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2월 2주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상처, <엘라의 계곡> 

1. 감독 폴 해기스, <크래쉬>로 세상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던 감독. 그러나 감독으로서의 이름보다 각본을 잘 쓰는 각본가로서의 이름이 더욱 익숙하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봤던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떠올리면 무조건 생각나는 이름이 폴 해기스다. 더구나 굵직한 전쟁 영화였던 <아버지의 깃발>이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와 같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와 인연이 깊었던 그가 연장선상에서 감독과 각본을 맡은 작품이라니 왠지 꼭 봐야 할 것 같다.  

2. 연기 잘 하는 배우 토미 리 존스, 샤를리즈 테론, 수잔 서랜든. 토미 리 존스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고 연기력에 감탄하게 되었는데(그 전까지만 해도 그저그런 중견배우라 생각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엘라의 계곡>에서 아들을 전쟁에 보낸 완고한 아버지 역할을 맡아 극을 이끌어간다. 이 영화에서도 연기력을 한껏 뿜어내는 장면이 있다고 하니 기대된다. 샤를리즈 테론 역시 연기파 배우로 정평이 나 있으니 말할 것 없고(<몬스터>보기 전에는 몸집만 큰 여배우라고 '잠깐' 생각했었더랬다), 이 영화에서는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수사관으로 등장한다. 수잔 서랜든은 비중이 적지만, 이름 하나만으로도 영화를 보게 만드는 묘한 힘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다.  

3. <엘라의 계곡>은, 완고한 아버지 행크 디어필드(토미 리 존스)가 아들 마이크를 찾아나서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이크는 이라크전에 파병되었는데, 귀환 중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아버지가 접하면서 '불명예'스러운 탈영병이 될 위기에 처한 아들의 '명예'를 찾기 위해 사건을 파헤친다. 아버지는 원래,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은 국민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완고한 애국주의자이다. 하지만, 아들의 죽음 앞에, 사건의 진실 앞에 그 가치관이 산산히 부서지고 만다.  

  

아내를 잃은 남편의 상처, 엄마를 잃은 딸들의 상처 

 1. 배우 존 쿠삭 , 그 이름 하나만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감독의 작품을 선택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사실 이 영화를 이끌고 가는 중심축이 존 쿠삭이기 때문에, 그의 연기가 어느 영화보다 중요했다. <2012>에서 뛰어다니고 헤엄쳐다니고 운전하는 존 쿠삭도 나쁘지 않았지만, <세런디피티>의 어쩔 줄 몰라하는 눈빛도 좋았지만, <굿바이 그레이스>에서의 절제된 남자 존 쿠삭도 참 좋았다.  

 2. 잔잔함 속에 스며든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영화다. 존 쿠삭은 더이상 영웅처럼 보이지도 않고, 삶에 지친 평범한 남자이자 아버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딸들에게 '엄마가 이라크전에 참전했다가 돌아가셨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해야하는 엄청난 짐을 지고 있는 남자다. 당연히 국민이라면 나라를 위해 싸워야한다(이건 미국이 그리는 이상적인 국민형인지)고 생각하는 스탠리(존 쿠삭) 역시 군인이었다. 직업군인인 아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러 간 것이라 믿었던 그에게 닥친 불행으로 그는 어떤 생활을 하게 될 것인지. 딸들에게 엄마의 부재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남편을 찾아 인생을 버리고 떠난 아내의 상처 

1. 감독 이준익의 이름은 '무조건'이다. <왕의 남자>부터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까지 인생에 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었던 그의 작품이라면, 무조건이다. 그의 전작보다 못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지만, 그의 이름에 거는 기대감이 커서 그런 것이 아닐까.  

2. 배우 정진영은 이준익 감독의 작품에는 꽤 많이 함께 하는 편이다. 카리스마 있는 배우이기도 하고, 튀지 않으면서도 존재감이 묵직한 배우이기도 하다. <님은 먼 곳에>에서는 베트남에 위문공연을 갈 밴드를 결성하고 단원을 모집하는 리더 정만의 역할을 맡아 극의 흐름을 주도한다. 또 한 명의 배우는 수애. 그저 다소곳하고 예쁜 줄만 알았던 그녀는 이 영화에서 '연기'라는 것을 보여주고 '노래'라는 것을 부른다. 잘 부르는 노래는 아닌데, 영화를 보고 나서도 그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울리더라는.  

