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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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s done cannot be undone.˝ 맥베스 부인의 대사이던가. 지금 바로 내 심정이다. 방금 수많은 걸작들을 읽어버렸다. 그것도 단 몇 줄로. 너무 허망하다. ㅜㅜ 책의 중반부에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줄거리가 자세히 언급되었어도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 작품은 나도 벌써 읽었기 때문에. 그래 너도 그 책 재밌게 봤구나 했다. 그에 앞서 발자크 이야기도 오고갔지만, 작품 제목과 그들이 감명 깊게 본 부분만 따로 발췌해서 적어놨기 때문에 딱히 스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읽어봐야지 하고 동기부여가 되었지. 하지만 막판에 가서 화자가, 자신과 뤄, 그리고 바느질하는 소녀가 사랑했던 수많은 문학속의 인물들을 회상하며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처럼 엮어낼 때에는 어째 좀 낭패를 본 기분이 들었다. 이건 책을 두고 재밌을까, 읽을까 말까,를 고민하던 중에 자발적으로 찾아 본 리뷰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 맥베스 부인의 말처럼 돌이킬 수 없으니 이건 그냥 그동안 문학 읽기를 너무 게을리 한 내 자업자득인 걸로. ㅠ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마치 유행가 가사처럼 내 취향을 저격, 전에 빨간책방 스토너 2부 방송때 이동진님께서 지(知)에 대한 그 자체의 사랑(혹은 앎에 대한 사랑, 문학에 대한 사랑)으로 두 작품이 어찌 보면 서로 닮아 있는게 아닌가 하셨는데 내가 이들에게 꽂힌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고 본다. 나는 모르는 것에 열등감이 많다. 모른다는 것은 왠지 부끄럽다. 그런 열등감은 자연스레 내 취향에 녹아 들었고 무의식중에 나는, 배움을 갈망하는 소설 속 인물들에 유난히 끌리게 됐다. 책도둑의 리젤, 해리포터 시리즈의 헤르미온느와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에 이르기까지 공부에 푹 빠진 이들을 보고 있으면 내 안에서도 덩달아 학구열이 불타오른다. 이건 굉장히 즐거운 일이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서 이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의 배경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직후인데 학창시절 중국 근현대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나는 그 역사적인 사건을 레드 바이올린이라는 영화에서 처음 접했다. 영화속의 한 중국인이 바이올린을 다락방에 숨기는 장면을 보면서 어째서 저러는 걸까 하고 의아해 하던 것이 기억난다. 마찬가지로 이 소설속의 인물들은 책을 숨긴다. 금지된 독서를 하고 문학과 사랑에 빠진다. 책도둑의 배경인 2차대전 당시의 독일에서도, 영화 이퀼리브리엄의 배경인 3차대전 이후의 가상세계 속에서도 문학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사람들이 언제나 존재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애틋하다.

뜬금없지만 소설 앞부분에, 아침마다 똥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는 소년들의 일상이 잠시 소개된다. 신나게 웃으면서 읽다가 문득 든 생각이, 앞으로 유기농 농산물 잘 씻어서 먹어야겠다.는 것이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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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16-04-26 0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깨비님 글은 솔직하고 따뜻해요-, 재밌게 읽고 갑니다 ;-).

북깨비 2016-04-26 09:12   좋아요 0 | URL
ㅠㅠㅠ 귀한 시간을 할애해서 두서없는 글을 읽어주시고 재밌었다고 칭찬까지 해주시니 몸 둘 바를 ㅠㅠㅠㅠ 저도 갱지님 리뷰 늘 재미나게 읽고 있어요!!! ^^

transient-guest 2016-04-27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귀하게 구해서, 재미있게 여러 번 읽던 따뜻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준 책입니다. 어른이 되어 맘껏 책을 구하고 쟁여 놓은 기쁨에 반비례로 이런 즐거움을 자주 느끼지는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깝고, 부끄럽네요.ㅎ

북깨비 2016-04-27 12:51   좋아요 0 | URL
맘껏 사다가 쟁여 놓고 품절/절판된 도서만 가끔씩 귀하게 구하러 다니는 지금이 딱 좋은 것 같아요. ㅎㅎ 아아 가득찬 책장을 바라보는 그 흐뭇함이란~
 

등장인물이 많고 사건들이 끊임없이 터진다. 소소한 스케일의. 그리고 쉴 틈 없이 산만하게. 요 며칠간 일본 소설을 내리 세 권을 읽었는데 흔히 말하는 `같은 옷 다른 느낌`말고 `다른 옷 같은 느낌`? 배경, 등장인물은 다르지만 해피엔딩으로 진행되는 공식은 똑같은? 드라마틱한 상황 발발, 해결사 투입, 주인공과 해결사의 우연한 만남, 갈등 해소, 뻔한 해피엔딩, 그리고 그 모든 사건이 일어나기 전 완전 티나게 깔아놓은 떡밥들. 물론 그 뻔한 엔딩 보려고 집어든 책이지만 세 권 까지는 아무래도 무리였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끝까지 읽어낸 이유는 1. 헌책방이 무대니까 2. 앞으로 책을 살 때는 더 신중하자는 배움을 가슴 속 깊이 새기기 위해. 리뷰가 많고 평점이 높은 작품이면 내 개인적인 취향과도 맞을 거라는 발칙한(?) 상상은 이제 접겠다.

그래도.. 귀여운(?) 구석이 있어서 몇 자 적어 봤다.

