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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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는 행동’ 정도로 어렴풋이 알고 있던 나는 인터넷을 통해 <롤리타>라는 소설이 있고 거기서 이 말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적인 것이라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삼류로 취급하는 사회분위기와는 달리 <롤리타>는 이미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었기에 꼭 읽어보고 싶었다. 거기다 성과 관련된 책이라 호기심이 동했고 아동과 성이 어떻게 연결되어 이런 말이 생겨났는지도 궁금했다.
   내가 구한 책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롤리타>로, 판권이 종료되어 더 이상 구하기 힘들어 인터넷 중고서점을 통해 어렵게 구했다. 어떤이는 오래된 번역의 절판본을 웃돈까지 줘가며 사야할 이유가 있느냐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책장에 꽂힌 비슷한 디자인의 문학전집을 보다보면 왠지 한 출판사의 전집류만 계속 고집하게 된다. 어쩌면 시각적인 구색을 맞추어 놓으려는 일종의 내 과시욕일지도 모르겠다. 아뭏튼 약간의 허영심과 맞물린 호기심과 기대로 <롤리타>를 펼친다.



   어머니 없이 자란 어린 험버트는 에너벨을 사랑했지만 그 소녀는 곧 발진티푸스로 죽고만다. 하지만 에너벨과의 못다한 사랑은 어린 소녀에 대한 집착으로 발전되어 그를 따라다녔다. 성인이 된 험버트는 어린 창녀를 만나보기도하고 결혼이란 제도에 자신을 넣어보기도 했지만 가슴 한 곳은 어린 소녀에 대한 갈망으로 늘 허전했다. 그러던 중 열 두 살의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p15)를 만난다.
   “변덕스럽고, 성질 사납고, 명랑하고, 버릇없고, 안하무인인 십대 소녀의 요부 같은 우아함으로 가득 찬 아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미치도록 갖고 싶은 아이, 검은 나비 리본과 머리를 묶은 작은 핀부터 매끄러운 장딴지 아래 작은 흉터까지.” (p69)


   험버트는 롤리타와 더욱 가깝게 지내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헤이즈(롤리타의 엄마)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롤리타를 향한 애정 뿐만 아니라 성적 욕망도 함께 있었다. 헤이즈는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되지만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죽고 험버트는 롤리타의 공식적인 아버지가 된다. 그는 롤리타와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마침내 그녀를 소유하게 된다. 그는 롤리타의 아버지이자 연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어린 롤리타가 자기 또래의 이성이나 다른 곳에 흥미를 느끼게 되면서 그녀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한다. 그럴수록 그의 감시와 구속, 집착은 더욱 광적으로 변해간다.


