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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프로야구 원년 팀으로 만년 꼴찌로 기억되던 삼미슈퍼스타즈가 부활했다. 아련한 향수 속에서 묻혀가던 그들의 전설은 2003년 이 책이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다시금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다 2004년 이범수 주연의 <슈퍼스타 감사용>이 상영되면서 삼미에 대한 오명도 추억과 함께 어느 정도 희석될 수 있었다.
이 책은 1982년 프로야구 창단이레 장명부라는 괴물투수의 영입으로 일약 2위까지 도약했던 83년을 제외하고는 10승 30패(82년 전기, 6위), 5승 35패(82년 후기, 6위), 18승30패(84년 전기 6위), 20승29패(84년 후기, 6위), 15승40패(85년 전기, 6위)의 기록으로 꼴찌만을 전담해 왔던 프로야구팀, 삼미슈퍼스타즈가 이룩한 드라마틱한 시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프로야구 개막과 함께 각 구단의 어린이 회원에 가입하여 야구단 마크가 새겨진 가방에 잠바, 티셔츠를 받아들고는 그들의 열렬한 팬클럽이 된다. 그리고 삼삼오오 모인 친구들과 선수들의 폼을 따라하며 그들을 얘기한다. 박철순, 김봉연, 김용희... 민속씨름의 이만기와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우리들의 스타! 그들과 함께 기뻐하고 땀 흘렸던 기억에 우리는 미소 짓는다.
하지만 삼미슈퍼스타즈는 냉혹한 프로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체 매각되고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도 점점 잊혀진다.
“결론은 프로였다. 평범한 야구 팀 삼미의 가장 큰 실수는 프로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었다. 고교야구나 아마야구에 있었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팀이 프로야구라는 - 실로 냉엄하고, 강자만이 살아남고,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하고, 그래서 아름답다고 하며, 물론 정식 명칭은 '프로페셔널'인 세계에 무턱대고 발을 들여놓았던 것이다."
(본문 125쪽)
지극히 평범했지만 프로라는 경쟁체제 안에서는 ‘꼴찌팀’이라는 오명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삼미 슈퍼스타즈처럼 오늘날의 전문화된 사회에서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사회적인 낙오자를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맹렬한 속도로 돌진하는 사회에 소속되지 못하고 내동댕이쳐진 이방인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이혼과 실업자라는 명분밖에 남은 게 없는 주인공에게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처음 널 봤을 때... ... 내 느낌이 어땠는지 말해줄까?"
"9회 말 투 아웃에서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 상황을 맞이한 타자 같았어."
"너 4년 내내 그렇게 살았지? 내 느낌이 맞다면 아마도 그랬을 거야. 그리고 조금 전 들어온 공, 그 공이 스트라이크였다고 생각했겠지? 삼진이다, 끝장이다, 라고!"
"바보야, 그건 볼이었어!"
(본문 234쪽)
그건 볼이었다!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의 긴장상태에서 우리를 아웃시키며 벤치로 몰아넣는 스트라이크가 아니라 1루로 천천히 걸어 나가 자신을 되돌아보고 지친 삶에 휴식을 주라는 하나의 조언이었던 것이다.
이러 저리 돌려 치며 거침없이 끌고 나가는 글맛이 일품인 이 책은 '아마추어 사회학'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8,90년대의 프로화로 치닫는 사회를 잘 꼬집고 있다.
국가 주도의 무한경쟁과 전문화, 개인의 삶보다는 집단의 경제성이 우선시되는 상황 속에서 '삼미슈퍼스타즈'라는 아웃사이더를 통해 잠시나마 세속의 속도감에서 벗어나본다. 9회말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에 찾아온 ‘볼’의 안도감처럼, 빌딩 숲 사이에서 문득 느껴지는 산들바람 같다고나 할까.
( http://www.freeis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