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애견 배변봉투 개똥이
















"여기다 집을 지을 생각 없어?" 1월의 어느 추운 날 아침, 많은 여행객들과 함께 말 농장에 모여 앉아 차를 마시던 중에 자시가 내게 갑자기 물었다. 대녀와 대자를 만난 다음날이었다.

"뭐? 말 농장에다가?" 나는 이 황당한 제안에 놀라 되물었다.

"맞아, 여기다가. 달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이 아름다운 곳에 말이야. 조그만 모쒀식 집을 지을 수 있어. 돈도 그리 많이 들지 않을 거야." 자시가 말했다.

"많지 않은 게 얼마인데?" 그가 내민 미끼를 물어서라기보다는 순전한 호기심에 반문했다.

자시가 답한 금액은 땅이 귀한 싱가포르의 집값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는 확실히 놀라우리만치 적은 금액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차 한 대를 사는 값보다 훨신 적은 비용이라니!

"음, 생각해볼게." 내가 말했다. 즉각적으로 머릿속에서 생각의 씨앗이 하나 심어졌다는 걸 느꼈지만 여지를 남겨두었다. (p.53)



이 책의 저자 '추 와이홍'은 싱가포르에 살면서 변호사로 일하면서 중국 변방의 루구호 주변 윈난 지역에 찾아가게 된다.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모계사회인 그곳에서 안락함을 느껴, 한 번 여행갔던 곳을 또 찾게 되고 반복해 찾게 되면서 차츰 그곳의 사람들과도 친해지게 된다. 그러자 '여기에 집을 지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게 되고, 그렇게 싱가포르에 살던 추 와이홍은 이곳에 별장처럼 또 하나의 집을 지어두게 된다. 점점 이곳을 찾는 시간이 많아지더니, 이제는 일년의 반정도를 이곳에 살게 되었다. 이곳이 고향같아서, 아늑해서, 안정감이 느껴져서.



현지인처럼 사는 것은 루구호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고 빈도가 잦아질수록 가능해졌다. 머무는 기간이 초반에는 짧다가 갈수록 길어져서 나중에는 일 년에 최소 서너 번, 한 번 올 때마다 최소 두어 달은 머물게 되었다. 갈수록 싱가포르와 루구호 사이, 숨가쁜 도시에서의 일상과 그것과는 사뭇 다른 산속의 생활리듬 사이를 오가는 데 익숙해졌다.

한 발은 싱가포르에 걸치고, 다른 발은 살던 곳과 완전히 다른 환경에 두는 생활은 마치 두 개의 나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p.90)



나는 언제나 이런 삶을 꿈꾸어 왔는데, 누군가 이런 삶을 이미 살고 있었다. 역시 세상에 나같은 사람은 나 밖에 없지만(너같은 사람은 너밖에 없었어...), 그러나 나랑 비슷한 사람은 많은가 보다. 나는 항상 이민을 가고 싶어하면서도, 그러나 이민 간 곳에서 완전히 뿌리를 내릴 생각 같은 건 없었다. 거기에 단단히 박혀있기 보다는, 거기에 거주지를 두면서도 다른 곳을 왔다갔다 하고 싶었던 거다. 나는 여기에도 있지만 거기에도 있지. 그렇게 살고 싶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정확히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국제결혼을 생각했었는데(하하하하하), 그건 내가 바라는 그 삶이 국제결혼으로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외국인하고 결혼하면 외국에 살면서 한국에 다녀갈 수 있다'는 게 내가 그린 빅픽쳐 였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종종 엄마나 아빠에게 '나 국제결혼 해도 돼?' 묻곤 했다. 어릴 땐 안된다고 하던 부모님이 나이 들고 나서는 '누가 됐든 하기나 해라' 하셨지만, 이제는 내가 생각이가 없다.... 인생......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이제는 알고 있다. 내가 살고자 하는 그 삶이 국제결혼이 아니어도 이루어질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을. 내가 돈을 많이, 그러니까 아주 많이 번다면, 나 스스로도 혼자서 충분히 여기에도 살고 저기에도 살 수 있다. 여기에도 집 있고 거기에도 집이 있어서 아, 지금은 여기 있고, 아 저기 가고 싶네, 그러면 굳이 호텔 예약 하지 않아도 그곳으로 훅- 날아가 머물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어. 그러니까, 내가 돈이 있다면... 나는 언제나 집을 두 채 가지고 싶었다. 여기와, 그리고, 그 곳에.



