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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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아보니 내게 루시디였다가 루슈디가 된 시간은 살만 루슈디와 파트와의 시간, 딱 그만큼이다. 루슈디의 자서전이라니 왠지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얄미운 인간에게 휘두르면 딱이겠다 싶은 총 824쪽의, 중간중간 북마크를 꽂고 메모를 하는 수 초도 아까워하면서 키득키득 읽어내려갔던 이 두꺼운 양장본은, 완독하는대로 논문에 준하는 장문의 리뷰를 써주겠어- 했던 다짐이 무색하게 읽은 직후 부산에 다녀오는 공백을 거치면서 내 머리 속도 공백이 되었다. 그나마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의심하며 독서 틈틈이 건성건성 메모한 것마저 없었으면 이 재미있는 책에 대해 내가 할 말은 '재미있었음' 이 한 줄이 전부가 될 뻔 했다.

 

* 이하, '조지프 앤턴' 메모...

  

- 루슈디는 메리앤과 도대체 언제 이혼하는가. CIA가 안가를 뒤졌다고 거짓 정보를 흘리고, 남편의 지인들에게 남편을 비겁한 겁쟁이로 매도하고, 시시때때로 거짓말은 일상다반사, 와중에 남편의 친구와 바람도 피는 나쁜 메리엔. '사랑과 전쟁' 수준의 막장에 준하는 루슈디와 메리엔의 일화. 욕하면서 읽는 재미.

- 모든 삶은 정치적 선택의 연속 - 하물며 저녁 테이블 위에 올라온 한 끼도 정치적 산물이다.

- 국가간 정치적 이해관계가 종교적 위협으로부터 작가를 어떻게 방치하는가.

- 소설적 재미가 필립 로스의 소설을 읽을 때와 유사하다. 확인하니 역자가 같다. 내친김에 책장을 뒤져보니 같은 역자의 책을 다수 발견. 기쁨.

- 긍정과 낙관이야말로 삶을 견디는 원동력.

- 살만 루슈디의 1989년

역사적 사건: 톈안먼 사태, 베를린 장벽 붕괴

개인적 사건: 파트와(전 세계 무슬림에게 살인면허를 쥐어주는 일종의 사형선고)

- 10년이 넘게 지속된 파트와, 무슬림의 협박과 죽음의 공포. 루슈디 경호를 예산낭비라고 비난하며 경호 철회를 주장하는 내부의 '적'들.

- 파트와 공표 이후 몇 개월이 지날 무렵 가명 '조지프 앤턴' 탄생. 이는 즉 그의 도피와 은둔 생활이 장기화된다는 의미.

- 궁금했던 제목 '조지프 앤턴'의 정체는 조지프 콘래드와 안톤.C.체홉에서 딴 것.

- 힌두교 80.5%, 이슬람 13.4%인 인도가 무슬림의 표적인 루슈디 고립에 그토록 앞장선 이유는?, G7과 서유럽으로 구성된 서방세계를 상대로 그토록 오랫동안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이란의 지정학적, 정치적 입지 혹은 배경은 무엇?

- 영국내 무슬림의 질적양적 영향력, 파급력.

- 88년 이란의 시아파 수장 호메이니가 파트와 공표, 89년 호메이니 사망 후 공식적으로 파트와 철회. 그러나 실제로는 1주기가 돌아올 때마다 파트와 재천명.

- 파트와 해결에 햇수로 13년(1989-2002)이나 걸린 건 루슈디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고려 대상이었던가 아니면 그닥 '별볼일없는' 기회비용이었던가.

- 죽을 때까지는 살아야 하니까.

- 삶을 지배하는 건 운명이 아닌 우연.

 

'죽을 때까지는 살아야 하니까'는 루슈디가 절망하려는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고, '삶을 지배하는 건 운명이 아닌 우연'은 엘리자베스를 처음 만났을 때 한 말인데, 그의 상황과 별개로도 울림과 공감이 크다. 참고로 은둔 생활 중에 만나 애틋했던 엘리자베스와는 이후 볼썽사나운 싸움 끝에 이혼했다. 루슈디의 *'우울함, 호전성, 현명함, 자기연민, 조심스러움, 나약함, 이기주의, 강인함, 쩨째함, 단호함'과 관련된 일면들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그의 여성편력인데, 일단 책에 등장하는 두 번의 결혼은 모두 모양새가 전혀 아름답지 못한 이별이 되었다. 이는 루슈디가 여자를 '몹시' 좋아하는 남자였기 때문에 당연하게 따라오는 여난인데, 순수한 호기심으로 파트와 철회 이후를 검색해보니 그의 여성편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모양.

