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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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나 쓸 수 있다면 그 건 소설이 아니다" 누가 한 말이지? 아무튼 소설이라고 하는 동경의 대상, 아니 엄청난 장벽을 훌쩍 뛰어넘어 제 집 드나들듯 밥벌이까지 하고 계신 김연수 님의 산문집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소설 쓰기를 주제로 글을 엮어 간다. 때로는 유모스럽게, 때로는 철학적으로, 소설의 형식과 구조를 이야기하며 어떻게 쓸 것인가 일러준다. 마치 옆집에 이사 온 소설가 아저씨와 담소를 나누듯 편안하게...

 

  하지만 역시 소설은 어렵다. 작가는 이런 저런 원칙은 집어치우고 일단 써보라고 이야기하지만 보통 사람이 쉽게 접근을 하기엔 아무래도 어렵다. "나도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에이, 그러면 개나 소나 다 소설가하게?"라며 체념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머릿 속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일단 써보라며 다섯 가지 실천적 방법까지 제시한다.

 

  1. 생각하지 말자. 생각을 생각할 생가도 하지 말자. 

  "일단 한 문장이라도 쓰자. 컴퓨터가 있다면 거기에 쓰고, 노트라면 노트에 쓰고, 냅킨밖에 없다면 냅킨에다 쓰고, ...(중략)... 한 글자라도 쓰고 나면, 우리는 비로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소설을 쓰겠다면 생각하지 말자. 쓰고 나서 생각하자." (p199)

 

  2. 쓴다. 토가 나와도 계속 쓴다.

  "소설가의 첫 번째 일은 초고를 쓰는 일이다. 그 초고를 앞에 놓고 이렇게 묻는다. 내가 모르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쓸 수 없는 건 무엇일까? 그렇게 해서 일단 모르는 것, 쓸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게 소설가의 두 번째 일이고, 모르는 것을 알고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게 세 번째 일이다." (p204)

 

  3. 서술어부터 시작해서 자기가 토해놓은 걸 치운다.

  "자기가 쓴 것을 명확하게 다듬는 일부터 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쓸 수 없는 것을 쓰기 위해서는 쓸 수 있는 걸 정확하게 쓰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어 문장에서 제일 먼저 손볼 것은 바로 서술어다." (p204)

 

  4. 어느 정도 깨끗해졌다면 감각적 정보로 문장을 바꾸되 귀찮아 죽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계속!

  "소설은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는 단어들로 문장을 쓰는 일이다. 생각이 아니라 감각이 필요하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뭐가 보이고 들리고 맛이 나고 냄새가 나고 만져지는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게 소설 문장의 시작이라면, 끝은 그렇게 알아낸 감각적 묘사를 유사한, 하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을 다른 감각적 표현으로 치환하는 일이다." (p217)

 

  5. 소설을 쓰지 않을 때도 이 세계를 감각하라.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학술적으로 아무리 떠들어봐야 한 번 안아주는 것만 못하다. 그건 못해도 너어어어무 못하다. 그러니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소설가는 늘 이 감각적 세계에 안기기를 갈망해야만 할 일이다." (p 225)

 

  그럼 어떤 소설을 쓰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에 대한 이야기 외엔 딱히 떠오르질 않는다. 아직은 세상의 이야기를 소화하고 풀어낼 재주가 없으므로 나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이야기를 적어보는 수밖에... 하지만 그건 소설이 아니라 자기 혼자 만족해서 히히덕거리는 일기일 뿐이잖아. 결국 소설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되 제3의 시선으로 자기를 느껴야할 것 같다. 그렇게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넓혀가다 보면 결국에 그럴싸한 소설 한 편이 완성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라고 지금의 생각이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소설이 어디 그리 쉽겠는가? "에이, 그러면 개나 소나 다 소설가하게?"

