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5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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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문장들이 즐겁고 유쾌하지만 전반적인 내용은 암울한 장편 소설이다.

정형화된 교육 속에서 다소 어색하게 다가온 제목이지만 읽다보면 어느새 작가의 촌철살인에 감탄하고, 이미 오래 전에 예견 된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하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민초들이 감내해야만 하는 모든 억울함과 암울함의 이치가 고스란히 녹아난 책이 아닐 수 없다.

흑인 노예와 인디언의 고통까지 배려할 수 없을만큼 절박한 백인 소작농들의 어마어마한 고통을 '오키'라는 모멸적인 호칭으로 불린다. 마치 전라도 사람들을 ‘깽깽이’라고 부르며 괄시하는 타지역 사람들의 우매함이 진정한 적을 외면하고 괜히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어버리게 한 위정자들의 그것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소설은 대공황 시절 대표적 ‘오키’인 오클랜드의 조드 일가의 캘리포니아 드림을 소재로 그려낸 암담하고 참담한 이야기이지만 구석구석 유머와 재치로 마냥 괴롭지만은 않은 멋진 소설이다.

자신들의 땅이라고 울부짖고 싶은 소작농들이 쫓겨나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것은 결국 그네들의 땅이 아니라 은행이라는 괴물들의 소유임을 일깨워주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냉정한 메아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마트에 나가 최저임금(시급 3,770원)을 받고 일하면서 그래도 그나마 일자리가 있어 아이들 과외비라도 보태고 있다는 어느 아줌마의 안도는 뭘까? 이마트만 들어서지 않았더라면 그 아줌마가 집 앞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라도 할 수 있는 희망이... 시장 통에 나가 조그만한 채소가게라도 할 수 있는 희망이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을... 일당 3달러를 벌기 위해 고향 사람들을 배신하고, 트랙터를 운전하는 사나이는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음을 역설하지만... 그에 대한 한 농부의 반응은 무한 경쟁만을 유도하는 현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오래 전에 예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네가 하루에 3달러를 벌기 때문에 거의 1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외지로 나가서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고. 안 그래?” (1권 77쪽)

우리에게 어머니는 가족의 중심이며, 희망이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에게 혼나고 어머니 품으로 달려들어 위로 받곤 했었는데, 겉으로 강한 자는 아버지이지만 진정 강한 것은 어머니였고, 이 소설에서도 진정한 강함은 어머니로부터 발산되었다. 가석방으로 풀려난 톰이 귀가길에 만난 거북이는 끈질기고 강인한 삶을 보여준다. 조드 일가에게도 그 거북과 같은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어머니이다. 그녀는 과감하게 고향을 버리고 떠날 것을 주장하며 한 마디 남긴다. 그리고, 조드의 3대는 희망을 품고 서부를 향해 먼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아무것도 못해요. 캘리포니아에도 못 갈 거예요. (중략) 조드 집안에 못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사람들도 그렇게까지 못되지는 않았다고요."(1권 213쪽)


연약한 인류가 의지하던 종교가 진정한 대안일까? 스스로 목사의 자리를 박차고 나온 케이시를 통해 존 스타인벡은 프론티어적인 아주 의미심장한 발언을 토해 낸다.

“다들 그러니까. 옛날에 나는 악마가 적인 줄 알고 악마와 싸우는 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악마보다 더 한 놈이 지금 이 나라를 붙들고 있어요. 그놈은 우리가 그 손을 잘라내지 않는 한 절대로 우리를 놔주지 않을 겁니다." (1권 265쪽)

고용 없는 성장의 문제가 하나둘씩 제대로 드러나는 현실을 보면서 지나칠 수 없는 문장 하나가 또 있다.
‘사람이 갖고 있는 최후의 분명한 기능, 일하고 싶어 안달하는 몸과 단 한 사람의 욕구 충족 이상의 목적을 위해 창조하고 싶어 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인간이다.’ (1권 314쪽)

빵을 살 돈이 없어 쩔쩔매는 남자, 이제 겨우 1센트 밖에 돈이 남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남자의 철없는 두 아이는 가게에 진열된 사탕 앞에서 군침을 흘린다. 줄무늬가 있는 그 사탕을 사주고 싶은 마음에 가게 주인에게 얼마냐고 묻지만 절망적이다.
“아, 그거요. 그건 1센트에 두 개예요.”
“그럼 두 개 주십시오.”  (1권 334쪽)

