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세 미키오의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를 봤다. 긴자의 바에서 호스테스들의 마마로 살아가는 게이코의 겨울 이야기이다. 호스테스들의 치열한 경쟁과 화려하지만 고독한 삶, 그리고 그 사이에서 빛을 발하는 게이코의 위엄 있는 매력을 볼 수 있다. 그런 게이코에게도 남몰래 싫어하는 것이 있다는 게이코의 독백은 게이코의 매력을 깨뜨리기는커녕 한없이 진솔하게 느껴지게 한다.
게이코는 남편과의 사별 뒤 집안의 모든 돈 문제를 떠맡았다. 큰 돈을 벌기 위해서 호스테스로서의 삶을 시작한 그는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매력'으로 마담의 자리까지 올라섰다. 그런 그가 역시 싫어하는 건 계단, 갈등과 상념을 오르내리게 하는 여백이다. 싫어하는 순간은 바를 향해서 계단을 오를 때이다. 바에 이르면 모든 고민을 떨쳐낼 수 있다고 하지만 그러기까지, 아무렇지 않게 손님을 환대해야 하는 모습으로 바뀌기까지의 그 찰나가 그는 무엇보다 싫은 것이다. 그런 갈등은 그가 현실에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고, 그 혼란을 즐길 수 없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어쩌면 그가 종종 듣곤 하는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매력'이란 그 스스로가 자신을 그곳과 어울리지 않는 존재로 느끼기 때문에 부각되는 것일 수도 있다. 겨울 동안의 병가, 사랑하는 사람과 통하자마자 찾아온 이별로 인해 그는 다시 자신의 매력을 그곳과 잘 어우러지는 것으로 만들 힘을 낸다.
짧은 숏들을 하나의 기다란 숏처럼 보이게 하는 나루세 미키오의 편집 기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표정에 표정이 눈처럼 쌓인다. 이 작품은 그 자체로 혹독하고 찬란한 눈과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게이코의 매력도 그렇고, 촬영 기술 또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