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은 이유에서 다윈은 인간 종이 도덕적인 종이고, 인간은 도덕적인 동물이라고 믿었다. "도덕적인 존재란 자신의 과거 행동들과 동기들을 미래의 것들과 비교할 수 있고, 그것들을 승인하거나 승인하지 않거나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다른 하등 동물들이 이 능력을 갖고 있으리라고 가정할 어떤 이유도 없다." 라고 썼다.
그렇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도덕적이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진실되고 반성된 삶을 살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이 있다. 우리에게는 자기 인식, 기억, 통찰력, 판단력이 있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 동안 진화론적사상은 우리로 하여금 '기술적' 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도록 이끌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우리가 진실하고 긴장되는 도덕적인 정밀 조사를 받고, 우리의 행동을 적절하게 조정하는 것은 디자인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는 잠재적으로 도덕적 동물이지만 (어떤 다른 동물이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자연적으로 도덕적 동물인 것은 아니다. 도덕적인 동물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철저하게 도덕적 동물이 아닌지를 깨달아야만 한다.
-502쪽
도덕을 측정하는 세밀한 잣대를 가지고 다윈은 자신의 삶에 합격점을 주었다. "나는 정직하게 평생을 과학에 전념했고 헌신해 왔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떤 큰 죄도 짓지 않았다는 안도감"에도 불구하고 그는 "종종 내 주위 사람들에게 좀 더 직접적으로 이익을 주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굳이 변명하자면 나는 건강이 좋지 않았고, 어떤 주제나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옮기기 어려운 정신 구조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을 봉사에 헌신하면서 살아도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더 훌륭한 행위였는지도 모른다.
다윈이 최선을 다해 공리주의자의 삶을 살지는 않았음은 사실이다. 누구도 그런 삶을 산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맞이하면서 친절하고 너그럽게 살아온 삶과, 성실히 수행한 의무들과 다는 아니었어도 그가 그 근원을 처음 발견한 이기심에 대한 고통스러운 투쟁에 대해 올바르게 숙고할 수 있었다. 그 삶은 완벽한 삶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은 그보다 더 추악해질 수 있다.-5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