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로 잘 지내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가 중심을 잘 잡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중심을 잘 잡아도 내 주변에 이상한 사람들만 있다면, 나 혼자서 중심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주변사람들, 내 가족, 내 연인, 내 친구들이 어떤 사람인가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애정과 사랑을 주고받는 것도 나에게 영향을 주지만 또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그들의 관심사가 무엇이고 그들은 어디를 바라보는지도 어쩔 수없이 내게 영향을 미치니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이니 말이다.


연인관계야말로 특히 그러한데 어떤 상대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내 가치가 크게 땅바닥으로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건 진짜 내 가치가 낮아서가 아니라 상대가 나를 하도 후려쳐서. 그래서 연애를 하면서 나는 못났네, 얘 아니면 나는 안되겠네, 내가 무식하네 등등, 자기중심성과 자기애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런 관계는 그야말로 서로에게 독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신이 사귀는 사람을 후려치는 게 도대체 무슨 득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건 결국 자기가 형편없다는 걸 인증하는 거 아닌가. 아주 많은 관계들이 호감으로 시작하고 사랑이라 말하고 발전하면서, 그러나 서로가 서로의 바닥만 보게 되기도 한다. 가장 필요한 게 가장 어려운 법인데, 그건 서로가 서로를 만나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또 함께 즐거운 것. 가끔 만나는 경우라면야 이럴 수 있겠지만, 매일 사랑을 속삭이는 사람들이 이렇게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함께 즐거우며, 또 나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고 그렇게 느끼게 만들어주는 경우는 정말 드문 것이다. 그렇기에 소중한 것이고.



며칠전부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으려고 펼치자마자 이런 문장을 만나게된다.



고전에서도 이르기를 파란 물감에 물들이면 파란색이 되고, 노란 물감에 물들이면 노란색이 된다고 했다. 지도자가 소인을 가까이 두면 정치가 소인스러워지고, 군자를 가까이 두면 군자다워진다는 뜻이다. (p.7)



내 고유의 색은 분명히 있지만, 다른 색을 만나는 순간 그 색과 섞여 나는 다른 색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색과 그리고 저 색이 섞여서 아마도 나는 지금의 이런 색이 되었을 것이고, 또 다른 색과 앞으로 만나 지금과는 또다른 색이 될 수도 있다.


살다보니 최종적으로 내 곁에 남는 친구는, 지금의 나와 가장 잘 맞는 부분의 친구들인 것 같다. 알아오며 사귀며 지내다가도 어라 이건 좀 아닌데, 하는게 여러개 나오다 보면 결국 내치게 되니까. 내가 내치기도 하고 또 내쳐지기도 할텐데, 내쳐지지 않고 오래 내 곁에 두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색이 비슷해서일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색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것들에 대해 공통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 스며들었을 때 발현되는 색이 나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이 사람이 내 옆에 있는 게 좋아서' 우리는 이렇게 곁에 두게 된 것일테다.


그렇기에 이반 일리치의 이 말은 옳다.






사실 내 인생은 대부분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된 결과이다.-71쪽














내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나는 가끔 엉망인 사람이 되기도 하고 큰 실수를 저질러 후회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든다. 오늘 아침에 출근하면서는, 몇 해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며 '내가 참 잘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나는 예의를 지키는 사람이었고, 그 상황에서 그럴 수 있었다니 대단하다..하는 생각이 들어서 셀프 쓰담을 좀 해주었다. 그 때의 나 잘했어. 나는 내 즐거움과 내 행복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어. 그 때의 나, 칭찬해, 잘했어. 오구오구.



나는 지금처럼 앞으로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좋은 기운을 받을 것이고, 또 내가 그들에게 그걸 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사랑한다면 상대로 하여금 사랑받는다는 걸 확신할 수 있게 해줄것이다. 세상 모두가 등을 진다 해도 '이 사람만큼은 계속 내편일거야' 라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다. 특히 나의 조카들에게. 이 아이들에게 나는 언제나 든든한 조력자이고 싶어. 친구들에게는 이야기를 나눌수록 더 이야기 나누고 싶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고, 연인에게는 여기에서 나는 가장 행복하구나, 편안하구나, 하는 자신의 자리를 확신할 수 있게끔 해주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예전보다 더 나은 내가 되었듯이, 내 주변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또 오늘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만.




