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김환기-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사람들이 가득 운집해 있는 광장을 항공사진으로 촬영한 듯한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늘
새삼스러운 감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더불어 아직도 내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밀폐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장소를
공간화시키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본질적인 욕망이자 개방 지향적인 구조가 아닌가 싶다. -252
사람들에게 삶의 온갖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의 비의를 전달해주는 존재, 우체부 같은 작가
윤대녕이 쉰 살의 문턱을 넘어서며 써낸 글들은 여러번 나를 들었다 놨다 한다.
분명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데도 언뜻 언뜻 내 모습인 양, 내 마음을 거기에 얹어 읽어가게
된다.
스스로 여러 장소를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발굴해내고 거기 쌓인 더께들을 털어내자 장소에
불과했던 곳들은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폐쇄적이고 밀폐된 상태로 살아가면서 선뜻 꺼내기 힘들었을 과거의 일들을 어렵게 불러낸 보람이 있었던
게지...나같은 일반 독자의 마음에 한 점 파문이 일게 만들 정도인 것을 보면.
작가이기에 이런 웅숭깊은 글이 나온 것인지, 쉰을 마주보며 썼기 때문에 깊이가 남다른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쉰이 되어도 이런 글은 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뒤의 말은 쓰나마나 한 것이겠고, 작가이기에 라는 말은 그의 글이 주는
특별한 감동을 다소 낮잡아 쓰는 말인 것 같아 송구하다.
그가 불러모은 공간들은 다양하다. 어떻게 다 기억하고 있다가 하나씩 꺼내 썼는지 마냥 신기할
정도이지만 작가는 그 일을 해냈고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복원하는 글쓰기가 많은 순간 즐거움을 안겨주었다고 했다.
익숙한 슬픔과 낯선 희망이 한데 지져지고 볶아지는 공간인 부엌을 불러왔고, 자신의 존재가
비롯된 아득하고 영원한 공간으로서의 어머니를 "늙은 그녀"라 낯설게 부르며 기억하고 있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시절로 함축되는 공간인 영화관에서의 추억도 아련하게 떠올리고
있었고 유령들이 득실거리는 납골당으로 도서관을 이름지었다.
과거와 만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사진첩을 뒤적이는 것이다.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사진 속 인물과 장소를 여봐란 듯이 들이대며 점점 내 앞으로 떠오른다.
사진 속 장면들은 대개 행복한 기억들을 담고 있으면서 나중에까지 꼭 잊지말아 줄 것을 조용히
강요한다.
아니, 그럼. 사진으로 남아 있지 않은 기억들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내 스스로 떠올리기 싫어 일부러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기억의 어딘가에 우겨넣은 다음 꼭
걸어잠그고서 온몸으로 막고 서 있었던 그 기억은...다시 찾을 필요가 있을까?
그 아팠던 기억을 다시 떠올려서 뭐하게?
에이, 찾지 마.
그냥 잊어.
공간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복원하는 이 방법은 작가가 시도한 것인데, 함께 읽어나가면서 내
과거를 갈무리했던 방식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작가는 영화관에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봤다고 했던가? 거기서 애틋한 사랑의
기억도 함께 건져올렸다던가?
나 또한 혼자 영화보기를 즐겼던 그 시절의 일들이 떠오르면서 부산
남포동의 국도극장에서 조조영화를 한 편 보고 학교 가서 수업을 들었거나 학교 수업 마치고 보수동 책방골목의 지하 만화방에 틀어박혀 순정만화에 폭
빠져 눈이 벌개지고 머리가 멍해질 즈음에야 머리를 들었던 일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중학교 시절 참고서를 싼 값에 마련하겠다는 생각에 보수동 책방
골목을 어슬렁거리다가 무작정 전과목 참고서며 문제집을 사갔는데, 집에 가서 보니 너무나 시커먼 연필 흔적이 많이 있어서 교환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집이 그 집 같고, 이 아저씨가 그 아저씨 같아서 그만 골목 한복판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다 겨우 기억을 더듬어 새 참고서로
바꾸었던 ...아주 옛날의,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 나는 이야기.
작가는 도서관에 대한 첫인상을 엄숙하고 권태롭고 음울한 사서의 표정 때문에 납골당같다고
했는데, 나 역시 그 첫인상은 비슷했으나 이유는 달랐다.
음식점을 하며 하루종일 붙어 있던 부모님은 싸우는 일이 잦았는데, 학교 마치고 집에 오자
그날도 역시 분위기가 쎄~ 한 것이 폭풍의 눈 속으로 걸어들어간 느낌이었다.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엄마가 아빠에게 들리지 않게 소곤거리며 "도서관에 가 있어"라고 했다.
우당탕 퉁탕. 그릇 던져지는 소리와 엄마의 "악" 소리가 가방을 멘 채 몇 발짝 걸어나간 내
등뒤로 들려왔다.
눈을 질끈 감고 도서관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책 읽기는 좋아했지만 엄마의 비명을 등뒤에 매달고 생전 처음 문을 들어서게 된 도서관은 너무도
고요했다.
차라리 소리치고 그릇들이 날아다니는 그 난장판에서 엄마를 꼬옥 안아주고 있을 걸.
두려우면서도 가책이 되는 그 마음을 부여잡고 내내 고요하고 약간은 어둑한 책의 그늘에 숨어
진짜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기다리던 날의 기억은...차마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는데.
어린 시절의 상처들이 헤집어지자 더욱 아프고 쓰렸다.
과거의 삶을 꾹꾹 눌러 밟아놓고 아직 제대로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해 없었던 척, 숨죽여
살아왔던 내 비겁한 행동이 바늘 끝으로 툭 건드렸을 뿐인데 와르륵 쏟아져나오는 종기고름처럼 흘러나와 어느새 바닥에 흥건하다.
언젠가는 한 번쯤.
유약하게 삐익 삑 울고 있던 그 약하고 불쌍한 소녀를 찾아내서 토닥여 주어야지.
했는데, 그 때가 바로 지금인가.
이제 둑은 무너뜨려질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작가가 건드린 무언가에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몇 년 째 찾아가지 않고 있는 내 아빠. 지금 나의 그 무심함은 아마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무서운 길을 혼자 허위허위 걸어가던 허깨비같던 어린 아이의 가슴에 남아 있었던 상처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다가 이렇게 흘러왔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건드려진 부위는 툭 째고 꽉 짜서 소독하고 반창고를
발라두어야 한다. 그럼 가끔 호호~ 하고 불어 주면서 새살 나기를 기다리는 희망이라는 것을 붙잡고 살아가게 된다.
그 영화관과 그 만화방과 옛날 살던 그 집과 도서관.
지금은 사라지거나 변형되었을 그 공간들로부터 아련한 꿈과도 같았던 시절들을 복원하는 과정은
즐겁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다.
삐그덕. 그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해 살짝 열린 문을 들어갈지 닫고 돌아설지는 다시 나의
몫이다.
무수한 고심 끝에 힘겹게 열고 보니 입맛이 쓰다.
다디단 사탕 하나 물고 ...힘을 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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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