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아닌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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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지나가는 짧은 순간 방관자가 되기도 한다. 언젠가 차 타고 영등포 시장 사거리를 지나갈 때 중년 여성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휘청거리는 걸 봤다. 청바지엔 피가 굳은 것으로 보이는 얼룩이 있었다. 으레 그렇듯 그 동네에 많은 취한 여성일 거라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녹색 신호가 켜져서 차를 움직였다. 그 뒤로 그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래도 일어나 걸었으니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만약 내가 차 안이 아니라 그의 곁이었다면 도와줬을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가 다시 쓰러졌다면 그땐 지나가는 사람 누군가가 도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끔은 생각한다. 그때 119에 전화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었느냐고. 찝찝한 기억이다. 다행인 건 같은 공간에 있던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가 잘못되었어도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이 내 윤리적 책임과 죄책감을 분산시켜줄 것이니까. 고백하자면 이 기억도 소설을 읽고서 오랜만에 떠올렸다. 무엇이든 합리화하며 살기는 참 쉽다고 생각한다.

 

어쩌라고요,라고 <양의 미래>의 화자는 생각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라진 소녀의 마지막 모습을 목격한 사람이 되어버리고, 납치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그걸 방관한 비정한 목격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발화로 옮겨지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이 뚜렷하지 않은 억울함보다 딸을 잃은 아주머니의 슬픔이 크기 때문이다.

 

한편 <누가>의 화자는 '그게 내 탓인가'라고 생각한다. 정당하게 세를 내고 들어간 집이지만 자신 때문에 노인이 더 좋지 않은 곳으로 쫓겨났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맞다. 화자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노인이 조금 더 가난했을 뿐이다.

 

조금 더 직접적인 죄책감에 시달리는 <웃는 남자>의 화자는 '내 잘못이 무엇인가'라고 생각한다. 그는 폭염에 쓰러지는 노인을 한 발 차이로 피하고 마침 오는 버스를 탄다. 어느 날 버스 사고 순간엔 무의식적으로 애인의 몸이 아닌 가방을 잡는다.

 

우리는 많은 순간 윤리와 비윤리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놓인다. 우리가 놓이지 않는다면 남들이 그 자리에 놓인 것을 본다. 그 순간 우리는 경계선에 선 나/너를 탓해야 하는가? "몸에 와 닿는 최악은 대부분 우리끼리, 에서 비롯(196)"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의 잘못인 것이다. 한편으론 "상류엔 맹금류"가 있으며 그거 다 "짐승들 똥물이라고(86)" 말할 수도 있다. 우리의 잘못이 아닌 것이다. 무엇이 옳을까? 이 소설의 입장은 후자에 가깝다. 자식의 죽음 같은 불행엔 이유가 없고, 상류의 똥물과 위층의 쿵쿵 찧는 소리는 피할 수 없다. "모두를 당혹스럽고 서글프게 만든 것은 내가 아니(88)"다. 단지 그날의 태양이 너무 뜨거웠고 모두 각자의 이유로 지쳐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라진 소녀를 끝까지 잊지 못하고, 할 말이 많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한 채 살고, 어두운 방에서 홀로 생쌀을 씹는다. 스스로를 처벌하는 것에 가깝다. 이 자학으로 일련의 윤리가 완성된다. 적어도 소설 내적으로는 그들의 애매한 죄와 죄의식은 해결된다. 독자는 그들을 탓할 수 없다.

 

그러니까, 결국 소설가는 하류의 고통과 자학을 보여주며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런 식의 생각이 약간은 비겁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소설에서 문제없이 작동하는 윤리관을 소설 밖으로 꺼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맹금류는 상류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특히, 소설 읽으며 자신의 애매한 비윤리를 쉽게 넘겨버리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단, 이렇게는 생각한다. 세상엔 사는 사람이 있고 살아내는 사람이 있다고. 살아내는 일은 경계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들 것이다. 이 이야기들은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는 사는 사람이다. 사는 사람의 논리로만 책을 읽을 수는 없다.

아무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냥 하던 대로 했겠지. 말하자면 패턴 같은 것이겠지. 결정적일 때 한 발 비켜서는 인간은 그다음 순간에도 비켜서고...... 가방을 움켜쥐는 인간은 가방을 움켜쥔다. 그것 같은 게 아니었을까. 결정적으로 그, 라는 인간이 되는 것. 땋던 방식대로 땋기. 늘 하던 가락대로 땋는 것. 누구에게나 자기 몫의 피륙이 있고 그것의 무늬는 대개 이런 꼴로 짜이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직조해내는 패턴의 연속, 연속, 연속. 1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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