인도인 남성하면 흔히 떠올리는 정체성이랄까, 민족성이랄까...를 생각하면 루슈디 입장에선 한때는 사랑이었던 그녀들의 비난이 억울할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이제 정신 좀 차렸으면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작가로서의 재능을 아끼기 때문이다. 재능있으면 일부일처, 일부종사해야 하는가? 묻는다면, 못할 건 뭔가? 반문하고 싶다.

 

* 그들은 루슈디의 온갖 모습을 - 우울함, 호전성, 현명함, 자기연민, 조심스러움, 나약함, 이기주의, 강인함, 쩨째함, 단호함 등을 - 두루 목격하면서도 끝까지 그를 도와주었다. -p.262

 

자서전으로는 독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이 직접 3인칭 시점으로 쓴 이 책은 유년, 청소년기가 잠깐 등장하고 작가로 등단했던 시절을 짧게 거쳐 호메이니의 파트와 공표와 함께 바로 본문으로 들어간다.

죽음이 발뒤꿈치를 끊임없이 쫓아오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하물며 그 시간이 언제 끝날 지도 알 수 없다면.

그 시간이 11년이 될 것임을 미리 알았더라면 견디기가 더 쉬웠을까. 삶과 죽음을 대상으로 하는 가정은 의미 없겠으나 분명한 건 그 지난한 시간 동안 루슈디를 지탱해준 건 낙천과 긍정이었다는 거다. 이후 자서전의 영양분이 되었던 은둔 기간의 메모가 그것을 증명한다. 루슈디가 가진 최고의 재산은 책 한 권을 쓰는 지성이 아니라 삶을 향한 애착이었던 것.

 

이 책을 읽기 전, 하필 모커뮤니티에서 인도인에 대한 사실적인 불평, 불만, 비난, 비판을 읽은 터라 어쩔 수 없이 특정 민족을 향한 약간의 편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는데, 가령 루슈디가 존 르 카레,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가디언 지면을 통해 펜으로 싸웠을 때, 루슈디의 편을 들어 '우리 작가님한테 왜 그래요!' 하기 보다는 그들에게 그럴만한 이유나 사정이 있었겠지- 라는 가능성을 열어둔다던지 하는. 실제로 루슈디는 ** 르카레의 인터뷰를 잊지 않고 지면에 첨언한다. 본인도 인정하듯 쩨쩨할지는 모르나(11년이 지났는데도 잊지 않는 쪼잔함을 보라) 한편 그의 기본적인 성향은 낙천성이라는 짐작을 갖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별개로 인도계 문학인들 모임에서 만난 줌파 라히리를 말그대로 '까는' 일화를 읽을 때는, 아니 이 나쁜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인정한다. 난 여자의 적이다. 참고로, 글쓴이가 작가이다 보니 동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직,간접으로 찬조출연하는 재미는 덤.

 

**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08년, 존 르카레가 인터뷰에서 오래전의 그 사소한 언쟁에 대해 언급한 글을 읽었다. "어쩌면 내가 틀렸는지도 모릅니다. 틀렸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요."(pp.683-689)

 

이 책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도망쳐야 했던 인간의 11년의 기록이다. 그런데도 유쾌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건 그 끝이 결국은 해피엔딩이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남았고, 죽음의 그림자를 따돌리고 승리했다. 파트와와 함께 한 살만 루슈디의 11년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이성으로는 비관해도 의지로는 낙관하라'(by 그람시)가 그야말로 제격이다.

 

"밥 경위님, 이건 좀 과하지 않습니까? 차량 아홉 대에, 모터사이클에, 사이렌, 경광등, 게다가 경찰관도 너무 많고. 차라리 낡은 뷰익을 타고 조용히 뒷길로 지나가는 편이 더 안전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묻자 밥 경위는 대책 없는 바보나 미치광이를 보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선생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밥 경위님, 저 말고 또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거창한 대우를 받습니까?"

"아라파트 정도는 돼야겠죠."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과 동등한 예우라니 좀 놀라웠다.

"밥 경위님, 만약 제가 대통령이라면 지금보다 뭘 더 하는 겁니까?"

