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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빨간책방의 유익한 책수다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빨간책방을 꾸려가는 두 인물이 작성한 서로의 프로필을 한참을 들여다봤다.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우아한 말로 덮여 있지만 몸과 마음을 거침없이 스캔한 결과 나온 예리한 분석들임이 선뜻 드러난다.

오랫동안 쌓아온 우정이나 친분이 아니라면 서로의 방어벽을 이렇게 쉽게 뚫을 수는 없는 법이다.

 

서로를 평가한 부분에서 나는 이 부분이 좋다.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쓰지만 존댓말을 벽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 다정한 사람. 여린 마음이 부서지지 않도록 다짐과 반성으로 갑옷을 만드는 사람. 그렇게 만든 갑옷의 성능을 믿지 않는 사람-김중혁이 본 이동진

 

가방성애자. 잘 있냐고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사람. 귀가 깊어 숲이 되어줄 것 같은 사람. '구들링'하며 공상을 즐기는 사람. 언어의 결과 질감에 누구보다 세심한 사람. -이동진이 본 김중혁

 

국무총리 인준을 놓고 여야가 피튀기는 세력 대결을 하고 있는 와중에, 한 인물을 두고 검증하는 방식이야 어떻든 결과가  이렇게 우아한 말들로 드러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위와 같은 프로필의 국무총리라면...국민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탈리아의 중등인지 고등 과정에서는 한 권의 책을 교과서로 삼아 일 년 동안 공부한다고 한다.

바로 단테의 장편서사시 [신곡]을 다루는 책인데, 그 책의 한 페이지 구성은 이렇다.  신곡의 시 구절이 몇 줄, 그 밑에는 각주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각주에는 시 구절 자체에 대한 설명도 있지만 오랜 세월 동안 국민 문학으로 자리잡은 "신곡"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설한 사람들의 입장이 빼곡히 적혀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시험칠 때에는 우리나라처럼 답이 정해져 있는 시험이 아니라 그 각주를 참고로 해서 각자의 이해 정도와 분석력을 평가할 수 있는 문제들을 출제하는 시험을 낸다고 한다.

일 년 동안 그렇게 [신곡] 을 이해하면 어떤 문학 작품을 대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감상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문학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작품문학 작품의 구조를 분석하고 가치를 평가하거나 작가의 창작 방법이나 창작 의도, 가치 관 등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분석하고 판단하는 작업 등으로 일반화되어 있다.

국어교육을 딱딱한 형식에 맞추어 받아온 세대들은 문학을 대할 때, 일단 작품의 형식, 작가의 이력 등을 훑어보고 대충 짐작한다.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가치관에 맞추어 새로 읽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내가 읽는 것이 맞는 건가, 작가의 의도가 이게 맞나...불안불안해 하기 일쑤다.

의미가 모호하거나 열린 결말의 문학을 대하는 경우,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데 괜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려 할 때 머뭇거리게 되고 다수의 의견에 편승하려는 경향을 띠게 된다.

 

[파이 이야기]의 결말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도 그러하다.

바다 한가운데 내던져진 약한 사람들이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인육을 먹고 결국 마지막에 살아남은 파이는 그 기억을 동물들의 이야기로 덮어버리려 한 것이다, 라는 결론에 대다수의 표가 몰린다.

어느 것이 더 마음에 드나요?라고 작가 얀 마텔이 질문을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결론에 몰표를 던지는 사람들의 창의력 부재에 빨간책방의 두 파수꾼은 이렇게 경계한다.

 

"답이 있다고 믿지 않으면 오히려 더 많은 답을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김중혁, 234

 

"나는 종이가 모자랄 걸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먼저 떨어진 것은 펜이었다. "

결국 [파이 이야기.는 종이와 펜 중에서 어느 것이 먼저 떨어질지조차 예측할 수 없는 인간들에 대한 소설이다. 그런데도 이 거대하고 신비한 이야기를 쉽게 한쪽 방향의 결론으로만 받아들이겠다고?-이동진, 235

 

우리 교육환경에서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즐길 것인가를 고민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청소년시절에 문학을 보는 시야를 틔워줄 적절한 안내를 맡아줄 "책" 또는 "인도자"가 없다는 것 또한 문제다.

대학입시에서 "논술"을 반영한다 하여 고전읽기나 논술작법 등의 열풍이 불어닥쳤었는데, 그것이 과연 올바른 읽기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슬로우 리딩. 한 권을 읽더라도 천천히 읽고 다양한 주제로 읽으면 세상을 보는 눈도 함께 열릴 텐데.

빨간 책방의 두 파수꾼, 김중혁과 이동진은 다독가이면서도 깊이 있는 독서를 하는 훈련이 된 전문가인 듯 싶다.

한 권의 책을 두고 두 명의 입장에서도 이렇게 다양하고 색다른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내니 말이다.

보통은 혼자 책을 읽고 나만의 생각을 글로 써보거나 기껏해야 다른 이들의 리뷰를 읽는 것만으로 끝이었는데, 좋은 작품을 읽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꽤 재미있겠다. 싶다.

소심한 나로서는 당장 마을 책읽기 모임에 나가기로 결정을 내리기에는 한참 망설여지는 부분이 있지만 빨간 책방의 두 파수꾼의 꼼꼼한 책 읽기는 일단 움츠러든 이 고슴도치를 움찔거리게 만들었다.

이마 언저리의 가시를 세우고 슉슉거리는 예민한 고슴도치가 책수다 떠는 아줌마가 되기까지...요원하기만 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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