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구판절판


매에게 잡혀 먹히는 메추라기를 보며 우울했을 때 할아버지는 말씀 하셨다.
"슬퍼하지 마라, 작은 나무야. 이게 자연의 이치라는 거다. 탈콘 매는 느린 놈을 잡아갔어. 그러면 느린 놈들이 자기를 닮은 느린 새끼를 낳지 못하거든. 또 느린 놈 알이든 빠른 놈 알이든 가리지 않고, 메추라기 알이라면 모조리 먹어치우는 땅쥐들을 주로 잡아 먹는 것도 탈콘 매들이란다. 말하자면 탈콘 매는 자연의 이치대로 사는거야. 메추라기를 도와주면서 말이야."-24쪽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 사슴을 잡을 때도 제일 좋은 놈을 잡으려 하면 안돼. 작고 느린 놈을 골라야 남은 사슴들이 더 강해지고, 그렇게 해야 우리도 두고두고 사슴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거야. 흑표범인 파코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 너도 꼭 알아두어야 하고."-25쪽

"꿀벌인 티비들만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해 두지. 그러니 곰한테도 뺏기고 너구리한테도 뺏기고... 우리 체로키한테 뺏기기도 하지. 그놈들은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하는 사람들하고 똑같아. 뒤룩뒤룩 살찐 사람들 말이야. 그런 사람들은 그러고도 또 남의 걸 뺏어오고 싶어하지.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고...." -25쪽

- 여우 슬리크, 모드, 리틀레드, 늙다리 리핏, 블루보이와 함께 했던 여우몰이의 추억. 슬리크에게 속아 넘어간 늙다리 리핏을 통해 다른 사람을 속이려하면 도리어 자기 자신이 곤란에 빠지게 된다는 교훈-56쪽

- 말(단어)이 많은 세상, 말의 뜻보다는 소리, 즉 말투를 더 마음에 새겨들으라는 할아버지...-67,128쪽

긴 행렬의 맨 뒤쪽에는 아무 쓸모 없는 텅 빈 마차가 덜그럭거리면 따라왔다. 체로키는 자신의 영혼을 마차에 팔지 않았다. 땅도 집도 모두 빼앗겼지만 체로키들은 마차가 자신들의 영혼을 빼앗아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행렬중 죽은 체로키를 처음에는 땅에 묻었지만 자꾸만 그 수가 늘어가자 병사들은 수레에 싣고 가라했다. (P73) 하지만 체로키들은 죽은 시체를 수레에 누이지 않고 직접 안고 걸었다. (P74) 1838~39년에 체로키족 13,000여명이 오클라호마 보호구역으로 강제이주 당했다, 1,300Km의 행진중 추위와 굶주림 등으로 4,000여명의 체로키가 죽었고 사람들은 그 행렬을 눈물의 여로라 불렀다. (P75)
-75쪽

벌목꾼으로부터 흰참나무를 구하기 위한 체로키들의 노력을 통해 영혼이 빠져나간 마른 통나무만을 땔감으로 쓰는 이유를 알게된 작은 나무-105쪽

재봉사라는 직업에 대한 판단은 어떤 재봉사를 만나느냐에 달려 있다.-108쪽

통중독자와 위스키 생각... 옥수수만을 사용해서 만든 할아버지의 100퍼센트 순수위스키-109쪽

위스키 제조 도중 망을 보던 리핏, 모드(냄새 맡지 못하는 개)가 알콜에 중독되고, 블루보이가 제대로 일을 함-114쪽

늙은개 링거의 명예로운 죽음.
링거가 그다지 충성스런 개가 아니어서 우리가 별로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 기분도 더 안좋았을 것이다-126~127쪽

"자, 봐라 작은 나무야. 너 하는대로 내버려 둘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단다. 만약 내가 그 송아지를 못 사게 막았더라면 너는 언제까지나 그걸 아쉬워했겠지. 그렇지 않고 너더러 사라고 했으면 송아지가 죽은 걸 내 탓으로 돌렸을 태고. 직접 해보고 깨닫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어" -141쪽