"선생님이 미국 대통령이라면 이 길 전체를 봉쇄하고 건물 지붕마다 저격수를 배치했겠죠. 오늘은 그렇게까지 소란을 피울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하여 조금도 소란스럽지 않은 이 행렬은 맨해튼을 향해 달려갔다. 남의 이목을 끌지 않으려고 차량 아홉 대가 한 줄로 늘어서고 모터사이클을 울려대고 경광등은 마구 번쩍거렸다 -p.407

 

행운이 한번 더 찾아왔다. 마침 인근에 밀턴 울라둘라 병원이라는 작은 의료 시설이 있어 구급차가 빨리 올 수 있었다.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달려오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멈춰 섰다. "실례지만, 혹시 살만 류슈디 씨 아니세요?" 그 순간만큼은 아니고 싶었다. 그냥 치료를 받고 있는 익명의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 그는 루슈디였다. "정말요? 지금 이런 부탁을 드리면 힘드시겠지만 사인 한 장만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는 생각했다. 사인 한 장 해줘. 구급차와 함께 온 사람이야.

(…중략)

트럭 컨테이너에는 신선한 거름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는 다소 흥분해서 자파르와 엘리자베스에게 말했다. "그 말은 우리가 똥을 실은 트럭에 깔려 죽을 뻔했다는 거야? 산더미 같은 분뇨에 깔려 죽을 뻔한 거야?" 그랬다, 사실이었다. 7년 가까이 암살 전문가들을 잘도 피해 다녔건만, 그와 그의 사랑하는 가족은 거대한 똥사태에 파묻혀 종말을 고할 뻔했다. -pp.618-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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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서재 - 어느 중국 책벌레의 읽는 삶, 쓰는 삶, 만드는 삶
장샤오위안 지음, 이경민 옮김 / 유유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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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대체 어떤 책을 골라야 한단 말인가"는, 내가 책장을 볼 때마다 하는 고민.

오카자키 다케시의『장서의 괴로움』이 장서가의 고충을 토로한다면 장샤오위안의『고양이의 서재』는 책벌레의 즐거움을 얘기한다.

저자 장샤오위안의 직업적 프로필의 가장 첫머리는 '과학사학자'이고 이어 천문학자, 성(性)학자, 저자, 번역가 등등이 이어지는데 그러니까 프로필을 통해 저자가 책을 엄청 좋아하는 과학자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여느 '책을 좋아하는 비문학인이 쓴 에세이'와 다른 점은 저자가 미리 밝힌 것처럼 에세이라기보단 만담에 가깝다는 것에 있다. 한마디로 저자가 처음 '책'에 반한 유년 이래로 청소년기, 청년기를 지나 장년이 되도록 삶의 일부분이었던 책 수다로 가득하다. 이 수다는 책 읽는 취미를 가진 사람의 공감을 끌어내는 저자의 책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데, 그야말로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 정말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의 애정이 행간마다 느껴진다. 


<고양이의 서재>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며 흥미를 끄는 부분은 아무래도 책 소개에도 나와 있듯 중국 문화혁명 시기의 '책의 수난'이다. 진시황의 실정(失政)의 대표적인 악행으로 알려진 분서갱유는 마오쩌뚱에 이르러 비록 책을 불태우고 학자를 땅에 묻지는 않았으나 문화혁명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당이 출판물을 일방적으로 독점하고 검열하는 현대판 분서갱유로 되살아난다. 역설적이지만 장샤오위안의 독서 이력이 빛을 발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독서행위가 자칫 사상검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열악한 상황 때문에 오히려 책의 무한한 매력에 눈을 뜬 장샤오위안은 부모의 도움으로 또래에 비해 취미생활이 비교적 수월했던 것은 물론이고 책덕후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은 지적 재산이 되어 이후 장샤오위안이 대학에 진학하고 평생의 직업을 결정하는 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올바른 독서가 인간에게 미치는 좋은 예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락적인 관점에서 재미있었던 부분은 「과학소설의 세 겹 경계」에 등장하는 SF와 관련한 내용인데 그중 헐리우드 영화 <매트릭스>를 개봉에 앞서 해적판으로 봤다는 내용이 있다. 해적판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에 대한 언급은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저작의 권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저자의 해적판 감상 수다가 인상적이다.
참고로 찾아 보니 <매트릭스>의 중국 개봉 제목은 <흑객제국(黑客帝國>이다. (이러-언 중국!)

