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위의 딸 펭귄클래식 29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심지은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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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라고 시작하는 시로 유명한 푸시킨이 남긴 소설 중 제일 잘 알려진 것이 이 <대위의 딸>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초등학생용 세계명작전집에도 포함되었던 기억이 있으니까.

푸시킨은 1799년 모스크바에서 귀족가문 출신 군인이었던 아버지와 에티오피아 왕족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즉, 푸시킨은 반은 아프리카 혈통) 왕실귀족학교에서 교육받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유로운 생활과 친목을 다지며 시인의 기질을 키워오던 그는 스무살 갓넘어 발표한 시가 당국의 검열에 걸리는 바람에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검열은 모스크바로 호송되어 시인으로 인정받고 창작 생활을 해나가는 동안에도 계속되어 사망할 때까지도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유배기간 동안의 경험과 새로운 창작의 비전에 눈을 뜬 그는 러시아 민중의 삶과 지방의 삶을 담아 문학 비평, 역사 연구, 저널리즘, 희극, 소설 등으로 작품 세계를 넓힌다. 역사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푸가쵸프 반란에 대한 연구는 이 소설 <대위의 딸>을 쓰게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런 그가 1837년 단테스 남작에게 결투를 신청하여 싸우다가 치명상을 입어 사망하는데 38세라는 이른 나이였다.

소설보다 시로 먼저 출발했고 시인으로서 먼저 인정받았던 푸시킨이지만 이 소설 <대위의 딸>은 러시아 문학사와 문화사에 큰 의의를 가지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러시아 근대 장편소설의 효시이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 강>으로 이어지는 역사소설의 근원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점은 작품 해설을 찬찬히 읽어보고 알게 된 사실일 뿐, 읽는 동안엔 그만한 의미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유는,

1. 주인공 표트르가 미로노프 대위의 딸인 마리야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이 너무 갑작스럽다. 한눈에 반할 수 있는 것이 남녀 사이라지만 무관심에서 호감으로 변하는 상황이라는게 좀 억지스러워보였다. 상대방의 매력을 표트르 자신의 감정과 눈으로 찾아냈다기 보다 제3자인 시바브린의 오해로 엮어진 관계 같은 느낌이 들었다.

2. 표트르가 모시던 미로노프 대위는 물론 그 아내까지 잔인하고 포악한 푸가쵸프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고, 미로노프 대위를 모시던 표트르 역시 교수대에 올라가 처형되려는 찰라 푸가초프가 표트르를 알아보고 극적으로 처형에서 면하게 해준다. 일전에 서로가 누군지 모르던 시절 표트르가 푸가초프에게 적선하듯이 주었던 토끼가죽 외투와 포도주 한잔 때문이었다. 이후로 표트르가 푸가초프와 노선을 같이 하거나 도움을 준것도 아닌데 마지막까지 푸가초프가 표트르를 모든 제재와 탄압에서 예외대상으로 선처를 베풀어줌으로써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무사히 진행될 수 있게 해준다. 스스로 황제라 칭하며 포악하고 무자비한 살인을 서슴치 않는 무법자 같은 푸가초프가 말이다.

3. 주인공 표트르는 매우 평범한, 너무나 평범한 인물이다. 갈등을 뛰어넘고 극복해나가는 캐릭터와는 거리가 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뇌하고 난관을 헤쳐가는 인물이라고 보기엔 부족해보인다는 것이다. 이 표트르라는 인물의 성격을 짚어보자면 도의에 크게 벗어나는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다는 것, 의리를 저버리는 일을 도모하지 않는다는것 등을 들수 있는데 그런 성격이 이야기 속에서 크게 두드러지거나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볼 정도는 아니다. 정치적 혼란의 시기 속에서 목숨을 보존하고 사랑하는 여인을 무사히 지켜서 결혼까지 가기까지 주인공의 어떤 결정적인 역할이나 모험을 통해서라기 보다는 상황이 그에게 유리하도록 잘 흘러준 덕이 더 커보인다. 따지자면 오히려 그의 충복 사벨리치의 행동이 더 용감하고 결단력있어 보인다. 물론 자기의 의무가 표토르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데서 나온 행동이지만 말이다.