그 곳은 오래 미국이었다가, 호주였다가, 짧게는 포르투갈이었다가, 체코였다가 했다. 지금은 베트남이 되었지...무릇 인생이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가 없는 것이로구나..



싱가포르 변호사로서 미친 듯이 바쁘게 일하던 시절을 뼛속 깊이 기억하고 있는 나는 여전히 이전의 생활을 추억한다. 가족들을 만나러 암스테르담과 샌프란시스코로 가고, 친구들을 만나러 베이징과 런던을 찾는 일을 예나 지금이나 무척 즐기기도 한다.

또 다른 나는 여전히 자신들의 선조가 몇백 년  전에 하던 대로 농사를 짓고 생활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중국 변두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속세와 격리된 루구호로의 일탈을 좋아한다. 6년쯤 살아보니 이제 모쒀인들 사이에서 삶을 꾸려가는 게 가능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p.91)



추 와이홍 역시 혼자서 그렇게 지낸다. 혼자서 싱가포르에 그리고 모쒀인과 함께. 그 속에서 친구를 사귀고 사회에 적응해간다. 여기에서 거기로 오가는 삶은 사실 딱히 편한 건 아니지만, 그러나 그렇게 이동하는 시간과 과정은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야만 이곳은 그곳과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이 새롭게 일 년의 절반씩을 정착하게된 이곳에서 이 지역 사람들에게 환영받는다. 그녀가 이곳을 편안하게 느끼기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 역시 그녀를 편안하게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성들의 세상에서 환영받은 여성이라는 점에서, 스스로가 진정으로 수용되는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여성이 중심이 된 이 세계에서는 누구도 내가 혼자서 즐겁게 돌아다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쒀인들은 여남을 불문하고 강인한 여성의 존재에 익숙해져 있다. 모두 자기 집에서 그런 여성을 보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쒀 친구들 역시 여성을 기리는 이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것을 내가 얼마나 편안하게 느끼는지 알고 있는 듯하다. 모쒀인들과 나 사이에는 서로가 같은 마음이라는 이해가 형성되어 있다.

이것은 내가 아직까지도 완전히 소화해내지 못한 어떤 깨달음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정말 사는 동안 이렇게 나를 나 자신으로 받아들여주는 환경에서 편안하게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여성인 나를 그저 나로 존재하게끔 하고, 그럴 수 있도록 북돋아 주고,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세계에서 포근하게 보호받는 기분을 느낀다. 과장이 아니라, 목소리를 내거나 어떤 행동을 제안하는 순간에 나는 단 한 번도 의견을 묵살당한 적이 없었다.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나는 한 번도 무지와 싸우거나 적대감에 맞설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언가를 강요받는 기분을 느낀 적도, 잘못된 신념에 맞서 핏대를 세울 일도 없었다. 직관적으로, 나는 모쒀인들과 살아가는 이곳이 훨씬 집처럼 여겨졌다.

아직도 나는 어떻게 이 가모장제 부족이 고문 변호사로 살아온 여태까지의 내 삶을 부수어내고, 가슴속 깊이 페미니스트로서의 의식을 길러냈는지 생각할 때마다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p.92)




나는 누구나 자기가 살고자 하는 방향으로 살게 된다고 믿는다. 물론 내가 그리는 그 삶에 정확히, 바로 그대로 꼭 맞춘 듯 살 수 있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근접해질 수는 있다. 내가 원하는 삶, 바라는 삶이 있다면, 내 순간순간의 선택들이 바로 그 방향을 가리킬 테니까. 그러니 지금의 나는, 그간 내 선택으로 이루어진, 내가 살아오길 바랐던 모습에 가장 근접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앞으로 내 삶의 형태는, 내가 그 구체적 모습을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바라는 것에 가장 가까워질 것이다.



