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 그리고 사물.세계.사람
조경란 지음, 노준구 그림 / 톨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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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경란이라는 작가가 백화점에 대해서 쓴 것이 의아했다. 사실, 어느 작가가 백화점이라는 공간에 대해 썼다해도 한번은 물음표를 그렸을 것 같기는 하다. 나에게 백화점이란 현대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인식되니까 말이다. 나도 한때 퇴근하자마자 회사건물 바로 옆에 있는 백화점에 물건을 사든 사지 않든 들락날락 거리곤 했던 때가 있다. 갖고 싶은 물건을 사버리고는 다음달 카드청구를 두려워하며 일종의 회사를 다녀야만 하는 명분으로 삼기도 했으니 말이다. 밝고 쾌적한 그 공간에서 빛나는 물건들을 보면 갖고 싶은 모든 것이 내것이 되지 못하는 안타까움, 나아가 나의 경제적 무력감까지 느끼고 했던 그 공간..  그런데 막상 그 물건을 집으로 가져와서 보면 살 때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작가는 아주 오랫동안 아마 지금도 백화점이란 곳을 삶의 아주 중요한 거점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도서관에 하루 종일 있다가 백화점을 들리곤 한다니까 어딘가 좀 의아하긴 하지만 이해가 되기도 한다. 혼자 밥을 먹기 뭐할때는 백화점 식당이 좋다는 이야기며, 유행이 한참 지난 구두를 수선하러 백화점에 가서는 망설이는 모습 등 작가의 성격을 충분히 짐작하게 하는 글들이었다. 덕분에 그 시절의 나의 모습, 내 기분, 사건들도 동시에 떠올랐다. 내가 이렇게도 오래 살았나,하는 생각에 깜짝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든 내용은 아버지께 값비싼 점퍼를 선물하는 이야기였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베풀때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물질적인 것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어쩌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바짝 정신이 차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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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6-29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질은 사람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주는 거 같아요.
더 사랑하는 사람에게 물질적으로도 더 쓰게 돼있지요.
마음이 중요하니, 마음 알지?, 이런 말은 물질적으로 주기 싫은 경우에 쓰는
핑계, 합리화일 뿐. ^^
스파피님, 저 어제 이 책 선물로 받았는데 표지부터 참 마음에 들어요.
아직은 안 읽었어요. 기대되네요.

스파피필름 2011-07-01 18:36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지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뿐아니라 물질적으로도 베푸는 데 어려움이 없다면 참 좋을텐데 말이에요. 특히 요즘 부모님에게 더 그런 생각이 들어요. ^^
이 책 재밌어요. 더운 여름 잘 나시길.. 그런데 또 내일모레 비가 온다네요.
 
백화점 - 그리고 사물.세계.사람
조경란 지음, 노준구 그림 / 톨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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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종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고 다양하다. 나는 타인에 관해 알고 이해하게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 그가 갖고 있는 두려움에 관해 대화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갖고 있는 두려움을 털어놓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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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구두
헤닝 만켈 지음, 전은경 옮김 / 뮤진트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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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실수인 의료사고를 이유로 모든 세상과의 문을 닫고 홀로 살아가는 예순여섯의 남자가 있다. 가족이라고는 키우는 개와 고양이가 전부이다. 만나는 사람은 딱 두사람 우편배달부와 해안경비원이다. 그렇게 살아간지 10년도 넘게... 이쯤이면 그 나이라면 인생에서 더 이상의 변화는 없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인생은 모르는 법. 젊은 날 그가 떠나간 여자, 그것도 죽음을 앞둔 여자가 나타난다. 알고보니 그는 모르는 딸까지 있었던 것이다. 두 여자의 등장으로 주인공 벨린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다. 그는 인생의 짐이자 과제였던 자신의 실수로 팔 없이 살아가는 예전의 그 환자를 찾아간다. 팔을 잃은 수영선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버려진 아이들을 키우며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요했던 그의 삶을 뒤흔들어놓았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소설 초반의 벨린처럼 홀로 조용히 살아갈 수 있다. 풀어야 할 인생의 문제들은 그대로 먼지가 쌓이도록 남겨둔채 죽음 조차도 홀로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속의 벨린의 인생이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또 달라질 수 있는게 우리의 인생이다. 어떻게 살것인가는 결국 자신의 몫이다. 자신에게 말한마디 없이 떠나간 남자를 수십년만에 찾아간 하리에트가 토해냈던 감정들. 그 감정들에 젖어 지나간 추억을 되씹어본다.  