  소설, 과연 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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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jfjddl 2014-12-19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책이네요 http://txtbook.co.kr
 
한국단편문학선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
김동인 외 지음, 이남호 엮음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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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자> (김동인, 1925)

  80원에 홀아비에게 시집간 복녀는 평양 칠성문 바깥 빈민촌에서 생활하며 무능력한 남편을 대신해 허드렛일로 생계를 꾸려갔다. 그녀는 감독관과의 잠자리를 통해 수월하게 돈 버는 법을 터득한다. 특히 마을 지주였던 왕서방의 눈에 띄어 제법 돈을 모으게 된다. 하지만 새색시를 맞이하게 된 왕서방을 질시한 복녀는 그와의 실랑이 끝에 살해되고 만다. 복녀의 남편은 왕서방에게 30원을 받고 뇌일혈로 죽은 것으로 무마해버린다.

  감자는 발아를 위해 영양분을 모아놓는 땅속 열매지만 그 구수한 향과 맛 때문에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곤 한다. 복녀의 번지르르한 외모는 돈벌이를 수월하게 해주었지만 결국 독이 되어 자신의 명을 단축시켰다. 만약 수더분하게 땅 속에 묻혀 있었다면 더 많은 빛을 보지 않았을까...


  <발가락이 닮았다> (김동인, 1932)

  방탕한 생활로 자신의 생식능력에 회의를 갖고 있던 M은 아내의 임신 소식을 접한다. M은 자신의 생식능력을 검사해보고 싶다가도 아내의 불륜을 확인하는 꼴이 되지나 않을까 계속 망설인다. 이렇게 아이는 태어났고, 자신을 닮지 않은 것 같은 아들을 보며 존재도 희미한 증조부의 발가락을 닮지 않았냐며 자위한다.

  M은 결과적으로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행복을 유지해나가는 길을 선택했던 것인데 우리 삶도 마찬가진 것 같다. 주변의 읽을 벌통 쑤시듯 후벼 파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도 좋지만 어떤 일들은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시간과 함께 묵혀두는 것이 좋은 선택일 때가 많다. 세상 일이 수학 문제처럼 명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너무 따지지 말고 쉬엄쉬엄 살아봅세나~ 


  <빈처> (현진건, 1921)

  가난한 문학도와 그의 마누라의 순애보. 사랑만 믿고 결혼한 순수 커플의 생활고와 여기서 오는 정신적 갈등이 소소하게 그려진다. 사랑, 과연 물질의 도움 없이도 가능할까? 돈과 경제력이 결혼의 주요 덕목이 되어버린 요즘에는 신파조의 사랑타령 정도로 폄하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필요한, 잊지 말아야 할 순수함이 아닐까. 주인공의 마지막 독백은 물질만능의 오늘날을 여과시켜주는 한줄기 청량제 같았다.

  "아 나에게 위안을 주고 원조를 주는 천사여!..."


  <운수좋은 날> (현진건, 1924)

  몸이 아픈 아내의 만류에도 인력거 일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탓하지만, 그날따라 줄줄이 이어지는 행운은 그의 발목을 밖으로, 거리로 계속 내몰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갑이 두둑해질수록 그의 근심과 걱정은 깊어만 갔고 결국 밤늦게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아내는 죽어 있었다.

  진정한 행운은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가족의 안녕이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우리시대의 명재!


  <무명> (이광수, 1939)

  대표적 친일파 문인으로 알려진 이광수의 단편소설. 그래서일까 서두에 적힌 그의 약력에 더 관심이 갔다.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로 임시정부 기관지였던 <독립신문> 제작을 도왔고, 안창호화 함께 투옥되기도 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지만 그 후에는 창씨개명(가야마 미쓰로, 香山光郞)을 하고 친일활동을 했다는데 그 연유가 궁금해졌다. 어떤 사연이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시간이 되면 그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봐야겠다. 

