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외 설경(窓外 雪景)

                                                  -    -

 

            지금 창밖에 서울엔 눈이 내리고 있읍니다.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일년, 이년, 삼년,
       
............ 십년을 두고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묵은 편지를 쓰고 싶어지는
        지금 서울에 창밖엔 눈이 내리고 있읍니다

 
        한번 맘먹고 새옷 차림을 하고
       
누추한 서울을 찾아내리다
       
.......... 다시 한번 주저한듯이
       
주저하다 아주 결심한듯이
       
망서리고 망서리다 아주 마음 내린듯이
        서울의 창밖에 내곁엔 눈이 와 앉고 있읍니다

 
        서울의 사랑은 눈 쌓인 창안의 어슬픈 
        보금자리 길이 막히어
       
가시나무 그늘의 멧새처럼
       
눈 내리는 눈속에서 진종일을 종일합니다
 

        창밖에 찬 겨울, 겨울을 견디는 사랑아
       
냉랭한 세월아
       
---- 서로 미워하기 위하여 나온것은 아닙니다
       
---- 서로 싸우기 위하여 나온것은 아닙니다
       
창 밖에 찬 겨울, 겨울을 견디는 사랑아
       
냉랭한 세월아
       
그리운것이 있어 그리워하기 위하여
        사랑하는것이 있어 사랑하기 위하여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나온것입니다.)

 
        지금 창밖에, 서울엔 눈이 내리고 있읍니다.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묵은 편지가 쓰고 싶어지는 

        내가슴 흐뭇이 눈이 내리고 있읍니다.

                                         

 

 

 

    어느해 이름도 잊은 신문에 게재한 조병화 선생님의 시입니다.  몇번째 시집에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 시절에는 신문에 이렇게 멋진 시가 全文 실렸읍니다.

  조병화 선생님은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중 한분입니다.  이분이 옛날 우리 중고등학교 시절에 서울고교 물리 선생님인거 아세요?  학교는 다르지만( 대학 시절에 알었지만) 또 럭비 선수였던 학창시절이 있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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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04 20:29   좋아요 0 | URL
^^ 오늘 같이 눈 내리 날에 맞춰 좋은 시 올려 주셨네요.
조병화 시인이 화학 선생님이었다는 건 정말 몰랐어요.

프레이야 2004-03-04 22:19   좋아요 0 | URL
수암님, 요즘 마음 한편 편치 않는 저를 소리없이 콕 찌르는 시입니다. 눈물이 나려합니다.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묵은 편지가 쓰고 싶어지는 내가슴 흐뭇이 내리는 눈...
네, 사랑하기 위해서 왔다고 믿어야겠습니다. 이 시 퍼갈게요^^
참, 전 저번 토요일부터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 받고 있어요. 오늘은 훨씬 나아졌어요. 완전히 나을 때까지 무리하지 않아야겠죠^^ 수암님, 편안한 밤 지내세요. 3월답지 않게 추운 요즘 감기조심 하시구요.
 

           < 한 잔 술 >

                           - 공초 오상순 -

       

        나그네  주인이여
        평안  하신고
        곁에 앉힌  술  단지
        그럴법  허이
        한잔  가득 부어서
        이리  보내게
        한잔  한잔 또 한잔
        저  달 마시자.
        오늘  해도 저물고
        갈길은 머네.
        꿈 같은 나그네  길
        멀기도 허이 ! 
 

        나그네  주인이여
        이거  어인 일
        한잔  한잔 또  한잔
        끝도  없거니
        심산유곡  옥천 샘에
        홈을  대었나
        지하  천척 수맥에
        줄기를  쳤나
        바다를 말릴망정
        이  술 단지사
        꿈  같은  나그네 길
        멀기도  허이 !

 
        나그네  주인이여
        좋기도 허이
        수양은 말이  없고
        달이  둥근데
        한잔  한잔 또 한잔
        채우는  마음
        한잔  한잔 또  한잔
        비우는  마음
        길가에  펴난 꽃아
        설어를 말어
        꿈  같은  나그네 길
        멀기도 허이 !