 소설의 말미에 벨린에게 아주 멋진 보라색 구두가 도착한다. 딸이 구두의 명인에게 부탁해 만든 아주 고급스럽고 편한 구두이다. 누구에게나 이런 멋진 구두를 신을 권리가 있다. 그 권리는 용감하게 살아가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시간을 되돌려 다시 살아가면 지금의 나 보다 더 잘 살 수 있을꺼라고 후회하는 것보다 지금 여기까지 온 내 자신을 격려하며 살아가는자에게 이탈리아 구두와 같은 멋진 선물이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잔잔하지만 밑줄치고 싶은 구절이 많았던 소설이다. 이 작가 왜 모르고 있었지?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놓아버리지 않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p.7) 

 결정을 내려야 했다. 계속 내 성채를 지켜야 하나? 아니면 패배를 인정하고, 어쩌면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내 삶 속에서 뭔가를 다시 시도해보아야 할까? 결정할 수 없었다. 나는 자리에 누워 바깥 어둠을 내다보며, 내 인생은 그저 지금 같은 모습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정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p.29) 

 나에게 해명을 요구하겠지. 왜 내가 자기를 떠났는지, 그 긴 세월이 지난 뒤에 알고 싶어진 것이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삶은 지나갔다. 그저 그랬다. 나에게 벌어진 일을 생각한다면, 하리에트는 내가 자기 인생에서 사라진 것을 고마워해야 할 터였다. (p.40) 

 내가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그것이 내가 내용이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매일 기억나게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공허한 삶을 확인하기 위해 황여새에 대해 썼다. (p.243) 

 "시마는 살면서 우리가 거의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을 겪었어요. 겉만 봐서는 어떤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큰 장애를 입었는지 알 수 없어요." (p.281) 

 "당신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한가지가 있어요. 더 이상 박수를 칠 수 없다는 거지요.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지르고, 손바닥을 서로 부딪쳐 그 환호성을 표현하는 건 인간의 권리예요."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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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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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어딘가 모르게 내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감정이었지 싶다. 그래서 마커스와 같이 울분을 토하게 된다. 황인숙의 <강>이라는 시에서처럼 아무도 없는 강에라도 가서 내 속에 쌓여있는 울분을 토해내고 싶다. 우리의 몸에 온갖 경로를 통해 쌓이는 중금속처럼 울분 또한 나의 삶을 좀 먹는다. 주기적으로 어떤 방법으로든 정화시키지 않으면 분노의 찌꺼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꽃다운 나이 스무살도 되지 않아 마커스는 삶이 제멋대로 부리는 조화로 생을 마감한다. 어쩌면 아버지의 말대로 조금 더 조심을 하며 살았더라면 그가 꿈꾸었던 변호사의 삶을 살다가 은퇴하며 두 부모를 모시고 노후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소하고 하찮은 선택의 순간들이 우리에게 내주는 삶이라는 길은 결코 녹녹치 않다.  

정육점을 하는 부모의 아들, 그 집을 떠나고 싶은 스무살, 막상 집에서 아주 먼 곳으로 도망쳐왔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관계의 문제들.. 자살을 시도했던 여자친구, 믿고 싶지 않은 신념을 강요하는 학교는 마커스의 생을 좀먹게 했다. 소설에는 기숙사에서 방을 계속 옮기는 모습이 나온다. 그는 왜 정착하는 곳마다 갈등을 일으키는 것인가. 한번도 분노하지 않고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온 그 인데 말이다. 오, 삶이며, 자네의 뜻대로 나를 어디론가 몰고 가려하는가. 그 보이지 않는 힘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수시로 내 안에 쌓인 울분을 없애는 것만이 예방책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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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1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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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드라마라고 하면 기본적인 재미를 보장해준다. 생명을 다루는 일만큼 중요한 일도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소설에 나오는 기류같은 완벽한 외과의사는 기본으로 나오고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로맨스도 그렇고.. 물론 이 소설에는 그런 로맨스는 없다. 기류와 대비되는 코믹스러운 이미지의 다구치와 로지컬 몬스터라 불리우는 탐정(?) 시라토리의 이야기가 주가 된다. 범인은 일곱명 중 하나인데.. 과연 누구일까. 사실 시라토리가 등장하기 전까지 다구치가 이 사건의 해결을 맡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갑작스리 등장하는 시라토리가 모든 일을 샤샤샥 해결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재밌었다. 대학병원 의료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도 알 수 있고, 다구치처럼 병원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러 환자가 왔을때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따뜻한 의사가 있다는 희망을 조금쯤 가져볼 수 있었으니까. 시라토리가 마지막으로 다구치에게 조언했던 말은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이다. 이처럼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것이 없다.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우리들은 극단으로 과장해서 보는 경향이 있으니까. 시라토리의 활약이 펼쳐지는 다른 책들이 또 있다고 하니 이 어찌 아니 반가울쏘냐. 당장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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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4-11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읽었어요!! 근데 다른 이야기는 너무 큰 기대는 말고 쪼콤만 기대하세요ㅋ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요^^;

스파피필름 2011-04-11 22:32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아도 나이팅게일의 침묵은 평이 별로 더라구요.. -_- 그래도 시리즈는 다 읽어야한다는 강박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