  그래서일까 <무명> 자체는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감옥이라는 폐쇄된 공간도 그렇고 극적인 사건이 보이는 것도 아니라 집중이 되질 않았다. ... 패스~


  <물레방아> (나도향, 1925)

  나도향의 대표작이지만 에로 영화의 이미지로 더 각인된 작품이다. 그렇다고 영화의 이야기도 잘 기억나지 않는, 어중간한 상태로 기억에 남아있었다. 내용은 간단하다. 신치규은 자기 집에서 종살이를 하는 방원의 처를 꾀어 물레방아 간에서 관계를 맺는다. 이를 안 방원은 신치규를 폭행하고 옥에 갇히게 된다. 얼마 후 출소한 방원은 자신의 처를 찾아가지만 신치규의 여자가 되어버린 아내를 보고 살해한다.

  돌고 도는 물레방아처럼, 다른 남자의 여자를 빼앗아 도망쳤던 방원은 또 다른 남자에게 아내를 빼았기게 된 것. 시기하고 질투하고 빼앗으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지만, 돌고 도는 인생 속에 결국 비워내버릴 수밖에 없는 물레방아의 물통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렇게 비워내어야만 물레방아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만무방> (김유정, 1935)

  응오는 수확 철이 한참 지났지만 벼를 벨 생각을 않았다. 하긴 땀 흘려 곡식을 거둬봤자 "지주에게 도지를 제하고, 장리쌀을 제하고 색초를 제하고 보니 남는 것은 등줄기를 흐르는 식은땀이 있을 따름"이니 말이다. 

  응오의 형, 응칠이는 "꼭 해야만 할 일이 없었다. 싶으면 하고 말면 말고 그저 그뿐. 그러함에는 먹을 것이 더럭 있느냐면 있기는커녕 붙여먹을 농토조차 없는, 계집도 없고 집도 없고 자식 없고" 도둑질도 밥 먹듯이 하는 인물이었지만 동생이 키운 논에 벼 이상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격분한다. 이에 응칠은 어두운 밤을 이용해 도둑을 잡았지만... 바로 응오가 범인이었던 것.    

  자기가 키운 쌀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소작농의 한계에 화가 치밀어 오른 응칠의 모습은 조국을 생각하며 죽어가던 <붉은 산>(김동인)의 '삵'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조국이나 동생은 그들의 가슴 속에 간직한 마지막 희망이었던 것. 가슴 아픈 민초의 삶이 엿보게 된다. 


  <치숙> (채만식, 1938)

  일제치하에서 배운 것은 없지만 일본인에 잘 보여 한밑천 잡아보려는 화자의 독백 형식의 단편이다. 그의 처세술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주의 운동으로 감옥에 다녀온 후 병으로 누워있는 '아저씨'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마치 <달과 6펜스>의 이상과 현실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내선일체의 일제치하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화자와 책만 끼고 앉았다가 무능력하게 병석에 누워있는 아저씨 중에 누가 옳은지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밥만 먹고 살 수 없듯이, 그렇다고 꿈속에만 갇혀 굶어 죽을 수 없는 노릇. 이상과 현실의 적당한 균형 속에 더 나은 내일이 있지 싶다. 


  <날개> (이상, 1936)

  몇 번을 읽어도 여전히 '이상한 날개'... 패스!


  <메밀꽃 필무렵> (이효석, 1936)

  잘 읽혀지질 않았다. 문장이 귀에 들어오질 않아 인터넷으로 대략의 정보를 확인한 후 다시 읽었다. '소설을 배반한 소설가'라는 설명글을 보고서야 내 난독의 원인이 소설답지 않은 시적인 글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다시 읽은, 아니 다시 음미해본 소설, <메밀꽃 필무럽>.   

 

  왼손잡이요 곰보인 허생원은 재산마저 날려 장터를 돌아다니는 장돌뱅이가 된다. 그 허생원이 봉평장이 서던 날 같은 장돌뱅이인 조선달을 따라 충주집으로 간다. 그는 동이라는 애송이 장돌뱅이가 충주댁과 농탕치는 것에 화가 나서 뺨을 때려 쫓아버린다. 그러나 그날 밤 그들 셋은 달빛을 받으며 메밀꽃이 하얗게 핀 산길을 걷게 된다. 허생원은 젊었을 때 메밀꽃이 하얗게 핀 달밤에 개울가 물레방앗간에서 어떤 처녀와 밤을 새운 이야기를 한다. 동이도 그의 어머니 얘기를 한다. 자기는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의붓아버지 밑에서 고생을 하다가 집을 뛰쳐나왔다는 것이다.

