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 문학동네시인선 100 기념 티저 시집 문학동네 시인선 100
황유원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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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1970년대부터 고독사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전담부서를 두고 정부와 지자체가 협력하여 무연사(고독사의 한 종류로 시신을 인수할 사람조차 없는 죽음) 방지정책을 펼치고 있다. 또한 영국에서는 2018년 1월부터 체육시민사회부 장관이 '외로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를 겸하고 있다.



고독사와 외로움이 부재와 결핍의 문제라면 시인들은 이 고독과 외로움을 자양분으로 시를 쓴다. 바꿔 말하면 시인들은 고독과 외로움을 기다리는 '기다림' 장관이다. '기다림'은 부재와 결핍의 기다림이다. 내면을 고독과 외로움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 책을 읽고, 여행을 가고, 사람을 만난다.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바라보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고비용 저효율의 작업만을 골라 수행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나도 기다린다. 직업인으로서, 가장으로서, 자식으로서, 친구로서 나아가 이 이 우주를 이루는 작은 사물로서의 존재를 잊고 나의 존재 자체가 아름다움이 되는 순간을 기다린다. 그 순간 한 줄 쓸 수 있다. 그 한 줄이 그리움으로, 기쁨으로, 슬픔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장되는 순간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매번 실패할 수록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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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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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선생이 지난 8월 8일 오전 4시 20분에 돌아가셨다. 몽골인들에게

비는 오는 것이 아니라 '들어가는 것' 즉, 하늘에서 내려와 공중의 문을

열고 땅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선생은 19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나

2018년 한여름에 들어가셨다.



낭독회에서 선생을 본 적이 있다. 기억으로는 김혜순 시인의 시집

"피어라 돼지"의 낭독회였는데, 시인을 이 시대의 '명랑한 무당'으로 칭하면서

낮게 그리고 더 없이 강단있는 말투로 높게 말씀하셨다.



어린왕자, 아폴리네르를 알게 해주셨다.



황동규의 시 '즐거운 편지'처럼 선생의 부탁은 '사소한' 일이 아니다.

그 사소함은 쏟아지는 햇빛처럼 흘러가는 강물처럼

바라보고 듣고 만져볼수록 무한정 불어나는 시대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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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창비시선 421
임경섭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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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죄책감"이 내 안의 길을 찾는 여정이었다면, 두 번째 시집은 내면의 길을 돌아나와 외부에서 다른 길을 찾는 과정이다. 총 5부로 구성된 시집의, 각 부의 표제 문장을 나침반으로 이 시집을 읽는다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아내는 나에게 얘기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아내는 얘기하고 있었다"(1부), "어머니가 죽으니 양복이 생겨서 그는 좋았다"(2부) 같은 문장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런데 이상한 것은 수많은 외국 지명과 인명이 난무하는 이 시집이 전혀 이국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국적인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자의 춤사위가 우리나라의 탈춤을 닮았다면 우리는 그 춤을 이국적이라 부르지 않는다. 가명과 필명, 예명으로도 가릴 수 없는 '나'의 필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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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트 키즈 -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 젊은 날의 자화상
패티 스미스 지음, 박소울 옮김 / 아트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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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중후반의 입구와 1970년대를 출구로 한 긴 터널을 지나는 기분을 느꼈다. 아마도 저자의 꾸준히 써둔 일기 덕분으로 짐작되는데, 생생한 묘사와 시적인 문장 그리고 음악이 흐르는 터널. 대개 터널 속은 공기가 나빠 창문을 올려 잠근다. 하지만 이 터널은 창문을 끝까지 내리고 바깥으로 팔을 내밀고 바람을 느끼고 싶다.



뉴욕의 첼시 호텔, 맥스 캔자스 시티 클럽과 그 속의 예술가들(지미 핸드릭스, 밥 딜런, 재니스 조플린)을 마주치고 얘기를 나누는 장면을 읽을 때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패티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랑과 우정, 예술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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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메고 다니는 백팩 속에는 항상 시집과 우산이 들어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삼단으로 접힌 우산은 태아처럼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다. 태아는 태어나는 순간 세상의 밝은 빛에 울음을 터트리지만, 내 우산은 빛이 그치고 비가 내리는 순간 기지개를 켠다.


  어둠의 바깥은 또 다른 어둠이라고 생각했다. 슬픔의 바깥이 슬픔이듯.


  가방을 매고 걸을 때마다 또각또각 구두소리가 났다. 우산이 내는 울음소리다. 내가 길에 남기지 못한 발자국을 우산은 나대신 남긴다. 밤에는 그 소리가 무서워 애써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곤 했다. 전철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참 길었다. 


  우산이 펼쳐놓는 어둠의 오 분. 나에게는 그 시간이 "슬픔이 없는 십오 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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