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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도요타인가 - 위기의 한국기업에 해법 내미는 도요타 제2창업 스토리
최원석 지음 / 더퀘스트 / 2016년 10월
평점 :
차에 별로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렉서스 차량 탑승 일가족 사망 사건을 접해봤을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차량 속도가 줄어들지 않았고 당시 운전자와 911과의 긴박한 통화 내용이 그대로 기록되어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도요타는 차량 결함 가능성을 부정하고 사고를 운전자 책임으로 돌렸다. "매트가 액셀과 바닥 사이에 끼어서"라는 식의 설명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비슷한 사고는 계속 발생하여 2,000건에 이르고 사망자만 20여 명이었다. 추후 사고의 원인이 전자제어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밝혀졌고 도요타는 소비자를 기만했다는 이유로 12억 달러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리콜 규모는 사상 최대인 1,000만 대였다. 품질과 신뢰보단 원가절감에 집중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였다. 차량 기능의 진화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개발·생산 프로세스의 복잡성 문제 때문이기도 했다. 창업가 3세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2010년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사과 발언을 하며 울먹거렸다.
이랬던 도요타가 절치부심하고 2015년 기준 세계 자동차 판매 순위 1위를 기록했다. 판매 대수로는 1,015만 대, 연간 매출은 한화로 약 310조 원, 연간 영업이익은 31조 원이었다. '세계 자동차 역사에서도 한 회사가 연간 영업이익 30조 원대를 넘어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7)' 도요타는 리콜 사태 이후 불과 1년 만에 흑자 전화에 성공했다. 2000년대 후반의 리먼 쇼크, 초엔고 상황에서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을까? 그것의 이유로는 반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생산설비를 줄인 것이 지목된다. 부품 조달과 공장 가동에서 비용 절감을 했고 (9,900억 엔), 중국과 아시아 시장에서 선전한 것이 흑자 전환에 큰 역할을 했다. 저자는 리콜 사태로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기업의 근본 체질이나 경영 시스템 그리고 제품의 품질과 성능이 큰 손상을 입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개발 과정의 의사소통 부족, 결함 발생 이후 초기 대응 실패, 본사·현장의 통합 위기 대책 부재 등이 종합적으로 맞물려 문제가 커졌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도요타가 수리한 것은 결함이라는 '하드웨어' 문제만이 아니라 내재적 원인, 즉 '소프트웨어' 문제였다. 도요타는 본사와 부품 제조사, 일본과 해외 조직 사이의 책임과 권한을 분명히 하는 한편 문제 상황에서의 빠른 대응을 위해 각 해외 본부에 자율성을 준 것이다. '중요 사안에 대해서는 해외 본부가 일본 본사에 실시간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본사 역시 최대한 빨리 그에 대한 판단을 내려주는 쪽으로 시스템을 뜯어고쳤다(25)'
2011년엔 동일본 대지진으로 2011년 2월에 가동한 미야기 현 신新공장이 궤멸적 피해를 입었다. "아키오 사장은 고위 간부들에게 '현장 직원들한테 보고서 올리라고 하지 말고, 직접 가서 듣고 바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27)' 2009년 1,000만 대 리콜 때 겪었던 현장과 본사의 커뮤니케이션 실패, 관료주의적 보고서 문화에 대한 처절한 반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지시였다. 도요타는 석 달 만에 지진 피해를 모두 복구하고 전 생산시설을 정상화했다. 이후 도요타는 부품 조달 시스템의 문제를 깨닫고 부품 공장 전체를 대상으로 대재난 발생 시의 비상 복구체제를 재정비했다. 2016년 4월, 규슈 구마모토의 지진은 도요타 후쿠오카 공장을 정지시키고, 구마모토의 부품회사 공장을 부쉈다. 이 때문에 일본 내 16개 공장 가운데 15곳의 가동이 중단됐는데 도요타는 2011년 이후 지진 피해 공장의 복구에 대한 준비와 훈련이 돼 있었다. 2016년의 지진 때 도요타는 2주 만에 전 공장을 재가동했다.
지금까지는 도요타의 위기 극복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도요타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조직 대개편에 착수한다. 기능 중심에서 제품 중심의 조직으로 회사를 7개로 분리한 것이다. 일명 '컴퍼니'제인데 차종별로는 소형차/ 중·대형차/상용차/고급차(렉서스) 4개 차량 컴퍼니를 만들었고 개발 분야별로는 선진기술개발/파워트레인/커넥티드 부분의 3개 개발 컴퍼니를 만들었다. 이런 컴퍼니제가 무조건 효율적이진 않다. 소니도 컴퍼니제를 택했지만 컴퍼니 간의 중복 투자나 출혈 경쟁으로 실패를 겪었다. 그러나 도요타는 이를 철저히 연구하고 이미 컴퍼니제를 시행 중인 한국의 전자 업계를 벤치마킹한다. 컴퍼니제의 우려되는 단점에도 그것을 단행한 것은 '도요타의 대기업병을 치유하는 효과가 컴퍼니제 도입에 따른 위험 부담보다 훨씬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독립채산제의 장점은 명확한 책임소재와 그에 따른 빠른 실행이다. 이는 어떤 일을 내 일이라고 여겼을 때 인간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즉, 이 일은 내가 해야만 한다, 내가 책임을 지고 그 결과에 대한 보상을 직접적으로 받는다는 의식이 있을 때 인간은 스스로 움직이게 된다. (301)' 조직이 너무 비대해지면 내부 조율에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참신한 아이디어나 성장 동력을 찾기는 어려워진다. 컴퍼니제는 이런 규모의 불경제와 복잡성의 폭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도요타의 처방이다.