  늙은 허생원은 냇물을 건너다 발을 헛디뎌 빠지는 바람에 동이에게 업히게 되는데, 허생원은 동이 모친의 친정이 봉평이라는 사실과 동이가 자기와 똑같이 왼손잡이인 것을 알고는 착잡한 감회에 사로잡힌다. 그들은 동이 어머니가 현재 살고 있다는 제천으로 가기로 작정하고 발길을 옮긴다. (줄거리 출처:두산백과)


  달빛에 소복이 쌓인 메밀꽃 같은 첫사랑의 기억은 언제 꺼내보아도 가슴 설레게 한다. 여물지 못해 어설프고 불완전하기에 더웃 애틋한 풋사랑은 가슴 한 켠을 따스하게 만드는 불쏘시게 같구나. 아~ 시간이여. 아~ 인생이여...

 

 

( www.frreism.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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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빅터 - 17년 동안 바보로 살았던 멘사 회장의 이야기
호아킴 데 포사다.레이먼드 조 지음, 박형동 그림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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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터의 IQ는 73. 말도 더듬고 행동도 느려 늘 놀림감이 된다. 결국 학교를 중퇴하고 자동차 정비소에서 심부름을 한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에프리사의 테일러 회장에게 발탁되어 기획업무를 하게 되지만 회장의 퇴출과 IQ 73이라는 바보 꼬리표로 인해 그도 회사도 그만둔다. 그 후로는 일용직을 전전하며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된다.

  하지만 그는 사실 IQ 173의 천재로 학교 선생님의 실수로 73이라 잘못 알려졌던 것. 그것도 모른 체 스스로를 바보라고 비하하며 17년 간을 자괴감에 살아왔던 것을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마시멜로 이야기>를 통해 세계적인 작가가 된 호아킴의 글인지라 막힘없이 읽힌다. '빅터'라는 멘사 회장의 이야기에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했다는 '트레이시'라는 여성의 이야기를 축으로 구성된다. 또한 애플에게 배신 받았지만 화려하게 컴백한 스티브잡스의 이야기가 양념으로 들어가 있어 잔잔한 감흥과 함께 극적인 재미도 대단하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의 핵심은 Be Yourself(너 자신이 되어라)라는 말로 압축되어진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흔들리며 살지 말고, 오로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라고 이야기한다.

  "바로 그걸세. 자네가 아무리 세상의 기준과 다른 길을 가고 있더라도, 자네 스스로 자신을 믿는다면 누군가는 알아줄 거야. 내가 이렇게 자네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처럼 말이지. 하지만 반대로 자네가 자신을 믿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자넬 믿어주지 않을 걸세."

 

  너무 아름답게, 완벽하게 잘 짜여진 책은 나 자신을 슈퍼맨처럼 인식시켜 무엇이든 해낼 것 같이 만든다. 하지만...

  세상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성공할 수 있던가? 책은 자칫 세상을 너무 이상적으로만 그리는 것 같다. 성공에는 선천적인 능력도 무시할 수도 없고, 장기간에 걸친 경제적 지원과 개인의 엄청난 노력이필수적이다. 거기다 운이라고 이야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함께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것이다. 이런 복합적인 과정은 생각지도 않고 그저 본인의 하고자하는 열망만 갖고 덤벼들기에는 감수해야하는 위험이 너무나 큰 것이 사실이다. 개인의 한계를 생각지 않고 그저 이상만 높게 가지라고, 마음속의 꿈만 쫓으라고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지 고민하게 된다.

