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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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다만 순수한 너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내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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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역사 분야에서 개인적인 관심을 끌었던
2011년 첫 태어난 1월의 책들.
폭력에 대한 6가지 삐딱한 성찰
폭력이란 무엇인가
슬라보예 지젝 (지은이) | 이현우/정일권/김희진(옮긴이) | 난장이
섬세하고 정교한 느낌의,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문화) 철학책.
폭력이라는 주제, 지젝이라는 이름, 철학이라는 분야에 의해 무거운 부담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책을 펴보니 그야말로 '지적 호기심'이 몽글몽글 솟구친다.
물론, 언제봐도 생소한 '철학적 개념'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장면, 유명 인물의 인용구 등 다양한 시각적 자료와 깔끔한 편집 레이아웃, 정말이지 독특한 유머(?)를 구사하는 지젝의 설명 때문에 그런 개념들이 '못 넘을 산'이 아니라 '한번 올라가보고 싶은 언덕'쯤으로 느껴지게 한다. 번역자(로쟈 및 2인)와 출판사의 은근한 세심함이 전해지는, 생각보다 '덜 무거운' 책.
철학적 사고로 배우는 과학의 원리
야무챠 (지은이) | 김은진 (옮긴이) | 곽영직 (감수) | Gbrain(작은책방)
청소년 책처럼 만만하게 느껴지면서 그 안에 핵심적인 양자역학 + 뇌과학 이론을 골고루 다뤄준다면?
보통 판형보다 조금 작고, 표지나 책의 편집이 넉넉하고 여유롭게 느껴지는 책이다.
알라딘에서 '청소년 수학/과학' 카테고리로도 분류해놓은 것은, 얼핏 보면 청소년용 책처럼 쉽게 쓰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상은?
불완전성 정리, 양자역학, 상대성이론, 카오스이론, 엔트로피, 다차원, 인공지능, 퀄리아, 자유의지, 뇌 분할 문제 등등... 그야말로 현대 물리학과 뇌과학의 핵심 개념들을 논리와 철학을 통해 어렵지 않게 풀어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철학책'이라 지칭하면서 어려운 '지식'보다는 질문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유도하고 있다.
주제나 형식 모두 잔뜩 힘주며 멋부리기 쉬울텐데, 이토록 만만하고 재미있게 접근하고 있으니 이런게 바로 '대중적인' 인문 + 과학 크로스오버 교양서가 아닐런지.
인간의 외모를 바라보는 방식을 리디자인하다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
데버러 로우드 (지은이) | 권기대 (옮긴이) | 베가북스
"그래, '외모지상주의'는 나쁜 거야" 정도로 이 책의 내용을 단순하게 생각하며 지나치려다, "현대인이 외모에 집착하기 때문에 생긴 한 가지 부작용이 바로 경제적 불평등의 악화다" 라는 마이클 샌델의 발언에서 '이렇게 깊은 뜻이?'라고 잠시 당황하는 이 마음...
생각하면 '외모'야말로 누구나 직접 경험하는 '정치적'인 현상 아니었던가. (도대체 정치적이지 않은건 뭐란 말인가 ㅠ.ㅠ) 킬힐을 즐겨신는 여성이 부담하는 '기회비용'이 척추 장애를 비롯한 건강상의 문제 뿐만 아니라 '택시비까지 포함한다는 흥미로운 발견에서부터 외모지상주의의 심각한 폐단, 이유, 대책을 심도깊게 고찰하고 있다.
어느새 '당연한 것'으로 남녀 모두에게 세뇌되어버린 '외모'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가치. 당당히 '미국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은 저자의 해결책이 단순히 "외모지상주의는 나빠요~" 정도는 아닐 터이고.
한국사회, <정의란 무엇인가>에 답하다
무엇이 정의인가?
박홍규/서동진/장정일/이권우/김도균/이양수/최원/노정태/이현우/이택광/박가분 (지은이) | 마티
농담삼아 말했더니, 정말 그런 책이 나오고야 말았다.
단행본 <'정의란 무엇인가'는 무엇인가>라는 책도 낼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답하듯, 누군가 진지하게 자료를 구해서 책을 낸 것이다. 마이클 샌델이 2010년에 한국에서 불러일으킨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들, 책의 실제 내용과 무관한 사회/문화적 신드롬들,
한국 사회에서 진짜 다루어야할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물론, 나름의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는 개똥철학들까지 포함하면 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지경)
'『정의란 무엇인가』에 반대한다'는 소설가 장정일씨의 글처럼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다른 경로를 통해 접해보았을 글들도 등장한다. 이들과는 별개로 '한국적 정의'를 고민해본 20대 청년의
<스무 살, 정의를 말하다 - 우리 사회 위선을 찢어발기는 10개의 인문학 프레임>도 더불어 흥미를 끌더라... 2010년 마이클 샌델 열풍을 차분히 돌아보면서, 혼자만의 이해나 개똥철학을 넘어
(그 책 읽었다는 사람이 아직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나 '다수결 주의'를 "정의"나 "민주주의"라고 오해하고 있다면 뭥미^ ㅡ_ㅡ;) 진정으로 한국 사회에 필요한 '정의'의 의미를 다각도로 되새길 수 있는 시간들.
