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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 ㅣ 우리 시대의 인물읽기 1
장정일 외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1년 11월
평점 :
품절
장정일. 아니나다를까 제일먼저 떠오르는 건 '거짓말 사건'이다. 그 사건이 한창 불거져 나올 무렵 책방에서 일하던 한 친구로부터 이미 국가로부터 '판금'으로 분류돼 회수되어버린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빌려봤던 기억이 남는다. 문학적인 가치보다는 다분히 눈요기감으로, 호기심에 휩싸여 집어든 책이었다. 파격적이고 가학적인 '흥미있는' 내용, 하지만 대충 건너뛰며 속독으로 빠르게 읽어 내렸던 책이었다. 그리고 조금 뒤, 불법CD를 통해 가슴 졸이며 봤던 무지 야한 영화, '거짓말'.
물론 장정일과의 첫 만남이 순수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저그런 3류작가로 치부해 버리기엔 '뭔가 큰걸 놓쳐버리는 것 같은' 허전함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단순히 '섹스'라는 눈요기를 벗어나 '인간 장정일'이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은 객관적이고 깊이있게 접근해 보고자 이 책을 든다.
책은 '장정일'의 모습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주변 사람들의 평과 장정일의 작품을 통해 표현한다. 첫 번째로 '인간 장정일'에서는 작가의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다. 두 번째로 '작가 장정일'에서는 작가(시, 소설)와 원작자(영화)의 면에서 장정일을 논한다. 그리고 '장정일의 작품'에서는 대표적인 시, 단편소설, 시나리오를 실어놓았다.
1부. 인간 장정일 타인의 입장에서 쓴 초반부의 평에 비해 뒷부분에 나오는 작가 자신이 직접 쓴 '단상'이 어쩌면 장정일을 더 잘 표현해 놓은 듯 하다. '단상'이라는 말처럼 그의 위트와 유머는 기발하고 진지하게 느껴진다. 조금은 괴팍하면서도 한편으론 진지하고, 날카로운, 그러면서도 재미있는 사람일거라는 느낌이 팍! 팍! 전해진다.
2부. 작가 장정일 내용이 쉬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장정일에 대한 글 중에서 가장 비중이 있어야할 '작가'로서의 장정일에 대해 너무 전문적으로 설명한 듯한 느낌이다. 후덥지근한 날씨에서 오는 끈적끈적한 느낌도 일조를 했겠지만, 무엇보다도 난해하고 전문적인 '작가론'은 장정일에 대해 사전준비 없이 접근을 시도하는 이들(나 역시 그렇다)에겐 커다란 벽처럼 느껴진다. 먹음직한 붕어빵, 앙꼬는 있지만 너무 뜨거워 감히 삼킬 수가 없다.
3부. 장정일의 작품 '역시 장정일이다'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색다른 느낌으로 읽었다. 특히 '모기'라는 글이 인상깊다. 인간적인 살냄새가 물씬 풍기면서도, '글쓰기'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일침(?)이 멋지다. 그리고 약간은 신비스러우면서 복잡한 구조의 '보트하우스'. 고집스럽고 무뚝뚝한, 조금은 괴팍스런 옆집 아저씨를 만나고 온 듯한 느낌. 낮에는 음탕한 농을 곧잘 하면서도 저녁이 되면 커다란 바가지 가득 정성스레 물을 길어 화단을 가꾸는, 밤이 되면 술에 취해 고함을 지르다가도 술이 깬 새벽, 뒷주머니에서 꺼낸 하모니카에선 잔잔한 팝송이라도 한 곡 흘러나올 것 같은 아저씨...
그런 느낌의 장정일. 자신만의 물음과 화두를 무심한 듯 세상에 던져놓곤 그 잔물결들을 천천히 음미하고, 즐기는 듯한 모습이랄까... 그리곤 그 잔물결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내는 '끼'를 간직한 사람인 듯 보인다.
나 역시 감히 '장정일 팬'이라 손들고 싶다. 하지만, 그의 작품 - 야한 글, 무척이나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그의 글 - 앞에선 쉽게 손이 올라가질 않는다. 뭔가 내가 느낄 수 없는 또다른 의미가 있진 않을까 눈여겨보지만, 아직 내 눈엔 원색의 글밖엔 보이질 않는다.
외설 or 예술... 이런 내 마음속에서부터의 '외설시비'에 앞서 다양한 글이 갖는 '일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할 듯싶다. 또한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법적인 제재보다는 사회 속에서의 자연스러운 수용과 여과에 맡겨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법이라는 테두리가 개인의 생각과 사상까지도 너무 많은 기준을 잡아나가려는 건 아닐까하는 음모론적인 생각마저 든다. 외설인지 예술인지는 법의 잣대보다는 독자들의 몫이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