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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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간의 라이벌전을 보는 듯 보편적 결혼관의 한 남자와 자유연예의 한 여인이 만났다. 둥근 공으로 공격과 수비를 오가며 서로의 골대를 향해 돌진하듯 펼쳐지는 과감한 슛과 태클, 한편의 축구경기를 보는 것 같다.
축구로 풀어놓는 연애와 사랑, 그리고 다부일처제!

“나는 당신을 사랑해. 그래서 당신과 결혼했어. 지금도 당신을 사랑해. 당신과 결혼을 깨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 그리고 또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해. 그래서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게 전부야.”
(본문 134쪽)

나는 사랑에 따르는 최소한의 소유욕도 거부하는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상대방의 사생활은 철저히 지켜준다는 약속으로 결혼은 했지만 술 냄새를 풍기며 새벽녘에나 귀가하는 아내를 맞이하는 심정이 어디 그리 간단하기만 하랴.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독특하고 과장된 결혼생활이 시작된다.

“아내는 다른 남자를 만났고 그와 결혼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러면서도 나와 이혼하지 않으려 했고 결국 이혼하지 않았다. 역시 사랑한다는 이유로. 나는 이런 아내와 헤어지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놈은 남편이 버젓이 있는 여자와 결혼을 해버렸다. 그 또한 사랑한다는 이유로.
대체 사랑이 뭐길래?“
(본문 177쪽)

그리고는 사랑과 결혼, 믿음에 대한 작은 물음을 던진다. 당신이 결혼한 것은 그녀의 정신인가, 육체인가? 사랑이란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다지만 그 경계는 또 어디까지며 사랑으로 포용할 수 있는 믿음의 범위란 어디까지인가? 당연하게 믿고 받아들여온 일부일처제에 대한 ‘불온한 상상’이 펼쳐진다.
시간이 지나면 세상 만물이 변하듯 사람의 취향이나 개성이 변하게 마련이지만 왜 유독 사랑만은 그 변화를 인정하려들지 않을까. 과연 감정의 변화 없이 평생 한사람만을 사랑한다는 게 가능하긴 하단 말인가?
우리는 결혼이라는 사회적 약속을 통해 40년 이상의 세월을 한 사람만을 사랑해야 한다지만 이는 혹시 이성이라는 학습과 사회적 규범을 통해 인간 본연의 감성을 억누르고 있는 건 아닐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감정을 과장하고 통제하면서 살아가는 건 아닐까?

책은 “모든 것이 무너져도 우리에겐 항상 축구가 있다.”는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여기서 축구를 사랑이란 단어로 바꿔보자. 어쩌면 작가는 “모든 것이 무너져도 우리에겐 항상 사랑가 있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일부일처라는 사회적 제도건 지고지순한 사랑에 대한 환상이건 그 중심에 있어야하는 건 언제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닐런지.

마지막으로 책 말미에 첨부한 참고 서적이나 웹페이지를 정리한 <참고자료>가 인상 깊다. 유추과정이 명확한, 잘 정리된 논문을 보는 것 같이 작가의 고뇌 섞인 창작과정이 진실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창작의 은밀한 부분까지 다 공개할 수 있는 당당함과 자신감에 박수를 보낸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에 대한 ‘발칙한 딴지’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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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2008-10-16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윤수 감독, 김주혁, 손예진 주연의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의 원작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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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개봉하여 인기를 모으고 있는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기 전에 동명의 원작소설을 먼저 읽었다. 한 사형수의 불행하고도 행복했던 이야기로 사랑을 통해 한명의 범죄자가 한명의 인간으로 순화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부모의 폭행과 무관심으로 버림받은 한 소년의 가슴 아픈 성장기와 사랑하던 한 여인의 병원비를 벌기 위해 벌어진 살인사건! 이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 받고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윤수와 화려한 겉보기와는 달리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던 전직 가수이자 현직 교수인 문유정. 이 둘의 어울리지 않는 만남을 통해 인간과 죄, 사랑과 용서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

