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알아야 말을 잘하지 생각을 더하면 2
강승임 글, 허지영 그림 / 책속물고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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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3개월인 아가가 있다. 요새 말을 배우느냐 오물오물 뭐라고 말을 하는데, 그 말들을 잘 들어보면 다 엄마와 아빠의 말이다. 아까는 자동차를 휙 던지더니, 내 눈치를 보는게 아닌가. 그러더니 "던져" "혼나" "김@@" 이라고 말을 한다. "던지면 혼난다, 김@@ "이라고 말하던 엄마와 아빠의 말투 그대로이다. 뜨끔하다. 저 복사기 같은 녀석 앞에서 이제 뭔 말을 해야하는 걸까.


이 책은 말을 잘하기 위해 기초적으로 알아야할 것들을 설명하는 책이다. 아빠 엄마 할머니 삼촌 누나와 함께 사는 주인공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말하기 멘토들의 도움을 받아 말을 잘 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배운다.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읽는다는 느낌이 강하여 지루하거나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또한 아이들이 가장 많이 접하고, 어려워하는 부분을 다루어 주어 읽고 난 후에 얻는 지식도 상당하다.


책에서는 총 6가지 주제를 다루었는데 첫번째가 사투리이다. 주인공네 집을 놀러온 부산 사투리를 통하여 표준말에 대해 알아보는 이야기이다. 두번째는 높임말이다. 주인공의 삼촌은 참으로 철이 없다. 여기저기 모두 반말이다. 내 동생이었으면 확 쥐어박았을 법하다. 그런 삼촌을 주인공의 누나가 기지를 발휘하여 좀 더 나아지게 만든다. 어린 아이들이 보통이 아니다. 세번째는 말투와 표정이다. 담임 선생님이 여자친구가 없는 이유를 밝혀내고 심지어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아, 이 아이들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네번째 주제는 나쁜 말이다. 가장 관심이 가는 분야이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은 입만 열었다하면 욕이다. 욕을 하는 것이 멋져보이고 소속감을 들게 한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쁜 말이다. 어떻게 하면 나쁜 말을 순화할 수 있을까 작가 나름대로 고민하고 제시한 방법들이 신선하다. 알고 싶다면, 책을 읽어보시길^^ 다섯번째는 관용어다. '눈이 낮다' '콩깍지가 씌였다'는 원래의 뜻대로 사용하지 않는 말들을 통해 우리말을 풍성하게 배울 수 있게 한다. 여섯번째는 정말 마음에 드는 챕터였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순우리말로 고쳐부르는 것이다. 다정이는 곰살이로 바꾸어 부르는데, 참으로 듣기 좋은 이름이다. 내 이름은 원래도 순우리말이다. 그런데 내 이름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아이들이 지은 순우리말 이름을 보면서 정말 우리말이 예쁘구나, 내 이름이 이렇게나 예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록달록 예쁜 책 표지 중간에 세종대왕님이 웃고 계신다. 요새 인터넷을 보시면 아마 저렇게 웃지 못하시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말이야 변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말 속에 지역의 고유성, 상대에 대한 존경, 우리말의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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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주전자 - 숫자를 배우러 가자 가자 코끼리 시리즈 2
유소프 가자 글.그림 / 이콘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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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무엇일까. 솔직히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전무하였기 때문에 '뭐 토끼나 개나 그런거겠지'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들은 따로 있었다.

 

우리 아이는 어릴 적부터 코끼리를 그렇게 좋아했다. 처음 배운 베이비 사인도 코끼리였다. 토끼 같은 동물의 베이비 사인은 몇 번을 가르쳐주어도 시큰둥하더니, 코를 잡고 코끼리 흉내를 내는 베이비 사인은 한 번만 보고도 기억했다. 그림책에 코끼리라도 나오면 자기 코를 꼭 잡고 코끼리라고 표현하였다.

 

독특한 생김새 때문일까. 아이들은 코끼리를 참 좋아한다. 커다란 덩치에도 풀을 먹는 코끼리는 유순하다 생각을 하는 건지, 기다란 코가 신기한 건지 잘은 모르겠다. 그런데 아이가 좋아하는 코끼리 책이 많지 않아, 늘 보던 책만 보고 그랬었다.

 

이번에 이콘 출판사의 "가자 코끼리" 시리즈가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얼른 서평단을 신청하였다. 코끼리가 주인공인 책인데다가 그림책의 색감과 그림체가 독특하여 아기가 엄청 좋아할 거란 느낌이 들었다. 전 5권이 시리즈인 이 책은 현재 2권이 발행되었는데, 서평단으로 만나게 된 것은 <코끼리 주전자>와 <내 공은 어디에?>라는 책이다.

