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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평점 :
교통사고로 한 남자가 병원에 실려왔다. 깨어나보니 병원처럼 보였다. 정신은 말짱한데 움직일 수가 없다. 수많은 말들을 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교통사고로 인해 아내가 죽고 자기만 살아남았다. 그것도 온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이럴 때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저 생각하는 것.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재활치료에 매진하는 것.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중요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일 수있을까. 일어서 걸어나갈 수 있을까.
삶이 한순간에 뒤바뀌는 수가 있다. 오기의 경우가 그렇지 않을까. 잘나가는 대학 교수에서 하루아침에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하반신 마비 환자가 되었다. 데면데면했던 장모와도 불편하지만 오기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장모 외에는 그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던 것. 아내와 함께 살았던 정원이 딸린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정원이 있는 집 뿐이었다. 오기는 이제 입주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의 소변을 갈고, 바지를 내려 닦아주는 일들을. 창피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을 장모는 돈 때문에 할 수 없다며 간병인도 물리치료사도 오지 못하게 했다. 정원이 바라보이는 창문마저 닫아 빛을 보지 못하게 했다. 오기와 장모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빚을 얻어 정원이 딸린 집으로 이사했던 그들. 행복할 것만 같은 그들의 생활에 균열이 생긴건 언제부터였을까. 왜 사고가 났던 것일까. 어딘가를 향해 가다가 일어난 사고일까. 마지막에 가서야 진실을 알려주지만, 소설의 골자는 장모와 사위의 대립이다. 일방적으로 장모에게 당한 오기를 바라보게 한다. 책을 읽는 우리는 오기를 짐짝처럼 취급하는 장모에게 이럴 수는 없지 않나 울분을 토하게 된다. 침대에 누워서 장모가 하는대로 당하는 그가 안쓰러울 뿐이다.
침대에 누워만 있는 환자의 불안과 의심을 엿볼 수 있었다. 나를 죽이고 말것이라는 강한 의심, 어떻게든 장모가 없는 틈을 타 빠져나가고 싶은 오기의 불안. 오기가 불안할 수 밖에 없었던게 장모는 정원에 아내가 심었던 나무들을 파내고 구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연못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큰 홀을 장모는 왜 만들고 있었던 것일까.
영화 「곡성」에서처럼 의심은 불안을 낳고, 불안이 도를 넘어서면 누군가 다칠 수도 있다. 오기가 보기에 하나뿐인 딸을 잃었던 장모는 그가 병원에 누워있을때도 큰소리로 울지 않았었다. 그저 소리없이 눈물만 흘릴 정도였다. 그렇잖아도 데면데면한 관계가 더 불편해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집에 들어와서는 장모는 오기가 보지 못했던 모습들을 보여준다. 차라리 큰 소리를 치고 했던 게 더 낫다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주인공 이름이 왜 '오기'일까. 잘못 썼을때의 그 오기일까. 오기를 부려서라도 살아남겠다는 뜻일까. 오기라는 이름에 다양한 뜻이 내재되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내와 여행을 가다 교통사고가 나던 순간부터 오기는 거대한 홀에 갇혀지내지 않았나 싶다. 그는 병원에서도 장모의 눈 밖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정원이 있던 아름다운 집에서도 장모의 눈 밖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장모는 그걸 노린게 아니었을까. 오기의 행동을 고발하는 딸의 글을 읽고 그도 똑같이 만들어주고 말겠다는 게 아니었을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