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라 하면 으레 오랜만에 집안 사람들이 한데 모여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하며 친목을 도모하기 마련이다. 물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지만 보통은.. 그렇다. 

한편  집안 어르신들이 간만에 보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는 질문은 '성적은?', '취업은?', '결혼은?'   이 세가지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니 이런 자리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보게된다.  그뿐아니다. 졸업과 취업과 결혼 문제가 이미 지나간 사람도 지역민심(?)의 탈을 쓴 정치이야기를 들으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의 어르신들 성향이야 거의 판에 박은듯 하니 더 말할것도 없는데, 이게 토론이나 대화라기보다는 일장훈시의 성격이 강해서 반론같은건 끼어들수 없기 때문에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여간 힘든 시간이 아니다. 남남이라면 자기 주장도 내세우면서 싸움이라도 하겠지만 집안에서야 어디 감히...

이번 설에는 그게 특히나 더 심했다. 얼마전 천정배 의원의 "이 정권, 죽여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발언이 임팩트가 강한듯 했다.  이 발언이 (사이비)보수 성향의 어른신들에게는  "대통령을 죽여버리자"라고 들린 모양이다. (물론 여론조작의 영향이 클것이다.)  계속 "천정배는 정치성향을 떠나서 인간이 그러면 안된다", "그럴수가 있느냐" 하면서 격한 반응을 보이신다.  실제 발언의 내용과 배경을 아는 입장에서는 잘못된 정보를 기초로한 원색적인 비난이 매우 불편하게 들렸으나 듣고만 있을수 밖에 없었다. 그분들에게는 진실이 중요한게 아니라 비난할 구실이 중요한 것이었으므로 그 구실을 뺏는다는 건 역효과를 가져올게 뻔했기 때문이다. 요새 어린(?)것들, 아무것도 모르면서 날뛴다는 그런 편견을 더하는 일밖에는 아무 의미 없는 짓이 될것이었다.

요새 말이 많은 '복지'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한 어르신은 한마디로 이 문제를 정의 하셨다.  

"이런 빨갱이 새끼들!" 

복지확충은 곧 공산주의를 하자는 거라고 명쾌하게 정리하셨다.  참..... 평생 교직에 계시면서 무상교육받는 아이들을 지켜보시고, 은퇴해서 나라에서 주는 연금으로 편안한 노후 생활을 즐기시는 분이 국가보조금 받는 3자녀 아들네 집에 오셔서  "복지는 공산주의"라고 외치시는걸 대체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난감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모순을 완화하고 자본주의의 붕괴를 막기위해 필수불가결하게 커져야 하는 부분,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그렇게 커져왔던 부분이 국가가 개입하는 공적 영역인데 그 과실을 한껏 누리시는 분이 공산주의 운운하시는 아이러니라니.... 

 사실, 위의 이야기들을 집안 어르신의 이야기라고 썼지만 선거나 여론조사의 세대별 결과를 보면 대다수의 50~60대 이상 세대 분들이 갖는 공통적인 인식이다.  참, 지겹게도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유시민 소장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정치인들도 그쪽 세대가 변할거라는 기대는 안하는듯 했다.  아예 고정 변수로 놓고 이야기를 했으니까. 

 

한껏 어르신들을 비꼬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할수 있는 한 이해해보자는 입장이다. 내가 그런 인식을 하는데는 황석영의 <손님>을 읽으면서, 그리고 신문에 실린 모 목사님이 회개하듯 하신 말씀 "전쟁을 겪은 세대를 이해해달라"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느낀 바가 많이 작용을 했다. 잔인한 전쟁을 겪은 세대에 대한 연민과, 나는 상상하기도 힘든 고난과 상처를 겪은 세대에 대한 특별한 대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월은 흘러가고 어쨌든 그 분들의 시대도 점점 저물어가고 새로운 세대가 세상을 채워가고 있으니 자연상태라면 머지않아 세상도 내가 생각하는 만큼은 아닐지라도 방향은 같은 쪽으로 변해갈 것이다.  문제는 전쟁세대들의 상처와 고난을 이용하여 장사하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  이번 일만 봐도 족벌 언론은 천의원의 발언을 왜곡해가며 어르신들을 투사로 만들었고 대통령은 '누가 저를 죽이자고 말했다'는 구라를 쳐가면서 자신의 지지세력 결집을 유도하지 않았는가? 

 

그나저나 명절때마다 속에서 울컥하는 거 참으려니 좀 힘들다.  썩은 언론이 이렇게 구석구석 영향을 미칠것은 미처 생각 못했다. 집안의 화목해야할 모임까지도 불편하게 만든다. 다음에 상품권 돌리는 동네 조중동 신문 아저씨 또 만나면 멱살이라도 잡고 분풀이라도 해야겠다.  개인적인 체험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큰 도움을 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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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now 2011-02-05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생각을 하게되죠. ㅡ_ㅡ;
"여보, 아버님댁에 신문 바꿔드려야 겠어요~"

인터넷 사용할줄 아시는 분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에요.

귀를기울이면 2011-02-06 08:13   좋아요 0 | URL
확실히 정보습득 경로가 다양한 분들은 반응이 다르시더군요. 저도 벌써 최신 전자제품이나 서비스를 보면 활용하기 귀찮아지는데 연세 많으신 분들이 타닥타닥 인터넷 활용하시는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닮아야 할텐데...

노이에자이트 2011-02-06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50~60대도 전쟁을 모르는 세대인데...그 윗세대들에게 "너희들이 육이오를 알아?" 하면서 욕많이 먹던 세대들이죠.

귀를기울이면 2011-02-07 00:09   좋아요 0 | URL
그 욕, 마치 경험하신듯..ㅋㅋ 50대는 좀 심한듯 합니다만^^ 그래도 60대 이상은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셈이겠지요. 제가 글을 쓰게 만든 분은 고희를 한참 지나신 분이시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