 

<코끼리 주전자>는 유화같은 느낌의 색감으로, 코끼리가 티타임을 갖는 내용이다. 매 장마다 다른 모양의 코끼리 주전자가 다양한 색과 형태의 찻잔들과 만난다. 코끼리 주전자가 얼마나 귀여운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아이는 보자마자 코를 잡고 마구 웃는다. 어른인 내가 봐도 아기자기한 코끼리 주전자가 귀여운데 아이들은 얼마나 좋을까. 갖가지 색깔들로 책을 꾸몄지만 어지럽거나 복잡하지 않다. 배경까지 색을 입혔음에도 주와 부가 선명하게 잘 드러나는 그림책이었다.

 

그림책의 맨 마직막 장에는 <찻잔과 과자의 개수는 몇 개일까요? <찻잔에 숨어 있는 숫자를 찾아보세요!>라며 엄마와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질문들을 제시하였다. 이제 떠듬떠듬 숫자를 읽기 시작한 우리 아이에게 참 좋은 활동이었다. 아이 혼자 숫자를 찾아 읽어가며 노는 모습에 엄마도 행복해진다.

 

<코끼리 주전자>에는 글이 없다. 오로지 그림으로 아이에게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만큼 엄마와 아이가 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림책이라 생각한다. 코끼리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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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하마 후베르타의 여행 - 왜 하기 하마는 아프리카 대륙을 홀로 떠돌게 되었을까?
시슬리 반 스트라텐 지음, 이경아 그림, 유정화 옮김 / 파랑새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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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길을 걷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에게 길은 가야할 방향이기도 하고 가게 만드는 표지판 같은 건데, 동물들은 그런 걸 어떻게 알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요. ^^ 동물들은 길이 없어 보이는 벌판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걷는데, 그건 본성일까 아니면 어떤 이끌림일까요. 정말, 동물들은 어떻게 여행을 하는 것일까요.


<아기 하마 후베르타의 여행>을 통해 길에 대한 의문은 더욱 강해집니다. 1920년 후반에 여행을 시작한 이 아기 하마는 1600 킬로미터를 홀로 여행하였습니다. 무엇이 하마 후베르타를 길로 이끌었을까요. 달빛 아래 길을 걷고 있는 후베르타의 모습은 평온하면서도, 어쩐지 너무나 쓸쓸합니다. 어디를 향하는 것인지, 어째서 혼자인 것인지, 이 책은 실존하였던 아기 하마 후베르타의 이야기를 사실적 근거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입니다.





남아프리카 대륙을 1600킬로미터나 횡단한 하마의 이야기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무리 생활을 하는 하마가 홀로 여행을 하는 것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에 나타나는 하마의 이야기도, 그리고 이미 1920년대에는 하마가 거의 멸절 상태라는 것도 말입니다.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후베르타의 이야기는, 그가 밀렵으로 인해 어머니와 무리를 잃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돼지 고기와 비슷한 하마 고기를 얻고, 단단하고 질긴 하마 가죽을 얻기위해 하마를 무차별로 잡아들였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멸종시킨 동물들이, 식물들이 단지 하마에서 그칠까요. 아기 하마 후베르타는 인간에 의해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무리가 없는 하마는 혼자 살아가기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어린 하마일 경우에는요. 후베르타는 종종 인간의 터전에 나타나 사탕수수와 작물들을 먹어 치웁니다. 책 속의 농부들의 마음도 공감이 갑니다.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지만, 농사를 망치면 일년내내 먹고 살 것이 없다는 아프리카 가난한 부족민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또한 미어집니다. 종종, 인간은 같은 인간에게도 매몰차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특히 남아프리카처럼 소수의 백인이 대부분의 부를 가지고 다수의 흑인들이 가난을 강요당하는 상황은 더욱 그러합니다. 여기서도 아프리카 부족민들은 피해자입니다. 그들은 후베르타를 존경하고 아끼고 보살피려 노력하였습니다. 그런 후베르타를 죽인 것은 백인들의 총이었습니다.