"그 사람이 가진 건 자부심 밖에 없을거야. 좀 잘못 발휘되기는 했지만. 그 친구는 그 여자애나 자기 자식 중의 누군가가 자기들이 가질 수 없는 걸 좋아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거야. 그래서 자기들이 가질 수 없는 걸 받아들고 좋아할 때도 매를 드는 거란다. 애들이 깨달을 때까지 매를 때리지. 그렇게 매를 맞고 나면 아이들도 그런 것들을 바라서는 안된다는 걸 깨닫게 된단다." (P154)
- 만일 여러분이 이미 죽었지만 사랑했던 누군가가 그리워하고 있다면 문상비둘기는 절대 그 사람을 위해서 울지 않는다. 문상비둘기는 슬퍼해줄 사람이 없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우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 비둘기가 우는 소리도 그렇게 처량하게 들리지 않는다.-166쪽

방울뱀의 기습 위기에서 헌신적으로 작은 나무를 구해준 할아버지(P171)와 작은 나무 대신 죽어가는 할아버지를 구해 내는 할머니, 자작나무 모닥불 & 치마를 투망삼아 메추라기를 잡아 할아버지의 독이 메추라기 몸으로 옮아가게 하는 지혜(P173)와 그리고, 이미 일어난 일을 놓고 잘잘못을 따져서는 안된다는 할머니 말씀-176쪽

소년시절 할아버지가 목격한 산골짜기 토지 강탈사건... 붉은 깃발의 강탈자와 정치인에 반란 사건으로 왜곡됨 -190쪽

채터누가에서 위스키를 찾아 할아버지를 방문한 땅딸보와 교활이 아저씨를 산꼭대기로의 인도, 나중에 올라온 블루버드와 할아버지, 빨간 진드기를 피해 나무가지 위에서 하룻밤...-200쪽

파종의 묘미, 땅밑에서 자라는 순무나 감자는 달 없는 밤에... 땅 위에서 자라는 옥수수나 콩, 완두콩 같은 것은 달빛 아래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다지 많은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216쪽

잘익은 수박 골라내기, 두드림 소리로... 지푸라기 회전으로...
점심시간에 수박 하나를 골라 따서 시냇물 속에 풍덩! 밀어 넣고, 늦은 오후에 큰 느릅나무 그늘에 앉아 두꺼운 껍데기를 짝 갈라먹던 낭만... 눈에 선한 부러운 풍광-221쪽

교회에서 예배 중에 웃다 울던 윌로 존. 여든 살이 넘은 순수 체로키 노인, 제로니모(아파치족 마지막 전사)와 같은 눈에 상처. 오래전에 걸어서 인디언 연방을 찾아갔다가 3년만에 돌아온 뒤로 말문을 닫은 인디언의 슬픔을 간직한 노인.-233쪽

목사와 기독교를 바라보는 이해할 수 없다는 인디언적인 시선... 종교상의 의식절차에 철저하게 방관적이었던 작은 나무와 할아버지. 침례교도들은 침례 즉, 시냇물에 온몸을 완전히 담그는 의식을 중시, 감리교도들은 물을 머리 꼭대기에 뿌려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맞서는 등 종교갈등을 바라보는 시선. 가장 많이 헌금하는 성공회파의 존슨씨의 노련함. 신앙고백의 문제점 등. 모세에 대한 인디언적인 해석. 삼손과 데릴라의 이야기를 꺼내시며 여자를 조심하라는 교훈을 성경에서 얻은 교훈으로 들려줄 수 있음에 흡족해 하시던 할아버지-238쪽

