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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부수는 말 - 왜곡되고 둔갑되는 권력의 언어를 해체하기
이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평점 :
제목은 '말을 부수는 말'이지만 나는 리뷰 제목을 조금 바꿔 마음을 부수는 말이라고 해본다. 인간을 부수는 말, 인간의 존엄성을 부수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말들이 생각났다. 언어는 실제 세계를 담아내는 그림이고, 언어를 명료하게 함으로써 언어의 오해때문에 생긴 여러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이 철학이라고 하였다.
예술사회학 연구자라고 소개되어 있는 저자 이라영의 이 책은 '왜곡되고 둔갑되는 권력의 언어를 해체하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수술대 위에 올려놓은 말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고통, 노동, 시간, 나이 듦, 색깔, 억울함, 망언, 증언, 광주/여성/증언, 세대, 인권, 퀴어, 혐오, 여성, 여성 노동자, 피해, 동물, 몸, 지방, 권력, 아름다움이 그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서 제일 처음 밑줄을 그는 부분은 '고통'에 대해 얘기한 다음 대목인데, 흔히 말하는 '창작의 고통'이라는 말이 가진 모순에 대한 것이다.
"예술가들이 너무나 성공적으로 괴로움을 표현한 탓에 예술가 집단이 가장 진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로 여겨지고, 그래서 도움이 절박하게 필요한 다른 사람들에게서 의도치 않게 관심을 빼앗을 위험"이 항상 도사린다.
창작을 통해 고통을 다루기보다 창작을 하는 나의 고통에 대해 더욱 열심히 말하는 창작자들이 실로 많다. (13)
창작이라는 활동을 하는 동안의 정신적 고통을 고통의 범주에 포함시켜 얘기하는 동안 출산이나 질병의 고통 같은 육체적 고통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거나 하급 고통으로 제쳐질 가능성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문학과 미술 등 예술에서 질병, 출산, 육체노동처럼 몸이 겪는 고통을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다뤄왔다는 점을 20세기의 작가들은 꾸준히 지적해왔다. (13)
'수족부리듯이' 라고 말할때 그것은 상대를 깔보면서 부려먹는 상황을 일컫는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 말 속에는 우리의 손과 발이 하는 노동은 머리가 하는 노동보다 못하다는 멸시가 들어가있다. 수족이 왜? 이것은 손과 머리를 분리시켜 손이 하는 노동은 값싼 노동으로 취급하는 의식을 반영한다.
"예전에 엄마가 그랬는데, 여자가 더러운 걸 많이 만져야 집이 깨끗하대." (48)
십년 단위가 짧다고 할 정도로 세대를 구분하여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유행은 언제부터 다수를 한꺼번에 특징지워 우스개거리로 만들었을까. 학번으로 나이를 대신하여 불러서 학번 없는 자들을 제외시켰으며, 70년대 세대를 x세대라는 말로 부름으로써 대학 안 나와도 x세대 할 수 있냐는, 계층의 언어를 만들어내었다. 88만원 세대라고 할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MZ 세대, Z세대 (젠지), 앞으로는 또 어떤 이름의 세대를 만들어 획일화, 단순화시켜 버릴까. 무엇보다도 과연 그런 말들은 그 세대를 진정으로 대표할 만 한가.
'국민의 시녀', '엄마의 마음으로', '국민 맏며느리', 이런 말 속에 들어가있는 여성과, '효자 상품'이라는 말 속에 들어가있는 남성성. 전자는 보조 역할, 포용과 희생을 담고 있고 후자는 대표성, 주도성을 담고 있다.
훔치지도 않았는데 죽어야 한다
죽이지도 않았는데 죽어야 한다
재판도 없이
매질도 없이
구덩이로 파묻혀 들어가야 한다.
김혜순 시인의 <피어라 돼지>의 첫 번째 연이다. 동물은 그 몸 자체가 노동과 출산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한다. 동물뿐 아니라 여성도 마찬가지. 생명의 잉태와 양육이 고귀하다면 여성은 그만큼 존중되고 대우받아야 한다. 애국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검색과 SNS 사용만으로도 공부한다는 착각을 하기 쉬운 시대를 살아가면서 쉬운 언어, '인싸'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지식인인체 하는 시대, 영어로 된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지배의 언어, 권력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착각, 쓸모 없는 것은 아름다운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점점 창조적 능력을 잃어가는 대신 물건을 구입해서 소유하는 사람이 아름다움과 권력을 가진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가 쓰는 말 속에는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던 진실이 들어가 있다. 이 책은 '왜곡'되고 '둔갑'되어 있는 말을 칮아내고 분석하여 왜곡하고 둔갑시킨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반성할 기회를 갖게 한다. 우리 인간들의 가식과 이기주의가 여차 없이 들어가 있다. 마치 얼마 전에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볼때처럼 그런 시대를 살아오거나 살고 있다는 것이 스스로 부끄럽고 치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