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1월 3주

 페르소나(persona)는 배우들이 연극을 할때 쓰던 가면을 일컫던 말로, 자아와 외부세계가 관계를 맺도록 기능하는 사회적 얼굴을 뜻한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감독의 영화에 여러 편 출연하며 감독의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배우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이번 주에 기대할 만한 영화로 <브로큰 임브레이스>가 가장 눈에 띄는데, 사실 '페르소나' 배우를 내가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겠지만, 여러 작품을 같이 한 감독과 배우들을 엮어보고 싶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과 페넬로페 크루즈와의 네 번째 만남이다. <라이브 플래쉬>,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귀향>에 이어 <브로큰 임브레이스>까지. 페넬로페 크루즈를 매력적인 여인에서 삶을 연기하는 배우로 바꿔놓은 것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작품이었다. 페넬로페 크루즈는 이국적인 외모로(혹은 섹시함으로) 일단 시선을 끄는 배우지만, 영화 속에서 그녀는 주인공이 아니라 관객을 사로잡는 '팜므 파탈'에 가깝다.  

 인생이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는 여자이기도 하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여인(<귀향>의 라이문다)이기도 하며, 뭇 남성들에게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연약한 여자(<내 어머니의 모든 것>의 수녀 로사)이기도 하다. 그 어떤 모습이든 관객들은 페넬로페 크루즈에게서 '매력'을 느끼는데, 그것은 결국 그녀가 이제까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작품에서 쌓아왔던 이미지와도 관련이 있다.   

 <브로큰 임브레이스>에서 페넬로페 크루즈는 백만장자의 정부로 살면서 여배우의 꿈을 버리지 않는 여인 레나 역을 맡았다. 그녀는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선택한 길에서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지만, 자신을 돈으로 붙잡고 있던 남자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녀는 아마 비련의 여주인공을 연기할 듯 하다(이제껏 그녀는 영화에서 행복한 결말을 맞은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속에서 그녀에게 주어진 역할이라면 무엇이든 빛나지 않을까.  

    

 이번에 개봉하는 <귀없는 토끼>는 틸 슈바이거가 제작, 감독, 각본, 주연까지 모두 다 겸한 작품이다. 낯설지도 모를 독일 배우는 사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의 쓸쓸한 인생으로 주목받은 유명한 배우이고, 얼마 전에 개봉했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도 열연한 바 있다. 감독과 배우가 동일한 인물이라면, 이보다 더한 페르소나가 어디 있겠는가. 틸 슈바이거는 이제껏 3편의 영화를 감독으로서 연출했는데, <맨발>이 그 첫 작품이고 그 다음이 <귀 없는 토끼>, 그리고 최근에 <귀 없는 토끼2>를 연출했다. 모든 작품에서 그가 감독과 각본, 주연을 도맡아 했다. 그러니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의 연기력과 연출력으로 표현한 것이다.  

 틸 슈바이거가 추구하는 것은 한 마디로 '사랑'이다. <맨발>에서는 자유를 꿈꾸던 여자가 진정한 사랑을 만나면서 그 자유를 포기하고 싶다고 느끼는 이야기를, <귀 없는 토끼>에서도 역시, 티격태격하던 바람둥이(?) 남자와 고지식한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후속편인 <귀 없는 토끼2>에서도 마찬가지. 다만, <맨발>에서 평범하지 않고 튀는 듯 했던(정신병원에서 만난 두 주인공의 이야기다 보니) 주인공들이 <귀 없는 토끼>에서 평범한 인물로 순화된 것이 차이라고나 할까. 진정한 사랑을 찾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평범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12월에 개봉할 영화 중에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영화가 바로 <전우치>다. 얼마 전에 예고편이 공개되어 더욱 기대감이 증폭되고 있는데, 이 영화는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로 유명한 최동훈 감독의 작품이다. 주연 배우는 박신양에서 조승우로, 이번엔 강동원으로 바뀌었지만, 최동훈 감독의 영화에서 항상(세 작품이니까 '항상'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하지만) 볼 수 있는 두 명의 배우가 있다. 바로 백윤식과 김윤석이라는 굵직한 두 중견(?) 배우.  

 백윤식이라는 배우는 <범죄의 재구성>에 출연하기 전에는 그저 TV 드라마에 얼굴을 비추는, 약간은 코믹한 그런 배우라는 인상이 강했으나,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를 통해 카리스마 넘치는, 약간은 느슨하기도 하지만 엄격한 전문가의 역할을 거듭하면서 진짜 배우로 거듭났다. 김윤석 역시 마찬가지. <범죄의 재구성>에서는 형사 역할로 나와서 다른 주,조연들에게 밀려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그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역할은 <타짜>의 아귀였다. 진정한 연기파 배우라는 칭송을 받으면서 이름을 알리게 된 배우 김윤석. 그들은 모두 최동훈 감독의 영화를 통해 성장했고, 지금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번 영화 <전우치>에서 백윤식과 김윤석 모두 최고의 도술을 가진 도인의 역할을 맡았지만, 백윤식은 전우치의 스승인 천관대사로, 김윤석은 전우치와 대적하는 화담으로 등장한다. 이제까지 최동훈 감독의 영화에서와 같은 구도이다. 이분법적 구조로 단순화시키면, 백윤식은 주인공의 편이고 김윤석은 주인공의 반대편이라는 것이다. 이 단순한 구조 속에서도, 최동훈 감독의 영화에서 빛을 발했던, 연기력이 뛰어난 두 명의 배우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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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9-11-18 0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유럽영화제에서 틸 슈바이거가 제작과 주연을 맡은 <환상통>을 봤었는데요 (감독은 귀없는 토끼 작가던가 무튼 연관 있는 사람이었구요) 아직 이야기 못했지만, 유럽 영화제 영화들 중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착하고 따뜻하고 희망적인 독일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정말 옛날에 종로던가 어느 극장에서 보면서 OST까지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ㅎ
<귀없는 토끼>가 작년 유럽영화제 마지막 영화였는데, 그러고보면 틸 슈바이거도 유럽영화제 단골이라는.


오늘 <바스터즈> 보러 가는데, 틸 슈바이거 나오는 줄은 몰랐네요. 기대되는군요. ^^

페넬로페 크루즈는 정말 존재 자체가 여신. 농반진반으로 여배우들한테 '여신' 칭호를 붙이는데, 정말 '여신'에 가까운 배우가 있다면, 페넬로페 크루즈라고 감히 말해봅니다. 예쁘장한 배우에서 어느새 그런 아우라를 가지게 되었는지 ..

그린네 2009-11-19 01:02   좋아요 0 | URL
저도 하이드님처럼 유럽영화제 같은 행사 찾아다니고 싶은데, 그게 안되니 부럽기만 하네요^^ 저도 <환상통>은 보고 싶어요! 찾아보니 넥플(넥스트 플러스) 영화 축제에서 상영작으로 선정된 것 같은데, 대구군요. 흣ㅠ

페넬로페 크루즈에 대한 코멘트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