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미모자를 그렸나 - 손미나의 로드 무비 fiction
손미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소설이란 건 어차피 다 자전적이란 말도 있어요. 원래 백 퍼센트 창작이란 건 없다잖아요.

어딘가에서 보고 듣고 읽고 어떤 방법으로든 머릿속에 입력된 것이 어느 순간 튀어나오는 것일 뿐.

난, 어쩜 내 얘기가 하고 싶은 건지도 몰라요. 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거고….

-p.250

 

그렇다. 소설은 현실적 허구라고들 한다. 픽션,이라고들 하지만 어쨌든 어느정도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스릴러이든, 이런 일은 이야기 속에서만 있었으면 하는 슬픈 소설이든, 오로지 작가의 상상력 하나에 의존해 이야기를 써내려가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종종, 소설 속 등장인물이 어떤 글을 쓰든, 일단 '작가'라는 직업을 달고 있으면 그가 하는 말이나 행동 등을 보면, 평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등장인물들의 입과 행동을 빌어 표현을 하는 것이 아닐까(아니 아마 맞을 것이다), 하고,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듣고있는 듯 상당히 생생하게 그리고 몰입하며 읽게 된다.





아나운서에서 여행 작가로, 그리고 이번에는 무려 소설가로 변신한 손미나씨의 첫 소설,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를 만났다.

생각해보니 그녀의 여행 에세이는, 읽어본 적이 없었다. 꽤나 많은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하나도 읽어본 게 없을까.

손미나 아나운서의 여행작가로서의 전업 이후, 부쩍 여행 에세이의 출간 그리고 여행 작가의 등장이 늘어났던 걸 생각해보면, 아마 부러워서였을 것이다.

여행하고 돌아댕기는 것도 부러운데 아니 그걸로 책까지 낸단 말이야?!하고... 그야말로 열폭이었을지도...큭큭.





뭐 어쨌든 소설을 쓰는 것도 만만치 않을 텐데, 그녀는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왠지 '그렸나' 대신 '죽였나'가 되어야할 것 같은 뉘앙스의 제목이지만, 어쨌든 수수께끼는 그것이다.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

 

 

언제나 대필작가로서 자신의 이야기는 정작 단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한 '장미'는,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라는 편집자의 설득으로 재벌의 딸이자 화가인 최정희의 자서전을 대필하기로 한다. 베일에 싸여 있는, 그녀의 연인이었던 '테오'에 대한 이야기까지 갖추고 있으면 완벽할 것 같으니 프랑스에서 그 행방과 사연을 조사해 보기로 한 채.

 

그렇게 도착한 프랑스의 한 식당에서, 가방이 뒤바뀌는 사건이 벌어진다. 겨우겨우 찾아낸 바뀐 가방의 주인 로베르를 찾아간 장미는, 우연히 그의 집에 걸려 있던 LCh라는 서명이 박힌, 너무나도 노랗고 아름다운 마을 '봄레미모자'의 정경이 담긴 그림을 발견한다. LCh, 레아 최. 이 그림은 그녀의 그림은 아닐까? 이 그림을 구입한 화랑에서라면, 레아 최의 행방을 뒤쫓을 수 있지 않을까?

마침 그림에 얽힌 사연이 자신에게도 알 필요가 있다는 로베르와 함께, 장미는 그 그림의 행적을 쫓기 시작한다ㅡ.

 

 

한편, 소설이 전개되는 동안 또 하나의 시선이 등장한다. 바로 레아의 연인이었던 테오의 이야기로, 바닷가 마을 마르세유를 벗어나 파리로 상경한 그는, 운명처럼 레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화가'라는 직업을 가진 딸이 필요했던 그녀의 아버지는 컴플렉스로 미술품을 마구잡이로 모으는 성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딸을 이용해 금지된 그림을 반입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그로 인해 레아와 테오의 사랑에는 위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과거 레아 최와 테오의 사랑, 그리고 그것을 쫓고 있는 장미는 우연히 로베르라는 남자를 만나 또 다시 사랑에 빠진다.

사랑의 도시 파리를 품고 있는 프랑스를 배경으로 손미나는 두 연인의 사랑을, 교차하며 그려냈다. 목적하는 이의 행방을 뒤쫓고, 그림을 그린 화가의 정체를 찾는 등 나름대로의 미스터리적 요소도 갖추면서.

 

결론은, 결국 사랑이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우연한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랑으로 발전한다는, 뻔하디 뻔한 소재다.

로맨스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거다. 결국 남 얘기라는 거다. 아무리 흔하디 흔한 사랑의 형태라고는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인가.

평범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스스로에게는 자기자신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자기 일'이다. 남의 이야기에 시큰둥해야 하는 것은, 남 얘기가 비슷비슷하게 들려오면 지루하기 때문이다. 그 빤한 공식에 공감을 할 수도 있지만, 바로 나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연에서 시작된 인연, 그리고 첫눈에 반해버린 사랑ㅡ심지어 이건 잘생기고 아름다운 외모 때문이었다!ㅡ은, 나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라면 상당히 낭만적이겠지만, 소설 혹은 영화 속 이야기라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익숙한 소재, 라는 것이다. 뭐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그냥 내 입맛에 맞는 소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혀 상관이 없었던 두 연인이 '장미'를 고리삼아, 아니 스스로가 고리가 되어 각자가 만나기 위해 찾아떠나는 이야기가 상당히 절묘하게 검은 글씨와 녹색 글씨가, 장미의 시선과 테오의 시선이 절묘하게 교차되어가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손미나의 솜씨는 상당히 뛰어났다. 전혀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두 연인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지게 구성을 했을까 상상해봤지만, 예정된 의문의 해소는 짐작 그대로였을지 몰라도 마지막 장면의 여운, 그리고 두 연인의 만남은 상당히 여운이 남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여행 작가로서의 경력과 재능을 듬뿍 살린 소설 속 프랑스의 정경이었다. 그들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풍경 그 자체는, 그저 손미나가 소설을 쓰는 동안 프랑스에서 머물면서 어딘가의 연인을 그대로 데려오지 않았을까, 아니 바로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었을가 싶을 정도로 아름답게 그려진 덕분일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소설가로서 첫 발을 내딛은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비록 주요한 것은 로맨스 소설이었을지라도 그 속에 '미스터리'를 나름대로 녹여낸 구성을 보여준 만큼, 다음 번에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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