우리 만나서 사랑하고 그대 먼저 떠나요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함께한 시절 잊진 못할 거야....

임재범의 사랑노래 中에서 -

 

사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가 임재범의 <<사랑>>이다. 임재범의 애절하고 허스키한 분위기도 좋지만 무엇보다 가사가 들을 때마다 찌르르하다. 얼마나 사랑하면 다시 볼 수 없을 것을 걱정하고 먼저 떠나라고 하는지, 그리고 항상 머리에 강한 충격으로 남아있는 영화<<글루미 선데이>>에서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사랑싸움을 벌이다가 두남자가 한말, " 일루미와 헤어지느니 반으로 나누자." 는 말은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있다. 이외에도 <<타이타닉>>의 마지막 장면 , 자신을 위해서 살아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바다 깊은 곳으로 침몰해 들어가는 영상은 오랜 세월동안 사랑과 함께 떠오르던 기억의 편린들이다. 이렇게 둘이서 끔찍이 사랑하다 어느 한쪽이 먼저 목숨을 끊거나 함께 죽는 ‘그 일’을 우리는 ‘정사(情死)’라 부른다. 

 

이 책 <<사랑하다 죽다>>에서는 이제 껏 우리가 알고 있던 사랑의 관점을 다른 관점으로 해석하여 역사속에서 모든 것이 변해왔듯이 '정사' 또한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살펴본다. 따라서 일반적인 사랑의 개념과는 틀린 접근방법이다. 저자는 사랑을 '인문학적 주제이자 사회과학적 탐구대상'이라은 시선으로 책을 집필한 듯 하나, 사랑이라는 것이 탐구대상인 것은 맞지만 과연 정치적이고 사회학적인 설명이 가능한 것일까 하는 호기심으로 읽게 되었다.

 