저자는 영상물과 관련해선 스스로 '디스크파'라고 부르는데 그러니까 극장 관람보다 집에서 보고 싶을 때 언제나 볼 수 있다는 이유로 디스크를 소장하는 걸 선호한다. 서재에 3만 권에 달하는 책을 꽂아두는 저자의 수집욕을 볼 때 '디스크파'가 아니면 오히려 이상할 것 같지만. 디스크파인 저자와 달리 극장파인 친구는 어떤 영화는 극장에서 30번이나 봤는데 그 영화가 바로 '서유기 시리즈'라는 것이다. 고백하건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중화권 영화는 주성치의 '서유기 시리즈'이고, 다섯손가락에 꼽는 영화에 반드시 들어가는 작품도 '서유기 시리즈'다. <월광보합>과 <선리기연> 두 편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주성치의 천재성의 정점이다(라고 감히 나는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엔 '김용'으로 알려진 무협소설가 '진융' 얘기도 흥미를 끄는데 그의 지인이 준비한다는 진융 소설 열다섯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보인 '진융소설인물인보'는 나도 꼭 보고 싶다. 1924년 생인 진융은 1972년 『녹정기』를 끝으로 절필했는데 그의 신작을 다시 보고 싶은 기다림은 여전하다. 중화권 최고의 영화가 '서유기시리즈'라면 중화권 최고의 작가는 '진융'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고백하건데 그의 열렬한 팬이다.

그런데 한참 재미있게 읽다 말고 응? 하는 대목이 있었으니, 장샤오위안이 진융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 중 결혼하고 싶은 타입이라고 꼽은 '강민'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단정순의 옛연인이며 부방주 마대원의 부인이라는 강민이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집에 오자마자 폭풍검색을 하니 『천룡팔부』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진융의 소설 중 가장 재미없게 읽은 책이라 아마 기억도 흐릿했던 모양.

이 외에도 유년시절 셰익스피어를 암기할 정도로 좋아했던 다윈의 감성이 자서전을 쓰는 칠순이 되자 마른 모래처럼 버석하게 말랐다는(다윈 자서전 인용 by 저자) 얘기를 할 때는 노년에 들어선 저자의 나이 탓인지 그 어투가 사뭇 진중하고 쓸쓸하게 느껴진다.

이렇듯 책 한 권으로도 이렇게나 수다를 떨게 하는 장샤오위안. 아마 그를 만난다면 십년지기처럼 밤새워 얘기를 나눌 것이 틀림없다. 그가 아니라 같은 취미를 가진 누구를 만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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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08-26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에 끌리는데
아직 장만하지는 못했네요.
책수다란 참으로 재미나겠지요

인삼밭에그아낙네 2015-08-27 14:31   좋아요 0 | URL
책수다야말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숙명이자 최고의 즐거움이 아닐까 합니다.^^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로베르트 무질 지음, 김래현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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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던가, '신의 증명'과 관련된 내용의 글을 읽었는데 내용 중 '허수(虛數)'가 눈길을 끌었다.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 건 수학 문제를 풀 때 '허수'를 등장시키는 것과 같다... 는, 대충 그런 내용인데 하필 직후에 집어든 소설에서 이 '허수'가 등장해서 재미있기도 하고 묘하기도 하고.

 

어린 퇴를레스('young Torless')에게 닥친 혼란의 기저는 결국 '본질'이라는 개념이다. 퇴를레스는 어느날 예고 없이 기성사회(부모, 사회, 교육...)로부터 물려받은 통념이 의심받고 나아가 붕괴될 위기에 직면한다. 계기는 동료 생도가 절도를 하다 들키면서 시작된다.

동료 생도들의 돈을 훔쳐오던 바시니가 퇴를레스 무리 중 한 명인 라이팅에게 발각되는데, 학교 당국에 사실을 알리고 바시니를 퇴학시켜야 한다는 퇴를레스와 달리 라이팅과 바이네베르크는 바시니의 절도를 공론화하는 대신 바시니에게 그들이 직접 좀 더 효과적인 하지만 개인적인 징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자신의 주장에 확신도 없는 퇴를레스가 태도를 결정 짓지 못하는 동안 나머지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바시니에게 징벌을 주는데 이를 목격한 퇴를레스는 '가해자를 가해하는' 그들의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고 이는 죄와 벌이라는 근원을 향한 환멸로 이어진다.

 

요는, 퇴를레스는 자신이 느끼는 환멸의 정체조차 확신할 수 없어 혼란이 더욱 가중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해결책으로 자연과학의 '허수', 철학자 칸트로 위안을 삼고자 하나 이는 일시적인 것일 뿐, 혼란은 오히려 미궁이다.