그 사탕은 1개에 5센트 짜리였건만 어려울 때 잘 알지도 못하는 민초들끼리 나눔과 희망을 주는 메시지이다. 그렇게 서로 어려울 때 함께하는 민초들의 서로 돕는 언행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고장난 차를 고치다가 손등이 찢어져 피가 심하게 나는 톰, 그는 당황하지 않고 땅바닥에 오줌을 싸서 흙을 진흙으로 만든 다음에 상처에 붙여 피를 멈추게 하는 민간요법도 배우고... 구석구석 흥미롭고 실용적(?)인 소설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이 부정적인 외꾸눈에게 외다리 창녀가 돈을 더 많이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용기를 북돋아주는데, 그러한 재치덩어리 톰의 발언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쉴새없이 쏟아지는 존 스타인벡 매력이 아닐까 싶다. 역시 여자 꼬시는데는 뻥이 필요한 걸까? 뻥은 용기의 다른 말이라던데... ^^;
“나를 좋아해줄 사람이 있을까?”
“물론이지. 눈을 잃은 후로 당신 거시기가 커졌다고 해.” (1권 376쪽)

톰과 더불어 케이시의 수많은 발언들도 책을 읽는 재미를 준다. 그 중 한 가지가 톰의 큰 아버지인 존이 식구들에게 짐이 된다며 떠나려할 때 위로하는 중간에 나온 말이 있는데, 내가 새겨 듣고 싶은 말 중에 하나이다.
“이 세상에서 내가 확신하는 건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권리가 없다는 것.” (1권 471쪽)

그리고 그 대화가 흐른 얼마 후에 어머니의 대담함이 부각되는 할머니의 죽음이 있다.

기업들, 은행들도 스스로 파멸해 가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은 그것을 몰랐다. (중략) 대기업들은 굶주림과 분노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들은 어쩌면 품삯으로 지불할 수도 있었을 돈을 독가스와 총을 사들이는 데, 공작원과 첩자를 고용하는 데,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사람들을 훈련하는 데 썼다. 고속도로에서 사람들은 개미처럼 움직이며 일거리와 먹을 것을 찾아 다녔다.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2권120쪽)

'하인즈 씨, 제가 여기 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러는데요. 그 망할 놈의 빨갱이라는 게 뭐죠?'
'우리가 시간 당 25센트를 주겟다고 할 때 30센트를 달라고 하는 개자식들이 빨갱이야!'
'그럼 우리는 전부 빨갱이에요.' (2권 148쪽)

사람들이 강에 버려진 감자를 건지려고 그물을 가지고 오면 경비들이 그들을 막는다. 사람들이 버려진 오렌지를 주우려고 덜컹거리는 자동차를 몰고 오지만, 오렌지에는 이미 휘발유가 뿌려져 있다. (중략) 사람들의 눈 속에 패배감이 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 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 간다. (2권 255쪽)

복숭아 농장에서 겨우 일자리를 구해 일을 하던 톰은 국영천막촌에서 자신을 대신해 감옥에 다녀온 전직 목사 케이시와 반가운 재회를 한다. 케이시는 말한다.
"감옥은 웃기는 곳이야. 난 뭔가를 찾으려고 애쓰는 예수처럼 광야로 나왔는데, (중략) 내가 정말로 그걸 찾은 곳은 바로 감옥이었어. (중략) 감방 안에는 주정뱅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물건을 훔쳐서 돌아온 사람들이었지. 그것도 필요하긴 한데 훔치는 것 말고는 달리 구할 방법이 없었던 사람들. 알겠나?" (2권 323쪽)

그러던 케이시는 사람들을 이끌고 농장주에 맞서다가 배신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케이시의 죽음을 목격한 톰은 그들과 맞서 싸우다가 또 한 사람을 죽이게 되고 다시 쫓기는 몸이 된다. 아, 가련한 톰~ 벌써 두 번째 살인이라니... 이 사건으로 톰은 많은 것을 깨닫지만 이 소설의 중심 무대에서 사라지는 비운의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홍수...
홍수는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이들에게 너무나 가혹하게 다가온다.
겨우 빗줄기를 피해 들어선 어느 헛간에서 다 죽어가는 병든 사나이...
그 사나이에게 구원이 되는 로저샨의 마지막 행동...