개척촌 식료품 가게 2층에 살고 있던 유대인 와인씨. 연필 깍는 법으로 인색한 것과 절약의 차이를 가르쳐 주던 와인씨. 할아버지와 어린 나무의 사진을 남겨주고 떠난 와인씨. 매일밤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것이 바다 건너에 사는 가족들과 유일하게 함께 하는 시간이라던 와인씨.-254쪽

작은 나무를 믿을 수 없는 조부모로부터 뗴어 내어 고아원으로 데려가겠다고 찾아온 두 남녀...-265쪽

와인씨가 윌로존에게 남긴 유산 - 촛불. 바다건너 가족과 함께했던 와인씨의 시간을 작은나무의 제안에 따라 오클라호마의 친척들과 윌로 존이 함께 할 수 있는 매개가 되도록 남긴 촛불.-275쪽

서로 떨어져 지내더라도 저녁 하늘에 빛나는 늑대별(시리우스)을 함께 바라 보자시던 할아버지-278쪽

고아원에서 옆자리를 쓰는 절름발이 윌번, 고아원을 나가게 되면 돌아와서 반드시 불을 지르겠다는 소년. 목사의 체벌로 등에서 피가 흐르던 작은 나무-290쪽

위선적인 크리스마스 파티가 끝난 날, 고아원을 찾아온 할아버지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작은 나무. 구두를 벗어 던져 버리는 할아버지와 작은 나무. 물에 빠진 작은 나무를 따라 물로 뛰어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환영식 (P311) 고아원 목사에 대한 윌로존의 원시적인 테러?-315쪽

내가 죽으면 저기 있는 소나무 옆에 묻어주게. 저 소나무는 많은 씨앗을 퍼뜨려 나를 따뜻하게 해주고 나를 감싸 주었어. 그렇게 하는게 좋을 걸세. 내 몸이면 이년치 거름 정도는 될거야." 교회에 나오지 않은 윌로 존. 죽음을 앞둔 윌로 존을 방문 했을 때... 둔덕에 올라 인디언 연방을 바라보다가 할아버지가 쥐어 준 자신의 긴 칼로 뒤틀린 늙은 소나무를 가리키며 한 말... 그리고, 세찬 바람과 함께 떠나간 윌로 존의 영혼. 각자의 긴 칼로 윌로 존을 소나무 옆에 묻어주고 내려오자. 아득히 멀리서 문상 비둘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3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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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양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7
앙드레 지드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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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드, 내가 불태워 버린 것들을 찬양하기 위하여

학교 교실 책상앞 조그만 걸상에 앉아 읽는 책들이 있다.

걸어가며 읽는 책들이 있다.
(책의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숲에서 읽는 것, 또 어떤 것은 다른 들판에서 읽는 것,
그리하여 키케로는 말했더라.
"그들은 우리와 더불어 전원에 있으니."
어떤 것은 내가 마차 안에서 읽는 책,
또 다른 것들은 헛간의 건초 더미 속에 누워서 읽는 책들.

우리에게 영혼이 있음을 믿게 하기 위한 책도 있고
영혼을 절망케 하는 책도 있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책들에서는 신에게 이르지 못한다.
개인의 서가가 아니면 꽂아둘 수 없는 책들이 있다.

양봉(養蜂)에 관한 이야기만 쓰여 있어
어떤 이들에겐 너무 전문적이라고 생각되는 책도 있고
자연에 관한 이야기가 어찌나 많은지
읽고 나면 산보할 필요가 없어지는 책도 있다.

점잖은 어른들에게는 멸시를 받지만
어린 아이들은 흥미진진해하는 책들도 있다.

사화집(詞華集)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무슨 주제에 대해서든 좋은 말은 모두 다 모아놓은 것도 있다.
-39쪽

그대들이 인생을 사랑하도록 해주려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쓰고 난 뒤에 저자가 자살하였다는 책도 있다.
증오의 씨를 뿌리고
뿌린 것을 스스로 거두는 책들도 있다.
황홀함이 가득하고 감미로울 정도로 겸허하여
읽으면 광채가 나는 듯한 책도 있다.
우리보다 순결하며 우리보다 낫게 살아간 형제들처럼
우리가 아끼는 책들이 있다.