백인들은 후베르타를 보기 위해 몰려다니며 사진을 찍고 후베르타를 자극합니다. 막대기로 쿡쿡 쑤시는 것은 일상이지요. 후베르타를 동물원에 데려가기 위해, 후베르타를 잡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후베르타로서는 정말 성가셨을 것 같아요. 인간들에 의한 '여행'을 강요당한 것에도 모자라 그들의 놀잇감이 되라니요. 남아프리카에 후베르타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이런 행동들은 줄었고 후베르타는 자유의 상징으로 전세계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후베르타가 인간의 말을 안다면, 꽤나 웃음이 났을 것 같아요. 후베르타는 그저 생존할 뿐입니다. 후베르타 내부에 새겨진 로드맵을 따라 그저 걷고, 먹고, 쉬고, 자고 할 뿐입니다. 후베르타는 자유의 상징이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인간일 뿐입니다. 인간은 너무나 이기적이라서, 동물들한테도 자신들의 생각을 강요합니다. 자유의 상징이라기 보다는, 인간에 의한 피해자일 뿐입니다. 저라면 그랬을 것입니다! "날 그냥 내버려둬!"





후베르타도 저렇게 엄마의 사랑을 받던 아가였겠지요? 후베르타는 머리에 치명적인 총을 맞고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맙니다. 후에 후베르타를 죽인 사람들은 자백을 했는데, 후베르타인 줄 모르고 죽였다, 가 그들의 변명이었습니다. 후베르타가 아니면 죽여도 되는 걸까요. 이 책을 읽는 내내 후베르타가 안타까워 마음이 아프다가도 저같은 인간들이 미워 부끄러워지곤 했습니다. 아울러 동물원의 동물들도요. 세상 모든 존재가 소중하고 귀중한 것인데, 어찌하여 동물들을 강제로 동물원에 가둬두고 사람들의 유흥거리로 만들어 버릴까요. 아무리 잘해준다한들, 그들의 집과 그들의 어미만 할까요. 



후베르타의 이야기를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물원에 대한 생각, 인간의 정말 이기적인 관점들...... 한가지 다행인 점은 우리 아이들도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을 되돌아 볼 것이라 생각이었습니다. 아마, 후베르타에게 연민을 느끼고 동물원의 동물들에게도 그런 마음을 느끼겠지요.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인간들도 다른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날들이 오지 않을까요? 아기 하마 후베르타처럼 인간에 의해 여행을 강요당하는 그런 일들이 또 발생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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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쿠스 크레페 라비올리
개브리엘 해밀턴 지음, 승영조.이시아 옮김 / 돋을새김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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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도 사람도 웃음도 가득한 어린 시절

책을 덮고 문득 상상해본다. 백여명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맛있는 음식을 함께 하는 장면을. 아버지는 모닥불에 느긋하게 앉아 찾아오는 손님들을 따뜻한 불가로 이끌고, 어제부터 만든 버섯 샐러드, 쇼트케이크가 산더미처럼 쌓여 사람들을 기다리는 모습. 음식 냄새 가득한 엄마는 어디가고 늘씬한 하이힐에 꼿꼿한 자세로 샴페인을 권하는 엄마. 남자들은 커다랗고 잘 구워진 양고기를 꼬치째 들고 여자들은 하하 호호 웃으면서 함께 음식을 들러 가는 모습. 그리고 어린 여자 아이는 사람들 사이를 오가면서 시냇물에 차갑게 식힌 맥주를 날라주는 그런 모습 말이다.




요리사가 이야기를 하는 법

<쿠스쿠스 크레페 라비올리>의 저자 개브리엘 해밀턴은 어린 시절을 그렇게 보냈다. 음식과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즐겁게 행복하게 보낸 어린 시절을 가슴 깊이 추억한다. 실제 뉴욕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인 그녀는 그녀가 살아온 이야기를 세 가지 음식, 쿠스쿠스와 크레페, 라비올리에 담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쿠스쿠스, 너무나 좋아하는 크레페와 라비올리의 이름을 듣자마자 입안 가득 침이 고인다. 그녀는, 요리가 아닌 이야기로, 나의 허기진 배에 풍족함을 불어 넣었다.




쉐프의 책이라 그런가, 챕터를 나누는 방법도 신기하였다. 첫번째 장은 피(blood), 두번째 장은 뼈(bones), 세번째 장은 버터이다. 책 제목도 음식, 챕터 제목도 음식의 재료. 그녀는 정말 타고난 요리사이구나, 싶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자전적인 이 에세이는 그녀가 요리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쓴 여정기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너무나 험난했다. 부모의 갑작스러운 이혼으로 방황하게 된 그녀는 하지말라는 일은 다 하고 살았다. 어린 나이에 마약에도 손을 대고 나이를 속이고 야간 클럽에서 술을 팔기도 한다. 누구도 그녀를 잡아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 또한 누군가가 그래주기를 바랐다고 고백하였지만, 그녀는 늘 혼자였다. 개브리엘, 이라고 멋진 프랑스 이름을 지어준 엄마와 아빠도, 함께 만찬을 즐기던 형제자매들도.