3.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찾아서 떠난 길, 남편 상길(엄태웅)은 첫사랑을 잊지 못해 정작 아내인 순이(수애)에게는 눈길 조차 주지 않는다. 그런 남편이 홧김에, 혹은 사랑을 잊기 위해, 혹은 잊지 못해 죽기 위해 참전한 베트남 전쟁. 죽을 지도 모르는 그 길을 순이가 밴드 보컬이 되어 '써니'라는 이름으로 따라 떠난다. 순수하고 순진했던 그녀는 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또 애를 쓴다. 그녀가 전쟁을 통해 잃은 것은, 순수했던 마음과 남편의 사랑에 대한 믿음. 그래서 그녀는 이제껏 살아왔던 인생을 모두 잃고 상처받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2월 1주

 

 당연히 이번주는 이 영화, <뉴문>부터 시작해야 한다. 피를 원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섬뜩하지 않고 오히려 매력적인 뱀파이어 에드워드부터 시작해서, 선남선녀(?)만 모인 것 같은 컬렌 가족이 잔뜩 등장하는 <뉴문>. 기존의 뱀파이어 영화에서처럼 새하얀 목에 날카로운 이를 들이대는 장면은 볼 수 없지만 그들이 피를 원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에드워드가 벨라에게 이별을 고하는 것 역시, '인간의 피'를 원하는 자신들로부터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스스로를 문명화된 뱀파이어라 자부하면서, 동물의 피를 섭취하는 컬렌 가족만 등장해서 심심할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도 좋다. <트와일라잇>에서 벨라의 피를 원하는 '전통' 뱀파이어가 등장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뉴문>에서도 복수를 위해 벨라를 노리는 뱀파이어와, 뱀파이어 세계를 다스리는 강력한 뱀파이어 일족이 등장한다고 하니 흥미진진할 것이라 기대 할 수밖에 없다. '남자'만 아니라면 누구나 보고 즐길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줄리 델피가 감독과 주연을 함께 맡은 영화 <카운테스>는 뱀파이어는 아니지만, 피를 원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실존 인물인 엘리자베스 바토리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인데, 사랑하는 남자에게 버림받은 그녀는 그것이 '늙음에서 오는 추함' 때문이라 생각하고 '젊음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얻기 위한 방법을 고민한다. 그것이 바로 젊은 처녀들의 피를 마시는 것. 마녀라고까지 불려지는 그녀의 악행(?)은 영화 전반에 걸쳐 이루어진다. 그 여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섬뜩하다 못해 슬프기까지 하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은 염두에 두지 않는 삶은, 결국 남의 피 뿐만 아니라, 자신의 피까지 부른다.   

 공포 영화와는 거리가 있는, '드라마'에 가까운 이야기이기 때문에 피가 낭자한 장면을 기대하고 영화를 보기 보다는 줄리 델피의 내면 연기에 초점을 맞추면 좋을 듯하다.

 

  <북 오브 블러드>. 일명 '피의 책'은 좀더 노골적으로 피를 부르는 영화다. 달걀 노른자에 피 한방울이 떨어지는 영화 시작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특수효과를 사용한 피의 향연이 펼쳐진다. 한 저택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사건을 파헤치기 위한 조사에 죽은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사이먼이 참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는데, 죽은 자들이 사이먼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결국은 사이먼의 몸에 새기는 '피의 자국'이다. 이야기의 서사구조는 빈약하지만(원작소설의 반도 표현해내지 못했다고 하는 평을 읽었다), 특수효과는 볼 만 할 것이다. 섬뜩해서 보다 말았으니까ㅠ

 공포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 피를 보는 것에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기이한 얼굴과 살이 떨어져나가는 장면들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은 피하는 것이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1월 4주

 

 상처받은 남자와 여자가 등장한다. 만수는 치매에 걸린 엄마를 보살피다, 도박에 빠진 형이 남긴 빚에서 벗어나고자 병원으로 도망쳤다. 그는 돈을 무한히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행복한 남자다. 물론, 현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볼 수 있지만. 만수의 곁에는 수경이 있다. 수경은 병원에서 일하는 수간호사로, 동료의사와 사랑에 빠졌었지만 힘들 때 버림받아 상처를 입은 여자다. 거기다 말기암 환자인 아버지를 돌보느라 병원비가 밀려있고 카드 빚 때문에 항상 쫓기는 마음인, 그래서 만수 곁으로 도피한다. 만수는 병원비를 척척 만들어주며 수경을 위로하기 때문에. 그들이 만나는 곳은 바로 '정신병원'이다. 자신의 상상대로 현실이 바뀌는 곳, 자신의 생각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래서 그 곳에서 안식을 찾는다. 하지만 현실의 사람들은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으려 한다.  