그렇지만 그렇게 내가 만나는 사람들 틈에서도, 내가 나임을 잊지 않고 잃지 않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로 있기 위해서는 내 주변 사람들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필요한 거 아닌가. 그래야 작은 물결에도 휩쓸려서 넘어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래 문장을 읽다가는 '중심을 잘 잡아야겠다'고 새삼 다짐했다.



법가를 세운 한비와 이사는 젊은 시절 순자에게서 같이 수학했다. 그런데 이사의 재주가 한비를 따르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사는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는데, 진의 시황제가 《한비자》를 읽고 크게 감동해 한비를 만나 함게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말했다. 한비가 시황제의 부름을 받아 진나라로 가자, 한비 때문에 황제가 자신을 신임하지 않을까 두려워한 이사는 그를 모함해 죽게 만든다. (p.192)



이사에게 얼마나 재주가 있었는지 혹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사는 결코 한비가 될 수 없다. 한비를 따를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이사는 한비와 어차피 다른 사람이니까. 한비를 죽인다고 이사는 진의 시황제를 감동케 할 수는 없는 사람이다. 각자가 할 수 있는 게 있고, 그것은 다른 사람의 것과 같을 수 없다. 한비를 죽인다고 해서 황제의 총애를 받고 가장 으뜸인 사람이 될 수 있는걸까? 아니야, 거거 아니야. 왜 야광토끼도 아는 걸 너는 몰라...



'만약에 내가 너를 그녀보다 먼저 알았더라면
그래도 넌 그녀를 택했겠지 난 그냥 아닌거지'








아..갑자기 글의 슬픔의 새드니스로 흐르고 있다...

밖에는 매미가 우는데!!




아아 더우니까 일하기 싫다.

추울 때도 일하기 싫었지만..


나는 맨날 일하기가 싫어 두구두구둥- 딩가딩가~

우리가 쓰는 경제라는 말의 어원을 찾아보면, 사전에는 경세제민 또는 경국제민經國濟民 등의 줄인 말이라고 나온다. 간단히 해석하면 ‘경세‘란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며, ‘제민‘은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경세제민은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다스리는 일과 백성을 구제하는 일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여기에서 새겨봐야 할 점이 바로 경세와 제민의 관계이다.
경세제민이랑 녁에솨 제민이 따로 있거나 나란히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세상을 다스리는 일의 핵심이 바로 백성을 풍요롭게 하는 데 있다는 뜻이다. 좀 더 강하게 표현하자면, 백성을 구제하지 못한다면 왜 세상을 다스리려고 하느냐는 뜻이다. 이처럼 동양의 경세제민 사상에는 백성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하고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이 임금(요즘으로 표현하면 국가)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의무라는 윤리적인 측면이 담겨 있다. (p.14-16)

한때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선구자이자 민족주의자였다가 자진해서 친일 지식인으로 전락한 춘원 이광수 1892~1950 가 자신의 변절을 변명하기 위해 쓴 글이 <민족개조론>이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뜻밖에도 이런 궤변을 주장하는 이가 적지 않다. 가령 근대 이전까지 우리에게는 ‘민족民族‘이라는 말이 없었으므로 민족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그렇다. 민족이라는 말이 근대에 와서, 그것도 일본 학자들이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민족이라는 말이 없었으니 민족이 없었다는 주장은 마치 우리말에 그제,어제,오늘,모레,글피는 다 있지만 내일이란 말이 없으니 우리 민족에게는 내일이 없다는 주장처럼 황당하다. 어째서 내일은 알면서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을 뿐 우리 말에 ‘하제‘가 있음을 모를까? 마찬가지로 민족이라는 말이 있기 전에도 우리는 겨레나 나라라는 말을 썼다.
물론 사회,민족,국가 등과 같은 사회과학 용어들이 만들어지고 개념으로 정립되면서 사회과학이 더 발전하게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정치‘라는 말이 없었다고 정치가 없었던 것이 아니고, ‘경제‘라는 말이 없었다고 경제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p.44-45)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이런 황당한 주장을 하는 것은, 그들 머릿속에 이런저런 지식이 가득하지만 그것들 모두가 화석처럼 굳어버린 죽은 지식일 뿐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p.45)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흉악 범죄가 자주 일어나다 보니 법은 무조건 엄격해야 하고 형은 무조건 가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형벌이 아무리 가혹해도 죄를 짓고도 이리저리 빠져나가 형벌을 받지 않을 방법이 있다면 죄를 짓는 사람이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다. 백성들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면 형을 가혹하게 할 것이 아니라 법의 집행을 공정하게 해야한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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