그런 주인공에게 항상 힘이 되었던 것은 한그릇의 음식이었다. 요리사가 되려고 한 적은 없었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 다 함께 먹던 그 양고기 파티와 같이 즐거운 추억에서 벗어나 산더미 같이 치미창가를 튀기고 서빙을 하다보니, 어느샌가 요리사가 되어 있었다. 너무나 행복해서 버리고 싶은 유년시절의 기억이 그녀를 싱크대로 이끈 것이다. 그렇게 케이터링 쉐프에서 자신만의 가게를 낸 오너가 된다. 삶은 참 신기하다. 어떤 길을 가야할지 모를 때에도 우리를 길 위로 이끈다. 바로 어린시절을 통해서 말이다. 우리네 명절을 연상케하는 어린 시절의 파티들을 통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요리사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말한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늘 살피세요. 그 일을 평생 하게 될 테니까요."




쿠스쿠스, 어머니의 음식

쿠스쿠스는 무엇일까, 처음 책을 받고 가장 낯설었던 이름이었다. 생긴 것은 꼭 좁쌀 같았는데, 알고보니 밀로 만든 파스타라고 한다. 정말 작은 파스타. 그녀 어머니의 추억이 깃든 음식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어린 개브리엘에게는 세상 그 자체였다. 이혼 후 어째서인지 모를, 분명하지 않은 이유로 멀어진다. 무뚝뚝하고 욕도 잘하는 그녀는 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욕을 한다. 그럼에도 쿠스쿠스 샐러드는 잊혀지지 않는다. 20년 후 재회하게 된 어머니를 보며, 내가 왜 두려워했을까 생각한다. 밥 같이 생긴 쿠스쿠스. 먹으면 든든해질 것 같은 이 음식은 그녀를 있게 한 어머니에 대한 사모곡인 것이다. 





크레페, 두번째 어머니.

레즈비언이었던 그녀는 식당의 단골인 미켈레와 결혼을 한다. 어쩐지 요리사답게 이탈리아사람과 결혼을 한다. 그녀가 미켈레의 어머니를 만나러 간 날, 그의 어머니는 크레페를 대접한다. 계량도 장갑도 심지어 반지를 빼지도 않고 밀과 물만으로 파스타를 만드는 그의 어머니를 그녀는 사랑하게 된다. 그녀가 사랑하는 음식은 그런 것이다. 스스로 토끼 가죽을 벗겨내고 맛있게 숙성시킨 토끼 고기를 먹고, 양념도 듬뿍 그렇지만 계량은 하지 않는다. 분자음식이니 채식이니 그런 것은 요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저 듬뿍 담뿍 저 크레페처럼 나누어 먹기 위한 진정한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그의 어머니, 즉 시어머니는 그런 음식을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 음식들을, 그의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었다. 단순한 크레페로 말이다. 이탈리어와 영어 사이의 간격이나 멀었던 그들은 크레페로 가족이 된다.








라비올리.  결혼의 맛.

우리나라 만두 같은 이것은 파스타의 일종이다. 난 이걸 처음 같이 먹은 남자랑 결혼했다. 처음 먹어본 라비올리 맛이 너무나 환상적이어서 그랬는지, 라비올리를 반 잘라 입에 넣어주는 남자의 정성이 애틋해서였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안에 약간의 채소와 치즈를 넣은 라비올리는 정말 맛있다. 나처럼 라비올리를 좋아하는 그녀도, 그녀에게 수제 라비올리를 만들어준 남자와 결혼을 한다. 맛이 있었어야 하는데, 짜고  덜 익고.. ㅋㅋ 나중에 그녀는 회상한다. 그 때 알아봤어야 했다고. 이 결혼 생활을 말이다. 