인간은 누구나 선하게 태어나지만 그 후천적 환경에 의해 여러 인간형으로 자라나게 된다. 결국 사회라는 기성세대의 영향에 따라 선(善)인, 혹은 악(惡)인이 될 수 있기에 우리들은 누구나 약간의 공범자가 아닐까. 반사회적 행동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은 없더라도 이를 방조하고 묵과한 원죄를 다 벗어날 순 없을 듯싶다. 그렇다고 이런 범죄를 우리 공동의 죄로 돌리고 가만히 내버려 둘 수만은 없기에 직접적인 원인을 찾아 처벌하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특히 사형제도의 경우 이 결정 자체가 우리 스스로의 몫이기에 더 많은 논란을 일으킨다. 그들이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을 죽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그들도 한 인간이기에, 우리 사회가 품고 가야할 구성원이기에, 앞으로는 이런 불행한 이들이 없기를 바란다면 좀더 많은 관심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겠다. 단순히 ‘패륜아’로 치부해 매장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저지른 죄의 사회적 원인을 꼼꼼히 따져봐야 하지 싶다.

아~, 어렵다.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용서와 배신 같은 인간본성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정답이 없는, 인간의 존재와 함께 따라다니는 끝없는 물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해리포터>를 보면 개인의 생각과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마법의 모자가 있어 이것만 쓰면 그 사람의 인격이나 잘잘못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인간에게 그런 도구나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불완전한 현실의 불완전한 인간에게 주어진 영원한 숙제가 아닐까...

과거를 회상하면서 시작된 내용과는 달리 책 제목은 과거(~했던)가 아닌 현재(~한)의 시간이다. 진정으로 행복한 시간은 과거의 아픈 기억과 살인이라는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 이를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현재라는 점을 강조하는듯 하다. 지난날의 한 지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나가는, 진행 중의 삶, 말이다.
휴~, 긴 한숨소리에 무심코 살아온 지난날의 아쉬움들이 세어 나온다. 나와 가족들, 그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해 좀더 사랑하고 용서하지 못했을까 하는 부끄러운 생각마저 든다.
진심으로 세상을 보듬기 시작한 윤수와 유정의 ‘행복한 시간’이 촉촉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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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s678 2006-11-03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흔적 남기지 않고 가끔 님 서재에 들렀던 사람입니다. 왜 그동안 리뷰를 적지 않으셨나 했더니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다른 곳에 있는 홈피를 가꾸느라 바쁘셨나 봐요. 그래도 종종 알라딘에 리뷰 올려주세요~ 님의 리뷰를 다시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

프리즘 2006-11-05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읽고싶은 책은 '여전히' 많습니다... ^^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폰더씨 시리즈 4
앤디 앤드루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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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포함된 ‘위대한 하루’라는 문구가 언제부턴가 내 시선을 끌었다. 마치 일상 속에 감추어진 평범한 소재를 통해 보다 큰(위대한) 의미를 되집어 본다는 내용일 것 같았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를 보면서 그에 대한 거부감도 꽤 컸었다. 물론 베스트셀러가 말하는 우수함도 있겠지만 판매부수가 갖는 사회적 획일성과 반론을 할 수 없게 만드는 모범답안 같은 갑갑증에서 선뜻 읽어보진 못했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심각하지 않고 술술 읽힐 것 같은, 적당한 두께의 소설을 찾다가 한풀 꺾여버린 기세의 베스트셀러, ‘폰더 씨’를 들게 되었다.
하지만 책머리를 읽자 소설이라기보다는 ‘자기계발서’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개인적인 상황은 무시한 체 ‘창의력을 발휘해 현실을 돌파하라! 그러면 성공할 것이다’라는 식의 이상적인 원론만을 되풀이하는 부류는 잘 읽지 않았었다. 인간과 사회의 심리까지 훤히 꿰뚫고 있는 듯한 저자의 자세도 마음에 안들 뿐더러 마치 인생의 목적을 부나 명예와 같은 가시적인 결과에만 치중하는 것 같아 읽기가 불편했었다.

그렇지만 이런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형식에 역사적 사실을 곁들인 구성이나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역사적 위인들을 찾아가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인생의 조언을 듣는 과정 역시 흥미로웠다. 시간여행의 독특함과 더불어 각 위인들이 살았던 사회상에 대한 풍부한 식견이 돋보였고 역사적 사실과 픽션 사이를 교모하게 오가는 소설적 수완이 인상 깊었다.
거기다 각 단락의 말미에 적힌 지침까지 자기계발서로서의 역할에 충분한 듯 했다.

