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공부방]은 예전부터 있던것 같은데 별다른 이유없이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가 한 번 참석해볼까 해서 우연히 수강을 지원했고
덜커덕! 전체강의(총5강) 수강권을 획득해버렸다. 


 

 

 

 

 

 



어제 처음 참석한 인문학 강의는 한겨레신문 김진철기자가 나와서
본인의 최근작 [불공정 경제학]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저자가 밝혔듯) 책 제목은 출판사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고
실제로는 '경제기사의 진실'라는 말이 더 책과 강의의 내용을 정확히 표현하는 제목이다. 우리나라 신문사들의 경제기사가 어떤 배경속에서 선택되고 작성되며 보도되는지 고발한다.


주요 강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1. 경제기사, 경제에 도움 안된다.

  국내 신문사 매출(수익?) 70~80%를 광고에 의존한다.
  당연히 광고주에의해 휘둘릴수밖에 없고 광고주를 배려하여 기사를 배치한다.
  경제부의 경우 편집회의와 영업회의를 구분하기 어려울지경이다.
  (모 신문사의 경우엔 실제로 경제 담당이 영업 담당을 하기도 한다고..)
  신문사와 신문사, 신문사와 기업간의 밀당에 의해 기사가 편집되므로
  지면 내용을 곧이 곧대로 믿지 말것!  
   기사 하나에 중심을 두지말고 6개월이상 보면서 경제전반의 흐름파악에 활용하는게 좋다.
  
  #밀고당기기 방법 :
    기업은 자사에 비판적인 기사를 올린 매체에 광고나 협찬을 줄이거나 끊는다.
    신문은 경쟁지에 광고를 더 주거나 독점기사(CEO인터뷰 등)를 제공한 기업에 대해 비판 기사를 싣는다.


 
2. 기자를 전문가라고 착각하지 마라.

  저자 자신도 경제부에 배치된 후 신문기사를 보면서 경제를 공부했다.
  관련 전문가를 잘 알고있는 것이 기자의 실력이지 관련분야를 잘 아는게 꼭 좋은것은 아니다..
  많게는 일 7~8편 이상 기사를 작성하므로 기사의 진위를 제대로 확인하는것조차 어렵다.
  (오전에 기사아이템 보고후 데스크의 최종결정이 나야 실제 취재에 들어가므로 기사 작성에
   들이는 시간은 상당히 제약된다..)
   따라서 보도자료등을 그대로 베껴쓰거나 타 매체 기사를 비판없이 옮기는 경우가 많다.

 

3. 항상 의심하라.

  신문사는 자본에 휘둘리고 기자는 시간에 쫒기고... 따라서 독자가 똑똑해야 한다.
  기사를 의심하라. 동일사안에 대하여 복수 언론의 기사를 비교하는 것이 좋다.
  기사의 소스(보도자료,후원사,협찬사,기자의 직접취재 등..)가 무엇인지 확인하라.
  이메일로 기자에게 물어봐라.(보통 잘 답변해주는 편이며 사건 뒷얘기도 들을 수 있다.)
  가능하다면 현장을 직접 확인 하라.

 
다른 이야기도 더 있었겠지만 일단 위 큰 세 꼭지가 중심이었던듯 하다.
딱딱한 주제에 비해 강의가 재미있었던 이유는 실제 우리가 아는 기업이나 신문사의 사례를
적절히 소개해주었던 이유가 큰데 짐작만 했던 대기업들의
언론플레이와 일부 신문사의 치밀하면서도 가련하기까지한 생존싸움을
기자의 입을 통해 직접 확인하였다는게 나름 큰 소득이었다.
(풍문으로 아는 것과 관계자의 확인을 받는 것은 천지차이다.)

 

안타까운 것은 김진철 기자의 조언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나
사실은 기사 검증이라는 그런 부담스러운 일들이 시민의 몫은 아니라는 점이다.
기사의 소스를 확인하고 탐사하여 정말 가치있는 정보를 대중에게
제공하는 것은 1차적으로는 언론(기자)이 할 일인데 시민이 직접 쓰레기더미 속에
뛰어들어 가치있는 정보를 걸러내야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생업도 있는데....  