   조금은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일어나는 주인공들의 심리변화는 <롤리타>를 더욱 깊이있게 만든다.
   자신의 삶을 회상하듯 읊조리는 험버트의 말에는 롤리타를 향한 애정과 집착, 분노가 롤러코스터처럼 격동했다. 롤리타에 대한 사랑에 핑크빛 세상을 보다가도 언제 바뀔지 모르는 그녀와의 관계에 극심한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성과 감성을 오가며 도덕적 갈등과 자기 합리화를 번갈아 되풀이하는 그의 모습은 소심한 일반인의 모습과 치밀한 범죄자의 모습까지 동시에 볼 수 있었다.
   또한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과 가족의 사랑에 목마라했던 롤리타는 아버지의 애정이 싫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방심은 결국 그녀를 구속하게 되는 단초가 되어버린 것. 후에 이런 상황을 책망하며 도망치려고도 했지만 가족에 대한 동경과 익숙해져버린 물질적 풍요에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험버트가 자신의 경험을 회고하는 형식의 이 소설에서 그는 롤리타를 진정으로 사랑했노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롤리타에 대한 육체적 집착으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의심하는 의처증 환자처럼 집요했다. 화롯불 옆, 인화성 물질을 채워가며 점점 부풀어 오르는 풍선처럼 위태위태한 집착은 끝이 없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위해서 그랬노라 말하지만 이는 사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변명일 뿐 사랑의 순수함을 빌어 행하는 범죄와 다름없어 보였다. 험버트는 이렇게 롤리타의 구덩이 속으로, 사랑을 빙자한 욕망의 감옥 속에 스스로를 묻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롤리타에 대한 광적인 집착 뒤에 숨은 애정만 놓고 본다면 그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어린 소녀였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그의 사랑에는 필시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하는 순수함도 어느 정도는 숨어있는 것 같다.
   특정한 대상을 몇 년씩이고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누구는 몇 십 년 째 결혼생활을 하며 사랑하고 있노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 제도나 자식이라는 혈연적 관계가 없다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배우자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두거나 빼앗긴 적이 없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 면에서 험버트는 자신의 사랑을, 열정을 결코 놓지 않은 범상치 않은 인물임에 틀림없다. 어린 소녀에게 병적으로 집착하고 자기 딸을 성적 노리개로 이용한 것 이상으로...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관심이 지나쳐 애초의 순수함을 잊어버렸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으리라. 사람의 욕심에는 끝이 없었기에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보다는 상대를 지배하고 소유하려는 욕망이 더 강하다. 그래서 종국에는 나와 대상은 사라지고 욕망 자체만 자신을 뒤덮고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얼굴만 봐도 좋다가고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고 그러다가 입맞춤까지 상상하게 되지 않던가. 그렇기에 <롤리타>는 성도착증 환자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숨겨진 욕망이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과유불급이라는 고사성어처럼 지나치면 오히려 화를 부르는 것. 가끔은 좀 더 여유를 갖고 제3자의 입장에서 관조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지 싶다. 사랑할수록 놓아주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한발 떨어진 여유가 우리의 관심을, 사랑을 더 질기고 오래토록 유지해주는 비결이지 싶다.

 


   마지막으로 민음사 판 <롤리타>의 번역에 대해서도 한마디 안할 수 없다. 글은 희극과 서사시를 넘나들며 독백과 회상을 통해 독자, 혹은 청중이나 관객에게 롤리타에 대한 애정을 설명하고 있어 쉽게 읽히는 편이 아니다. 험버트의 감정 기복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글은 책을 읽는 나를 더욱 고달프게 했다.
   특히 서로 다른 언어를 연결시켜주는 번역가의 입장에서는 더욱 곤혹스러웠으리라. 하지만 번역서와 대면할 수밖에 없는 일반 독자의 경우, 난해한 문맥을 접하다보면 번역가의 역량에 따른 문제가 아닌지부터 의심하게 되고, 나아가 원문의 가치마져 혼란스러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민음사판 <롤리타>와 함께 최근에 판권을 구입해 새롭게 출판한 문학동네판 <롤리타>에 대한 평을 찾아봤다. 두 출판사의 번역을 놓고 갑을박논이 많았지만 전체적으로는, 민음사(권태영)는 원문에 충실하려 했지만 이해하기 어렵고, 문학동네(김진준)는 내용은 쉽게 들어오지만 원문의 느낌을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dehet님의 글이 기억에 남는다.
   “민음사는 미친놈이 혼자 열정적으로 중얼거리는 걸 옆에서 주워듣는 느낌이고, 문학동네는 미친놈이 날 다정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광기를 존나 무섭도록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느낌이다.” (dehet)

 

  ‘세계문학’이라는 표제를 달고 여전히 출판되고 있는 고전, 하지만 번역을 할 때 좀 더 공을 들여 신중하고 작업했으면 좋겠다. 읽기 편하면서도 원문의 분위기를 훼손하지 않도록 말이다. ‘미친놈의 열정적 중얼거림’같던 민음사판과 ‘친절한 미치광이’ 같은 문학동네판을 비교해 읽는 것도 또 다른 재미를 줄 것 같다.

 

( www.freeism.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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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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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도 소심하고 예민해 사람들과의 관계마저도 무서워했던 요조는 이런 자신을 감추기 위해 더욱 유쾌한 척 생활한다. 하지만 여러 사람과 섞일 수 밖에 없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곱상하게 생긴 외모로 인해 많은 여자들이 얽히면서 그의 삶은 서서히 침몰해갔다. 쉽게 말해 '실격'해버린 인간이었던 것.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세상은 도전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회피하고 숨어버려야 할 두려움 그 자체였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세상에 순화될 수 없는 순수함이 있었던 요조는 이런 모습의 자신을 아무렇게나 내던져버렸다. 자기혐오의 극을 향해 내달리며 자신을 '실격'시켜 버렸던 것.

