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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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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느 순간에 친해져서 몰려다니다가 어느 순간에 서운한 게 생겨 헤어지기도 하는 관계. 함께 어울리면서도 생각하는 바가 달라 속마음을 덜 드러내는 관계에까지. 우리는 수많은 관계에 얽혀 살아가고 있다. 그냥 무심코 했던 말을 다른 이에게 전해 돌아오게 만드는 사람이 있어 속상해 할때도 있고. 그렇다고 그 사람을 멀리할 수도 없기에 난감한 경우가 있다. 어디 이뿐일까. 수많은 관계에서 정도를 지키기가 어렵다. 상대방에 나에게, 내가 상대방에게 한 행동 하나 때문에 오해가 쌓이기도 하는 것. 진심을 알리기도 힘들 뿐더러 오해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도 힘든 법. 상대방이 하는 실수는 쉽게 보이고, 내가 하는 실수는 잘 보이지 않아 자기 자신을 잘 모를 때가 많다. 나는 잘하고 있겠지 하는 자만심에 차 있었던 걸까. 사람 관계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내면의 수많은 불안의 세계와 어느 한 순간의 일로 관계의 변화에 대해 말하는 소설을 만났다. 처음 만나는 최정화의 소설집이었다. 열 편의 단편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불안과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아, 단편중에서 가장 놀라운 건 「틀니」라는 소설이었다. 언젠가 시댁에 갔을때 파란색 통에 넣어둔 틀니를 보고 놀랬고, 틀니가 빠진 시아버지를 보고 놀랬던 기억이 있다. 요즘엔 인공치아, 즉 임플란트가 가격이 저렴해져 어르신들이 많이들 하시던데 예전엔 틀니를 많이 하셨다. 노인이 아닌 삼십대가 틀니를 했다면, 틀니를 한 본인은 얼마나 의기소침 해질까. 늘 모든 것에 자신만만했던 남편이었다. 사고로 인해 임플란트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틀니를 했던 것인데, 남편을 편하게 하고자 집에 있을 때는 틀니를 빼라고 했던 아내의 말 한 마디가 잘못이었다. 잘생긴 남편, 모든 일에 완벽한 남편의 틀니를 뺀 모습은 충격이었다. 앞니가 없는 입술이 안에 말려들어갔을 것이다. 보기 흉했을 것이다. 이때 관계의 변화가 온 것이다. 남편에게 그렇게 잘했던 아내는 틀니라는 아킬레스건을 가지고 있는 남편을 무시하게 되었다. 남편에게 함부로 얘기하고 남편과의 시간이 점점 싫어지는 것이다. 고작 틀니라는 것 하나 때문에.

 

  관계의 변화를 불러오는 또하나의 작품은 이 소설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이다. 자신의 방 하나를 작가의 작업실로 내준 여자 주인공 미옥. 글을 쓰느라 방에서 나오지 않던 작가는 오후의 산책을 즐겼을 뿐이다. 방 밖에다 내놓은 파지 속 소설을 읽기 시작한 미옥은 작가와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관계의 변화가 생긴다. 마치 헤어졌다 만난 자매처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미옥을 외면하는 작가때문에 미옥은 고민에 빠졌고, 소설은 완성되어 작가가 떠났다. 아무 말없이 떠난 작가때문에 상처를 받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낸것 같은데 연락이 없어 서운했다. 북콘서트 장에 종이칼을 들고 간 미옥은 과연 작가를 찌를 수 있을까? 아닐수도 있다고 말하는 미옥의 소심한 결정에 우리는 아쉬울 뿐이었다.  

 

 

   구두를 잃어버리는 꿈이 좋지 않다고 한다. 어디 구두 뿐일까. 지갑이든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일은 기분이 나쁘다. 구두는 그 사람의 많은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깨끗하고 반짝이는 구두에서는 그 사람의 깔끔한 성격을 짐작할 수 있고, 닳아진 구두에서는 그 사람의 경제력까지 짐작하게 된다. 허름한 구두를 신고 면접을 보러 온 여자, 아이들과 남편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어느 새 가족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던 몇 달간의 가사도우미로 오게 될 여자를 바라보는  「구두」의 독백. 사람이 이렇게 강박적일 수도 있구나 싶었다. 강박이라는 것이 어떠한 생각이나 감정에 끊임없이 사로잡히는것을 말한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였던 한 여자의 강박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파란 책」에서도 강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인테리어 목적으로 산 하이데거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묻는 책을 공부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였다. 하이데거를 공부하는 모임에 가입하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소를 금할 길이 없었다. 제대로 이해가 되긴 했을까. 생각만 해도 머리아프지 않았을까.

 

  처음 읽게 된 최정화의 소설은 꽤 매력적이었다. 막힘없이 읽혔을 뿐 아니라 느끼는 바도 컸다. 열린 결말로 인해 소설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고, 자꾸 소설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수많은 일들에 부딪히며 살아간다. 열 편의 소설 속에서 나오는 상황들에 처해지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까.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도 마찬가지. 어느 한가지에 꽂히면 그 곳에서 헤어나오기 힘든 법이다. 불안하게 느껴지는 감정들이 어느새 강박에 까지 이르게 되는 것들을 우리 또한 한두 번쯤 겪어보지 않았던가. 나는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소설집으로 인해 최정화라는 작가를 알 수 있어 좋다. 아마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궁금함에 늘 읽게 되지 않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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