 현빈과 이보영. 그리고 <소름>의 감독 윤종찬이 만났다. <나는 행복합니다>란 아름다운 제목을 가진 영화지만, 사실은 어둡고 암울하고 힘든 영화라고 한다. 상처를 가진 사람들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현빈과 이보영의 잘생기고 예쁜 모습만으로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이 보면 좋을 영화다.  

 

 파엘로 코엘료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각색한 두 편의 동명 영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야기 틀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 혹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베로니카(혹은 토와)가 자살을 시도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현실을 벗어나고자 했던 베로니카는 정신 요양원에서 깨어나게 되는데, 복용한 약물로 인해 7일간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게 된다.   

 그 7일동안 정신 요양원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상처를 안고 있어 내면 속으로 깊이 침잠해버린 사람들, 사회의 룰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을 통해 베로니카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그 과정에서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나름의 규칙이 있는 정신 요양원에서의 생활이 큰 영향을 미쳤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현실에 부딪쳐 싸워서 이기지 않았지만, 그녀와 그 곳의 사람들은 '영혼의 안식처'를 찾은 셈이다.  

 공포영화에서 비명을 질러대던 사라 미셀 겔러 대신, 피아노를 연주하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고요한 모습의 그녀가 보고 싶다면 미국판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요즘 활동이 뜸한 이완이 일본 배우들과 어떤 호흡을 맞추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일본판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볼 것. 다만 일본판에서 동양적인 색채가 강하리라는 기대감은 버려야 할 듯하다. 

 

 영군은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싸이보그라 생각한다. 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주변에 존재하는 인물들이 참을 수 없어서가 아닐까. 어쨌든 그녀는 주변의 인물들과 달리,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밥을 먹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 일순은 자신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남의 것을 훔치는 남자다. 이들의 사랑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듯한 환상적인 정신병원에서 진행되는데,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귀엽고 순수해 보인다. 현실의 사람들 시선에서 자유로워져 두 사람만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닌자 어쌔신>으로 돌아온 정지훈군의 풋풋한 모습과, <전우치>로 개봉을 앞둔 언제나 어린 임수정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박찬욱 감독의 색다른 영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1월 3주

 페르소나(persona)는 배우들이 연극을 할때 쓰던 가면을 일컫던 말로, 자아와 외부세계가 관계를 맺도록 기능하는 사회적 얼굴을 뜻한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감독의 영화에 여러 편 출연하며 감독의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배우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이번 주에 기대할 만한 영화로 <브로큰 임브레이스>가 가장 눈에 띄는데, 사실 '페르소나' 배우를 내가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겠지만, 여러 작품을 같이 한 감독과 배우들을 엮어보고 싶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과 페넬로페 크루즈와의 네 번째 만남이다. <라이브 플래쉬>,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귀향>에 이어 <브로큰 임브레이스>까지. 페넬로페 크루즈를 매력적인 여인에서 삶을 연기하는 배우로 바꿔놓은 것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작품이었다. 페넬로페 크루즈는 이국적인 외모로(혹은 섹시함으로) 일단 시선을 끄는 배우지만, 영화 속에서 그녀는 주인공이 아니라 관객을 사로잡는 '팜므 파탈'에 가깝다.  

 인생이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는 여자이기도 하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여인(<귀향>의 라이문다)이기도 하며, 뭇 남성들에게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연약한 여자(<내 어머니의 모든 것>의 수녀 로사)이기도 하다. 그 어떤 모습이든 관객들은 페넬로페 크루즈에게서 '매력'을 느끼는데, 그것은 결국 그녀가 이제까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작품에서 쌓아왔던 이미지와도 관련이 있다.   

 <브로큰 임브레이스>에서 페넬로페 크루즈는 백만장자의 정부로 살면서 여배우의 꿈을 버리지 않는 여인 레나 역을 맡았다. 그녀는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선택한 길에서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지만, 자신을 돈으로 붙잡고 있던 남자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녀는 아마 비련의 여주인공을 연기할 듯 하다(이제껏 그녀는 영화에서 행복한 결말을 맞은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속에서 그녀에게 주어진 역할이라면 무엇이든 빛나지 않을까.  