  다섯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서른아홉 살에 자살에 성공한 저자(다자이 오사무)의 삶이 곳곳에 녹아 있는 것 같다. 부유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이질적인 주변 환경과 공산주의 체험, 약물 중독으로인해 방황했던 그를 느끼게 된다. 그는 <인간 실격>을 통해 현실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자신을 질타하면서 곧 닥쳐올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요조와 다자이 오사무가 스스로의 생명까지도 던져버릴만큼 이 세상이 두려운 존재였던가 반문하게 된다. 당시의 환경과 시대 상황을 직접 겪어볼 수는 없었기에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그렇다고 자살이 정당화 될 수는 없지 싶다. 어쩌면 인간만이 저지르는 가장 무모하고 비겁한 행동이 아닐까.
  간혹 '너무 순수한 나머지 자살했다'는 식의 말로 합리화시키려 하지만 이는 세상에 자신을 단련시키질 못한 자신과 그 가족의 책임이 제일 크다고 하겠다.


  책과 저자의 삶에 녹아든 허무주의가 내 삶에 영향을 끼칠까 두렵다. 그래서 이런 부류의 책은 가끔씩, 아주 가끔씩 읽어야겠다. 삶 자체가 너무 잘 나가는 것 같다거나 행복에 겨워 어찌할 줄 모르는 상황, 아니면 인생을 진정시켜줄 약간의 브레이크가 필요할 때 읽어야 할 '진정제' 혹은 '각성제'로서 말이다.

  투박한 번역이지만 우리가 살아가야할 삶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꺼리를 던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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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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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처럼 맛보는 초코케익처럼 자극적이고 달콤하다. 아래턱 침샘에서 시작된 전류는 온 몸을 전율케 했고 한 스푼에 칼로리가 얼마이겠거니 하는 생각은 잠시 잊어버리게 된다.

  갑자기 결혼을 발표하고 그 준비에 바쁜 재인과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뮤지컬 배우를 하겠다는 유희. 그리고 이들을 친구로 둔 서른 한 살의 노처녀 은수에게 느닷없이 세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우연히 알게 되어 잠자리까지 함께한 감성적인 연하남 태오, 그리고 오랫동안 친구라는 평행선을 유지하다 갑자기 프로포즈를 하는 유준, 그리고 얼마 전 회사 상사의 소개로 알개된 평범남 영수. 은수는 이렇게 세 사람과 시크하고(세련되고 멋진쫀득한 연애를 벌인다.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그녀(들)의 고분군투를 통해 우리의 '사랑'을 되돌아보게 된다. 거침없이 돌진하다가도 불안한 마음에 자꾸 뒤를 돌아보곤 했다동화 속 왕자님을 꿈꾸면서도 현실적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일탈을 꿈꾸면서도 가족의 울타리를 포기하진 않았다사랑이 위태로우면 불안하다고 징징거리고, 안정된 후에는 권태롭다고 투정하면서 욕망과 현실 사이를 위태롭게 오갔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지상최고의 명제 앞에서 엉뚱한 것에게 대부분의 정열을 쏟아 부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성에게 인정받고 싶은 자존심이나 친구와 이웃 사람들의 이목, 가족들의 이해관계에 휘말려 사랑의 참의미를 왜곡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사랑을 내세워 자신을 포장하건 합리화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대여 나의 어린애~ 그대는 휘파람 휘이~, -며 떠나가 버렸네~"

  젋은날의 사랑과 이별이 이문세의 <휘파람> 가사처럼 책장을 넘나든다. 우습기도하고 부끄럽기도 한 지난날의 기억이 연기처럼 떠오른다. 나는, 나는 그녀를 진정 사랑했던걸까...

  <달콤한 나의 도시>는 시간에 대한, 사랑에 대한, 그리고 책임에 대한 '젊음의 오마주(영화에서 존경의 표시로 다른 작품의 주요 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하는 것을 이르는 용어)'가 아닌가 싶다. 나와 이성, 타인의 경험이 결합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이 바로 사랑이니 말이다.