20대부터 죽을때까지 계속 검열의 눈길을 피해야했던 푸시킨으로서, 자기의 생각을 맘놓고 직설적으로 소설 속에 표현하기 보다는 이렇게 저렇게 포장하고 둘러서 표현해야했다는 것이 작품 해설에서 읽은 내용이고 이해가 간다. 푸시킨은 주인공을 앞세운 소설보다는 역사적인 사건을 소설 형식을 통해 보여주는 형식을 택한 것일까? 그럴만큼 그 당시 러시아는 안팎으로 몹시 불안했던 시기를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예카테리나 여제와 푸가초프는 실제 인물이고 푸가초프의 반란 역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다.

시대가 아무리 혼란스럽고 불안하더라도 선의를 지키며 살라는 것을 주제로 본다면 얼추 그의 유명한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와 일맥상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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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2-19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2018-12-19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서관 가는 길에 아들이 찍어보내온 사진입니다.

거위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중이랍니다.

근처 대학 캠퍼스에 거주하고 있는 거위들이지요.

 

 

 

 

 

 

 

 

 

 

 

 

 

새들이 무리지어 하늘을 날때 보면 대열을 만들어 비행을 하는데 육로 (!)를 보행할때도 저렇게 줄을 서서 하나봅니다. 아마 이동할때 줄을 지어 하는 본능이 있나봐요.

 

줄 서는 것 자체가 본능인지, 혹은 리더쉽이 작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무리가 있으면 그 중 한 마리는 리더 역할을 하여 나머지 무리들의 행동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는 식으로.

궁금 궁금.

 

동영상도 있는데 올리지 못해 아쉽네요.

 

 

 

 

 

(두번째 사진에서 표지판 그림 보이시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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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2018-12-16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위와 더불어 사는 캠퍼스. 표지판 넘 귀여워요 ㅎㅎ

hnine 2018-12-16 15:54   좋아요 0 | URL
표지판이 따로 있는 걸 보니 거위들이 자주 건너다니는 곳인가봐요.
귀엽죠? ^^

stella.K 2018-12-16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거위를 위해 표지판도 설치하고
의식있는 동네네요. 멋집니다.^^

hnine 2018-12-17 06:04   좋아요 0 | URL
저도 자세히 보기 전에는 표지판의 그림이 사람인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사람이 아니라 거위더라고요.
거위가 걷는 모습을 보면 귀엽기까지 해요. 뒤뚱뒤뚱 ^^

책읽는나무 2018-12-17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판의 그림이 마음을 푸근하게 하네요^^

hnine 2018-12-17 15:35   좋아요 0 | URL
저기가 분명 차도이기 때문에 위험할수있거든요. 차들이 모두 서서 기다려주고 있어요 ^^

서니데이 2018-12-17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리가 자주 다니니까 표지판도 생겼나봐요.
사진 찍는 분들 많을 것 같은데요. 저도 보면 사진 찍었을 것 같고요.
재미있는 사진 잘 봤습니다.
hnine님, 기분 좋은 월요일, 좋은 12월 보내세요.^^

hnine 2018-12-17 15:38   좋아요 1 | URL
오리인가 했는데 거위더라고요. 거위도 오리과이긴 하죠 ^^
저는 거위가 잔디에서 돌아다니는 것만 봤지 저렇게 무리지어 횡단보도를 건너가고 있는 건 못봤어요.
서두르지 않고 유유히 ^^ 오히려 서두르다 사고 날 수 있다는 걸 거위가 아는 것 같죠? ^^
 
토지 13 - 4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3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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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의 우리 나라 풍경을 토지13권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고 있다.

어디로 가든지, 특히 소도시나 소읍 같은 곳은 거의가 다 그러한데, 양과점을 위시하여 담배 가게, 이발소, 목욕탕, 대개 그런 비슷한 업종은 일본인 경영이다 (10).

조선땅은 이제 조선사람만 사는 곳이 아니고 조선 물건만 사고 파는 곳이 아니며 우리 말만 사용되는 땅이 아니라는 것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메이지 캐러멜, 모리나가 밀크, 센베이 과자, 지쿠 (머릿기름), 활동사진관.

이제 토지의 무대도 경상남도 하동 평사리 최참판가 중심에서 벗어난지 오래. 간도도 이미 지나왔다. 서희가 간도에 머물다가 조선땅으로 다시 들어오면서 새로이 정착한 곳인 진주와 서울이 주요 등장 무대가 되고 평사리는  이제 간간히 언급되는 정도이다.