    

 이번에 개봉하는 <귀없는 토끼>는 틸 슈바이거가 제작, 감독, 각본, 주연까지 모두 다 겸한 작품이다. 낯설지도 모를 독일 배우는 사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의 쓸쓸한 인생으로 주목받은 유명한 배우이고, 얼마 전에 개봉했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도 열연한 바 있다. 감독과 배우가 동일한 인물이라면, 이보다 더한 페르소나가 어디 있겠는가. 틸 슈바이거는 이제껏 3편의 영화를 감독으로서 연출했는데, <맨발>이 그 첫 작품이고 그 다음이 <귀 없는 토끼>, 그리고 최근에 <귀 없는 토끼2>를 연출했다. 모든 작품에서 그가 감독과 각본, 주연을 도맡아 했다. 그러니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의 연기력과 연출력으로 표현한 것이다.  

 틸 슈바이거가 추구하는 것은 한 마디로 '사랑'이다. <맨발>에서는 자유를 꿈꾸던 여자가 진정한 사랑을 만나면서 그 자유를 포기하고 싶다고 느끼는 이야기를, <귀 없는 토끼>에서도 역시, 티격태격하던 바람둥이(?) 남자와 고지식한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후속편인 <귀 없는 토끼2>에서도 마찬가지. 다만, <맨발>에서 평범하지 않고 튀는 듯 했던(정신병원에서 만난 두 주인공의 이야기다 보니) 주인공들이 <귀 없는 토끼>에서 평범한 인물로 순화된 것이 차이라고나 할까. 진정한 사랑을 찾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평범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12월에 개봉할 영화 중에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영화가 바로 <전우치>다. 얼마 전에 예고편이 공개되어 더욱 기대감이 증폭되고 있는데, 이 영화는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로 유명한 최동훈 감독의 작품이다. 주연 배우는 박신양에서 조승우로, 이번엔 강동원으로 바뀌었지만, 최동훈 감독의 영화에서 항상(세 작품이니까 '항상'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하지만) 볼 수 있는 두 명의 배우가 있다. 바로 백윤식과 김윤석이라는 굵직한 두 중견(?) 배우.  

 백윤식이라는 배우는 <범죄의 재구성>에 출연하기 전에는 그저 TV 드라마에 얼굴을 비추는, 약간은 코믹한 그런 배우라는 인상이 강했으나,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를 통해 카리스마 넘치는, 약간은 느슨하기도 하지만 엄격한 전문가의 역할을 거듭하면서 진짜 배우로 거듭났다. 김윤석 역시 마찬가지. <범죄의 재구성>에서는 형사 역할로 나와서 다른 주,조연들에게 밀려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그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역할은 <타짜>의 아귀였다. 진정한 연기파 배우라는 칭송을 받으면서 이름을 알리게 된 배우 김윤석. 그들은 모두 최동훈 감독의 영화를 통해 성장했고, 지금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번 영화 <전우치>에서 백윤식과 김윤석 모두 최고의 도술을 가진 도인의 역할을 맡았지만, 백윤식은 전우치의 스승인 천관대사로, 김윤석은 전우치와 대적하는 화담으로 등장한다. 이제까지 최동훈 감독의 영화에서와 같은 구도이다. 이분법적 구조로 단순화시키면, 백윤식은 주인공의 편이고 김윤석은 주인공의 반대편이라는 것이다. 이 단순한 구조 속에서도, 최동훈 감독의 영화에서 빛을 발했던, 연기력이 뛰어난 두 명의 배우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드 2009-11-18 0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유럽영화제에서 틸 슈바이거가 제작과 주연을 맡은 <환상통>을 봤었는데요 (감독은 귀없는 토끼 작가던가 무튼 연관 있는 사람이었구요) 아직 이야기 못했지만, 유럽 영화제 영화들 중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착하고 따뜻하고 희망적인 독일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정말 옛날에 종로던가 어느 극장에서 보면서 OST까지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ㅎ
<귀없는 토끼>가 작년 유럽영화제 마지막 영화였는데, 그러고보면 틸 슈바이거도 유럽영화제 단골이라는.