 

  * 책은 총 9부로 나눠져 있는데 각 장 앞에는 권신아 님의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책 표지의 그림과 함께 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 삽화다책의 내용과 일러스트를 비교해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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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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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29일

  발하임으로 이주한 베르테르는 법관의 딸이자 일곱 명의 동생을 거느린 로테를 알게 되고 첫눈에 반해버린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알베르트와 약혼한 사이. 그러나 베르테르의 사랑은 더욱 깊어만 간다.

  1772년 독일판 '사랑과 전쟁'이 시작된 것...

 

2013년 7월 1일

  괴테의 대표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두 번 연속해서 읽는다. 처음에는 민음사(박찬기 옮김)에서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출간된 단행본을 읽었다. 하지만 음정, 박자가 엉망인 사랑의 노래를 듣는 기분이랄까. 베르테르의 애절한 마음은 알겠지만 앞 뒤 문맥이 맞지 않거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이 이어지면서 책 속에 담겨진 깊은 여운을 느끼기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물론 베르테르와의 만남을 이렇게 끝마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온갖 매체를 통해 익히 들어온 괴테의 명성에 비해서는 내가 느낀 감흥은 터무니없이 작았기에 뭔가 놓쳐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결국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집 책장에 놓여있던 <파우스트/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오늘의 책, 이효상 옮김)을 꺼내 베르테르의 이야기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민음사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출판사인데다 <파우스트>라는 공룡과 함께 엮어진 형태라 미덥지는 못했다. 하지만 몇 페이지를 넘기자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문장이 이전 책과는 확연히 달랐다. 글을 읽는 눈이 편해지면서 베르테르의 행적을 쫓는 내 마음도 훨씬 부드러워졌다. 그의 눈으로 로체를 보고, 그가 되어 그녀의 사랑했다. 그리고 그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번역에 따라 글의 느낌이 이렇게나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세삼 느끼게 된다. 번역의 중요함을 세삼 실감하는 오늘이다.

 

2013년 7월 2일

  로테에게 빠져든 베르테르의 삶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녀의 존재는 세상을 온통 핑크빛으로 만들어버렸고 자신의 존재 이유가 되었다. 

  설레임과 망설임, 질투심이 뒤엉킨 그의 삶을 보면서 잊고 있었던 오래 전 내 모습이 생각났다. 그땐 얼마나 마음 졸이며 보고 싶었던지, 또한 사소한 일에도 얼마나 가슴 아파했는지, 그녀를 쫓아 세상 끝까지라도 내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직시하게 만드는 법. 내 전부일 것 같던 사랑도 따지고 보면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한순간의 욕심이었으며 내가 집착한 것은 어쩌면 그녀의 입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낭만청년, 베르테르도 좀 더 시간을 갖고 자신을 돌아봤으면 좋았을 것을... 

 

2013년 7월 4일

  약혼자가 있는 로테를 사랑했던 베르테르는 그래도 이해할만 하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로테의 미온적인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을 믿는 약혼자에게 충실하던지 아니면 파혼을 한 뒤 새 사랑을 찾아가던지 해야지... 이건 순수한 청년의 마음을 가지고 놀았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콩깍지가 씌인 베르테르의 눈에는 로테가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아름답게 비쳐졌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우유부단하고 이기적인 처녀의 욕심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오늘날 베르테르가 살았다면 온 세상으로부터 '미련한 청승덩어리'라며 손가락질을 받지나 않았을까...
  로테의 이중성은 알베르트와 결혼 후에도 계속되었다. 호감어린 눈으로 베르테를 바라보는가하면 우정을 빙자해 사랑이라는 표현도 서슴없이 썼다. 쉽게 내던진 로테의 한마디에 그녀를 오매불망 잊지 못하는 베르테르의 속은 더욱 타들어갔다. 정말 사람 헛갈리게 하는, 미쳐버리게 하는 로테!

  그녀의 모호함은 결국  베르테르를 죽게 만들지 않았을까. 우리의 삶에서도 때로는 호불호를 정확히 가릴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지 싶다.
 