물론 김진철 기자는 현재 한국의 현실이 그만큼 오염되어있으니 서민들이
그렇게라도 자신을 방어하라는 뜻으로 고언한 것일게다.
동종업에 종사하는 다른 기자들의 눈총까지 받아가면서 말이다.


그나저나 신문사의 광고의존도가 70%가 넘는다니 당분간 메이저 신문들의
정론직필은 기대하기 힘들겠다. 하루 빨리 새로운 언론운동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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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대근 칼럼을 옮겨 놓는다.
제목부터 가슴이 먹먹해지는 컬럼이다.  이젠 플픽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이대근칼럼]우리는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2161927555&code=990339
 

지난해 8월1일 동작대교에서 19세 소녀가 투신했다. “고시원비도 밀리고 너무 힘들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긴 뒤였다. 이혼한 부모와 헤어져 혼자 살던 소녀는 고교 졸업 후 식당일을 했다. 소녀가 투신한 지 한 달여 지난 9월6일엔 여의도 공원에서 50대 남성이 나무에 목을 맸다. 그 자리엔 빈 소주병 하나, 그리고 유서 넉 장이 있었다. 한동안 날품을 팔지 못한 그는 유서에 자신이 죽으면 장애아들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적었다. 그로부터 엿새째 되던 날 창원 마창대교에서 40대 남성이 난간을 붙잡고 버티던 11살짜리 아들을 떠밀었다. 곧 그도 뛰어내렸다. 아내를 위암으로 잃고, 대리운전으로 살아온 날의 끝이었다. 다시 한 달쯤 지난 10월19일 전주의 한 주택에서 30대 주부와 두 아이가 살해됐다. 남편은 집 가까운 곳에 목을 맨 채 발견됐다. 그는 2개월 전 실직했고 월세와 아이들의 학원비가 밀려 있었다.


해가 바뀌고 나흘째 되는 날 서울 하월곡동 지하방. 60대 부부가 기초생활수급비 43만원으로 생활할 수 없다며 연탄을 피워 자살했다. 그로부터 아흐레 뒤 평택 주택가 차안에서 30대 남성이 자살했다. 쌍용차 구조조정 때 희망퇴직했던 이다. 안산·거제를 전전했지만 일거리를 찾지 못했고 아내는 떠났다. 그에겐 어린 두 아이가 남았다. 그리고 지난달 29일 안양의 한 월셋방. 가스가 끊겼고 수건이 얼어붙어 있었다. 음식을 해 먹은 흔적은 없었다. 그곳에 젊은 여성의 주검이 있었다. “저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라는 쪽지를 이웃집에 붙여 놓은 지 며칠 지난 뒤의 일이다. 다시 열흘이 흘러 강릉의 한 원룸. 대학생이 번개탄을 피워 놓고 죽었다. 방에는 즉석복권 여러 장과 학자금 대출 서류가 있었다.

사회서 낙오된 자, 꼬리 문 자살
이 죽음의 기록을 그만 끝내야겠다. 물론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이 한창인 지금도 죽음의 행진은 계속되고 있다. 곧 봄이 오겠지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월곡동·평택·안양·전주·강릉 어디에나 있는 똑같은 이야기다. 어린 소녀도 죽고, 대학생도 중년도 노인도 죽었다. 참으로 공평한 세상이다. 일자리 못 찾고 실직하고 벌이가 적고 병들고 월세·학원비 밀린 이들은 다리 위에서 집에서 차안에서 공원에서 죽는다. 만일 가장이 생계를 유지할 능력이 없다면 그의 가족도 살아남기 어렵다. 국가는 경쟁력 강화하고 선진화하느라 겨를이 없고, 사회는 이미 정글로 변해 아무도 남의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가족 살해다. 사회가 낙오자로 찍기만 하면 찍힌 이가 알아서 나머지 쓸모없는 가족을 사회로부터 제거한다. 이건 연쇄살인, 아니 청부살인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너무 조용하다.