비범한 글씨로 쓰여 있어서
깊이 연구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책들도 있다.

나타나엘이여, 이 모든 책들을 우리는 언제 다 불태워 버리게 될 것인가!

서 푼짜리도 못 되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엄청나게 값진 책들도 있다.

왕과 왕비의 이야기를 하는 책들이 있는가 하면
한없이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다른 책들도 있다.

정오의 나뭇잎 소리보다
더 부드러운 말로 된 책들도 있다.
파트모스 섬에서 요한이
쥐처럼 뜯어 먹은 것은 한 권의 책이지만 (요한계시록 10장9~10절)
나는 차라리 나무딸기가 더 좋다.
그 때문에 그의 오장육부는
쓰디쓴 맛으로 가득히 찼고
그 후 그는 온갖 환상을 보았다.

바닷가 모래가 부드럽다는 것을 책에서 읽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맨발로 그것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39쪽

자연의 모든 노력은 쾌락을 지향한다. 쾌락은 풀잎을 자라게 하고 싹을 발육하게 하며 꽃봉오리를 피어나게 한다. 화관(花冠)을 햇빛의 입맞춤에 노출시키고 생명 있는 모든 것을 혼인하게 하며 둔한 유충을 번데기로 변하게 하고 번데기의 감옥에서 나비를 해방시키는 것도 쾌락이다. 쾌락에 인도되어 모든 것 것은 최대한의 안락, 더 나은 의식, 더 나은 진보······를 동경한다. 그런 까닭에 나는 책 속에서보다 쾌락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 까닭에 나는 책 속에서 명쾌함보다는 난삽함을 더 많이 발견했다.-260쪽

나는 가끔, 대개는 심술궂은 마음을 가지고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남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고, 비겁한 마음을 가지고 많은 작품들에 대하여 실제 생각 이상으로 좋게 말했다. 책이든 그림이든 그 작품의 작자들을 나의 적으로 만들어 놓을까 봐 두려워서 말이다. 나는 때때로 조금도 재미있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고, 어리석은 말을 무척 고상하다고 느끼는 척도 했다. 또 때때로 조금도 재미있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고, 어리석은 말을 무척 고상하다고 느끼는 척도 했다. 또 때로는 따분해 죽을 지경인데도 재미나는 척했고, 사람들이 "좀 있다 가시죠······." 하는 말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설 용기를 못 내고 앉아 있기도 했다. 나는 너무나 자주 마음의 충동을 이성으로 제지했다. 반면에 마음은 침묵하는데도 말을 하는 일이 지나치게 잦았다. 나는 가끔 남들의 동의를 얻기 위하여 어리석은 짓들을 했다. 반대로 내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남들이 동의해 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감히 하지 못한 일들도 많다.
-271쪽

