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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비룡소 전래동화 24
성석제 글, 김세현 그림 / 비룡소 / 201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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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 그림책은 이야기마다 정말 많은 버전이 있다. 바보 온달 이야기만 해도 책을 검색하면 얼마나 많은 목록이 쏟아지는지!

글 작가, 그림 작가 모두에게 다양한 해석과 변용을 가능하게 하는 옛이야기들은 세월이 지나면 지나는 대로, 시대가 바뀌면 바뀌는 대로 더 많은 아이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최근에 본 옛이야기 그림책 중에 정말 재미있었던 것은 이영경의 <콩숙이와 팥숙이>였다. 콩쥐 팥쥐를 1950년대로 데려왔음!)


텍스트만 담아서 ‘읽기 책’으로 만들 수 있는 텍스트를 굳이 ‘그림책’으로 만드는 건, 아이들 보기 편하게... 라는 이유만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못 만들어진 이미지들 때문에 상상력이 오히려 더 가로막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개인적인 체험으로는, 어렸을 적 보았던 ‘선녀와 나무꾼’의 중국 스타일 선녀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남아서 나중에 다른 작가들이 그려낸 작고 소박한 선녀 이미지에 영 적응을 못했던 기억이 있다.)

바보 온달 이야기를 고구려 벽화 이미지를 모티브로 해서 작업했다는 <평강 공주와 바보 온달> 소개를 듣고는 무릎을 탁 쳤다. 와, 정말 대단한 생각인걸!


이 책을 다 보고 나서는, ‘고구려’라는 나라, 그 나라의 사람들과 정서 같은 것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또렷이 그려졌다. 지금은 가볼 수도 없는 땅에 있는 고구려의 흔적, 희미한 색과 선으로 남은 고구려 고분벽화 속 사람들의 모습을 이 그림책을 통해 선명하게 재현할 수 있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용감했던 여성과 한 장수의 모습은 물론...


소설가 성석제가 글을 쓰고 화가 김세현이 그림을 그린 <평강 공주와 바보 온달>은 표지의 배경, 그리고 앞 면지에 수많은 글자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천 몇백 년을 말로 전해온 이야기,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 오래된 이야기임을 회색 바탕에 깔린 자글자글한 글자들이 보여주고 있다.

묵묵히 앞을 바라보고 있는 온달, 그리고 독자들을 향해 눈을 맞추는 평강 공주. 오로지 눈동자만으로 ‘자,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시지요’ 하고 말하는 듯하다.


이후 펼쳐지는 그림책 화면들은 하나하나가 다 인상적이었다. 화가가 수없이 물감을 흩뿌려서 만들어냈을 고풍스런 질감과 아름다운 색들, 얼굴 표정은 눈동자만으로 최소화하여 표현했지만 움직이는 옷과 몸의 선으로 보이는 이러저러한 희노애락의 감정들.


성석제의 글은 물 흐르듯, 귓가에서 조곤조곤 들려오는 듯, 마치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인의 목소리처럼 자연스럽고 거치적거리는 대목이 한 군데도 없었다. 자신의 문체를 주장하기보다는 옛이야기의 어법을 자연스럽게 오늘로 가져온 듯한 문장이어서 참 읽기 편했다.


인상적이었던 몇 장면...


새들이 와서 스스럼없이 놀다 가는 온달. 그가 어떤 심성의 사람이었는지를 이 그림이 잘 보여준다.


긴 소맷자락을 날리며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 그림책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모습이다. 고구려가 어떤 흥과 멋을 가진 나라였을지를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의 주요 인물들의 감정은 조그만 눈동자를 통해 보여진다. 나는 이 장면이 왜 이렇게 좋은지... “너를 바보 온달한테나 시집 보내야겠다”고 엄포를 놓는 임금의 얼굴에는 그저 딸에 대한 사랑스러운 마음이 가득하다. 주저앉은 울보 딸내미의 얼굴에선 고집이 엿보인다.


평강을 만난 온달은 훤칠한 인물이 되었다.


비루먹은 말도 평강을 만나자 늠름한 명마가 되었다. 아, 당근을 먹여주는 평강의 모습은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지. (그런데 이렇게 실하게 생긴 당근이 이 시절에 있었을까? 궁금해서 위키피디아 정보를 찾아봤더니 1세기 경 당근은 뿌리보다는 잎사귀와 씨앗을 향채소로 먹었다고 하고, 이런 오렌지색 당근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나타났다고...)



스토리로 이야기를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인상적인 장면으로 이야기의 이미지를 남기는 것 또한 그림책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 평강과 온달의 혼례 장면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들의 사랑을 단 하나의 이미지로 표현한다면, 이런 이미지로 남지 않을까...


고구려라는 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역사로 남았다는 것을 이 그림책으로 알 수 있게 된다. 아직은 역사가 뭔지 모를 이 책의 어린 독자들이 아름다운 색과 이미지로 고구려를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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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캣 2013-02-23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