다소 허무하게 끝나는 듯 싶지만 이 소설은 미약한 희망으로 결론 지어진 것이다.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저주를 내린 산업화와 자본주의...
대홍수 앞에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인간의 한계...

그 암울한 순간에 다소 황당한 로저샨의 젖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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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4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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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또 다른 육체가 고교시절 읽었던 분노의 포도, 민세문집으로 만나 기쁘다.

정형화된 교육 속에서 다소 어색하게 다가온 제목이지만 읽다보면 어느새 작가의 촌철살인에 감탄하고, 이미 오래 전에 예견 된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하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민초들이 감내해야만 하는 모든 억울함과 암울함의 이치가 고스란히 녹아난 책이 아닐 수 없다.

흑인 노예와 인디언의 고통까지 배려할 수 없을만큼 절박한 백인 소작농들의 어마어마한 고통을 '오키'라는 모멸적인 호칭으로 불린다. 마치 전라도 사람들을 ‘깽깽이’라고 부르며 괄시하는 타지역 사람들의 우매함이 진정한 적을 외면하고 괜히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어버리게 한 위정자들의 그것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소설은 대공황 시절 대표적 ‘오키’인 오클랜드의 조드 일가의 캘리포니아 드림을 소재로 그려낸 암담하고 참담한 이야기이지만 구석구석 유머와 재치로 마냥 괴롭지만은 않은 멋진 소설이다.

자신들의 땅이라고 울부짖고 싶은 소작농들이 쫓겨나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것은 결국 그네들의 땅이 아니라 은행이라는 괴물들의 소유임을 일깨워주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냉정한 메아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마트에 나가 최저임금(시급 3,770원)을 받고 일하면서 그래도 그나마 일자리가 있어 아이들 과외비라도 보태고 있다는 어느 아줌마의 안도는 뭘까? 이마트만 들어서지 않았더라면 그 아줌마가 집 앞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라도 할 수 있는 희망이... 시장 통에 나가 조그만한 채소가게라도 할 수 있는 희망이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을... 일당 3달러를 벌기 위해 고향 사람들을 배신하고, 트랙터를 운전하는 사나이는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음을 역설하지만... 그에 대한 한 농부의 반응은 무한 경쟁만을 유도하는 현대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오래 전에 예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네가 하루에 3달러를 벌기 때문에 거의 1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외지로 나가서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고. 안 그래?” (1권 77쪽)
 
우리에게 어머니는 가족의 중심이며, 희망이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에게 혼나고 어머니 품으로 달려들어 위로 받곤 했었는데, 겉으로 강한 자는 아버지이지만 진정 강한 것은 어머니였고, 이 소설에서도 진정한 강함은 어머니로부터 발산되었다. 가석방으로 풀려난 톰이 귀가길에 만난 거북이는 끈질기고 강인한 삶을 보여준다. 조드 일가에게도 그 거북과 같은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어머니이다. 그녀는 과감하게 고향을 버리고 떠날 것을 주장하며 한 마디 남긴다. 그리고, 조드의 3대는 희망을 품고 서부를 향해 먼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아무것도 못해요. 캘리포니아에도 못 갈 거예요. (중략) 조드 집안에 못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사람들도 그렇게까지 못되지는 않았다고요."(1권 213쪽)

연약한 인류가 의지하던 종교가 진정한 대안일까? 스스로 목사의 자리를 박차고 나온 케이시를 통해 존 스타인벡은 프론티어적인 아주 의미심장한 발언을 토해 낸다.

“다들 그러니까. 옛날에 나는 악마가 적인 줄 알고 악마와 싸우는 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악마보다 더 한 놈이 지금 이 나라를 붙들고 있어요. 그놈은 우리가 그 손을 잘라내지 않는 한 절대로 우리를 놔주지 않을 겁니다." (1권 265쪽)

고용 없는 성장의 문제가 하나둘씩 제대로 드러나는 현실을 보면서 지나칠 수 없는 문장 하나가 또 있다.

‘사람이 갖고 있는 최후의 분명한 기능, 일하고 싶어 안달하는 몸과 단 한 사람의 욕구 충족 이상의 목적을 위해 창조하고 싶어 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인간이다.’ (1권 314쪽)

빵을 살 돈이 없어 쩔쩔매는 남자, 이제 겨우 1센트 밖에 돈이 남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남자의 철없는 두 아이는 가게에 진열된 사탕 앞에서 군침을 흘린다. 줄무늬가 있는 그 사탕을 사주고 싶은 마음에 가게 주인에게 얼마냐고 묻지만 절망적이다.