오늘 <바스터즈> 보러 가는데, 틸 슈바이거 나오는 줄은 몰랐네요. 기대되는군요. ^^

페넬로페 크루즈는 정말 존재 자체가 여신. 농반진반으로 여배우들한테 '여신' 칭호를 붙이는데, 정말 '여신'에 가까운 배우가 있다면, 페넬로페 크루즈라고 감히 말해봅니다. 예쁘장한 배우에서 어느새 그런 아우라를 가지게 되었는지 ..

그린네 2009-11-19 01:02   좋아요 0 | URL
저도 하이드님처럼 유럽영화제 같은 행사 찾아다니고 싶은데, 그게 안되니 부럽기만 하네요^^ 저도 <환상통>은 보고 싶어요! 찾아보니 넥플(넥스트 플러스) 영화 축제에서 상영작으로 선정된 것 같은데, 대구군요. 흣ㅠ

페넬로페 크루즈에 대한 코멘트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1월 2주 당첨자 발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재난영화 전문 감독'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이제까지의 작품이 한 장르에 치중되어 왔다. 충격적인 스펙터클함을 보여주었던 <인디펜던스데이>로부터 시작하여, <고질라>, <투모로우>, <10000BC>까지 모두,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이 어쩔 수 없는 고난을 겪고 이겨내면서 행복하게 된다는 내용의 재난 영화들이다. 그런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가장 최근작, <2012>가 기대반, 우려반 속에 개봉을 앞두고 있다. 스펙터클의 면에서는 이제까지의 어떤 작품보다도 뛰어나다고 한다. 이미 공개된 LA침몰 장면이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기대감이 상당히 상승된 듯 하다. CG면에서는 그동안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보여주었던 재난영화를 압축해 놓은 듯 하다고 하니, 스펙터클함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볼거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영웅"보다는 '보통 사람'이 어떻게 재난을 극복하는가가 주된 감동 코드인 재난 영화에서 존 쿠삭은 '비정한' 보통 사람으로 등장한다고 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선별된 사람만을 피신시키려는 정부의 정책을 알아채고 자신의 가족을 챙겨 대피하는 소설가 역할을 맡았다는데,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가족에 대한 사랑이 더 크게 표현되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큰 기대는 버리고, 화산 폭발과 쓰나미에서 결국은 살아날 주인공의 고군분투기를 '가볍게' 즐기러 가자.  

  

 재난 영화를 왠만큼 본 사람들이면 안 울고는 못 배겼다는, 그 영화 <투모로우>의 감독 역시 롤랜드 에머리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고 해류의 흐름이 바뀌어 지구 전체가 빙하로 덮이게 된다고 주장하는 과학자 잭 홀 박사(데니스 퀘이드)의 말대로 지구에 이상현상이 나타나면서 일어나게 되는 재난을 다루고 있는 영화로, CG도 흠잡을 데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던 감동 코드가 잘 살아있는 영화라 개인적으로는 롤랜드 에머리히의 최고작이라 꼽고 싶다. 아들을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길을 떠나는 아버지의 부성애가 이만큼 잘 표현될 수 있을까. 단지 미소가 아름다운 남자배우라고 생각하고 있던 데니스 퀘이드를 다시 보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또 한가지. 재난 영화가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만약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란 가정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투모로우>는 그 어떤 재난 영화보다도 설득력이 있는데, 우리가 미래의 최대 문제로 꼽고 있는 환경문제로 인한 재난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보는 내내, 언젠가 우리에게도 저런 일이 닥칠 지 몰라.라고 생각하며. 거대한 얼음덩이들을 보며 손에 땀을 쥐었다.  

  

 <인디펜던스 데이>는 과도한 영웅주의와 미국 중심주의로 비판을 받은 영화지만,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을 지금에 이르게 한 작품이고, 70년대 이후 사그라들었던 재난 영화의 부활을 알린 작품이라는 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화이다. 괴 비행물체의 출현과 함께 잿더미가 되어가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외계인에 대항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CG의 향연과 함께 펼쳐진다. 물론, 미국대통령이 지구 전체의 일을 결정하고, 목숨을 건 사람들이 미국인이라는 점에서는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지구를 지키기 위해(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인물들의 모습에는 감동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재난 영화에는 공식처럼 비슷한 서사구조가 반복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것이 재난 영화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에서 시도했던 재난 영화 <해운대> 역시 잠깐의 CG와 감동, 그리고 유머를 뒤섞어 흥행에 성공하지 않았던가. <10000BC>로 처참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공식을 깼던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2012>에서는 멋진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