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장마다 쏟아져 나오는 뉴욕의 향취 [나의 사적인 도시]

 

외국의 낯선 도시에 대해 이렇다 할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만약 내가 한동안이나마 살고 싶은 곳에 거주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면

노랑머리, 파란 눈의 이방인보다는 조금은 익숙한 검은 머리, 검은 눈의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중국이나 일본의 조용한 거리 어디쯤이 좋지 않을까.

이상하게도 "뉴욕"이라는 도시는 너무나 북적거릴 것 같고, 이방인에 대해 차가운 눈길이 돌아올 것만 같고 어깨가 부딪쳐 한쪽으로 살짝 물러서게 되어도 사과 같은 건 기대도 할 수 없을 것만 같고...결국은  나같은 무지렁이 한국 아줌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든다.

나는 뉴욕을 대표하는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여주인공들 중 어느 한 유형에도 감히 끼워달라고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소심녀인지라 "뉴욕"은 그저 도로시가 노란 벽돌길을 밟아 찾아가는 꿈의 도시 오즈와 동의어이다.

  

그렇기에 작가 박상미가 사적인 도시로 꼽은 "뉴욕"에 대해 지극히 사적인 얘기들을 풀어놓아도 그리 쉽게 동화될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했었다.

개인 블로그에 썼던, 일기와도 비슷한 성격의 글들을 읽고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오늘 휘트니에서 리처드 터틀의 전시를 보았다. 전시장 구석에 조그맣게 관을 만들고 조용히 거기 들어가 누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

결국 나를 깊숙이 건드리는 것은 이런 미학이다. 터틀은 가장 가난한 재료를 가장 겸손하게 사용해 뭔가 다른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사람이다.-15

 

전시장 벽에 3인치 길이의 끈을 잘라 붙여놓은 작품을 보고 저런 감상을 쏟아낼 정도의 사람이라면 나는 도저히 그 깊이있는 정신세계를 따라갈 수 없을 거라는 위화감이 들어 책을 덮어 버리려 했다.

하지만 이상한 호기심이란 놈이 기어코 몇 장 더, 몇 장 더 팔락거리며 넘기게 부추기더니

"뉴욕"이라는 곳이, 그리고 작가가 그렇게 낯설고 무시무시한 괴물류는 아닐 거라는 생각에 이르게 만들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지극히 사적인 거라고-88

얘기하는 그 솔직함과 당당함이 나를 사로잡았고

뉴욕이 자신에게 있어 중요한 도시라고 말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거의 처음부터 나에게 뉴욕이란 도시는 중요했따. 내가 태어난 도시가 아니라 내가 살기로 선택한 도시. 뉴욕은 나라는 개인에게 매우 사적인 은유였다. 내가 자라나며 불만을 품었던 중산층적 가치들의 전복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 안정과 위생과 효율보다 도전과 거침과 우회가 인정되는 곳. 불가능하게 치솟은 빌딩들처럼 위대함이 꿈꾸어지고 시도되는 장소로서의 은유. 뉴욕은 내 삶의 변명들을 뭔가 다른 것으로 바꾸어가는 데 필요한 나만의 내면적 장치였다.-88 

 

뉴욕은 이렇게 즐겨라! 라고 은밀하게, 화끈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던가?

밀집은 피하고 밀도는 즐기라는 말.

 

인류가 이렇게 작은 섬 위에 높은 빌딩들을 빽빽하게 지은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리고 이 빌딩들은 격자 위에 지어졌다.

구불거리는 골목길은 서울이나 로마에서 즐기고, 뉴욕에선 마천루가 그리는 밀도의 미학과 1점 소실 원근법의 드라마를 경험하자. -216

 

 

뉴욕에서 재즈를 즐기고 미술관을 돌아보고 칼럼을 쓰며, 한 사람의 컬렉션을 들여다 보며 '짜릿함'을 느끼기도 하는 사람.

그녀의 일상이 처음에는 내게 아무런 흥취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 같았으나 책장을 들출수록 향취가 쏟아져 나왔다.

내게는 왜 사물을 이렇게 깊이 있게 그윽히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없는 걸까.

그림을 보면 금세 싫증이 나고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걸까.

자주 좌절하게 되는 부분이 나온다.

그 때마다 꽃잎이 떨어져 예쁘게 덮인 작은 길 위에 발걸음을 확 확 내딛어 그 어여쁜 조화로움을 부숴놓고 싶어지는 충동같은 것이 불쑥 치민다.

하지만  곧 그 마음을 읽어주고 해답을 내려주는 작가의 말에 불쑥 치밀어 오른 무언가는 조용히 사그러들고 만다.  

그림은 '논문 같은 것'이라서 그림을 즐겨 보고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생래적으로 좋아하는 색, 좋아하는 스타일이 같은 기호가 있지만 그림을 보는 눈의 바탕이 될 수는 있어도 그림을 보는 능력 자체가 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질투와 편견이 섞인 이 비좁은 마음을 한 켠에 내려놓고 점점 편안한 마음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있었다.

 

자부심.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고 스스로 잘나고 최고라고 생각하고 사는, 뭔가 단단한 속내. -225

 

부자가 멋진 소파를 사는 '좋은 취향'으로 정의를 얻는다면, 가난한 이들은 '변형의 힘'을 갖는 취향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닐까. 변형의 힘이 있는 취향에는 그걸 보는 눈이 필요하다.-226

 

그녀가 쏟아내는 향취에 정신을 못 차리게 되기 전에, 나의 취향을 좀 업그레이드 시킬 필요가 있겠다, 싶다.

나만의 자부심을 드러낼 뭔가가 필요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