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with 물만두 님
Q.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추리소설 읽는 즐거움은?
A.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추리소설은 해피엔딩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배드엔딩을 무척 싫어하기 때문에 얼핏 생각하면 모순적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범인이 등장하고 범죄가 발생하는 것이 결말은 그 범인을 잡고 범죄를 해결하는 엔딩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처음 추리소설을 읽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읽었지만 읽다보니 추리소설을 보면 그 시대와 사회를 알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이나 사회학을 다루는 서적은 너무 딱딱하고 이해하기 힘들지만 추리소설은 이해하기 쉽게 학문적이 아니면서도 통찰력을 가지고 그것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 때문에 점점 더 추리소설이 좋아지고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데 어떤 이유를 따진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책에서 즐거움도 얻지 못하면서 계속 읽을 수는 없겠죠? 앞에서는 좀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냥 좋아서 읽고 내가 선택했기에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뿐입니다.
Q. '내 인생의 추리소설' 5권을 꼽는다면.
A.
1) <아웃>, 기리노 나쓰오 지음
일본 추리소설가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또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구요. 이 작품은 기존의 추리소설에서 남성을 주인공으로 여성을 조연정도로 여기게 만들었던 것과 여성 탐정이라는 존재에서 더 나아가 여성이 모든 것을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여성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제게 알게 해준 작품입니다. 마사코를 통해 삶의 몫이 비록 어둠이라 평생 그 속에 갇혀 살아야 하더라도 내가 선택한 것과 타의에 의해 강요당하는 것의 차이를 깨달아야 한다는 점을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마사코는 제 여성성의 자의적 존재감을 확인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제게 아주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2) <800만가지 죽는 방법>, 로렌스 블록 지음
서양 작가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그가 창조한 탐정 매트 스커더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탐정입니다. 아쉽게도 두 권밖에 읽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 두 권으로 저를 사로잡을 수 있었던 매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필립 말로보다는 알코올 중독자이자 무면허 탐정인 매트 스커더가 더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이,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도움의 손길을 거두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800만가지 사는 방법을 역설적으로 깨닫습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존경하듯 저는 매트 스커더라는 인물 자체를 존경합니다. 그의 눈물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3) <패딩턴발 4시 50분>, 아가사 크리스티 지음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빼놓고 추리소설을 얘기할 수 없겠죠. 아가사 크리스티의 많은 탐정들 중에서 미스 마플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 할머니 탐정이 등장하는 작품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물론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 전체를 모두 좋아하지만 이 작품은 제가 좋아하는 추리와 스릴, 로맨스가 모두 들어 있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 모두를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더 좋아합니다.
4) <바르네트 탐정 사무소>, 모리스 르블랑 지음
저는 셜로키언이 아니라 뤼피니앵입니다. 홈즈 팬이 아닌 뤼팽 팬이라는 얘기죠. 홈즈보다 뤼팽을 훨씬 좋아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뤼팽의 작품 가운데 한 작품 고르고 싶었습니다. 바로 이 작품입니다. 저는 뤼팽을 괴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탐정으로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의 탐정적인 능력 또한 홈즈에 못지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뿐 아니라 뤼팽 전집을 보는 것을 권하지만 유명한 작품이 아니라 숨겨진 보물을 보는 것 또한 추리소설 독자에게는 그 자체가 근사한 모험이자 기쁨을 줍니다. 이 작품을 통해 제가 다시 한 번 뤼피니앵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답니다.
5) <위험한 외출>, 노원 지음
우리나라 장편 추리작가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읽고 느꼈던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물론 어설퍼 보이는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이 정도 작품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사실이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우리나라 작품도 꽤 봤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 작품만큼 제 마음에 와 닿은 작품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본격추리소설에서 이만한 작품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재출판되어 많은 추리 독자들이 봤으면 하는 마음 간절한 작품입니다.
Q. '올해 여름, 필독을 권하는 추리소설'이 있다면?
A.