지난 주말 친구를 만났다. 아직 여름휴가를 다녀오지 못했던 친구는 이번주에 동생과 함께 하노이에 가기로 했단다. 오오, 좋겠다, 잘 다녀와, 좋겠다 ㅠㅠ 했는데, 친구는 '하노이에 대해 잘 몰라서 쫄린다'고 하는 거다. '너 일본도 혼자 여러차례 다녀왔는데 뭐가 쫄려, 쫄지마!' 했는데, 친구가 계속 '지금 비수기라 비행기도 싸고', '지금 가면 더워서 니가 딱 좋아하는 기후일텐데' 막 이래서, 나는 응 그렇겠지, 하고 삼겹살을 한 입 가득 넣고 먹고 있는데... 친구가 그러는 거다.


"나랑 하노이에서 주말에 놀지 않을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뭐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장 일주일 뒤에 하노이에서 놀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머 얘좀 봐, 나한테 왜이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러지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고 그 자리에서 나는 비행기표를 예약한 것이었던 것이었다. -0-


어떻게 살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어떻게 살다가 당장 일주일 뒤에 베트남 가는 비행기를 예약하는..그런 삶을 살게 되었을까. 어떻게 살다가 올 한 해에만 하노이를 세번째 가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 마침 '추 와이홍'이 점점 더 잦게, 점점 더 오래 중국 변방에 머무르게 되었다 하니, 어라, 이것은 내 얘기인가 싶어지는 것이다. 추 와이홍은 따로 집도 지었지만, 나는 집을 지을 형편은 안되네...


베트남에 이민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더니, 이민은 못가고 있지만 자주 들르는 삶을 살게 되었어... 이것 봐라, 사람은 원하는 삶에 근접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야. 내가 산 증인이다.........나도 가고 또 가고 자주 가다보면...그러다보면 누군가가 '여기에 집짓고 살아' 라고 해주지 않을까? '얼만데?' 물으면, '한국에서 자동차 한대도 안되는 값이야'라고 대답해주면 좋겠지만,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재작년이었나, 사주 봤을 때, '너 몇 년뒤엔 외국에서 산다, 영주권도 받을 거다' 했는데, 어쩌면 나 정말 베트남에 이민가게 되는걸까? 이렇게 베트남 자주 들렀다가 베트남 사람과 사랑에 빠져서.... 영주권도 받게 되는걸까?



어제 예술의 전당에 가 전시를 보고나서 쌀국수를 먹던 나의 아홉살 조카 타미는, 너무 맛있다며, 제엄마에게 그랬다 한다.



"안되겠어. 나 이모랑 베트남 가야겠어."

"왜?"

"쌀국수 먹으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타미 누구 조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홉살이 어떻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쌀국수 먹으러 베트남 간다고 하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안해..이모가 그동안 너무 먹으러 다녔지... 그런 것만 보여줘서 니가 '여행은 먹으러 가는 것' 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구나. 미안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조카가 관람한 전시는 두 가지였는데, 그중 하나가 《니키 드 생팔전》이었다고 한다. 거기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었는데,




이 설명을 가만 읽던 조카는 "이모 생각난다"고 했다는 것. 아이고 얘야 ㅠㅠ 나는 너에게 어떤 이모인거니? ㅠㅠ 너는 리틀 다락방이 된거니? (글썽)



음...나는 한 쪽 발을 여기에 한 쪽 발은 저기에 걸친 삶에 쓰려고 했던 거였는데 또 쓰다보니 조카사랑...음....흐음....