죽음의 행진 ‘침묵’만 할텐가
1980년대 박종철·이한열의 사망은 즉각적인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각성했고 연대했으며 행동했다. 그때는 누가 죽였는지, 왜 죽어야 했는지 알고 있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았다. 하지만 요즈음은 어떤 신호도, 의미도 없이 죽어간다. 잠자는 사회를 깨우면 안 될 것처럼 남몰래 세상을 뜬다. 그런 죽음에는 어떤 긴장감도 없다. 성공한 자와 이긴 자들이 구축한 질서와 평화를 위협하지도 않는다. 이 죽음의 레짐에서 살아남는 것, 이것만 문제일 뿐이다.

<시크릿 가든>의 작가도 밥과 김치가 없었던 최고은처럼 반지하방에서 사흘간 과자 한 봉지로 버틴 적이 있다고 했다. 다행히 그는 가난에서 탈출했지만 그의 성공이 그의 가난과 굶주림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그가 비운 자리를 다른 사람, 가령 최고은 같은 이가 물려받는다면 그의 예외적인 성공을 공유하기는 어렵다. 만약 20대라면 실업자일 가능성이 높고, 중년이라 해도 비정규직이기 쉬우며 큰 병에 걸리면 가정이 파탄나고, 늙는 것은 곧 가난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사회에서 가난한 여자가 구원받는 길은 재벌2세의 여자가 되는 것이라는 환상을 퍼뜨리는 한 세상은 쉬 변하지 않을 것이다. 먹는 밥의 한 숟가락, 하루 중 단 몇 분, 번 돈과 노동의 일부라도 세상을 바꾸는 데 쓰지 않으면 죽음의 행진을 막을 수 없다. 내가 돈과 시간을 내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도 못한다. 내가 그렇게 못할 사정이 있다면, 다른 사람도 사정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다. 그래도 하지 않겠다면 죽음의 공포가 연탄가스처럼 스며드는 이 조용한 사회에서 당신은 죽을 각오로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당신만이라도 살아남는다면 다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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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얼마 안되지만 나름 단시간 여러 권의 책을 질렀다. 전부 년초 집에서
하사하신 보너스 덕분이다. 그런데 보너스를 거의 다 소진할때쯤 일리아스의 반값 할인 소식이
전해졌다. 알라딘 인문MD님이 트위터로..

남은 실탄을 보니 고민스러웠다.
좋다는데, 그렇게 좋다는데 어떻게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더 그랬다.
괜히 사놓고 먼지만 쌓이게 되는 것은 아닌지...


구매여부를 고민하느라 간만에 강유원 선생의 '인문고전강의' 일리아스편을 다시 훝어봤다.
그리고 책의 원 소스인 동대문구도서관 강의 녹취파일도 두 시간씩이나(!) 들었다.
시간은 됐고, 결국 고민하느라 소모되는 칼로리가 책 값을 넘어갈 것 같아 그냥 콱 질러버렸다.
뿌듯했다.


..

하지만 이럴때마다 찜찜함도 함께 남는다.
도서정가제때문이다. 3월부터인지 반값할인을 제한하기로 했다는데 '싸게 사는것' 자체는 소비자로서는 좋지만  도서정가 파괴로 괴로워하는 출판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 한켠으로 찜찜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사실 왜 정가제를 지켜야만 하는지, 여러 설명을 읽었어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반문하고 싶은 설명이 적지 않다.  다만 책만드는 사람들이 "그래선 안됩니다"라고 하니 왠지 양심선언처럼 들려 그대로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서점의 상반된 입장이야 이해하고 말고 할것도 없고.

이렇게 이야기하면 서점만 나쁜 놈 취급하는 것 같은데 서점들도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 쯤은 안다.  시장경쟁이라는 시스템상의 문제도 있다는 거지. 

컴퓨터 S/W나 영화, 음악파일을 공짜로 다운받아 즐기는걸 당연시 여기는 사람이 아직 많다. 하지만 90년대부터 20여년이상 저작권 강조가 지속되면서 개선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오히려 한류붐이 불면서 남의 나라의 그런 모습을 꾸짖기도 할 정도다.

