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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 따뜻한 신념으로 일군 작은 기적, 천종호 판사의 소년재판 이야기
천종호 지음 / 우리학교 / 2013년 2월
평점 :
소년법정의 모습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고개를 숙인 어린 나이의 피고인과 눈물로 선처를 호소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뒤로하고 판사의 엄중하고 단호한 판결이 내려지고 있었다. 폭풍같이 질타를 하는가하면 부드럽게 타이르기도 하는 모습이 검은 법복과 어울려 상당히 인상깊었다.
그리고 얼마 전 같은 학교, 같은 생활지도부에 근무하는 부장 선생님으로부터 한 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꾀 묵직한 책의 띠지에는 검은 법복 차림의 한 사람이 실려 있었다. 천종호, 얼마 전 인터넷으로 본 그의 영상이 떠오르며 고요한 법정을 울리던 그의 호통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부산에서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내고 부산대 법대를 졸업하고 부산지방법원, 부산고등법원 판사를 거처 현재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있다는 그의 내력보다 '소년부 판사'라는 말이 더욱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그만큼 그와 소년법정은 따로 때어놓고 생각할 수 없어 보였다. 때로는 호랑이의 일갈로 꾸짖기도 하고 어머니의 따스함으로 보듬어주기도 하는 모습이 그가 겪은 법정 속에 가득했다.
특히 그의 교육관, 직업관까지 엿볼 수 있는 다음 말이 인상 깊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실수를 하지 않도록 지도하는 것이 교육이라면, 실수로 인해 발생한 사태를 수습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역시 교육이다."(p135)
사건을 결과를 통해 원인을 분석하고 법의 강제성을 이용해 어린 날의 실수를 예방하려는 법조인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법의 영향력이 미치기 이전의 환경, 소년 소녀들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가정과 학교에 대한 질타도 녹아있는 듯 보였다. 대부분의 문제가 그렇듯 청소년 문제의 상당부분도 결손 가정이나 불안한 학교생활에서 시작되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말이다.
물론 청소년 문제에 있어 가정과 함께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이 바로 학교지만 밖에서 보는 학교와 실제 안에서 겪어보는 학교의 모습은 많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학생을 지도하고 징계하기에 앞서 폭력이나 왕따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교과수업에다 공문처리, 각종 업무를 처리하다보면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결국 사건에 대한 후속 조치를 하기에도 급급한 경우도 많았다.
이런 의미에서 책은 가정과 학교의 문제를 보는 시각이 지나치게 단순한 것은 아닌가 의아스럽기도 했다. 법이라는 강제성을 전제로 하기보다는 사랑과 관심을 통해 오랜 시간 공을 들이는 작업이기에 법의 시각에서 보면 모순되고 불안정하게 보일 수도 있었겠다.
젊은 날의 실수가 반복해서 일어나지 않도록 지도하는 일차적인 장소는 물론 가정과 학교다. 하지만 가정과 학교는 법정과는 달리 '실수'의 의미까지도 다시 생각해보는 근원적 교육 장소인 것이다. 단순히 사건의 결과만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의 원인의 근본적인 문제까지 들여다보는 공간이기에 사건 후의 합의사항이나 판결문만 놓고 보기에는 좀더 신중해져야겠다.
일선 교육현장에서 직접 학생들과 대면하다보니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에 등장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학교생활에서 피해를 입었거나 고통을 당한 아이들이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라 생각하니 건성으로 학생을 마주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규칙과 징계를 내세우기에 앞서 좀 더 진지하게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넸더라면 어땠을까. 보고서를 잠시 밀쳐두고서라도 이들의 어려움을 살펴봤다면 하는 아쉬움이 제일 크다.
어쩌면 학생들을 지도해야하고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만 한정짓는 이런 권위적인 태도 때문에 그들의 문제를 키웠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도 문제가 있듯 그들에게 존재하는 어려움을 인정하고 출발해야겠다. 좀 더 열린 마음으로 학생들과 마주해야겠다. 한 명씩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면 누구하나 나쁜 아이가 없지 않던가. 알고 보면 이 모든 문제는 '우리'라는 거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던가...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소외되고 방치되었던 아이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그래, 우리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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