나는 그대에게 희망을 건다. 그대가 굳세다고 믿으면 나는 미련없이 삶과 작별할 수 있다. 나의 기쁨을 받아라. 만인의 행복을 중대시키는 것을 그대의 행복으로 삼아라. 일하고 투쟁하며 그대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면 그 어느 것도 나쁘게 받아들이지 말라. 모든 것이 자기가 하기에 달렸다는 것을 끊임없이 마음에 새겨라. 비겁하지 않고서야 인간이 하기에 달려 있는 모든 악의 편을 들 수는 없는 법. 예지가 체념 속에 있다고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한 적이 있거든 다시는 그렇게 생각지 않도록 하라.
동지여, 사람들이 그대에게 제안하는 바대로의 삶을 받아들이지 말라.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굳게 믿어라. 그대의 삶도, 다른 사람들의 삶도. 이승의 삶을 위안해 주고 이 삶의 가난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어떤 다른 삶, 미래의 삶이 아니다. 받아들이지 말라. 삶에서 거의 대부분의 고통은 신의 책임이 아니라 인간들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그대가 깨닫기 시작하는 날부터 그대는 그 고통들의 편을 더 이상 들지 않게 될 것이다.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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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이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8
아모스 오즈 지음, 정회성 옮김 / 비룡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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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그분에게 키퍼를 주겠어. 물론 공짜로 준다는 건 아니야.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물물교환을 하자는 거야. 기차 세트와 키퍼를 바꾸자는 거지."
"하지만······."
"만약 거절한다면 그분이 에스티 잉바르를 위해서 쓴 연애시를 우리 반 아이들 모두에게 공개할거야. 까만 수첩에 적은 연애시 기억하지? 그 수첩은 알도가 텔아르자 숲에서 그분 점퍼 주머니에 근 걸 슬쩍한 거라더군. 시 내용이 아주······."
"치사한 놈들!"
나는 분해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염병할 놈들!"
내 입에서 두 번째로 튀어나온 이 욕은 제마흐 외삼촌에게서 배운 것이었다.-59~60쪽

"집에 가야지. 일단 우리 집으로 가세. 우리 집에서 하룻밤 묵고 자네 집으로 가란, 이 말이네. 우리 집 거실에는 소파도 있네. 아마 집 안 어딘가에 간이침대도 있을 걸세. 자, 어서 가세, 에스티도 반가워할걸세."
에스티라는 말에 내 심장은 사정없이 뛰기 시작했다. 심장이 갈비뼈, 피부, 속옷, 티셔츠를 차례로 뚫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에스티도 반가워할 것이다······. 에스티도 반가워할 것이다······. 나는 바보처럼 속으로 중얼거렸다.-92쪽

그날 오후, 정확히 말하자면 오후 5시 정각에 아버지는 일을 마치자마자 곧장 고엘 게르만스키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고엘의 부모에게 정중히 사고하고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했다. 아버지는 장난감 기차 세트를 돌려받고는 보무도 당당하게 에밀리오 카스텔누오보 씨의 집으로 향했다. 아르메니아 출신의 가정부 루이자가 음울하면서도 매력적인 향기가 풍기는 카스텔누오보 씨의 서재로 아버지를 안내했다. 아버지는 거기서 카스텔누오보 부인에게도 정중히 사과하고 앞뒤 사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고는 장난감 기차 세트를 주고 자전거를 돌려받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내가 자전거를 타지 못하도록 창고에 처박고는 자물쇠까지 채웠다.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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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펄 벅 지음, 정연희 옮김 / 길산 / 2009년 8월
절판


"거트루드 스타인(1874년생 미국 소설가)이야. 죽어가고 있을 때였지."
"아, 맞아. 내가 그걸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지? 정말 멋진 유언이었는데······ '답이 뭐죠?'라고 질문한 다음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 그럼 문제가 뭐였죠?'하고 물었지."-48쪽

"이곳에서 아이는 아버지의 책임입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혈통도 없는 셈입니다. 아예 없는 아이가 돼 버리지요. 학교도 갈 수 없고 취직도 못합니다. 아버지가 있어야 출생신고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한은, 그 아이들은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혈통도 없고 뒷받침 해줄 사람도 없으니까요.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 거지요."
로하의 마음속에 노여움이 일더니 점점 거세졌다.
"말도 안돼요. 그 아이는 태어났어요. 존재한다고요."
"법적으로는 아닙니다."-85쪽