“아, 그거요. 그건 1센트에 두 개예요.”
“그럼 두 개 주십시오.” (1권 334쪽)

그 사탕은 1개에 5센트 짜리였건만 어려울 때 잘 알지도 못하는 민초들끼리 나눔과 희망을 주는 메시지이다. 그렇게 서로 어려울 때 함께하는 민초들의 서로 돕는 언행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고장난 차를 고치다가 손등이 찢어져 피가 심하게 나는 톰, 그는 당황하지 않고 땅바닥에 오줌을 싸서 흙을 진흙으로 만든 다음에 상처에 붙여 피를 멈추게 하는 민간요법도 배우고... 구석구석 흥미롭고 실용적(?)인 소설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이 부정적인 외꾸눈에게 외다리 창녀가 돈을 더 많이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용기를 북돋아주는데, 그러한 재치덩어리 톰의 발언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쉴새없이 쏟아지는 존 스타인벡 매력이 아닐까 싶다. 역시 여자 꼬시는데는 뻥이 필요한 걸까? 뻥은 용기의 다른 말이라던데... ^^;

“나를 좋아해줄 사람이 있을까?”
“물론이지. 눈을 잃은 후로 당신 거시기가 커졌다고 해.” (1권 376쪽)

톰과 더불어 케이시의 수많은 발언들도 책을 읽는 재미를 준다. 그 중 한 가지가 톰의 큰 아버지인 존이 식구들에게 짐이 된다며 떠나려할 때 위로하는 중간에 나온 말이 있는데, 내가 새겨 듣고 싶은 말 중에 하나이다.

“이 세상에서 내가 확신하는 건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권리가 없다는 것.” (1권 471쪽)

그리고 그 대화가 흐른 얼마 후에 어머니의 대담함이 부각되는 할머니의 죽음이 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소설이 아닌 것 같다. 2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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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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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프랑스 카자르크에서 태어난 그녀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그 소설의 등장 인물에서 '사강'이라는 필명을 따 왔다.
프랑스인들은 원래 브람스의 곡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소설의 제목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극중 대사이기도 하지만 이 소설의 배경이 프랑스이고, 등장인물들이 프랑스인들인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서른 아홉 살의 폴에게는 아주 오래된 연인인 로제가 있다. 그들에게 불타 오르는 사랑 같은 것은 없고 그저 공일오비의 노래 가사처럼 '저녁이 되면 의무감으로 전화를 하고, 관심도 없는서로의 일과를 묻곤하며 가끔씩은 사랑한단 말로 서로에게 위로하겠지만 그런것도 예전에 가졌던 두근거림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주말이 되면 습관적으로 약속을 하고 서로를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을 하고,  가끔씩은 서로의 눈 피해 다른 사람 만나기도 하고 자연스레 이별할 핑계를 찾으려고 한다.
재미없는 일상에 지쳐가는 로제는 어린 여자들을 만나 섹스를 즐기면서도 늘 폴에게로 돌아가는 이중적인 생활을 하는 반면, 아무것도 모르고 로제와의 사랑에 의무감을 갖고 충실했던 폴은 스물 다섯살 미남 청년 시몽의 구애로 갈등을 한다. 로제와의 생활이 권태롭기도 하고 시몽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그 유혹을 뿌리치고 착하게(?) 살아가려던 폴, 결국 그녀는 연인 로제의 배신과 시몽의 유혹 속에 갈등하던 토요일 밤 시몽의 장난스러워 보이는 구애의 몸짓에 많이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 시몽으로부터의 편지를 받는다.

'오늘 저녁 6시 프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56쪽)

그렇게 둘은 데이트를 하고,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그 이상 이유를 찾지 못할만큼 혼돈스러워지는 폴과 충실하지 못한 그녀의 연인 로제는 점점 멀어진다.
한참 나이어린 남자 친구와 생활하다보면 주위의 시선도 따갑고 갈등도 많은 법, 나이트클럽에서 나이 많은 자신을 향해 소곤 거리는 소리에 상처를 받고 좌절하는 폴에게 시몽은 위로한다.

