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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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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롱라패스 5416M에서 하울링 [히말라야 환상 방황]

 

 

 

 

정유정, 그녀가 편하게 훌러덩 벗어 놓은 옷을 주섬주섬 집어 들어 입었더니, 그녀의 옷이 내게 꼭 맞았다.

이상하게 그녀의 전생, 아니 과거의 기억들이 옷을 통해 내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었다.

부모님과 두 남동생 이야기, 집안을 짊어지고 가야했던 젊은 처자의 가혹한 성장기,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들의 이야기까지 그녀는 히말라야 높은 고지대에서 하나씩 보따리로 만들어 “영차” 내게 던졌다.

"그래, 높이 오르려고 고생하는 동안 많이 무겁고 버거웠을 짐을 내려놓으니 이제 좀 가벼워지셨나요?" 하고 물어보고 싶다.

눈이 새까만 새끼 하마를 품에 안고 있는 어미 하마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야무지고 당차면서 속이 꽉 찬, 단단한 차돌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단단한 차돌같은 그녀일지라도 쉽게 덜렁거리고 어질러놓기 대마왕인 그녀의 진면목이 여행기의 첫날부터 쏟아져나오는 대반전을 선사하기도 한다. 에세이가 아니라면 어디에서 반전매력 덩어리인 그녀를 만날 수 있단 말인가.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로 세계청소년 문학상 -그것도 제1회-을 수상하며 등단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원하는 방식을 하고 싶어서 [내 심장을 쏴라]에 도전하여 제 5회 세계문학상을 거머쥔 그녀. 그렇게 쓰기의 영역을 넓힌 그녀는 [7년의 밤]과 [28]로 연이어 히트를 쳤다. 기나긴 습작의 기간 동안 혹독한 쓰기 훈련을 했다고 알려진 그녀의 문장은 살아 있는 동물의 거친 숨소리와 더불어 뒷덜미의 곧추세운 털, 불끈거리는 혈맥 밑으로 꿀렁꿀렁 흐르는 피의 요동소리까지 느낄 수 있을 만큼 팔딱팔딱 뛰는 문장으로 나를 매료시켰다.

그런 그녀가, 이른바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다.

[28]을 쓰는 동안 여러 번 포기하고 싶었고, 초고도 두 번 이나 쓴 데다가 슬럼프도 겪었던 터라 좀 쉬고 싶기도 했을 것 같다.

후배가 내놓은 처방은 여행이었고, 그 처방을 덥석 받아든 그녀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여러 코스 중에서 환상종주(Circuit) 코스를 골랐다.

소설가 김혜나를 동반자로 선택한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준비가 진행됐다.

그리고 드디어 17일간의 히말라야 환상종주가 시작되었다.

 

세수도 못하고 용변도 못 본 채 아침을 대충 때우고 길을 나서야 하는 날의 반복, 반복.

사남매의 맏이 근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강인함’을 발산하는 정유정으로 자존심을 세우는 그녀가 왠지 안쓰러웠다. “나”를 잠시 벗어놓고 떠나는 여행인데, 아직 여행 초반이어서인지 그녀의 “나”는 지나치게 꼿꼿하게 살아 있었다.

하긴, 그게 그렇게 쉽게 벗어지면 도통한 것이지...암.

커피믹스와 마살라 없는 볶음밥으로 배를 채우는 그녀의 매 끼니는 참으로 눈물겹다. 같이 떠난 혜나는 카레도 마살라 든 음식도 잘도 먹던데..

내가 여행기를 적었다면 아침 점심 저녁 메뉴만 쓰고 땡일 텐데, 그녀의 17일은 참으로 다채롭기 그지없다.

주 활동 인물은 그녀와 혜나와 베테랑 가이드인, '뷰에 살고 뷰에 죽는' 검부 라이가 전부이지만 히말라야를 정복하면서 만나게 되는 길 위의 사람들과 음식점 혹은 작은 호텔의 주인들이 소설 속 주인공처럼 확실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나중에는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을 은근히 기대하게 될 정도였다.

특히 그녀가 전해준 쉬운 한국말 , “까자”, “뭐라꼬?” “까꽁” 3종 세트는 유머러스함의 서막에 불과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패턴의 트레킹일지라도 정유정의 입심을 만나면 군데군데 포복절도할 일이 생긴다.

아마도 유머는 그녀의 힘?

드디어 10일째 되는 날, 안나푸르나의 환상종주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점인 쏘롱라패스 등반의 날이 밝았다.

아침부터 세 번의 흉통을 느꼈고, 손전체가 짙푸르게 변하는 말단청색증까지 겪었지만, 한 발짝에 관세음보살, 두 발짝에 옴마니밧메훔 해가면서 앞으로 나아갔더니,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 쏘롱라패스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는 세상으로 돌아가 다시 내 인생을 상대할 수 있을까.

어떤 목소리가 답해왔다.

죽는 날까지. -186

 

세상을 홀릴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는데, [내 심장을 쏴라]의 승민이 앓고 있던 망막색소변성증의 증상을 구현해낼 수 없었던 그녀. 절박함에서 용기를 짜냈다는 그녀는 달도 별도 없는 캄캄한 밤에 맹수 중의 맹수 호랑이의 하울링을 들으며 야간산행을 감행했고, 승민은 호랑이의 포효 속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쏘롱라패스를 정복한 소감이 화장실이 급하다며 뛰어가는 모습으로 살짝 눙쳐지긴 했지만, 나는 분명히 보았다.

겨울왕국의 엘사여왕이 폭풍처럼 회오리치는 바람의 하울링을 정면으로 맞받아서 두 손 부르쥐며 당찬 시선으로 세상을 향해 Let it go를 외치던 그 모습과 한치 어긋남 없는 모습으로 그녀가 5416M의 쏘롱라패스를 밟고 있는 것을.

 

‘네팔병’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한 번 히말라야에 다녀오면 반드시 또 가고야 만다는 불치병이란다. 여정의 험난함과 육체적 고통 속에서 누리는 영혼의 자유로움, 온전히 자기 자신과 만나는 특별한 순간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304

 

현재의 내가 납득되지 않아서 험난한 여정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어야 했을 만큼의 절박함으로 시작한 히말라야 환상종주가 결국은 올바른 선택이었던 것일까.

한층 홀가분해진 듯한 그녀의 에필로그에 괜시리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나는 꿈속을 거닐다 온 듯한 기분으로 읽었지만 그녀에게는 지독히도 현실적인 여행이었을 터.

“정유정 작가님, 저도 작가님의 책 다 읽어보았고, 다 좋았었답니다.”

이 말이 그녀에게 또 글 한 줄 더 써나가는 데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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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12: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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