얼마전에 올린 남동생네 개똥이는 곧 [홈앤쇼핑]에 광고가 나갈 예정인데, 영상 속에서 뒷부분에 보여지는 <개똥이 에코>에 대해 주문이 들어오고 문의가 많이 온다고 한다. 오호라, 개똥이가 시작 상품인데, 사람들이 '생분해 비닐 봉투'에 관심을 가지는구나! 다른 알라디너 분도 내게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문의 주셨고.


어쩌면..남동생이 내게 별장을 지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기대)


생분해 비닐 봉투 링크는 여기 ☞ 생분해 비닐 봉투




자, 돌아와서,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모계사회에 대한 글을 읽는 것은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결혼'이 없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가족을 이루고 한 집에 사는 구성원이 그 집의 '여자'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도 신선했다. 그러나 이 책의 끝에 가보면, 슬프게도, 이곳에 가부장제가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 곳이 관광사업으로 점차 개발되면서 현금이 들어오고 그렇게 중국의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지금 젊은 모쒀인들은 결혼을 해야 한다, 결혼 전에 성관계를 지양하는 걸로 바뀌고 있다고. 이게 너무 섭섭했다. 가모장제가 더 퍼지지 못하고 어째서 가부장제가 스며들까.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필연적으로 한 몸인걸까. 그래서 자본주의 들어오기 시작하면 가부장제 따라가는 건가. 집에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대한 책이 있으니 그걸 읽어봐야겠다.


번역서 뒤의 <옮긴이의 말>은 대체 왜있는걸까, 이거 쓰는 거 옮긴이들한테도 부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데, 그래서 어떤 옮긴이의 글을 읽기를 포기하게 되는데, 이 책의 옮긴이의 말은 문장이 너무 좋았다. 앗, 이 옮긴이의 말 뭐지? 하고는, 책의 본문보다 옮긴이의 말이 더 좋은데? 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어.



이 책을 다 읽고 다음 책을 골라야 하는 시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왔다. 침대 헤드에는 여러권의 책이 있었는데, 그중에 최은영의 책이 눈에 띄었다. 음, 그래, 최은영 읽자, 라고 생각하고는 잠깐 침대에 앉아 트위터를 보는데, 배우 '고아성'의 인터뷰가 보인다. 고아성은 《애도일기》의 한 부분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오?!


내가 또 이 책이 있지. 사둔지 오래지만, 책장 어딘가에 있지. 나는 서둘러 책장 앞으로 가 어디있더라, 하고 책장을 훑는다. 그리고 찾았다! 으하하하하. 그래서 다음 읽을 책은 애도일기가 되었어.


















아아, 나는 또 그러니까 이렇게 책 사두고 쌓아두는 나 너무 좋아졌다. 이렇게 갑자기 언급된 책에 대해서 '으앗, 얼른 사서 읽자, 그런데 밤이니까 주문해도 내일 오겠지..' 하는게 아니라, 그냥 책장 앞에 가면 이미 준비되어 있어. 읽고 싶을 때 바로 읽을 수가 있는 것이야. 여러분 책 사두고 쌓아두는 게 이렇게나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더 자주 만들기 위해서, '아아 이 책은 안사뒀는데' 하는 후회 같은 거 하지 않기 위해서, 책을 더 많이 사서 쌓아두자. 당장 그러자!!



그리고 오늘 알라딘에 이런거 나온거 봤네?












너무 편할 것 같다. 책 높낮이도 조절할 수 있어.... 인생.....





남성의 외도만을 옹호하는 가부장적 관습은 뻔뻔스러우리만치 불공정하고 비논리적으로 불공평하다. 모든 인간은 같은 욕구와 열망을 가진다. 성적 쾌락은 자연스럽고 좋은 것인데, 사회는 인구의 절반에게는 그것을 즐길 자유를 허하고 나머지 절반에게서는 빼앗으려 든다. 그래서는 안 된다. (p.256)

모쒀인에게 아이는 딸이든 아들이든 언제나 엄마의 가족에 속하는 존재지 남자의 자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남자, 또 그 남자 쪽 가족의 어느 누구든 여자가 낳은 자식을 빼앗을 수는 없는 법이다.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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