토지13권 역시 큰 사건 보다는 등장 인물들의 인생 역정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어져가는 식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 진행은 서희가 조준구로부터 재산을 되찾은 후 부터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결말까지 아직 일곱 권이 남아 있으니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진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아직 길상이 감옥에 있고, 환국과 윤국이 학생 신분이다 보니 이들에게 아직 변수가 기대되고 있긴 하지만 그 이상 어떤 큰 사건이 일어날까? 13권에도 지면을 채우고 있는 것은 토지 처음부터 등장하던 인물들과 그 자손들이고 여기에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더해지기도 한다. 이렇게 인물들이 계속 더해지니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얘기거리는 계속 공급될 수 있는 것이다.

정치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일본의 영향이 조선의 꽤 하부적 일상까지 넓혀져 가고 있던 시기이니 만큼 일본과 조선의 문화 비교, 비평을 담은 내용들이 자주 나올 수 밖에 없고 이 권에는 특히 많이 나오는데 물론 등장 인물들의 토론이라는 형식을 통해서이다.

우선 임명희를 좋아했지만 결국 시동생으로 남게 된 조찬하. 그가 일본인인 오가타 지로와 만난 자리에서 조선과 일본의 문화를 비교, 비평하는 대화를 나누는 대목이 있다. 오가타 지로는 조선의 미신, 민중 심리, 개인의 일방적인 희생 등을 예로 들며 조선의 문화를 감상주의로 보았다. 그 자리에서는 정리되지 못한 생각에 다 말 못하고 나중에 혼자된 다음 되돌려 생각하는 조찬하는 자신의 생각을 비로소 정리하여 다음과 같이 혼잣말을 한다. 일본 군국주의야말로 센티멘털리즘으로 무장되어 있다고. 할복자살하는 행위, 천황에 대한 만세를 부르며 쓰러지는 병사의 행위 등 민족적 자해의식을 미담으로 꾸미고 감상이라는 설탕을 발라서 그걸 먹고 자라는 것이 당신네 일본인이라고. 조선이 로맨티스트라고 하지만 실제로 로맨시스트는 일본인이고 조선은 예로부터 리얼리스트였었다고 생각하면서 리얼리즘에 접근했다고 알려져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 <겐지모노가타리>는 조선의 <삼국유사>의 세계에도 못미친다고 본다 (192,193쪽 참고).

일상적인 대화라고 보기엔 진지한 이런 조선과 일본에 대한 비평은 뒷부분에 또 나오는데, 388쪽에서 시작하여 392쪽까지 길게 이어지는 남천택의 비교적 신랄하고 직선적인 대사 속에서도 보여진다. 그는 당시 신흥지식인들을 서양의 사조에 대해 줏대 없이 휘둘리며 유행으로서 흉내나 내는 수준이라며 비판하고, 맥을 못추는 점에서는 일본과 조선이 크게 다르게 않다고 주장한다.

조찬하와 조용하 형제 사이의 대화 장면에서는 좀 더 일상적인 소재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 얘기하는데 의상과 색채에 있어서 일본을 딱정벌레, 조선을 나비, 학으로 비유했다. 건물의 형태에 대한 비교도 덧붙인다.

작가는 이런 내용을 위해 일부러 공부를 한 것일까 아니면 비교 문화, 문화 인류학적 식견이 원래 높았던 것일까.

 

"아예 친일파가 된다면 모를까 중간지대에서 어물쩍거리다 보면 해괴한 사회잡기나 쓰게 되지. 그 대표적 인물이 이 모 (李某) 아니겠나.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발붙일 곳이 없는 게 현실이라구." (395)

임명빈이 남천택에게 향후 계획을 물으며 한 말인데, ‘이 모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짐작이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뚜렷한 소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참으로 처신이 복잡했었을 시대이다.

중국의 통일, 공산화 가능성을 초조해하고 두려워하는 (그렇게 되면 확실히 중국이 일본의 우위에 서게 될 것이므로) 일본에 대해 언급하면서 일본이 과연 전쟁을 일으킬까 타진해보는 대목도 나온다. 그러면 우리 조선은 또 어떤 운명에 휘말리게 되는 것인지.

13권을 읽는 동안은 소설로서의 소소한 에피소드보다 어떻게 보면 이런 비소설적 내용으로 담은 작가의 목소리가 더 귀에 눈에 들어왔다. 정작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인지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지 벌써 잊어버려 리뷰 쓰며 다시 들춰서 확인해야 했다.