자연의 패턴 속으로 떠나는 여행
대칭
마커스 드 사토이 (지은이) | 안기연 (옮긴이) | 승산
책의 제목인
'대칭(對稱, symmetry)'은 여러 학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개념이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 처럼 얼핏 간단해보이는 '대칭'은 곧이어 평행, 치환, 군(群), 차원, 기하학, 원자 대칭군, (초)끈이론, 의식의 본질, 생명체, 아름다움, 문화적 특성 등
수학과 물리학, 생물학, 뇌과학, 심리학 등에서 만물/세계/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골고루 사용되는 심오한 특성이다. (물론 이때의 '대칭'은 거울에 비친 '거울대칭'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체로 수학의 영역에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사용된 '대칭' 개념은 인간 및 생물이 세계를 '
인식하는 방식'과 생명체가 살아있도록 하는 '
생명활동' 그 자체에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현대 일본의 주요 사상가 중 한 사람인 '
나카자와 신이치'의 경우 인류의 원형적 무의식을 탐구하는데에도 활용 하였으니, 자연과학 계열뿐 아니라 인문학에서도 본질을 파고드는 '공부' 좀 하겠다면(?)
언젠가는 접하게 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목차와 소개는 흥미롭지만(응?), 펼쳐보면 솔직히 쉽지않은 난이도를 자랑한다...;;
<몬스터 대칭군을 찾아서>나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를 흥미롭게 읽었다면 도전해볼만한 순수한 지적 모험.
§ 그 외에도...
중국 고지도의 경이로운 이야기와 세계사의 재발견
고지도의 비밀
류강 (지은이) | 이재훈 (옮긴이) | 정인철 (감수) | 글항아리
두툼한 겉표지에 '1418'이라는 숫자가 세로로 반들반들한 양각 인쇄 후 코팅이 되어있다.
콜롬버스 이전에 현대 지도와 거의 형태가 유사한 세계 최초의 중국산 세계지도가 만들어졌다는 년도이다.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약 100년 전에 이미 중국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구석구석을 탐사해 지도를 만들었고, 호주와 아프리카, 심지어 남극대륙의 얼음 밑에 묻힌 해안선까지 묘사했다는 얘기다. (Wow~ 이걸 순순히 믿으라고? -_-;)
당장 '피리 레이스 제독의 세계지도'가 떠오르는 상황인데(남극 대륙이 얼음으로 덮이기 이전의! 해안선이 그려져 있는 원본 불명의 세계지도. <신의 지문> 등에서 외계 문명 또는 초고대 문명의 증거로 자주 언급됨), 놀랍게도 이 책의 중국인 저자는 "피리 레이스 제독의 그 지도도 중국꺼 보고 베낀거야"라고 간단히 선빵을 날려버린다. (옴마야~ ㅠ.ㅠ)
>> 접힌 부분 펼치기 >>
책 앞쪽엔 책 크기의 6배쯤 되는 문제의 이 지도가 올컬러 부록으로 접혀서 들어있다. (서비스 훌륭하시다)
전 세계의 유서깊은 '고지도'를 올컬러 사진과 함께 제공하면서 '세계 지도의 역사'와 중국의 고대 기술,
중국의 전통사상을 연결하여 설명하는 내용은 '천하제번식공도'의 진위 여부를 떠나 솔직히 흥미진진하다.
아메리카 대륙, 호주, 아프리카, 유럽, 알래스카 등 그 'Made in China 지도'의 곳곳에는
해당 지역의 인종과 특색에 대한 설명도 말풍선처럼 붙여져 있다. 무엇보다, '지도투영법'이 한눈에도
현대의 것과 매우 유사하다 (깊어가는 의혹)..'중국 전통의 지도 투영법은 기원전 1세기에 시작했다'는 설명과 함께
그 증거로 기원전에 이미 현대와 유사한 지도 투영법을 구상할 수 있었던 수학적 지식의 존재를 제시한다.