2013년 7월 6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찾고 있는 베르테르. 환희 속에 그녀를 쫓다가도 결코 다가갈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막혀 좌절한다. 세상도 점점 잿빛으로 변해버렸고 삶의 의미마저 잃어버렸다. 하지만 세상의 이목이나 도덕적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체 모든 정열을 쏟아 붙는 모습만큼은 더없이 아름다워 보인다.

  엄청나게 토해내는 쓰레기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전쟁 속에서도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것은 이런 모순 속에 숨어있는 숭고함 때문이 아닐는지. 

 그렇다고 베르테르의 마지막 선택(자살)까지 옳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의 사랑이 아무리 순수하다 한들, 그의 괴로움이 아무리 크다고 한들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버리는 짓은 무척 어리석고 경솔해 보인다. 자신의 사랑이 소중했던 것처럼 그의 생명 또한 무척 소중한 존재인데 말이다.

 

열한시 지나서

  읽으면 읽을수록 괴테의 글에 매료된다. 왜 괴테를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대문호라 부르는지 실감하게 된다.

번역문으로 접한 글이라 문체가 갖고 있는 미세한 아름다움을 말하기는 그렇지만 그 속에 담겨진 생각과 사상은 상당히 인상 깊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한 시선과 주어진 삶을 정열적으로 살아가려는 의지가 전해졌다. 또한 직위나 계급 같은 허상을 뛰어넘어 인간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그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오래전에 밀쳐둔 그의 대표작 <파우스트>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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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2
정유정 지음 / 비룡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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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2007)는 <내 심장을 쏴라>(2009), <7년의 밤>(2011)를 통해 강열한 인상을 심어줬던 정유정 님의 대표작으로 그녀의 이름이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다. 유명세를 탄 하나의 작품을 통해 이전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처럼 나 역시도 연거푸 베스트셀러가 된 두 편의 소설을 읽은 후 이 책을 본 경우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전 작품들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피중인 친구의 형에게 도피자금을 전달해 주기 위해 떠나는 준호는 어머니의 속박에서 벗어나려 가출한 승주와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도망쳐온 정아, 그녀 집에서 기르던 개, 루즈벨트, 그리고 정체불명의 할아버지와 '우연히' 동행하게 된다. 하지만 서로 다른 목적으로 참여한 여행인지라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신과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가볍게만 생각했던 여행길은 어느새 고행길이 되었다. 그나마 이들을 중재하고 나선 할아버지가 있었기에 어려운 고비를 그럭저럭 넘기기는 했지만...

   스피디한 구성과 치밀한 스토리를 선보인 정유정 작가의 최근작을 미리 접한 나에게는 기대했던 것에 비해 조금은 어설픈 느낌이었다. 일단 주인공 준호와 함께 친구들의 여행 동기가 영 마음에 걸렸다. 책 곳곳에서 이번 여행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던 각자의 사연들을 설명하고는 있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가출이나 폭력과 같은 개인적인 이유는 납득이 되지만 다양한 갈등 상황을 무릅쓰며, 그리 친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뒤섞여 함께 여행한다는 설정이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또한 할아버지의 사연도 뜬금없기는 마찬가지. 전도유망한 고래잡이 선원의 우발적인 살인이나 어렵게 키운 딸을 잃는다는 설정, 삼청교육대를 거쳐 정신병원까지 가게 된 사연 등이 막장 드라마의 이야기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1980년대 광주민주항쟁과 그 이후의 여러 민주화 운동들이 너무 형식적으로 삽입된 것은 아닌지 의아했다. 민주화 운동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는 준호의 좌충우돌 여행과는 무관해 보였다. '재미'와 '의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으려다 모두 놓쳐버린 것 같이 허탈했다.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을 워낙 재밌게 읽어서인지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이 작품 이후로 그녀 작품이 일취월장했다는 의미로도 설명할 수 있겠다. 사건은 치밀해지고 인물은 더욱 복잡해지면서 정유정 님의 인기도 높아졌고 마니아층도 깊어졌다. 최근에는 <28>(2013)을 통해 또다시 '정유정 신드룸'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내가 정작 열광하는 것은 2년 정도의 주기로 계속해서 소설을 발표하고 있는 그녀의 성실성!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타성에 젓지 말고 오래도록 장수할 수 있는 소설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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