아마 다음 권 (14) 쯤에는 길상이 출옥하지 않을까. 그래도 서희와의 관계는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고, 이들의 아들 환국과 윤국의 행보가 차라리 더 기대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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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2-12 1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경리 <토지>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가깝지도 그리고 멀지도 않은 시대 같아요.
근현대사에 해당되는 그 시대는 한국사에서 외울 것들이 많은 시기였던 것이 생각나네요.
‘이 모‘는 누구였을까요?
잘읽었습니다.
hnine님, 추운 날씨 따뜻하게 보내세요.^^

hnine 2018-12-13 16:45   좋아요 1 | URL
서울 다녀왔어요. 오늘 서울은 눈이 펑펑. 제가 사는 곳에서 조금 위로 올라가는 것인데 그래도 더 북쪽은 북쪽인지 더 추워요.
토지 13권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 말. 거의 백년 전이죠. 학교에서 국사 수업을 들으면서는 그 시대를 궁금해하고 상상해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문학 작품을 읽는 동안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상상을 하며 읽게 돼요. 더 재미있죠.
이 모 씨는 그냥 상상만 해보는 것으로~ ^^
 
그린 마일 스티븐 킹 걸작선 6
스티븐 킹 지음, 이희재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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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작품을 일부러 찾아 읽은 기억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그 많은 작품 리스트를 보니 영화로는 본 것이 꽤 있다. <캐리>가 그렇고, <돌로레스 클레이본>, <미저리>, <스탠 바이 미> 그리고 <쇼생크 탈출>, 눈에 띄는 것만 꼽아도 그렇다. 아마 자세히 보면 더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 <그린 마일>도 영화화된 작품이고, 볼까 했다가 그 스토리를 알고 망설이다가 피해갔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어떻게해서 이 책이 손에 들어오게 되었으니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읽기 시작하하면 재미있게 읽는다. 거의 600쪽에 달하는 두터운 책이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읽고 있던 토지 13권을 잠시 미루기 충분할 정도로 흡인력있다.

일이 벌어진 때는 1932년이고 장소는 콜드마운틴에 있는 주 형무소. 화자는 형무소의 사형동 간수인 폴 에지콤이다. 이 사람이 나중에 조지아 파인스 양노원에서 1932년 당시를 회상하며 쓴 회상록 형식으로 되어 있다. 사형동에 수감되어 있는 사형수들이 나오고, 폴과 함께 근무하는 다른 간수들, 형무소장 등이 당연 등장한다.

책보다 훨씬 리얼했을 전기 의자 사형장면을 숀펜이 주연한 영화 <데드맨 워킹>에서 보고 그 후유증도 오래 겪었음에도, 이 책 속에 얼마나 자세하게, 여러번 나오는지 또 한번 후유증을 겪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할 정도로 마치 옆에서 지켜보는 듯이 작가는 쓰고 있다. 정상적인 상황뿐 아니라 예기치 않은 상황까지 나오는 건 덤이라고 해야하나.

존 커피라는 (여기서 커피는 마시는 커피가 아니라 성(姓)으로서의 커피) 사형수는 아마 이 소설에서 작가가 그려낸 메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왜 하필 이름을 존 커피라고 했을까.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 작품의 기독교적 의미와도 상통해있는 작명이다 (J. C). 존 커피는 어린 쌍둥이 자매를 강간,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거구의 몸집을 한 흑인에다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웅얼거리는 덜 떨어져 보이는 그에게 작가는 겉에서 보이는 것과 전혀 다른 능력을 부여하였다. 어쩌면 21세기 과학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영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사형수라는 것과 모순되게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능력을 가진 것이다. 그의 이런 능력을 알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간수 폴 에지콤은 그동안 덮여져 있던 사실을 알게 되는데.

다 읽고 난 후 마음이 영 불편하다.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도 그렇게 결과가 흘러가게 두었어야 했는가. 법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그렇게 생명이 끝나도록 해도 되었는가.

양노원에서 회고록을 쓰며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은 좋다. 양노원 헛간에서 또다시 딸랑쥐를 만나게 되는 설정도 훌륭하고 멋진 의미 부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가 100세 넘은 나이까지 오래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누가 불어넣어준 생명의 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해석하는 것은 나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의미 붙임이었다. 인생의 마지막을 앞둔 사람의 마음치고 너무 자의적인 해석이 아닐지.