 

  책은 종이 속에 남기고 현실에 충실하자. 외형적 성공에 집착하지도 말고 내적인 풍요를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하자. 크게 욕심 부리지 말고 넓게 생각하자. 내 마음처럼 당신의 마음도 그러하리라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자문하며 삶을 풀어가자. 물론 어려움은 늘 닥칠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답은 바로 우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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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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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와 결혼한 헤리엇은 하나, 둘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행복한 삶을 누렸다. 하지만 다섯째 아이, 벤이 나오면서 그들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벤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고 위협적인, 괴력을 가지고 있는데다 폭력성까지 강해 일반적인 아이와는 확연히 틀렸다. 그래서 헤리엇 부부는 벤에게서 한시도 눈을 땔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네 명의 자식에게 소홀해지면서 가족 간의 웃음도 사라졌다. 

  이를 보다 못한 남편 데이비드는 벤을 보호시설로 보내버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헤리엇이 약물에 취한 채 구속복에 결박되어 죽어가던 벤을 다시 집으로 데려온다. 벤의 귀환은 가족의 행복을 다시 앗아가 버렸고 헤리엇과 벤을 제외한 가족은 점점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평화롭던 가정에 태어난 괴물 같은 아이, 벤의 이미지는 소설을 괴기스럽게 몰아가고 급기야 호러 영화처럼 보이게도 했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니 단순한 괴물 이야기가 아니라 그 존재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다섯째 아이>는 어쩌면 세상 다수의 일반적인 시각과는 다른, '다섯째 시선'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조직 속에서 기존의 생각이나 행동이 다를 경우 주변의 따가운 시선은 각오해야 한다. 독창적인 존재의 가치는 무시된 체 집단의 편의와 이기심으로 인해 그 존재 가치는 폄하되고 왜곡되어 왔다. 

  결국 기존의 첫째, 둘째, 셋째, 넷째 질서는 마지막 다섯째 변화를 거부해 버렸고 이는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점점 외톨이로, 나아가 '사회적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

 

  하루도 끊이질 않는 사건사고를 보면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되어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안함과 세월호 사건만 보더라도 집단 이기주의와 여론몰이를 통해 소수 의견이 무시되고 왜곡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우리 사는 아직도 사건에 대한 정확한 진실은 외면한 체 집단의 이익을 위해 특정 존재와 가치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일이 너무 많다.

  <다섯째 아이>는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를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집단 이기심을 보여주는 것 같다. 소수의 의견과 가치도 존중될 수 있는 사회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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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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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런 영문도 모른 체 거대한 유리 상자에 갇히게 된 라울과 사만타. 생면부지의 상황에서 만난 이들은 서로의 존재와 가치를 부정하며 끊임없이 다툰다. 하지만 이들은 곧 자신들이 파괴된 지구의 마지막 생존자라는 것을 알고 충격에 휩싸인다. 자신들의 죽음은 곧 인류의 멸망이라는 것을...

  그들은 인류가 지속될만한 존재인지, 그냥 이렇게 멸망해버려도 좋은 하찮은 존재인지 모의 법정을 통해 판가름해보고자 한다. 하지만 인간들이 누구인가, 온갖 미사어구로 인류를 미화하더라도 역사 속에 드러난 인간의 폭력성을 쉽게 감춰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의 잔인함과 추악함 무지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날 뿐이다. 인류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인가.

  그러나 실패하고 왜곡된 역사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반성할 줄 아는 모습 또한 우리, 인간인 것이다. 결국 라울과 사만타는 인류를 지속시켜야 한다는 점에 합의한다.

  어느 날 갑자기 연속된 사각형 입방체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큐브> 영화가 생각난다. 세부적인 설명을 제외한 체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해 놓고 바로 시작되는 이야기의 모습이나 제한된 공간에 갇힌 사람들의 절박함을 통해 메세지를 전하려는 모습들이 많이 닮았다. <큐브>가 인간 내면의 공포심과 자극적인 오락거리를 보여준 반면 <인간>은 우리의 존재 의미와 가치에 대해,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위대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실제 세상은 어떠한가. 뉴스만 틀면 온갖 부조리하고 안타까운 소식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해도 점점 정나미가 떨어지게 되는 인간 세상이다. 이러다가 정말 <혹성탈출>의 유인원에게 지배당하거나 <제노사이드>의 신인류에게 멸망당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여전히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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