도요타의 개혁은 컴퍼니제 말고도 TGNA(Toyota New Global Architecture)라고 불리는 일종의 레고블록식 차량 생산 설계로도 나타난다. 도요타는 폭스바겐의 MQB(Modularer Querbaukasten) 기본 개념을 일부 가져왔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런 레고블록형 설계 전략은 그만큼 혁신적이기 때문이다. 레고블록이 있으면 온갖 형태를 쉽게 만들어낼 수 있듯이 수십 가지의 부품군을 레고블록 쌓듯 조립하여 새로운 차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레고블록형 설계 전략은 대폭적인 개발비·부품비를 낮추고, 특히 자동차 무게를 크게 줄이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책의 마지막 챕터 제목은 <개인을 탓하기 전에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라>이다. 뻔한 말로 동기부여만 외치지 말고 실제로 직원 개인이 동기를 가질 수 있는 조직 구조를 만들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주도권을 스스로 갖고, 그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지는 직원을 늘리는 것이다. 신체제 개편을 통해 도요타는 7개의 컴퍼니로 헤쳐 모이게 됐고 각각의 컴퍼니 사장이 각 회사의 모든 업무를 스스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업무를 스스로 주도할 수 있는 직원들이 훨씬 늘어났다.
"왜 다시 도요타인가"란 질문의 답은 결국 끊임없는 자기혁신으로 요약된다. 조직이 거대해질수록 업무 프로세스 속도의 지연과 비효율이 증가하고, 책임 회피를 우선으로 하는 일처리가 만연하게 된다. 조직원은 조직의 정체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내가 60만 명이 일하는 조직에 있다 보니 뼈저리게 느낀다 (ㅎㅎ). 어쨌든 책의 주장이 "기-승-전-컴퍼니제 짱짱"으로 읽힐 만큼 저자는 컴퍼니제의 예상되는 장점을 설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더불어 비교할 수밖에 없게 되는 현대 자동차의 기업 구조 문제에 대해서 틈틈이 말한다. 컴퍼니제가 정말로 최고의 전략이라 10년 후 도요타 자동차가 더 좋은 실적을 누릴지는 두고 봐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책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예상이라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품질 향상에 힘쓴다고 외치고 실제론 건물 부지 매매에 10조 원을 쓰는 것으로 정체성을 보여주는 회사의 앞날이 그리 밝지 않다고 예상하는 건 너무 쉬운 일이다. 현대차의 내수 점유율은 계속 내려가는 중이다. 현대차도 위기 의식을 가지고 있을 텐데 어떻게 자기혁신을 할까. 궁금하다.
재밌게 읽었다. 도요타뿐만 아니라 여러 기업의 성공과 실패 사례가 흥미로웠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 심사가 진행되는 중이다. 노조가 없어도, 갤럭시 노트가 터져나가도 삼성전자는 여전히 아주 잘 나간다. 신기한 기업이다. 기술과 경제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나로선 오너의 비도덕 때문에 기업이 최대 이윤을 누리는 것인지, 오너의 비도덕이 없었을 때 기업이 더 큰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도요타만큼이나 신기한 삼성도 누가 객관적으로 분석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도요타는 지금의 젊은 직원들이 초창기 직원들의 마음가짐을 갖도록 만들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 초창기 도요타 직원들이 느꼈을 그 절박함을 지금의 직원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신체제에서는 7개의 컴퍼니마다 각각 실무를 책임지는 직원들이 필요하다. 이들은 사내에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자동차업체에서 같은 일을 하는 이들과 경쟁해야 한다. 초창기 멤버들처럼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며 과정을 이끌어가야 하는 직원이 늘어나는 것이다. 도요타가 회사를 7개의 컴퍼니로 쪼갠 것은 도요타가 아주 작았을 때, 뭔가 결핍이 있었을 때 이를 채워나가기 위해 조직원들이 최선을 다해 일하던 그때의 분위기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도 있다. 도요타가 시행하게 된 컴퍼니제, 즉 독립채산제의 장점은 명확한 책임소재와 그에 따른 빠른 실행이다. 이는 어떤 일을 내 일이라고 여겼을 때 인간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즉, 이 일은 내가 해야만 한다, 내가 책임을 지고 그 결과에 대한 보상을 직접적으로 받는다는 의식이 있을 때 인간은 스스로 움직이게 된다. 30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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