"알다시피 난 경솔한 사람이 아냐. 난 스물 다섯 살이야. 당신보다 먼저 세상을 살진 않았지만, 앞으로 당신이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 않아. 당신은 내 인생의 연인이고, 무엇 보다도 내게 필요한 사람이야. 나는 알아. 당신이 원한다면 내일이라도 당신과 결혼하겠어." (133쪽)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연상의 여인을 사랑하는 이 세상 수많은 청년들에게 이 멋진 대사를 알려주고 싶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를 알고 싶다면 브람스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마치 사강은 폴과 독자들을 향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은 지금 참 된 선택을 하셨나요?' 그녀가 한사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대신에 이 소설의 제목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표기한 것도 많이 생각해볼만한 문제이다.
몽상과 현실의 차이... 프랑스인들은 브람스를 왜 좋아하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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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생존법 - 대한민국 99% 비즈니스 파이터 '을'들의 필살기
임정섭 지음 / 쌤앤파커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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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 한 온라인 서점의 보수언론 광고에 보이콧 하는 이용자들의 집단탈퇴 압박이 있었는데, 대립각을 세운 쌍방은 상대방의 입장과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몇 가지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이 운동을 주도한 나는 평소에 그 서점이 나를 바라볼 때 진정한 고객으로 대우한다기 보다는 그냥 예의상 고객으로 불러줄 뿐이며 실질적으로는 별다른 존재감이 없는 단순 이용자일뿐이란 생각을 했다. 내가 비록 구매량이 많은 이용자(고객?)일지라도 나 하나쯤은 존재하지 않아도 전체 매출에 큰 영향이 없는 상태라는 판단을 했단 말이다. 즉, 나는 '을'이고 그 온라인 서점은 '갑'이 된다. 하지만 수백명의 이용자가 한 가지 이슈에 맞서 집단 반발을 하는 순간, 을들의 습격은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갑에게 '당신 乙 한 번 해볼래?'라는 압박이 가능하다. 이 순간에 제 아무리 갑이라도 긴장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인지상정이다. 갑이 목소리를 높일 때 을은 신속하게 찌그러져야 하며, 찌그러지지 않으면 을은 무참히 짓밟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을의 반격을 '갑'은 두려워 한다.

그 사태는 깔끔하게 수습되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그들이 시장1위 기업이라 배가 부른 '갑'이기 때문에 완전히 봉합되지 않은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배부른 갑의 냄새를 풍기며 나름대로 배짱으로 맞서는 순간에 나와 나의 동지들은 열심히 짱구를 굴렸다. 그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대갈을 굴렸을 것이다. '이 순간에 나는 갑일까 을일까?' 생각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결국 이렇게 판단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솔직히 나는 그들이 백보 양보해 주기를 바랐지만 그들의 카드를 몰랐다. 그들이 과연 스스로를 갑으로 생각하는지 을이라고 생각하는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팽팽한 순간에 갑이 되고자 노력했다. 갑이 되어 양보를 해주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 순간 그들은 맥없이 아주 어설프게 물러났다. 분명히 물러났다. 깔끔하게 물러나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물러 났다. 나는 그들이 스스로를 '을'로 표현한데에 감사했다. 물론 찝찝하지만 윈윈을 선택하고 싶었다. 갑과 을의 세계는 늘 잔인하다. 하지만 윈윈하는 방법도 있다. 윈루즈 게임보다는 윈윈이 낫지 않겠는가? 윈루즈(Win-loose) 게임을 고집하다가 나에게 루즈게임이 된다며 결국 내가 을이었지 않겠나 생각했다. 나는 갑이 되고 싶어서 멈췄지만 찝찝한 마음은 남아 있었고, 상황은 다시 반전되어 그들은 반복적인 실수를 했다.