첫장의 시작에서 '연애'를 '정치'라고 하는 이유를 저자는 '관계'의 지탱과 확장 혹은 단점과 소멸까지 말하며 굳이 깐깐하게 굴지 않더라도 사람이 기다리며 간절해하는 '다스림'의 정치의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랑해서 기꺼이 대신 죽어도 좋은 , 오로지 죽음만이 사랑의 완결을 가져오는 경우 또한 흔치는 않은 경우이다. 따라서 사랑 또한 아무나 할 수 없지만 죽음 또한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다. 소유할 수 없는데도 멈출 수 없는 무한소유 욕구의 독한 패러독스와 세상 모두가 사라져도 둘의 사랑만 있으면 된다는 '제로섬'논리로 인한 결과는 죽음뿐이다. 러나 결국 이런 정사 情死는 '자신을 위해 죽는 이기적이고 급진적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왕조국가에서 정사情死는 가부장제 국가 남성 특권과 그 영속적 향유를 의식한 권력의 의지로서, 사랑이 하나의 학습과 체험을 통한 교화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다. 신분사회 조선이 강요한 복종의 일방성과 그로써 무르익은 위선의 문화가 부추긴 귀결은 자연적으로 情死로 이어져 열녀문(열행)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식민시대의 정사情死를 살펴보면 신분의 제약도 사라지고 유교 격식과 율법또한 자유로와지지만 그 속에서 탄생하는 '신여성'이란 " 서양의 물질, 육체성을 정신의 부재와 타락 및 퇴페'가 내재된 식민지 조선에서 부르주아의 자식과 유녀층이 따라하는 퇴페적인 현상이며 겉치레만 따라하는 어설픔 모방, 불완전한 모방의 모습이었다. 이 사이를 연애라는 자유감정이 근대와 함께 스며들게 되는데 왕조국가에서 보았던 열행의 정사 情死의 모습은 사라지지만 식민지시대의 정사情死는 훨씬 엽기적이고 살벌한 죽음과 죽임의 형식으로 분화, 발전하게 된다. 저자는 이 변화의 모습이 3.1운동 이후로 본격적으로 도드라지기 시작했으며 나라 잃고 모국어를 쓰지 못하는 삶이 맺지 못할 님과의 인연이 더욱 처절하고 기구하게 다가와 죽음마저 불사하는 모습의 정사情死로서 암울한 시대상을 자기 부정성과 연결되어 표출된 모습으로서 메커니즘이 작동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신여성은 계층과 신분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라 의식수준과 행태의 파격을 함축하는 단어라는 것이다. 봇물 터지듯이 강점기에 터진 정사情死의 모습은 부호의 아들과 기생, 교수와 여제자, 유부남과 처녀, 카페여급과 혼외 남녀가 일상의 불륜의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이미 사랑의 감정이 인습으로도 막지 못할 역사적 한계에 다다랐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해방 후 한국사회의 구조적 분화와 기능적 전문화는 그만큼 세상의 복잡화를 유도하였고 해방의 감격과 찾아온 자유의 파편들 속에 상실과 소외감을 느끼며 식민의 시대가 주는 척박함과는 또 다른 경쟁과 갈등의 그늘이 삶을 지치게 하고 그 속에서 자살수치는 증가해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국내 변사인구 가운데 남녀 간 애정문제로 자살한 숫자가 5만이 넘었다는 것은 실제로 사회안정망으로의 국가기능을 하지 못한채 1970년대 중반 , 애정 자살인구가 최고조에 달하게 된 것을 저자는 자살을 인문학적 생소함으로 받아들여 학문적 거부감을 이유로 집중 분석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증가하는 자살인구는 국가의 무능과 권력의 무기력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시민과 공공정책의 단절 혹은 허구성을 잘 말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자살이라는 것이 여전히 국민 각자의 사적인 일로 치부되어 있듯이 정사情死에 국가가 개입할 여지는 여전히 좁아보인다. 맥락을 같이하여 가정폭력이나 가족의 문제 또한 여전이 국가의 개입은 없다. 하지만 사회면에 나는 사건과 사고는 거의 정사情死로 인한 사건과 가족내의 빈번한 다툼으로 인한 죽음이 대부분이다. 정사情死를 사회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신선하고 자살이든 정사이든 죽음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또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이다. 허나 글을 지나치게 전문적으로 썻고 우선 문장자체에 주어가 없다. 따라서 누구를 위해 글을 쓴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드는 책이다. 일반적인 독자를 염두에 두고 책을 펴냈다면 좀더 쉬운 접근을 했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긴 장문의 글과 주어가 없는 글에 다소 황당함이 든다. 한국말을 번역해서 읽기는 처음인 것 같다. 정사情死의 사회적 접근 , 의도는 좋았으나,저자의 문체에 심히 유감이 드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무척 힘들었으며, 남는 것이 있다면 사랑해서 죽는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 사회적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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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혁명 - 리딩멘토 이지성과 인문학자 황광우의 생각경영 프로젝트
이지성.황광우 지음 / 생각정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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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최재천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왔는데 교수님은 독서를 취미로 가지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독서를 하는 사람을 못봤다면서 취미독서는 문제가 많다고 한다. 문득 취미란에 늘 독서를 써 놓곤 했는데 순간 뜨끔한 마음이 들었다. 그럼 최재천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독서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독서는 취미와 같은 심심풀이의 독서가 아닌, 일상이자 생활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함이다. 책은 무조건, 당연히 읽어야하는 것이므로... 여기서 이어진 생각이 바로 <<고전혁명>>과 연결되어진다. 인문학 예찬론자(?)로서 인문학을 사랑하고 인문학의 중요성을 늘 말하는 이지성과 고전이 삶의 8할이라는 황광우의 만남에서도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인문독서의 중요성이다.

 

두 저자의 공통된 이야기는 현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바야흐로 무한경쟁시대의 생존하는 방법,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들이 말하는 생존법은 휘둘리지 않고 이끄는 삶의 주체로서, 남에게 좌우되지 않고 "나"의 의지로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주체성을 갖춘 "나"를 만드는 방법은 고전인문독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바로 고전은 살아 있는 현실이자 미래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프리초프 카프라는 "인간에게 희망이 있다면 역사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지만, 위렌 버핏은 "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에서 배우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들은 고전에는 두 가지 혁명이 있으며 , 두 혁명의 지향점은 사회를 바꾸고 시대를 바꾸는 것이 나를 둘러싼 외부, 관계에 대한 혁명이라며 자신을 바꾸는 것은 자아혁명으로, 사회를 바꾸는 것은 관계혁명이라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고 한다. 하여 1장은 자아혁명을 이루는 단계로서, 2장은 관계혁명의 단계를 설명한다. 이런 단계를 거치게 되는 고전의 힘은 글자 그대로 해석되지 않으며 시대에 맞게 새로운 정신을 재편 돼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며 뿌리 깊은 나무로서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자아를 갖추게 되며, 샘이 깊은 물로서 가뭄에 마르지 않는 사회적 관계로서의 인격형성을 완성시킨다.