 

잠깐이나마 퇴를레스에게 혼란을 정리할 열쇠로 등장했던 칸트의 저서는 소설에서는 드러나지 않으나 앞뒤 맥락으로 보아 아마 <윤리학 정초>가 아닐까 짐작된다. 이 짐작이 맞다는 가정 하에, 칸트의 윤리학에서 특기할 것은 '덕(or 선)이란 정언적이어야 한다'는 덕의 조건인데, 정언(定言)적이라는 건 조건이나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예로, 칸트에 의하면 하얀거짓말도 거짓말인 것. 과연 이런 엄격하고 청교도적인 정의가 퇴를레스의 혼란을 잠재울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 먼훗날 언젠가 퇴를레스의 뒤통수를 치며 깨달음을 줄 지언정 어쨌든 현재의 퇴를레스에겐 그조차도 또다른 혼란일 뿐이다.

 

'오성'(Understanding, 悟性, Verstand)은 소설 전반에 걸쳐 퇴를레스의 대사와 독백을 통해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인데, 흄의 <오성에 관하여>를 빌려오면 결국 판단의 대상은 '도덕'이며, 판단의 주체를 경험으로 삼을 것인가, 본성으로 삼을 것인가의 문제로 귀착된다. 흄 식으로 말하면 logos인가, pathos인가- 쯤 되겠다.

 

퇴를레스는 지금은 알 수 없으니 '침묵하겠다'로 일단은 자신의 혼란에 종지부를 찍는(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렇게 읽었으나 오독일 수도 있다. 책장에 원서가 있는데 올해 안으로 시간내서 다시 읽어봐야겠다 싶다.

 

퇴를레스는 뭔가를 말하려고 했고, 애써 진한 농담을 해보고 싶었다. 그는 이럴 때 아무 말이나 그냥 하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는 굳어 있는 미소로 자기 위에 있는 거친 얼굴을, 그리고 뜻 모를 두 눈을 응시했다. 그때 바깥 세계는 작아지기 시작했고… 점점 더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한순간 돌멩이를 집어 들었던 그 농촌 총각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가 자기를 조롱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그는 완전히 혼자였다.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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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
가오싱젠 지음, 오수경 옮김 / 연극과인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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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싱젠은 중국 출생으로 프랑스에 망명한 (주로 희곡을 쓰는)작가이고 200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점가에서 가오싱젠의 책은 민음사의『버스 정류장』과 예술담론 1권을 제외한 다른 작품은 모두 품절, 절판됐다.

(+)『피안』은 리뷰를 쓸 당시는 품절이었으나 지금은(2023년) 구입 가능하다.


피안』은 표제작 '피안'을 비롯해 '저승', '생사계', '팔월의 눈' 네 편이 수록되었다. 이 네 편 중 여기서 얘기하려는 건 두 번째 희곡「저승」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장주'는 장자)

 

천하를 거닐며 철학을 논하던 장주는 어느 날 문득 고향에 독수공방 홀로 있는 어리고 아름다운 아내의 정조를 의심한다. 그리하여 못된 장난을 계획하는데 내용인즉 자신이 죽은 것처럼 꾸며 상여를 앞세워 아내에게 간다.

 

장주의 아내

이 훤한 대낮 교만한 태양 아래, 웬 날벼락인가.
눈앞이 아찔하여라. 어두운 하늘, 캄캄한 땅.
멀쩡하던 서방님 졸지에 저 세상 사람 되다니.
낮밤으로 남편 기다리던 아내, 정말 팔자도 사납구나! (p.80)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슬퍼하던 장주의 아내는 초나라 귀공자(로 변장한 장주)가 등장해 유혹하자 결국 귀공자의 유혹에 넘어가는데, 그 순간 귀공자가 돌연 아픈 척을 한다. 놀라서 걱정하는 아내에게 귀공자는 자신이 불치병을 앓고 있으며 이 병이 나으려면 사람의 뇌수를 먹는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아내는 부엌으로 가서 도끼를 챙겨 장주의 관이 있는 방으로 간다. 그리고 도끼로 관을 내리찍기 직전 관 뚜껑이 열리고 (그 사이 변장을 벗고 관에 숨었던)장주가 나타난다.