나는 결국 그 온라인 서점을 떠나 알라딘으로 이동하기로 결심했다. 이 온라인 서점이 마냥 나를 갑으로 대접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희망이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나의 착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지금의 시장 1위 기업은 출판사에 대해서 명확히 갑의 관계에 있을 것이지만 그들이 온라인서점을 시작하여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셀 수 없이 많은 을의 역할을 수행해 왔을 것이다. 여기저기 출판사에 찾아 다니며 사정하고 사정하는 날들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언론사에도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대는 홍보팀의 아부가 있었을 것이다. 유명 작가를 초대하면서는 제발 자리를 빛내 주십시오 하며 수많은 삼고초려를 했을 것이다. 그러한 을의 나날들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갑이 되어버린 그들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비록 떠났지만 그들이 그 오래 전 '을'의 정신을 잃지 않기를 주문하고 싶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결코 을로 살고 싶지 않았다. 국내 최초의 벤처기업 H사에서 제대로 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마케팅과 홍보 담당자로 일한다는 것은 갑의 즐거움을 줬다. 나는 갑의 위치에서 매우 편안한 사회 생활을 시작한 행운아였는지 모르지만... 을로 단련되지 않은 까닭에 수 많은 좌절의 나락에 빠져버린 이후의 세월도 있었다. 을로 시작하여 갑으로 성장하는 것이 더 부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러한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오늘도 나는 업무적으로 을의 위치에서 갑의 눈치를 보며 일한다.

세상에는 영원한 갑도 없고, 영원한 을도 없다고 믿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힘이다.
내가 지금은 비록 힘없는 을의 역할에 머물고 있을지라도 자신감을 잃어서는 안된다.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순간 어쩌면 영원한 을의 늪에 빠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나와 같은 이 세상의 모든 불쌍한 존재(을의 존재)들에게 생존의 지혜를 알려주는 주옥같은 라이프-매뉴얼(?) 이다. 이 책을 읽고 그 지혜를 깨우칠수만 있다면 우리는 머지 않아 '갑'이 되어 세상을 호령할 것이며, 갑이 된 이후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을로 추락하지 않을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노골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분석한 참으로 괜찮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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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지음 / 푸른숲 / 199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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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는 단순한 시인이 아니다.
그런 그에게 질투를 하는 이들도 많지만 어쨌거나 그의 시와 에세이와 노래, 번역물들은 만능엔터테이너로서 류시인을 증명한다.
1991년에 푸른숲을 통해 발표한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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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를 가장 빛나게 한 시집이 바로 이 시집이 아닌가 싶다. 얼마 전까지 나는 이 시집을 세 권이나 갖고 있었는데... 가장 낡고 가장 오래된 1991년판 한 권만을 남겨 두고 다른 이들에게 선물을 했다. 다른 모든 소유가 그러하듯 여러 권 있느니 보다 단 한 권 있을 때 그 시집은 더욱 빛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 가장 오래된 시집의 출처를 알아보니 국민학교 1학년때 내 짝꿍이던 영숙이가 집에 소장하던 낡은 시집 몇 권을 보내준 묶음 속에 있었던 시집이었다. 시집을 펼치자 1쪽과 2쪽에 해당하는 첫번째 장의 일부가 찢겨 있었다. 영숙이 나에게 보내오면서 자신의 흔적을 지운 것으로 보이는데, 찢겨 나간 종이 자체도 운치가 있었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책 제목과 같은 이 詩를 외노라면 쓸쓸함과 함께 나른한 행복이 밀려 온다.
이 시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찍은 6년 전 4월8일의 사진이 생각난다.
연애 시절 에버랜드에 들렀을 때, 선영이 형이 우리 두 사람의 뒷모습을 찍은 장면인데, 어쨌거나 나는 이 순간에 그녀가 곁에 있어도 그리울 수 있다는 것을 생각 했었고, 이후로도 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를 되뇌며 그녀 곁에 머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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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시집 29쪽에 있는 '나무'라는 시가 좋다.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다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 주었다

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 때면
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 주었다
내 집 뒤에
나무가 하나 있었다

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
비를 가려 주고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 때
그 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 때면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주었다



또한 이 시집에도 류시화의 시라기 보다도 가수 안치환의 노래로 더 많이 알려진 '소금 인형'이 있다.

바다의 깊이를 알기 위해
바다로 가라앉은
소금인형 처럼
그대의 깊이를 알기 위해
그대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 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네

그렇게 읽으면 마음 편하고, 연애할 때 인용하기 좋은 주옥같은 시들이 이 시집 한 권에 있다.
내가 소장한 1991년판 가격은 2.500원인데, 100쇄를 넘긴 2001년 판에서 같은 시집의 신판은 5,000원이 되어 있었다.

이런 시집은 한 권쯤 가까이 두고 자주 읽어도 좋을 성 싶다.
모든 책이 그렇지만 시집은 특히 한 번 읽고 말 것이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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