 

먼저 자아혁명에서는 인간의 타고난 본능으로서 살고자 하는 본능,즉 생존본능으로서 이미 주어진 본능을 깨우쳐 퇴화되고 죽어가는 생존본능을 다시 살려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시작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움츠러들고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샘이 깊은 물이 가뭄에 마르지 않는다고 하듯이 스스로의 가치를 찾아 맹자처럼 "자신을 버리고 사느니 자신을 잃지 않는 죽음을 택하겠다"라는 용기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따라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형성되면 용기는 자연적으로 주어지게 되는 이치인 것같다.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지 세상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통찰하는 일이다."

 

 

인문학의 시각은 나를 돌아보고 또 나를 주위 세계 속에 집어넣는 과정속에서 나를 변하게 한다. 그것은 내가 인격적으로 성숙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나와 세계를 관련짓고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이전에 나의 세계에 없던 이웃의 문제가 나의 문제이자 이웃의 문제, 우리 모두의 문제로 다가오는 것을 관계혁명을 거친 단계로 보면 될 것 같다. 이것은 세상의 '수많은 나'로 이루어져 있음을 깨닫고 난 후의 세상은 이전까지의 세상과는 다르며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더 많은 것이 들리게 될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 그렇게 나와 상대, 나와 세상과의 관계를 깊고 넓어지게 하는 것이 바로 인문고전의 힘이다.

 

우리는 늘 좋은 삶을 꿈꾸고 좋은 인생을 꿈꾼다. 보다 나은 삶의 갈구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인간의 기본욕구이다. 그런 세상을 꿈꾸면서 발 딛는 곳은 현실이라는 곳이다. 보이지 않는 곳은 보려고 기를 쓰면서 현실에는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우매한 것은 없다. 나밖에 모르는 사회, 공자가 말했듯이 이 이利를 쫓아 행동하면 원망을 많이 받으며, 사마천의 말대로 "이利를 쫓아 행하면 진실로 난亂의 시작이며, 모든 사회악의 근원이다"라고 했으며, 맹자도 "온 나라가 이를 추구하면 그 이 때문에 나라가 산산조각날 것이요, 온 집안이 이를 추구하면 그 이 때문에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내팽개칠 것이다."라고 했다. 자본주의의 한계에 들어선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 방법은 "나"를 깨우치고 "관계"를 형성하는 수단으로서 고전을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과거 내가 부르조아였지만, 어느 날, 인문의 세계에 들어서면서부터 자연적으로 부르조아를 탈피하게 되었듯이 고전인문의 세계는 또 다른 세계를 선사해 준다고 믿는다. 고전이나 독서를 취미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면 고전을 왜 강조하는지 그 이유조차 모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으며 고전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통찰할 수 있게 된다면 더 나은 세계, 우리가 갈구했던 좋은 인생, 좋은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고전을 읽는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만, 두 저자의 목소리에 귀라도 기울여주는 이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책을 덮었다. <<철학하라>>는 심오하고 다소 어려울 수 있지만 <<고전혁명>>은 훌륭한 자계계발서이자 고전안내서로 삼아도 무난할 정도로 쉽고 간결하여 고전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지침서가 되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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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 도스또예프스끼의 삶과 예술을 찾아서
이병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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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인간 존재의 궁극적 목적 중 하나라는 것이다.-p148

 

