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25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김한민 옮김, 심보선 추천 / 민음사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사변으로부터의 자유를! 형이상학은 불쾌한 기분의 자각!

어린 소녀야, 초콜릿을 먹어,

어서 초콜릿을 먹어!

봐, 세상에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모든 종교들은 제과점보다도 가르쳐 주는 게 없단다.

먹어, 지저분한 어린애야, 어서 먹어!

나도 네가 먹는 것처럼 그렇게 진심으로 초콜릿을 먹을 수 있다면!

─ 알바루 드 캄푸스, 「담배 가게」 51쪽

    '형이상학(metaphysics)'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용어로 사물의 본질, 존재의 근본 원리를 사유나 직관에 의하여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시인 알바루 드 캄푸스는 왜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다고 한 것일까요?

    페르난두 페소아, 그 안에는 서로 다른 모습의 페소아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는 여러 개의 이명(異名, 다른 이름)을 만들어서 작품활동을 했는데, 그가 만든 이명들은 단순한 가명이나 필명의 차원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명을 만들고, 각 이명들마다 나름의 직업과 캐릭터, 상황까지 설정해뒀습니다. 이명들마다 문체나 추구하는 주제도 당연히 달랐습니다.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는 페소아가 가장 사랑했던 이명, 알바루 드 캄푸스의 이름으로 발표한 시들을 엮은 것입니다. 페소아보다 3년 늦게 태어난 캄푸스는 글래스고에서 교육받은 선박 엔지니어로 기술 전성시대를 시로 표현한 모더니스트였으며, 이명들 중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 시인이었습니다. 그는 페소아가 죽기 한달 전까지도 시를 썼습니다.

그의 시에는 시끄러운 소음과 기계들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어들과 다른, 동력전달장치, 프로펠러, 밸브, 콘크리트와 같은 단어들과 기계음들이 시를 채우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것들도 그들만의 시가 있다고 말합니다.

아무것도 시를 잃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는 기계들까지

그들만의 시가 있다, 거기다 전혀 새로운 삶의 방식

상업적이고, 세속적이고, 지적이고, 감상적인 삶은,

기계의 시대가 우리 영혼에 가져온 것들.

─ 알바루 드 캄푸스, 「해상 송시」 215쪽

    "페소아의 미친 쌍둥이 형제"라고도 불렸던 캄푸스, 그의 시 속에서도 페소아가 느꼈던 불안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역시 페소아처럼, 존재에 대해, 특히 '나'라는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졌습니다. 실재하는 '존재'가 아닌 페소아가 가상으로 만들어낸 '존재'였기 때문에 페소아보다 더 의문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린 누구나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도 찾기 힘듭니다.

이 깊은 불안, 다른 것들을 향한 욕구,

나라들도 아니고, 순간들도 아니고, 인생들도 아닌,

어쩌면 영혼의 다른 상태들을 갈구하는 이 욕망이

느리고 먼 이 순간을 안에서부터 촉촉이 적셔 온다!

─ 알바루 드 캄푸스, 「송시에서 발췌한 두 편」 121쪽

내가 누구길래 울고, 너에게 질문을 던지나?

내가 누구라고 너에게 말을 걸고 너를 사랑하나?

내가 누구라고 너를 보는 것만으로 심란해지나?

─ 알바루 드 캄푸스, 「해상 송시」 229쪽

    불안하고, 의문투성이인 우리는 철학(생각)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페소아는 우리가 무언가를 할 때 방해하는 것도 바로 이런 우리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어린 소녀는, 초콜릿을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달콤한 초콜릿 맛만 생각할 뿐이죠. 모든 이명의 스승으로 여겨지는 알베르투 카에이루 또한,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그대로 느껴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캄푸스 또한 자신의 스승을 이렇게 원망하고 있습니다. "어쩌자고 맑게 보기를 가르쳤단 말이가, 맑게 볼 영혼을 가지는 법을 가르쳐 주지 못하면서?"(「스승, 나의 사랑하는 스승이여!」 67쪽)

    우리도 어린 소녀처럼, 달콤한 초콜릿을 진심으로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걸 쓸 생각에 잠기며

그 담배에서 모든 사상들의 자유를 맛본다.

나름의 길이라도 되듯 연기를 따라가 보며,

나는 만끽한다, 예민하고 적절한 어느 순간에,

모든 사변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리고 형이상학이 불쾌한 기분의 결과라는 자각.

─ 알바루 드 캄푸스, 「담배 가게」 59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9-01-04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저하고 시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게다가 외국 시인의 시라면 더더욱.

근데 많은 분들이 페소아의 시가 좋
다고 하니 한 번 시도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