 

장주

난 장주요. 귀신이 아니라, 바람둥이 아내의 남편이다.
나쁜 계집, 사람으로 수치도 모르는가?
여인아, 넌 왜 우느냐? 네 남편이 진짜 죽은 것도 아닌데.
됐소, 됐소, 한번 놀린 것뿐이오. 진짜가 아니라니까? (pp.92-93)

 

결국 정황을 모두 알게 된 장주의 아내는 도끼로 자살한다. 그리고 저승에 간 아내는 판관과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데 모두들 아내의 죄만 논할 뿐 아내의 억울한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장주의 아내

어떻게 감히 남편을 무고하겠습니까? 단지 억울함을 품은 귀신이 되기는 싫습니다.
남편 된 사람은 자기 아내를 희롱해서는 안 되지요.
아내 된 사람도 남자를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되지요. 여잔 절대 사랑에 빠져선 안 되지요.
여자는 사랑에 빠졌다해도 절대 자기 생명을 가벼이 버려선 안 되지요-  (p.113)

 

심판을 받은 장주의 아내는 결국 혀가 잘리고 연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형을 받는다.

저승사자에게 끌려 음양의 경계를 건넌 장주의 아내는 인간세상을 바라보며 그러지 말 걸, 이제 꽃도 달도 못 보게 되었구나... 후회하며 혼잣말을 읊조리는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M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니, M이 불쑥 "아내가 뭘 잘못했는데?" 묻는다. 판관과 염라대왕에 의하면 '남편을 배신한 부도덕'이 죄라고 그러더군- 이라고 설명은 했는데 실은 속으로 뜨끔했다.
나 역시 내심 장주의 유혹에 넘어간 장주의 아내를 어리석다고 탓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누구보다 아내를 잘 아는 장주가 아내가 정신적으로 약해진 틈을 비집고 들어가 유혹한 장난이야말로 정말 악하고 비열한 짓이었던 거다. 실은 장주의 아내는 잘못하지 않았고 나쁘지도 않다. 그녀는 그저 남편을 잃은 슬픔으로 많이 지치고 약해져 있었던 불쌍한 여자였을 뿐.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는 장주로 끝이 난다. 이 장면은 장자의 지락편에 등장하는 일화와 겹치는데 일화의 내용인즉슨, 장주가 아내 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절친 혜시가 조문을 갔는데 슬퍼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장주가 웬걸 술 마시고 노래부르고 있는 거다. 조강지처가 죽었는데 즐거워하다니 이게 될 말인가?, 추궁하는 혜시에게 장주 왈, 처음엔 자신도 무척 애통해 했으나 문득 사람이 죽고 사는 것도 모두 자연의 이치이고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깨닫고 나니 슬픔이 덧없더라- 한다.

장주가 그렇게 깨달았다 하니 그런 것이겠지.

 

장주

(사람들에게, 아내의 시체를 가리키며 조그만 소리로) 한 마리 나비였어. 
(자기를 가리키며) 한 마리 전갈이었지.
(사람들을 향해 히히 웃으며)
사랑도 좋고 욕망도 좋아. 사람들은 다 연극을 하는 거야. (p.95)

 

아내의 시체를 보면서 읊는 장주를 보니 서머셋 몸의『인생의 베일(The Painted Veil)』에서 '죽은 건 개였어'라고 읊조리며 죽어가던 월터가 떠오른다. 남자들이란...

 

『피안』은 이야기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가오싱젠의 희곡 형식이 낯선 이에겐 가독성이 썩 좋지는 않은 책이다. 특히 메타희곡의 구조를 하고 있는 『피안 』은 제목에 어울리게 분열된 자아가 끊임없이 내뱉는 형이상학적인 독백을 쫓아가는 과정이 감각적인 방면으로는 빈말로도 '재미'라는 표현을 붙이기가 어렵다. 신기한 건 그럼에도 읽은 직후 묘하게 되씹는 맛이 있다는 거다. 희곡이라는 특성을 감안, 등장인물들의 무의식과 내면이 뱉는 독백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가오싱젠의『피안』을 읽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아주 오래된 옛날이요, 아주 해묵은 얘기고요. 
바로 지극한 현인 장자가 그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에게 황당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한번 말을 꺼내면 다시는 거둬들일 수 없는 농을 걸었다가, 이 믿을 수도 없고, 뜬눈을 감을 수도 없고 혀도 오그라붙고, 차마 눈뜨고 볼 수도 없는, 귀신도 놀라 자빠졌던 연극이 벌어진 거요. 지금 사람들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예요.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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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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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하지 않는 세대, 책임지지 않는 세대.
세월호는 이 모든 무책임한 세대의 증언이고 민낯이다.
이 가슴 아픈 역사가 잊혀지지 않았으면 한다. 잊혀지지 않는 것이 옳다.
우리는 저 차가운 바다를 외면하는 것으로 묵시적 공범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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