1) <어벤저>, 프레더릭 포사이스 지음
프레더릭 포사이스는 끝까지 독자를 숨죽이게 만듭니다. 소재와 내용과 그 안에 담긴 시니컬한 작가의 냉소까지 매력적일뿐 아니라 한마디로 압도당해서 그 끝을 볼 때까지 계속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합니다. 잡으려는 자와 숨으려는 자,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손바닥에 흥건하게 베는 땀까지 작가가 하나하나 계산하고 완성을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짜임새 있는 작품입니다. 독자는 그것에 놀랄 준비를 하고 보기만 하면 됩니다. <자칼의 날>을 읽어본 독자라면 그 작품은 연습게임이었고 그 자칼이 나이가 들었다면 바로 어벤저가 되었으리라 느끼게 될 것입니다.
2) <도시탐험가들>, 데이비드 모렐 지음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는 작품인데 스릴과 서스펜스, 그리고 미스터리 그 어느 것 하나 빠트리지 않고 독자들을 사로잡는 작품입니다. 도시에 버려진 폐건물들을 탐험하는 자들, 많은 이들의 과거를 간직하고 주인 또한 독특했던 패러건 호텔, 그들의 뒤를 따라오는 누군가가 완벽하게 이 책을 잡는 순간 당신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 겁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면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본 느낌이 들어 오싹함을 느끼게 될 겁니다. 여름밤 잠은 안 오고 비까지 내린다면 반드시 이 책을 펼쳐보시길. 공포감이 배가되리라 보장합니다.
3) <잔학기>, 기리노 나쓰오 지음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어디까지가 논픽션인지 알 수 없는 <잔학기>라는 소설은 역시 기리노 나츠오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한 소녀의 이야기로만 읽을 수 없는 것은 이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회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안에서와 같이 행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우리는 더욱 봐야만 합니다. 어둡다고 잔인하다고 외면하는 것은 이 일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여름을 더욱 덥게 만들지도 모르겠지만 꼭 보시기 바랍니다.
4) <저주받은 피>,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접하기 힘든 아이슬랜드 추리소설입니다. 우리나라는 출판도 편향되어 있고 독자도 편향되어 불균형을 이루는 점이 있습니다. 추리소설이 요즘 많이 출판된다고 해도 국내 추리소설이 아닌 일본과 영어권 추리소설이 대부분입니다. 국내 작가도 외면당하는 현실에서 아이슬랜드 작품은 더욱 낯설겠죠. 하지만 그래서 더 봤으면 합니다. 봐야만 작품이 좋은지 나쁜지 평가할 수 있을 테니까요. 보석도 갈고 닦기 전에는 한낱 돌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보석 같은 작품을 부디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즘 접하기 힘든 아가사 크리스티식의 본격 탐정 추리소설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5) <살육에 이르는 병>,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이 작품을 보지 않는다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겁니다. 트릭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트릭의 진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나오기 전에 이미 명성을 알고 있었지만 정말 입이 딱 벌어지는 작품입니다. 몰입해서 읽을 수 있고 그 뒤에 무슨 바둑도 아닌데 트릭을 복기해야 하고 그러면서 살짝 제목에서 풍겨지는 끔찍함의 정도를 참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진짜 상상 못할 잔인함일까요?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라고 했습니다. 살육에 이르는 병은 그럼 무엇일까요? 안 읽으신 분 이 여름 꼭 읽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Q. 내 인생의 '첫' 추리소설은?
A. 첫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추리소설을 읽고 싶게 만든 결정적인 작품입니다. 바로 아이라 레빈의 <죽음 전의 키스>입니다. 이 작품 이후 다시는 이런 작품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 슬펐고 작가가 이런 작품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노했었습니다. 그만큼 제게는 각별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추리소설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인생의 보석 같은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Q. 재출간을 바라거나,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추리소설/작가가 있다면?
A. 고려원에서 한국작가 미스터리 컬렉션을 출판했었답니다. 그 컬렉션이 다시 한 번 출판되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 수 그라프튼의 킨지 밀흔 시리즈, 사라 파레츠키의 워쇼스키 시리즈, 오사와 아리마사의 신주쿠 상어 시리즈 등 한번 출판된 시리즈는 계속 출판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일본이나 영어권에서 벗어나 다른 나라 작품을 읽고 싶습니다. 레오나르도 파두라의 추리소설 '사계 4부작' 중 한편인 <마스카라>는 한편만 소개되고 말았죠. 이런 작품이 계속 출판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