그러나 ‘자기계발’이라는 책의 목적을 충실히(?) 달성한 데서 오는 개인적 거부감은 어쩔 수가 없다. 자기를 계발하자는 명제 속에 감추어진 성공의 구도가 거슬린다.
‘사랑하라. 과욕은 버려라. 그리고 반성하라’고 좋게 타이르지만 이는 결국 경쟁을 위한 수단으로 치부될 뿐 인간으로서의 성숙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에 진실하게 보이지 않는다. 결국 사랑이나 믿음까지도 성공을 위해 연습해야할 대상이란 말이던가...

또한 책 후반에 나타난 자신의 미래 모습, 일곱 가지 경험을 실천으로 옮겨 부와 명예를 얻게 된 폰더 씨가 수많은 청중을 감동시키며 연설하는 모습은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보인다.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도취된 웃지 못 할 모습이랄까.
그렇다면 책에 언급된 화려한 조언들은 이런 외형적 성공을 목적으로 했었단 말인가, 아니면 이렇게 성공하여 베스트셀러까지 출판한 저자 자신을 은근히 강조하고 싶었던 걸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유용하고 재밌는 책이었지만 인생의 성공여부를 외형적인 가치에만 편중시켜 말한 것은 아닐까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성공해서 행복했다’기 보다는 ‘행복해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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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이야기 비룡소 걸작선 29
미하엘 엔데 지음, 로즈비타 콰드플리크 그림, 허수경 옮김 / 비룡소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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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임이랄까... 
헤리포터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지나간 요즘, 나는 나만의 동화(끝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모>를 통해 '미하엘 엔데'를 알게된 뒤부터 나에게 불기 시작한 또다른 '마법의 서풍'이다...

현실. 훔쳐온 책는 바스티안은 붉은색의 텍스트로 표현되어 있고,
환상. 그 속에서 펼쳐지는 환상세계의 모험은 푸른색의 텍스트로 나타나 있다.

멋진 구성에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마치 내가 소설의 한 부분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현실과 환상세계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야기가 내가 지금 존재하는 현실의 공간감마저 책 속에서 존재하는 환상세계로 오인 할만큼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암흑'과 '없음'로 대변되는 "무"가 점점 성장하면서 환상세계는 점점 사라지게 되고... 그에 따른 여파로 현실세계마저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잊혀져 가는 환상세계와 우리의 현실세계를 동시에 구할 수 있는 사람... 바스티안...
이 바스티안의 모험 이야기.

환상세계와 현실이 조우하면서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것 같은 느낌이다. 책 속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현실은 책 속에서 이야기된다...

환상세계로 여행을 떠난 바스티안.
어린 여제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줌으로서 환상세계는 구했지만 현실세계에서의 열등감과 환상세계의 신비함,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막강한 힘에 점점 심취하게 되면서 점점 자신의 본 모습을 잊어버리고 결국에는 과거의 기억은 물론 자신의 이름까지도 잊어버리게 된 바스티안...

마치 오늘날의 힘과 권력의 모습을 보는 듯 해 부끄럽기만 하다..
자의든 타의든 신분상승에서 오는 '힘의 맛'에 중독되어 과거의 기억과 자신의 본성마저도 잊어버리고 마는 현실은 우리의 사회를 보는 것 같아 씁쓰름하다. 사람이 계급을 이끌어 나가는 게 아니라 계급이 사람을 평가하는 오늘날처럼 말이다...
즐거움의 '환상소설'속의 서글픈 '현실세계'.

결국 바스티안은 민투르 광산에서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고, 친구(아트레유)의 도움으로 현실세계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된다.

책장을 다 덮었을 때의 느낌이란 바스티안과 함께 환상세계의 구석구석을 모험하고 돌아온 듯한 느낌이랄까. 탄탄한 스토리 전개와 장면의 전환이 놀랍기만 하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만의 환상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왕복 티켓'이리라.
인간의 상상력과 그 가치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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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만 리턴즈




세상을 구원하겠다던 어린 날의 야심은
나를 알아가는 두려움에 묻혀버리고...

하지만, 돌아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 2006/07/08
  영화 "수퍼맨 리턴즈"로 장난질...
  근데 이상한 점은 '슈퍼맨'이 아니라 '수퍼맨'이라는 것!
  ‘성-마이’를 ‘승마-이’로 불렀던 어린 날의 친구들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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