반은 진심으로 반은 농담으로 시작한 그들의 결혼 생활은 위태위태하다. 겉보기에만 멋졌던 그의 라비올리처럼, 그녀는 늘 그에게 실망한다. 다같이 모이는 파티를 열자고 해도 싫다, 로마에 가서 트레비 분수를 보자고 해도 싫다, 여름휴가 때 도쿄에 가서 문어를 먹고 싶다는 소망도 싫다. 결혼은 정말 현실이다. 깔끔하게 카트를 끌고 조리된 음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가서 콩나물 한 봉다리에 얼마인지, 단 돈 백원이라도 깎아야 하는게 결혼이다. 실상 결혼은, 상대와의 끝임없는 타협이다. 위태위태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건 그녀뿐만은 아니겠지. 라비올리에 담긴 애정들은 어디가고 짠 맛 덜익은 맛만 입속 가득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결혼을 유지한다. 배가 고파 미칠 것 같은 이 유명 쉐프가 정말 미치기 직전에 멋진 이탈리아 샌드위치 가게를 찾아내는 남자는 미켈레뿐이다. 그런 반짝이는 한 순간이 길고 긴 결혼을 유지하게 하는 것 같다. 한 입 먹고 우물우물, 그리고 또 한 입. 그렇게 그녀의 결혼이야기도 이 책에 가득 담겨 있다. 








젖먹이 아이를 키우다보니, 저런 이탈리안 음식들은 언제 맛보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입안 가득 라비올리를 물고 있다가 달콤한 크레페를 씹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내 안의 잊혀진 맛들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책. 아마 그녀는 알파벳을 가지고도 요리를 하나 보다. 너무나 맛있는 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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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 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 1
이루리 지음 / 북극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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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의 추억

딸이기에 더욱더 아빠와 추억이 많지요. 아주 어릴 적엔 발등에 저를 올리고는 방 안을 빙그르르 춤을 추며 걸어 다녔고,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이나 언제나 등하교는 아빠가 시켜주셨지요. 토요일에 수업이 일찍 끝나면 아빠랑 순대국이나 손짜장면을 먹으러 다니곤 했습니다. 아빠는 언제나 제가 반도 먹기 전에 다 드시고는 한참을 티비를 보며 기다려주셨어요. 그렇게 인생의 모든 부분을 아빠와 함께 했는데, 이상하게도 아빠와 함께 책을 읽은 기억은 아무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 <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이 더욱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책을 위한 책

59개의 그림책에 대한 일종의 서평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책을 위한 책, 그림책 설명서 같은 책입니다. 자녀들과 평생 이야기할 추억을 쌓아 가는 그림책 읽어주는 아빠들을 위한 책이지요. 1장 우리 가족 이야기, 2장 내 친구 이야기, 3장 우리 아이가 자라는 이야기, 4장 이야기와 상상력, 5장 우리 아이가 사는 세상 이야기, 6장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라는 6가지 주제로 아빠와 혹은 엄마와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현재 북극곰 출판사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저자 이루리씨는 그 또한 동화작가이기도 하지요. 동화작가가 추천하는 그림책이라, 어떤 책들을 선정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읽지 않아도 읽은 듯한 이 감정은 뭘까요

그림책이라면 제법 읽었다는 저도 처음 보는 그림책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 중 눈물을 쏟게 했던 글도 있었어요. 바로 <무릎 딱지>입니다. 저자는 그림책의 서문이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시작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 말이 딱이었어요. 


엄마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 사실은 어젯밤이다. 아빠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난 밤새 자고 있었으니까 그동안 달라진 건 없다. 나한테 엄마는 오늘 아침에 죽은 거다.


아이의 엄마가 죽고 아이는 힘겹게 그 사실을 부정합니다. 그래서 엄마 냄새가 날아가지 않도록 한여름인데도 창문을 닫고, 엄마 목소리를 듣기 위해 무릎 딱지를 계속 떼어 냅니다. 아플 때마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니까요. 저는 <무릎딱지>를 읽은 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루리씨의 이 글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읽지 않은 그림책도 가슴으로 읽게 하는 저자의 글들이 감동적입니다. 웃음이 나게도 했다가 눈물이 나게도 하는 서평, 보신적 있으신가요?




우리 아가, 아빠랑 그림책 추억 쌓자꾸나

오늘 아이랑 같이 일단 <무릎 딱지>부터 책꽂이에 꽂아 놓으러 서점에 갑니다. 이 책은 엄마랑 읽고, <마이볼>은 내일 구입해서 아빠랑 읽게 하려구요. 59권의 보석 같은 그림책들 한 권 한 권이, 그리고 이루리 작가의 글들이 너무나 소중해요. 책마다 담겨 있는 아이의 이야기, 아이가 아빠랑, 엄마랑 이 책들을 읽었다는 것을 나중에 추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빠는 그림책도 읽어줬어.' 라고 말이에요. 아마, 평생을 살아갈 힘이 될 거에요. 이루리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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