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이야기다. 대학교 입학한 후 무지함과 천박함의 때을 벗고, 뽀대 나는 후광을 얻고자, 동아리를 이리 저리 기웃거리다 문학동아리를 가입했다. 문학 동아리도 격이 있는지라, 인문학도와 국문학도들이 유난히 많았던 유수의 문학동아리가 있는가 하면, 공대생들이 당시 공돌이라 부르던 인식의 틀을 깨고자 만든 독서토론회 동아리도 있었는데.... 당연 나는 독서토론회에 가입했다. (어렸어도 주제 파악은 확실하게 했던거다.) - 물론 나는 공대생은 아니다. 공대생만큼 무식한 티가 팍팍 나는 전공자일 뿐이다.
문제는 두 동아리가 같은 방을 칸막이로 나눠서 쓰고 있었다는 것. 한편은 시와 소설과 평론을 논했다면, 한쪽은 단편 소설을 주로 읽으면서 (장편을 하면 사람이 모이질 않아서..) 술과 노래 로 동아리 실을 떠들석하게 했다는 것이다.
두 동아리의 공통점이라고는 무진장 술을 마셨다는 것... 다만 한 쪽은 문학을 다른 한 쪽은 악을 써댔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이런걸 문학동아리의 질적 차이라고 하는게다.) 또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는데, 인문학도가 많던 동아리는 여학생들이 많았던 반면에 공대가 주축으로 만든 동아리는 시커먼 짐승들이 드글대는것이 전통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편 동아리의 여학생들을 평상시부터 연구하고, 탐색해대는 적자생존의 버릇들이 생겼는데....
당시 나는 마지막 끝자가 '희'자로 끝나는 여학생에게 심장을 빼았겼고, 못먹는 술만 먹으면 악을 써대고 노래를 불렀는데....그 노래가 부활의 '희야'였던 것이다. 술만 먹으면 하도 애절 (?)하게 악을 써대는 지라...좁은 동아리방에서 술먹고 하는 짓이 그러하니 둔한 사람들마저 내 깊은 (?) 속마음을 알게되고, 곧 당사자까지 알게 되는 비극적 순간이 발생했다. (왜 비극적인가는 그 친구가 부담스러우니까 그 노래 부르지 말라고 해서였다)
고백도 하기 전에 끝나버린 내 짝사랑의 추억이 이 봄 저녁 라디오에서 흘러 나온다. 젠장 책도 안 읽히는데 말이다. 그 후로 난 '희야'를 절대 동아리 방에서 부르지 않았다. 그리고 '희'자로 끝나는 여자들을 만나면 뭔가 오그라드는 휴유증을 얻었다.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부활의 노래 하나 더
예전에 'Britains got Talent' 에서 폴 포츠가 노래하는 모습과 관중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평범하다 못해 무언가 부족해 보이는 사람이 아름다운 오페라를 부를 때 그 놀라움이란....
수잔 보일이란 이름을 난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제2의 폴 포츠라고 불리는 여인 12살 때부터 노래를 부르고 가수가 되는 꿈을 꾸었던 여인.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고 47살이 되도록 키스 한 번 못해본 여인의 입에서 나오는 노래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
평범하지 못한 외모와 어눌해 보이는 이 두사람... 초라한 껍질 속에 감춰진 아름다운 목소리.. 어쩌면 그들의 외모만 보고 큰 기대 없이 방심하고 있다가 더 놀라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하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가수는 외모와는 상관 없다는 것이다. 내 귓속을 통해 온 몸에 전류가 흐르게 만들어 주는 가수가 나에게는 진짜 가수다. 그리고 그 사람은 외모와 상관없이 그 노래로 가장 아름답게 변한다. 폴 포츠와 수잔 보일은 내 믿음의 살아있는 증거인 것이다.
햇살은 따스한 듯 한데 바람은 여전히 차갑다.
그냥 아무 이유없이~ 이적 노래들이 듣고 싶어졌다. 그냥 아무 이유없이~ 그렇게 머릿속을 울리는 노래들이 있다.
굳이 이유를 찾으라면... 씨~ 담배 좀 피려는데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분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