고전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말할 것도 없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이유는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로 비롯되는 것이다. "예술은 항상 동시대적이며 현실적이다."라고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한 이유 또한 그런 현실적인 삶의 반향이 오롯이 문학으로 연결되어지기 때문이다. 19세기의 러시아는 변화의 소용돌이의 휩싸여 있을 때 였다. 새로운 삶의 대한 뜨거운 열망을 표출하는 동시에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명백한 퇴보이자 죄악이었던 시대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삶도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문학보다 더 굴곡진 삶을 살아야했다 그런 그의 삶에서 떼놓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가난'이었다.뻬쩨르부르크 뒷골목의 술취한 주정뱅이는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였고 도끼로 살인을 하는 지식인이었던 <죄와벌>의 라스콜리니코프가 바로 도스토예프스키였다. 도박에 찌들어 살았던 스비드리가일로프 역시 도스토예프스키의 모습이었다. 그런 그의 삶을 오롯이 느끼며 온몸으로 그의 육체와 정신을 느끼기 위해 저자는 도스트예프스키의 자취를 따라 책을 펴냈다. 책을 펴내면서 저자는 "위대한 작가의 삶을 대신 살아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기도 했다."라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속에 무언가 차오르는 느낌이 아마도 작가의 그런 마음이 전이 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저자가 도스또예프스키가 살던 주소지들을 돌아다니면서 묘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 사실이 있는데 그가 살았던 집들이 대부분 길모퉁이에 살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교차하는 광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이며 이 곳에서 러시아의 급변하는 움직임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았던 것이다. 당시 민중들의 가난하고 미래가 없는 삶속에서 구원을 구하던 그에게 눈에 띄었던 것은 교회의 십자가이다. 이런 과정은 그의 문학에서도 보여지는 과정이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정의를 위해서 노파를 살해한 후 참회의 길을 가는 과정과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는 과정은 그의 문학에 고스란히 스며든다. 그러나 고골에게 보내는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된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은 간신히 면했으나 시베리아로 끌려갔고, 시베리아에서 러시아 민중의 고통스러운 삶과 순수한 영혼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그것에서 목격하게 된 사형집행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하고 <<백치>>에서 그대로 재현한다.

 

"불확실성과 지금 다가오고 또 곧 닥칠 새로운 것들에 대한 증오심은 정말이지 끔찍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그가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끊임없이 떠오르는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면? 나의 삶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청춘의 황금기를 혹독한 오지에서 보내고 , 죽지 않고 다시 새로운 인간으로 환생한다. "진리는 불행속에서만 나타난다." 라는 갱생의 경험을 톡톡히 치른 것이다.이후 도스토예프스키의 인간관 및 세계관은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 있었다. 1840년대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지향했던 도스토옙스키는 1860년대 완전히 극우 보수주의자(슬라브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도스트예프스키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청소년기에 겪게 된 아버지의 처참한 죽음, 작가로서의 성공과 실패, 혁명, 음모, 체포, 사형, 감옥, 시베리아유형, 불행한 결혼생활, 간질발작, 아내의 죽음, 도박, 자식의 죽음과 형의 죽음까지 ..... 그런 그의 삶에서 문학만이 그에게 구원이 되어준다. 단 한번도 평온하지 않았던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즈막이 읊조린다.

 

"인간은 서로를 사랑해야 돼.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죄가 있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개인적인 죄를 짓고 있어. 하지만 우리는 자기 죄를 두려워해서는 안 돼. 죄를 속죄하고 뉘우치면 용서받을 수 있어. 죄를 두려워해서는 안돼.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더 큰 죄를 짓게 돼. 결코 오만해서는 안 돼. 오만함은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마음의 병이야. 겸손한 마음으로 타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봐. 그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의 소리가 들리지. 그 소리는 사람들 사이를 연결하는 따뜻한 마음을 생기게 해. 그래야 우리는 진실로 살아 있는 생명을 이어갈 수 있어. 이게 사랑의 법칙이야. 사람은 사랑으로 참된 세상을 얻을 수 있는 거야. 눈물로써 속죄를 하고 나면 세상은 어느새 내 곁에 다가와 속살을 비비고 어리광을 피우지."

 

그의 목소리가 책을 덮고도 귓가에 맴돌다 떠나간다.그의 목소리가 내게도 구원이 되어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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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메이어
앤드류 니콜 지음, 박미영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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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인생에 대해 아는 건 이겁니다.

저는 세상에 우리가 낭비해도 될 만큼의 사랑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한 방울의 여유도 없지요.

그 사랑을 찾는다면, 어디에서 찾았든 소중히 보관하고 여력이 닿는 한

오래도록, 마지막 입맞춤까지 누려야 합니다.

 

<굿메이어>는 로맨스소설이다. 달콤한 로맨스일 거란 생각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는데, 읽으면서 왜 테스가 떠올랐는지 모른다. 순간의 어긋난 사랑이 주는 아픔을 그처럼 처절하게 보여주는 사랑이 또 있을까? 무수한 노래와 무수한 영화 속에서 사랑을 노래하고, 사랑을 그리워하듯이 우리의 삶 전체에 사랑을 빼면 의미있는 것이 없을 듯 하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모든 사람들이 설렘과 벅찬 행복을 찬미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별의 아픔과 괴로움을 토로한다. 어떤 이는 사랑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말하고,어떤 이는 사랑이 가장 아픈 것이라 말하지만, 이 세상에 사랑이라는 주제가 없다면 그 얼마나 재미없고 팍팍한 세상일까 싶다. 그러나 또한 사랑처럼 어려운 것이 또 있을까 한다. 이 로맨스소설의 주인공들 또한 사랑이라는 마법에 걸리면서 아픔과 괴로움에 빠지게 되니, 원래 사랑이란 아픔을 수반하는 생명체이렸다 ...