명나라때의 '정화의 대원정(세계일주)'은 당연히 거론되고, 고대 중국 무덤의 벽화에 얼룩처럼 남아있는 고지도,
별자리의 원색 사진도 증거로 제시된다. 그런데, '천하제번식공도'나 '천하전여총도'의 지도 제작자의 정체라든지
이 지도 자체의 위조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리 구체적이고 면밀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누구, 보신분?)
"아놔... 이건 조작입니다!" 라는 말이 처음부터 목구멍에서 간질간질 하지만, 뚜렷한 위조 증거보다는
고대 중국의 막강한 기술 수준과 어디서도 보기 힘든 화려한 원색 도판들이 보는 이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그 지도의 위조 여부를 떠나, 이 책은 일단 "고지도에 관한 괜찮은 참고자료"의 위치를 선점해버린 것이다.
볼거리도 많고, 새롭게 알게 되는 것도 많으면서 '이거 위조 아닌가?'라는 의심 속에 범죄 추리를 위해(!)
두 눈에 불을 켜고 들여다보게 하는 '근사한 책'을 만들어 내었다는 점에서 과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ㅠ.ㅠ;)
동북공정을 가볍게 넘어 새로운 '화이질서(華夷秩序)'를 만들기 위한 전략적 포석일까?
중국인 저자가 원래는 지도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였다는 점까지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우리에게도, 중국 대륙은 원래 '동이족'의 땅이며 우리 선조는 바이칼 호수 근처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부터,
고대 천문관측 기록에 의해 신라-백제도 중국대륙에 위치하고 있었다느니 (아닌 것으로 거의 밝혀졌다),
공자도 동이족, 석가모니도 동이족, 알고보면 그리스 문명과 히타이트 문명, 수메르 문명도 우리 조상,
구약성경 12지파의 사라진 '단' 지파도 우리 민족, 아메리카 인디언과 베트남 민족도 이주한 우리 민족,
중국의 전설적 '황제'나 '치우천황'도 동이족, '노자'도 동이족, 석가모니 이전의 전세 7불도 동이족 등등
(이 중에는 단재 신채호 선생이 진지하게 연구했던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동북공정' 저리가라 컴비네이션 필살기로 귀싸대기를 후려갈기는 이야기들이
"한민족의 숨겨진 위대한 역사"란 이름으로 한 가득 어딘가의 X-file에 대기중이다.
이 중에서 '한자도 동이족이 만들었다'는 비교적 사소한(?) 이야기를 한국에 와서 전해들은 대륙의 유학생들이
중국으로 돌아가거나 인터넷에 글을 올려 한국 혐오 여론이 일어나기도 했다는 소문은 한번쯤 들어봤을 터.
'숨겨진 위대한 역사'의 일부는 정말로 '역사적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그 '역사'를
객관적 '사실'로 검증받으려면 그 사람/그 단체는 남들로부터 엄청난 압력과 의혹의 시선을 받게 되겠지.
그때에 이 책 만큼이나 '위조 여부마저 잠시 잊어버리게 만드는' 흥미로운 증거자료를 제시할 수 있을까?
(아 놔, 이 책이 왜 이제서야 눈에 들어온거야? 신간평가단 Top 5에 충분히 들어갈만한 책인데...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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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부쩍 늘어난 "Made in China 번역서"들을, 흥미롭지만 복잡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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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동안 눈에 띌 때마다 리스트에 담아놓고, 날 잡아 서점에 들러 확인해보는 책의 실상(?)은
온라인에서 은근히 상상하던 것과는 다른 경우가 많더라.
☞ 나머지 책 수다는 이어지는 페이퍼에서...
책들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
별똥별처럼 반짝 빛나다 사라지는 책, 보름달처럼 늘 새롭고 변화무쌍한 책이 있으며,
1년만 지나도 무게로 달아 취급되는 책, 절판 후 프리미엄이 붙어 전설로 남게 되는 책들도 있다.
진열용/과시용/신도용(?)으로 낙인이 찍혀 '책'이 아닌 다른 용도로 적절히 활용도 되고,
배다른 형제 티슈의 운명을 따라 일회용으로 소모된 채 시간 속에서 그냥 때워져 버리기도 한다.
이조차도 누려보지 못하고 다른 책들의 이름없는 배경이 되어주다가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그 옛날 까마득한 나무의 꿈을 되꾸며 아무도 모르게 잠들어 있는 경우까지도.
2011년이라는 글자를 달고 세상에 태어난 1월의 책들.
'년/월/일/시'라는 사람의 사주(四柱: 네 개의 기둥)처럼
내용과 저자, 출판사와 홍보 마케팅의 4가지 요소에 의해 태생부터 방향과 한계가 설정된
책들의 운명... 1년 후, 10년 후, 과연 어떤 책으로 어디에 남아 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