˝책은 저절로 자기 주인을 찾아간다˝, 메이지 18년서부터 대를 이어 문을 열어온 이 도쿄밴드왜건 헌책방의 가훈 (.. 들 중에 하나)

˝책이란 건 때가 되면 제 주인의 손에 자연스레 찾아드는 게야. 자네같이 돈 자랑하며 사 모으는 놈한테는 먼지 한 톨도 안 팔아!˝ 주인인 칸이치 영감이 책방에 들른 돈 많은 헌책 애호가에게 호통을 친다. ˝우선 한 권 사서 그것에 대해 독후감이 됐는 리포트가 됐든 써와 봐. 잘 썼으면 또 사가게 해주지.˝ 돈 많은 젊은이는 할아버지 명령대로 매번 독후감을 가져와 허락을 받고 책을 사간다.

˝오늘은 비번인가?˝ ˝네. 게다가 마누라가 친구들하고 여행을 가서요.˝ ˝그래서 오늘은 실컷 헌책방 순례를 하는 건가?˝ 오구오구 ㅎㅎㅎ 칸이치 영감과 가야노 형사님의 대화. 나도 남편이 바쁜 날엔 느긋하게 헌책방 순례에 나서는데. (같이 가면 나보다 한참 먼저 끝내고 자꾸 가지고 보채서 구경하는 내내 불안함.)

아. 15소년 표류기 얘기가 나와서 반가웠다. 초등학교때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소년들이 키를 잡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 짙은 파란색 표지였다. 축약본이었을까..) 내 주위에는 그 책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파리대왕 읽은 사람은 많지만. 나는 반대로 파리대왕을 아직 안 읽었다. 그냥 반가운 마음에 별 것 아닌 장면이지만 올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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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4-16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돈이 많지 않은 헌책 애호가라서 주인한테 쫓겨나지 않겠어요. ㅎㅎㅎ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무더기로 등장한다.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과 뻔한 우연도 덩달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읽는 내내 연신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라.

아.. 덧붙이자면, 이 두 작품은 무슨 연관이 있거나 그런건 아니고 그냥 분위기가 묘하게 닮아 있어서 리뷰를 한데 묶어 봤다. (모리사키 서점의 모모코 외숙모는 성격같은 것이 다이아나의 엄마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자유분방하고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가 인기인가. 참고로 서점의 다이아나를 먼저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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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 2016-04-10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평만 읽어도 미소가 지어지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서평을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1인^^

북깨비 2016-04-10 10:29   좋아요 2 | URL
며칠전에 84번가의 연인 (원제: 84 Charing Cross Road) 라는 영화를 봤어요. 혹시 안 보셨으면 추천합니다. 왠지 책벌레님이 아주아주 사랑하실 것 같아요. 저 영화를 보고 너무 좋아서 원작인 책도 주문해놓고 기다리고 있어요. 번역본 책 제목은 채링크로스 84번지 입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20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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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사람을 (적어도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다. 돈과 권력을 기준 삼은 어른 사회의 그릇된 위계질서 의식. 그리고 그에 따른 행태가 아이들의 세계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것을 보는 것이 불편했다. 그를 묵인하고 외려 장려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어른의 모습을 보는 것은 더 더욱 불편했다. 그것은 어느덧 비겁한 어른이 되어 버린 내 모습이기 때문일까. 나는 위기철의 아홉살 인생을 읽을 때도 불편했다. 아이들의 눈을 통해 보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두번 다시 보기 싫어 제일 먼저 내다 팔았다. 불편하지만 읽어야 하는 책들이 있다. 불편하지만 꾸준히 읽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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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11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들의 사회든 아이들의 사회든 권력관계는 유사한 듯 합니다.
그러므로 작가 이문열은 사회적 권력관계와 권력 구조를
아이들의 사회를 통해서 알레고리적 기법으로 투사시킨 소설이라고
봐야죠.
그리고 아이들의 비뚤어진 권력관계를 체벌로써 징벌하는 선생은
국가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계몽적 절대 폭력이라는 괴물이죠. ^^

북깨비 2016-02-25 17:32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체벌 교육의 문제점을 간과했네요. 새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을 체벌로 훈계하는 장면에서 저도 뭔가 이게 아니다 싶긴 했는데 막상 리뷰를 쓰는 동안은 다시 떠올리지 못했어요. 저 역시 체벌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라 아마 그 부분이 좀 이상한 건 느꼈는데 결국 왜 이상한지는 모르고 넘어간 것 같아요.

Grace 2016-02-24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속으로 도망 치는 법-북깨비, 뭔가 요술을 부릴 것 같기도 하고ㅎㅎ
불편하지만 읽어야 하는 책, 이 표현을 제가 할 수 있었다면 최근에 읽은 정글만리의
독후감에 사용했을텐데......
계몽적 절대 폭력,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고 이런 표현도 할 수 있군요!
여러사람의 독후감을 읽어 본다는 것은 참 유익한 일입니다.^^



북깨비 2016-02-25 17:42   좋아요 0 | URL
너무 좋죠~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리뷰를 접하다 보면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그레이스님 리뷰도 늘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
 
세설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51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송태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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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쉬워라. 다 읽어 버렸다. ㅠㅠ

그리고 얘기를 거기서 끝내면 어떡해요. ㅠㅠㅠ

지금은 마음이 너무 허탈해서 리뷰는 다음에 쓰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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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1-16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활자가 빽빽하게 찍힌 두 권짜리 책을 다 읽으셨군요. 대단합니다. ^^

북깨비 2016-01-16 16:09   좋아요 0 | URL
앗 저는 어쩌다 한번 몰아서 단숨에 읽은건데 cyrus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ㅋㅋ 응팔에 등장한 베스트 셀러들까지 정리해주시는 cyrus님이 최고에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