 

사람이 얼마나 착하면 이름 앞에 선량한 티보 크로빅 시장이라는 이름을 붙여줄까 싶을 정도로 작은 마을의 시장 티보 크로빅의 이름자 앞에는 항상 '선량한'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어려운 일 있으면 알아서 처리해주고 늘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할 정도로 시간개념도 철저한 '선량한 티보 크로빅'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 상대는 바로 비서인 아가타이다.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름답고 관능적인 아가타, 불쌍한 아가타, 가엾은 아가타, 그녀의 모든 불행까지 사랑하는 '선량한 티보 크로빅', 그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시장직도 기꺼이 내놓을 수 있건만.... 티보는 아가타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커녕 '사'자도 꺼내지 못한다. 밤마다 거울을 보며 "색.색.깔"만 백날 연습하면 뭐하나... 고백도 못하면서 ....

 

아가타에겐 아이가 있었고 행복했던 적이 있었지만 모두가 과거형이다. 아이가 죽자 남편 스토팍도 남자로서 죽음을 맞이한다. 아직은 젊고 싱싱한 관능적인 매력과 섹시함을 갖추고 있던 아가타는 자신을 거부하는 스토팍의 거부도 참기 힘들지만 점점 여성으로서 지쳐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참을 수 없는 섹스리스에 빠져 있는 부부, 그리고 그 틈을 노리고 있던 사촌 헥토르,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약해진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다름아닌 알콜중독자 헥토르라니 !!!!!!

밤마다 아가타에게 고백하기를 연습하는 선량한 티보 크로빅은 늘 점심시간에 아가타와 보내는 시간의 달콤함에 빠져 오늘 내일 고백을 미루고 있었는데 , 결심한 날 아가타가 알콜중독자이자 폭력전과자인 헥토르에게 가버리자 좌절하게 되고 가슴아픈 나날을 보내게 된다. 꼬박 2년을 헥토르에게 맞고 사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티보의 절망은 더해만 가고, 사랑하는 감정은 오히려 더 커져만 가고, 암튼 사랑은 어려워....

 

아이를 잃은 채 살아가는 두 부부의 일그러진 삶 속에서 서로 노력하고 사랑하는 모습이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 우리나라의 정서에는 잘 맞지 않는 외국로맨스소설이라 전개에 다소 황당함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가끔 외국로설을 읽으면 성문화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든 전개가 보여지는데 이 책의 주인공들이 주는 사랑의 모습에서 약간의 문화차이가 느껴진다. 그러나 이들이 보여주는 사랑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는데 아가타의 사랑의 변화를 살펴보면 처음 아가타는 순애보같은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 오로지 남편밖에 모르고 남편을 위해 살아가는 지고지순한 모습의 사랑을 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이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히자 도피하는 마음으로 헥토르를 선택한다. 여기서 순간의 선택으로 자신을 나락에 빠뜨리게 한 것은 다름아닌 아가타 자신이라는 것, 그 댓가로 아가타는 더한 고통을 치르게 된다. 그 가운데에 티보를 사랑한다는 이율배반적인 감정까지 아가타는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찾는 방법을 모른 채 삶의 부침을 격게 되지만 그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변함없이 자신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티보를 통해서 진정한 사랑의 모습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사랑의 모습은 참 여러가지이다. 아마도 티보처럼 늘 그자리에 변함없이 사랑해주는 그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의 사랑은 이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한다. 티보의 고백이 하루 더 빨랐다면, 그렇게 돌고 돌아오지 않아도 되었을 테지만, 사랑을 이룬 티보가 한 말은 바로 지금 당장 사랑을 말하세요 ~ 라는 것, 사랑을 찾았다면 오랫동안 입맞춤하라는 말에 귀기울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오늘 밤 꿈에 선량한 티보 크로빅의 꿈을 꾸게 될 지도 모르겠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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