이 세상에 생명만큼 소중한 것은 없을 것이고, 죽음만큼 누구에게나 두려운 것은 없을 것이다. 누구의 생명이 더 중요한 법은 없다. 이 소설의 결말은 잘못되었다! 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이해 못하겠다 불편했던 점을 종교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해설을 방금 보았다. 그렇게 해석하니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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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11-29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로 봤는데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스티븐의 책은 한 권도 읽어 보질 못 했습니다.
<캐리>도 초등학교 시절 읽다가 포기했습니다.
흑인 거인의 입에서 무슨 녹색 입김이 나오고 그랬던 것 같은데...ㅋ

hnine 2018-11-29 22:36   좋아요 0 | URL
책에서는 존 커피의 입에서 하얀 벌레 같은 것이 쏟아져 나온다고 되어 있어요. 이게 실제 상황인가 헛것을 본것인가 읽으면서도 금방 파악이 안되었는데 다 읽고 나서 여기 저기 이 소설에 대한 해설을 찾아 읽어보니 이해가 되네요.
별점을 세개에서 네개로 고치려고 합니다 ^^

카스피 2018-11-30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영화를 먼저 봤는데 아마도 톰 행크스가 교도관으로 나오는것 같더군요.책을 읽은 후에 영화를 보셔도 재미있을 거에요.

hnine 2018-11-30 12:12   좋아요 0 | URL
톰 행크스가 나왔다는건 알고 있는데 폴 에지콤으로 나왔군요. 배역이 그와 어울려요. 기독교적 영화라는걸 해설을 읽기전엔 전혀 몰랐어요.
 

 

 

이효석은 그의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에서 낙엽을 '꿈의 껍질'이라 하였는데,

나는 오늘 땅에 구르는 낙엽을 보며 이루지 못한 꿈 조각들이 굴러다니는 것을 보는 듯 했다.

쓸쓸한 마음으로 아무 쓸모 없어 보이는 그 낙엽 위를 걷는데 그순간 내 발 밑에서 얘들이 '바사삭'하고 소리를 내는 것이다.

수분이 다 빠져나간 나뭇잎 온몸이 부스러지며 내는 소리겠지만, 어쩐지 나 아직 살아있다고 외치는 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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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11-22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낙엽이 보기는 좋은데 청소해야하는 환경미화원 아저씨들은 아마도 꼴보기 싫을듯 싶어요.

hnine 2018-11-23 05:02   좋아요 0 | URL
그러시겠지요. 어제 바람이 많이 불어 또 낙엽이 와장창 떨어졌을텐데 오늘 일감이 배는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날도 추워졌는데.

stella.K 2018-11-23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엇, 무슨 낙엽이 저렇게 화려하죠?
저런 낙엽은 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hnine 2018-11-23 22:44   좋아요 1 | URL
역시 예리하십니다.
저도 저런 낙엽 처음 봤어요. 지난번 런던 갔을때 찍어온 사진이어요. 떨어지지 않은 잎들도색깔이 다 저렇게 그라데이션이더라고요.

Nussbaum 2018-11-27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오랜만입니다. ^^

잘 지내셨지요?

hnine 2018-11-27 21:55   좋아요 0 | URL
어제보다 나쁜 일 없는 오늘이었다면 저는 오늘 하루 잘 지낸거라고 봅니다. 그렇게 살고 있어요 ^^
Nussbaum님 오랜만이면서 꼭 그렇지 않은 느낌인게, 제 서재 자주 들러주시고 좋아요도 눌러주시는 흔적을 고맙게 보아오고 있었기 때문인가봐요.
어떤 새로운 일이 있으셨나요?

Nussbaum 2018-11-28 00:54   좋아요 0 | URL
네 어딘가에서 뭔가를 하고 있지만 알라딘서재 이웃분들 쓴 글은 챙겨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일은 없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새로워지려고 노력하는 일상이네요 ^^

2018-12-06 0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8-12-06 04:40   좋아요 0 | URL
저도 참 신기했어요. 떨어진 잎만 저런 색인가 싶어 나무를 올려봤더니 사진으론 안 올렸지만 나무에 아직 달려있는 모든 잎이 다 저렇게 그라데이션으로 물들어 있는거예요. 나무도 아주 큰 나무였거든요.
나이가 좀 더 들어서인지, 두번째 방문이어서인지, 이십년전에 안보고 지나쳤던 것들에 눈길이 많이 머문 여행이었어요. 특히 런던 어디가나 볼 수 있었던 우람한 나무들, 공원들이요. 단번에 급조할 수 없는 것들이지요. 오랜 시간이 들여 자리 잡을 수 있는 것들이요.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