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큐에게 물어라
야마모토 겐이치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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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든 영화든 소설이든, 공식적인 논의는 회장실, 사장실, 회의실 등에서 이루어지지만, 뭔가 '냄새가 나는' '꿍꿍이가 있어보이는' '좀 치사해보이는' 거래 혹은 논의는 종종 분위기 좋고 누군가가 엿들을 염려도 없는 요정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뭐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로 극적인 요소를 위한 뒷공작의 무대가 주로 그렇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적당한 시기에 놓이는 음식은, 딱딱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대화의 시작이 될 만한 계기가 되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회장실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주변 인물들에게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쉽지만, 음식과 함께 하는 대화는 그러한 인상마저 부드럽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은 풍류를 즐기며 술잔을 기울이며 속을 터놓으며 시간을 보낼수도 있겠지만, 마냥 그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는(그리고 내가 모르는 역사의 이면에서는), '다도'를 선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차라고는 녹차밖에 모르는 나로서는 다도,라는 것도 상당히 낯설 수 밖에 없다.

고등학교 가정시간에 선생님이 한복 들고 오라고 하셔선 다도를 한 번 했었는데 차를 세 번 만에 마신다는거였나? 그것 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오히려 어린 시절 이후 입지 못하는 한복ㅡ아마 결혼한다고 맞춘 이모의 한복을 빌렸던 것 같다ㅡ을 입어보며 즐거워했던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예를 갖추어 차례차례 순서에 따라 차를 마시면, 뭐가뭔지는 몰라도 무언가 경건한 의식 같아 나도 모르게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 할 것만 같았다는 점이다.

 

 

센 리큐는 일본 센고쿠 시대 일본 다도를 정립한 것으로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라고 한다. 특히 '와비 다도'라 하여 간소하고 차분한 일본의 미의식을 정립하고 구현한 다도를 확립했다고.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임을 얻어 그는 다두(茶頭)로서 다도에 관련된 의식을 도맡았으나, 히데요시의 미움을 사 할복하여 자결했다고 한다.

 



야마모토 겐이치의 <리큐에게 물어라>는 센 리큐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중심으로 당시 일본의 모습, 특히 '다도'와 일본의 '미의식'을 그려내고 있는 소설로, 텐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과 더불어 이례적으로 제140회 나오키상 공동수상이라는 이력을 가진 소설이다.

<노보우의 성>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일본 역사소설이라는 것은 상당히 낯선 장르이고,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센고쿠 시대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언급했듯 약간은 반감마저 가지고 있는 편인데, 나오키상 수상작으로 꽤 많이 사랑을 받았다는 이유로 묘하게도 일본 역사소설, 그것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모습을 그려낸 소설을 연달아 읽게 되었다.

 

 

소설의 시작은, 희한하게도 센 리큐의 일대기의 가장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할복 전날에서부터 시작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노여움을 사 자결을 명받은 센 리큐는, 사과하는 시늉이라도 하면 용서해주겠다는 히데요시의 속내에도 불구하고 끝내 할복해 자결하고 만다.

그의 생의 마지막, 그는 끝내 품고 있던 향합을 바라본다. 단정한 아름다움이 깃든 향합에는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 센 리큐의 할복 전날에서 시작된 소설은, 센 리큐의 일대기를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며 하나하나 짚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일화에는, 항상 새끼손가락뼈가 담긴 향합이 함께하고 있었다.

 

 

일본의 미학,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와비 다도와 센 리큐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간의 일화, 그리고 더 거슬러올라가 오다 노부나가와의 만남에 이르기까지의 드라마를 재구성하고 있는 <리큐에게 물어라>.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공통적인 인물 덕택에 이시다 미쓰나리가 그의 심복이 되어 움직이는 모습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책 속에는 화려한 중국의 다기 대신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는 조선의 도자기에 관한 이야기에서 조선 통신사의 방문과 같은 역사적 사실부터 대다회를 개최하는 등 센 리큐의 입김이 닿았던 행사까지, 역사적인 일화를 묘사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와, 그 역사 속에 있던 인물간의 대화가 이루어지곤 했던 다실(茶室) 그리고 다도까지. 작가 야마모토 겐이치가 <리큐에게 물어라>는 것은 그만의 미의식이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아름다움만을 추구했던 리큐. 그에게는 오로지 '아름다움'만이 최대의 관심사였으리라. 야마모토 겐이치는, 그에 못지 않겠다는 듯 소설 속 장면 묘사에도 다도의 정갈함과 리큐의 아름다운 몸짓 하나하나를 담아냈다. 점점 과거로 돌아가는, 젊어지는 리큐를 보면서도 낯설기보다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그저 만나고 있을 뿐이었다.

 

 

 

무거운 역사소설 대신 다도에 대한,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리큐에게 물어라>.

리큐는 평생을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아갔다. 그리고, 소설의 클라이맥스이자 그 바탕에 깔려있었던 것은, 다도와 아름다움, 그 뒤의 '사랑'이었다.

차분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그의 삶처럼, 차분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되는 리큐의 이야기와 그의 사랑을 지켜봤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제각기 다르겠지만, 아름다움을 모르는 이에게 다기가 넘어가느니 차라리 깨뜨리고 말겠다,는 그의 집념은 놀랍기도 하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모습을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나는 이 소설에서 리큐의 철학이 전해지지 않았던 것일까.

역사 속 한 장면으로 돌아가 리큐와 함께 다도를 하는 듯한 감성과 상상력도 없었다. 아름다움만을 추구했던 리큐의 생애도 크게 공감을 할 수 없었다.

감성과 미의식의 부족,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이 소설 속에서 감정의 폭발과 공감 대신, 객관적으로 그저 지켜봤다.

 

 

(+)

국내 독자들에게 꽤나 많이 사랑을 받았던 것은, 리큐의 사랑이 조선에서 온 여인과의 것이어서 공감을 했던 것이 아닐까.

조선의 백자, 원서 표지에 꼿꼿하고 단아하게 서 있는 무궁화, 조선 여인의 단정함과 아름다움. 당시, 조선의 문화를 수용하던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우리로서는 꽤나 반가울 수 있었던 요소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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