 
        나그네 주인이여
        한잔  더  치게
        한잔  한잔 또  한잔
        한잔이  한잔
        한잔  한잔  또  한잔
        석잔이  한잔
        한잔  한잔  또  한잔
        아홉잔도  또  한잔
        한잔  한없어
        한없는  잔이언만
        한잔에  차네
        꿈같은  나그네  길
        멀기도  허이 !

 
        나그네  주인이여
        섪기도  허이
        속  깊은  이  한잔을
        누구와  마셔
        동해바다  다  켜도
        시원치  않을
        끝없는  나그네  길
        한  깊은  설음
        꿈인양  달려보는
        하염없는  잔
        꿈  같은  나그네  길
        멀기도  허이 !


       

  한때는 공초의 <한잔술>을 외우면서 말술을 마셨네.
  한됫술에 자연과 친하고 한 말술에 자연과 합친다고 이백을 노래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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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4-03-04 16:51   좋아요 0 | URL
공초 오상순은 담배를 많이 피고 횡보 염상섭은 술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공초도 술을 많이 마셨던 모양입니다.

水巖 2004-03-05 08:13   좋아요 0 | URL
공초 선생님은 명동에 있는 청동다방에 늘 계시고 그분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담배도 사다드리고 글도 쓰고 해서 <청동문학>이라는게 탄생했었죠. 새파랗게 젊던 그 시절에 몇 차례 뵈울 수 있던 행운도 있었답니다. 우리는 "동방문화싸롱"에 자주 들렸고 그 건너 선술집에도 자주 갔었죠. 1957,8년도 이야기죠. 이 시는 1928년에썼으나 1949년 [문예-文藝]지 12월호에 발표됬다는군요.
다음에 공초 오상순 이야기 쓸게요.

비로그인 2004-03-04 20:32   좋아요 0 | URL
^^ 꽁초 공초 오상순, 갈 之 횡보 염상섭...
작가 염상섭의 손녀 중 한 명이 제 대학 동기지요.

水巖 2004-03-05 11:19   좋아요 0 | URL
담배 많이 피워서 공초가 아니구요. 호가 空超 입니다. (空-빌공, 超-뛰어넘을 초)
담배 열갑을 피우셨다는군요.

비로그인 2004-03-04 23:27   좋아요 0 | URL
앗, 할아버지!
전 공초가 꽁초와 발음이 흡사한 데서 겸사겸사 지어진 것인 줄로만 알았었는데, 그러면 그것이 전혀 근거가 없는 우스갯 소린인가요? -.-;; 궁금해요. 가르쳐 주세요...^^

水巖 2004-03-05 07:54   좋아요 0 | URL
냉.열.사.님 어려운 숙제내요. 우선 공초 오상순 평전(정공채 저)의 오상순 연보를 보면 -
<1953년 만 59세> - [청동]이나 [향지원]다방 같은 데선 커피 이외에도 점심때쯤엔 주로 우유에 계란을 넣은 "에그 밀크"로 끼니를 때우곤 해서 찻집 아가씨들이 공초의 <꽁초>란 별명 이외에도 <에그 밀크>란 또 하나의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한다. 그리고 담배는 [하루 한 대 피운다]로 통하기도 했다는데 한번 붙인 담뱃불이 내내 이어져서 그렇게 불린 것이다.
이것을 보면 꽁초란 이무렵에 불린것이 아닌가 싶군요. 공초란 호는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기독교에서 불교로 입문했고 또 거기서도 [뛰쳤다 空超]라고 했으니1926년 이후 가 아닐가 싶군요.

비로그인 2004-03-05 15:11   좋아요 0 | URL
너무 상세한 설명에 뭐라 감사해야 할 지...
공초의 개인적 얘기까지 곁들여서 해 주시니, 작가의 숨겨진 일면 하나를 더 알았다는 기쁨, 정말 큽니다. 감사해요~ ^^
 

             < 구   름 >

 

                            - 이      덕      진 -

           

      뜻대로 살다
      소리없이 사라지는
      목숨입니다

       누구를 위함도 아닌
       나를 위한 행각도 아닌데
       타고난 습성때문에
       떠다니는 나그네올시다

       솜보다 가벼웁고
       무쇠보다 무거운
       생각이 있어


 
      루억만년을 두고 두고
       정처없이 떠도는 슬픔속에
       영영 타협이 싫은 생리가 있읍니다

 
       지금은 햇빛이 찬란한 정오
       나의 가벼운 나래는
       나의 영원한 나의 청춘

 
       끝이 없는 방랑에서
       그래도 한 줄기 희망은 있었읍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멍든 가슴을 열어
       나의 고향을 찾으면
       아 !  꿈속에 피는 향수가 있읍니다