도서정가제가 충분히 당위성이 있는 거라면 비슷한 길을 갈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하루 이틀 사이에 이루어지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나같은 사람이 소신있게 주변사람에게 당위성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설득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반값할인제한이 담합 아니냐고 물어올때 "그건 이렇습니다"라고 말할수 있게 말이다.  소비자에게 먼저 부지런히 출판계를 공부하라고, 상도덕을 생각하라고 요구해서는 곤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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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2-12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지금 오프라인은 정가제를 하고 있는데 온라인서점에서 할인을 해주는것도 좀 그런데 반값 할인은 생각해봐야 할 문제예요.
청주에도 대형서점 한곳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더라구요. 괜히 미안한 맘이 들었습니다.

귀를기울이면 2011-02-13 08:25   좋아요 0 | URL
어렸을땐 서점차리는게 좋아보였는데 언제부턴가 불가능한 일이되어버렸더군요. 자승자박인지도..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 

한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유언장이 되어버린 쪽지에 쓰인 글귀다.  지난달 29일 시나리오작가 최고은씨가 본인 집에서 숨진채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어제 트위터에서는 이 작가의 죽음 소식으로 떠들썩했고 문화예술계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의 각별한 느낌과 반성과 성토가 넘쳐났다. 

자신의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한 청년이 집에서 지병과 굶주림으로 죽었다는 사실은 고인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해도 참담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고인의 상황을 짐작해보려는 시도만으로도 걷다가 통곡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의 반응은 과연 우리 사회는 회복불가능한 병에 걸린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만들만큼 어처구니 없었다. 

"알바하면 굶어죽지는 않았을텐데.."
"자구노력도 없이 너무 안일했네요.."
"노숙자 무료급식이라도 먹지.. 된장녀 아닌가요?"

더 심한 말도 많은데 차마 더 옮기지를 못하겠다. 

사람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것도 그렇고, 어려운 사람들의 현실을 모르는 것도 그렇고, 모르는건 그렇다쳐도 듣고보고도 공감하는 능력이 없는 것도 그렇고 이건 짐승의 세계 아닌가 하는 절망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한 종족들이다. 저렇게 사고능력이 망가지기도 쉽지 않았을텐데...

어떤이는 그 죽음이 슬프고,
어떤이는 그 생존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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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라 하면 으레 오랜만에 집안 사람들이 한데 모여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하며 친목을 도모하기 마련이다. 물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지만 보통은.. 그렇다. 

한편  집안 어르신들이 간만에 보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는 질문은 '성적은?', '취업은?', '결혼은?'   이 세가지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니 이런 자리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보게된다.  그뿐아니다. 졸업과 취업과 결혼 문제가 이미 지나간 사람도 지역민심(?)의 탈을 쓴 정치이야기를 들으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의 어르신들 성향이야 거의 판에 박은듯 하니 더 말할것도 없는데, 이게 토론이나 대화라기보다는 일장훈시의 성격이 강해서 반론같은건 끼어들수 없기 때문에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여간 힘든 시간이 아니다. 남남이라면 자기 주장도 내세우면서 싸움이라도 하겠지만 집안에서야 어디 감히...

이번 설에는 그게 특히나 더 심했다. 얼마전 천정배 의원의 "이 정권, 죽여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발언이 임팩트가 강한듯 했다.  이 발언이 (사이비)보수 성향의 어른신들에게는  "대통령을 죽여버리자"라고 들린 모양이다. (물론 여론조작의 영향이 클것이다.)  계속 "천정배는 정치성향을 떠나서 인간이 그러면 안된다", "그럴수가 있느냐" 하면서 격한 반응을 보이신다.  실제 발언의 내용과 배경을 아는 입장에서는 잘못된 정보를 기초로한 원색적인 비난이 매우 불편하게 들렸으나 듣고만 있을수 밖에 없었다. 그분들에게는 진실이 중요한게 아니라 비난할 구실이 중요한 것이었으므로 그 구실을 뺏는다는 건 역효과를 가져올게 뻔했기 때문이다. 요새 어린(?)것들, 아무것도 모르면서 날뛴다는 그런 편견을 더하는 일밖에는 아무 의미 없는 짓이 될것이었다.