"···(상략)··· 우리는 원래 군주국이었습니다. 일본이 나라를 삼키면서 그 군주정부가 무너졌고, 왕세자는 일본의 황녀와 결혼을 강요 당했죠. 그후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일본의 잔인한 군사 지배를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은 미국의 자문 밑에서 우리로서는 잘 모르는 정부, 우리 근원에서 태동하지 않은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려고 애 쓰는 중이고요. 지금 우리는, 야심가들 사이에서 심한 알력이 작용하고 잇고, 군대들은 저마다 자기편을 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평화는 멀고 먼 이야기입니다. 청년들은 반체제적인데, 특히 일본과의 무역협정 다음부터 더 심해졌습니다. 그들은 북한의 공산주의 선전에 혹해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국가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124쪽

어느 날은 사람 많은 길에서 고지식한 노인 하나가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이 튀기들 말이야! 없애버릴 방도가 없으면 물속에라도 쳐넣어야지!"
김 크리스토퍼는 학교에도 갈 수 없었고, 가더라도 아이들한테 비웃음과 손가락질만 당할 게 뻔했다.
"아버지가 미국인, 엄마는 창녀래."
아이들은 이렇게 놀려댔고, 실제로는 눈이 동그랗지도 코가 크지도 않은데 그를 '왕눈이'나 '코쟁이'라고 불렀다. 김 크리스토퍼는 기억할 수 있는 생의 첫 순간부터, 이미 이 나라에는 자기가 발붙일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144쪽

"당신이 애초에 아이를 찾으러 한국에 간 이유 때문이야. 나는 내 의무를 알고 있어. 내가 그 애 아버지라는 걸 인정한다고······. 그 아이에 대한 의무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그 의무가, 내 인생 전부를, 내 모든 야망을, 그 다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고는 생각지 않아. 지금은 한 사람만 생각할 수 없어. 그 애가 당신과 내 아이라 해도 마찬가지야. 당신은 너무 많은 걸 요구하고 있어."-180쪽

"그래. 그 아이는 당신하고 너무 많이 닮았어. 그리고 조만간 우리의 진실이 밝혀질 거야. 그렇게 될 거고, 그렇게 돼야 해."
"나중에 우리가 선거에서 승리한 다음에ㅡ."-219쪽

"친애하는 여러분, 이 아이가 제 아들- 우리 아들입니다. 아내도 이 모든 일을 저와 함께 해주었으니까요. 아내가 한국으로 가서 우리 아들 크리스토퍼를 다시 데려왔습니다. 이 아이의 목소리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크리스토퍼가 여러분께 노래를 불러드릴 겁니다. 크리스토퍼, 노래 한 곡 불러다오!"-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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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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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으로 끝이었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들은 모두 하고 싶은 말을 했을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또 물론 그렇기도 했다. 그날 이 주의 북부와 남부에서 이런 장레식,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례식이 오백 건은 있었을 것이다. (···) 다른 여느 장례식보다 더 흥미로울 것도 덜 흥미로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 빠졌다는 점이었다.-22쪽

자신이 없애버린 모든 것, 이렇다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스스로 없애버린 모든 것, 더 심각한 일이지만, 자신의 모든 의도와는 반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없애버린 모든 것을 깨닫자, 자신에게 한 번도 가혹하지 않았던, 늘 그를 위로해 주고 도와주었던 형에게 가혹했던 것을 깨닫자, 자신이 가족을 버린 것이 자식들에게 주었을 영향을 깨닫자, 자신이 이제 단지 신체적으로만 전에 원치 않았던 모습으로 쪼그라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깨닫자,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164쪽

그들은 그저 뼈, 상자 속의 뼈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뼈는 그의 뼈였다. 그는 그 뼈에 가능한 한 바짝 다가가 섰다. 그렇게 가면 그들과 연결이라도 될 것처럼,미래를 잃은 데서 생겨난 고립감은 완화되고, 사라진 모든 것과 연결되기라도 할 것처럼. (···) 육신은 녹아 없어지지만, 뼈는 지속된다. 내세를 믿지 않고, 신은 허구이며 지금 이것이 자신의 유일한 삶이라는 사실을 의심의 여지 없이 믿고 있는 사람에게 뼈는 유일한 위로였다.-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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