 
       나의 고향은 나의 젊음,
       나의 고향은 나의 영원한 방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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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2-28 11:46   좋아요 0 | URL
좋네요! ^^

水巖 2004-02-28 16:26   좋아요 0 | URL
좋지요? 그 시절엔 줄줄이 외우곤 했는데요. 이젠 몇줄도 생각이 안나네요.
그때 외우던 것들 생각나네요. 제목 만.
<삼일독립선언서>, 오상순의 <짝 잃은 거위르 곡하노라>, 박종화의<청자부>.....
그리고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 한다> 장문(長文)도 거침없이 외우고 경쟁하던 친구야! 지금은 어데서 무얼하느냐?

 

         비 내리는 밤

 

                         - 김    상    화 -

 

     

      보슬비 내려

      엄마없는 아가들의

      가슴을 젖게하는

      밤------

 

      밤이란,

      빗길따라 가라앉는

      별들의 흐느낌

      소리 내잖는

      외로운 사람들의

      절규하는 눈물이었다

 

      비 내리는 맨 밑바닥

      낙엽같은 인생의

      이부자리 안에서

      서로의 손목을 쥐여보는것은

      그림자같은

      행복을 잡자는것,

 

      행복은

      빗길에 씻기운

      녹슬은 지붕

 

      보슬비내려

      엄마없는 인생과

      녹슬은 지붕을

      씻어가는 밤

 

      외로운 사람끼리

      손목을 잡어야 했다.

     

  그 시절엔 눈물이 날것 같었다.  지금도 오랜만에 읽어보니 예전 생각이 되돌아와 마음이 짜안하다.  얼핏 피난 생활도 같고 엄마없는 어린것들을 잠 재워 놓고 비내리는 밤 한숨 짓는 홀애비의 근심이 서린 외로움이 지금 늙은 내 가슴에도 젖어 드는것은 왜 일까?

  손목을 잡을 사람도 없구나. 녹슬은 지붕도 보이지 않고 절규하는 눈물도 없다.  밤이 있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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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의 의식 

    

                                              - 김    상    화 -                                               

          

                  웃으며 살기엔
                  너무나 지루한 인생이였읍니다

 

                  눈물을 흘리기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였읍니다

 

                 삶의 보금자리를 찾고져
                 
나의 양심은 언제나
                
검은 빛갈의 제복을 입어야 했읍니다

 

                 웃음과 눈물이
                 
빗줄기에 무너져버린
                
 이 고장........

 

                  나는 지금
                 
양심의 성문밖에 서 있읍니다

 

                  이따금
               
  향락, 애욕, 출세하는것들이 그리워지면

 

                 인스피레이숀이라는 출납구에서
                
 외화처럼 양심을 교환하기도 합니다

 

                 이윽고 성내로 들어가는 시간이 옵니다
                
양심을 버린 중장 병사가 되어
                
사람들과 사귀어야 했읍니다

 

                  " 악수의 니힐 ! "

 

                  우정이란 현금보다 정확하지 못한
               
  꾸겨진 종이 돈이였읍니다

 

                  한 손으로 친구의 손을 잡고
               
  왼손으론 호주머니속의 지폐를 헤아려야 했읍니다

 

                  꾸겨진 지폐와
                 
꾸겨진 우정 

 

                  나는 또다시 성문밖으로 물려가려 합니다.

 

                  웃으며 살기엔 너무 지루한 인생
                 
눈물을 흘리기엔 너무나 짧은 양심의 성문밖.........

 

 

  언제 어느 신문에 게재된 시였는지 모르겠다.  6.25 사변이 끝나고 어수산란했던 시기에 불안과 누우렇게 찌든 삶의 어두운 소식이 온통 신문지에 실리던 그 시절에 한 모금 오아시스 같이 청량했던 시, 나는 이런 시를 읊조리면서 그나마 꿈을 키웠다. 1950년대 때 고목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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