요새 말이 많은 '복지'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한 어르신은 한마디로 이 문제를 정의 하셨다.  

"이런 빨갱이 새끼들!" 

복지확충은 곧 공산주의를 하자는 거라고 명쾌하게 정리하셨다.  참..... 평생 교직에 계시면서 무상교육받는 아이들을 지켜보시고, 은퇴해서 나라에서 주는 연금으로 편안한 노후 생활을 즐기시는 분이 국가보조금 받는 3자녀 아들네 집에 오셔서  "복지는 공산주의"라고 외치시는걸 대체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난감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모순을 완화하고 자본주의의 붕괴를 막기위해 필수불가결하게 커져야 하는 부분,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그렇게 커져왔던 부분이 국가가 개입하는 공적 영역인데 그 과실을 한껏 누리시는 분이 공산주의 운운하시는 아이러니라니.... 

 사실, 위의 이야기들을 집안 어르신의 이야기라고 썼지만 선거나 여론조사의 세대별 결과를 보면 대다수의 50~60대 이상 세대 분들이 갖는 공통적인 인식이다.  참, 지겹게도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유시민 소장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정치인들도 그쪽 세대가 변할거라는 기대는 안하는듯 했다.  아예 고정 변수로 놓고 이야기를 했으니까. 

 

한껏 어르신들을 비꼬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할수 있는 한 이해해보자는 입장이다. 내가 그런 인식을 하는데는 황석영의 <손님>을 읽으면서, 그리고 신문에 실린 모 목사님이 회개하듯 하신 말씀 "전쟁을 겪은 세대를 이해해달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느낀 바가 많이 작용을 했다. 잔인한 전쟁을 겪은 세대에 대한 연민과, 나는 상상하기도 힘든 고난과 상처를 겪은 세대에 대한 특별한 대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월은 흘러가고 어쨌든 그 분들의 시대도 점점 저물어가고 새로운 세대가 세상을 채워가고 있으니 자연상태라면 머지않아 세상도 내가 생각하는 만큼은 아닐지라도 방향은 같은 쪽으로 변해갈 것이다.  문제는 전쟁세대들의 상처와 고난을 이용하여 장사하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  이번 일만 봐도 족벌 언론은 천의원의 발언을 왜곡해가며 어르신들을 투사로 만들었고 대통령은 '누가 저를 죽이자고 말했다'는 구라를 쳐가면서 자신의 지지세력 결집을 유도하지 않았는가? 

 

그나저나 명절때마다 속에서 울컥하는 거 참으려니 좀 힘들다.  썩은 언론이 이렇게 구석구석 영향을 미칠것은 미처 생각 못했다. 집안의 화목해야할 모임까지도 불편하게 만든다. 다음에 상품권 돌리는 동네 조중동 신문 아저씨 또 만나면 멱살이라도 잡고 분풀이라도 해야겠다.  개인적인 체험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큰 도움을 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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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now 2011-02-05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생각을 하게되죠. ㅡ_ㅡ;
"여보, 아버님댁에 신문 바꿔드려야 겠어요~"

인터넷 사용할줄 아시는 분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에요.

귀를기울이면 2011-02-06 08:13   좋아요 0 | URL
확실히 정보습득 경로가 다양한 분들은 반응이 다르시더군요. 저도 벌써 최신 전자제품이나 서비스를 보면 활용하기 귀찮아지는데 연세 많으신 분들이 타닥타닥 인터넷 활용하시는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닮아야 할텐데...

노이에자이트 2011-02-06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50~60대도 전쟁을 모르는 세대인데...그 윗세대들에게 "너희들이 육이오를 알아?" 하면서 욕많이 먹던 세대들이죠.

귀를기울이면 2011-02-07 00:09   좋아요 0 | URL
그 욕, 마치 경험하신듯..ㅋㅋ 50대는 좀 심한듯 합니다만^^ 그래도 60대 이상은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셈이겠지요. 제가 글을 쓰게 만든 분은 고희를 한참 지나신 분이시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