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잭의 고백>을 읽고 일본에선 뇌사일 경우 산 사람으로 보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는데 조금 놀랐어요. 우리나란 어떤지.. 아마 같은 동양권 문화라 비슷하지 않나 싶은데요. 서양은 사고와 감정의 중추인 뇌가 죽으면 죽은 사람이라고 받아들이는데 별 거부감이 없지만, 일본에선 뇌가 죽어도 심장이 뛰고 피가 흐르니 산 사람이고 심장이 죽어야(심폐사) 비로소 죽음으로 본다고 합니다. 그러니 장기 이식을 위해 뇌사자의 몸을 열고 장기들을 꺼내는 건 말 그대로 산 사람의 몸을 해체하는 거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네요.


신체발부 수지부모라고 하던가요. 부모에게 받은 몸을 소중하게 여기고 손상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역시 몸을 중요하게 여기는 생각을 반영한 거겠죠. 그러고 보면 서양에서 가장 끔찍한 병은 몸은 멀쩡해도 기억을 잃어버리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알츠하이머이고, 동양에서 가장 끔찍한 병은 육체가 죽어버리는(엄밀히 말해 죽는 건 아니지만 움직이지 못하니 쓸모가 없어져 버리는) 사지마비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제가 읽은 책 중 장기 이식을 다룬 서양의 추리소설이 넬레 노이하우스의 <산 자와 죽은 자>인데요. 거기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뇌사자의 뇌가 정말로 죽었는가.. 였어요. 뇌사를 판정하는 여러가지 기준이 있는데 기본적인 것 말고 아주 테크닉한 것까지(뭐였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는 잘 안 한다는 거죠. 이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고, 양질의 장기를 채취하기 위해서라도 뇌사 이후 서둘러야 하고,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심한 가족들이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 등등... 또 테스트를 할수록 돈이 들고 시간도 걸리고요. 그래서 여러가지 기본 반응으로 뇌사 판정을 받았어도 만에 하나 죽은 뇌처럼 보이지만 살았을 경우, 산 사람을 죽이고 장기를 꺼내는 것이며 그 고통을 고스란히 느낀다는 거죠. (아마도 뇌사라고 오판할 가능성을 말하는 걸 겁니다. 뇌사판정을 받으면 몸도 죽어가기 때문에 서둘러야 하는 걸로 알아요)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 남편에게 그랬죠.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서명했으니 만약 뇌사 판정을 받게 되면 저 검사까지 꼭 해달라고 하라고, 그리고 장기 꺼낼 때 꼭 마취해달라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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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이식과 관련해서 뇌사 판정 문제, 장기의 공정한 배분, 투명한 수혜자 선정 과정 등 기증과 장기 이식 절차 관련 문제들만 생각해 봤는데, <살인마 잭의 고백>을 읽고 기증 받은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무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일본 사람들 특유의 결연함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훈계, 가르침 섞인 말들이 다소 오글거리거나 거부감을 줄 수도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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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2-08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은 뇌사에 관한 연구가 우리나라보다 활발하고, 이를 문화적 소재로 잘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

블랑코 2016-12-08 18:59   좋아요 1 | URL
장르 소설을 통해서도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를 엿볼 수 있어 정말 좋습니다. 재미도 얻고요. 사회파 소설이라면 문제 의식까지 얻게 되고요. ㅎㅎ

꾸울차 2018-02-02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뇌사라 해도 마취합니다. 적출하기 직전의 상황을 만든 후 대동맥을 잡아 사망 선고를 합니다. 대동맥을 잡고 사망선고를 하면 마취과는 다 나가고 적출팀만 남습니다 적출한 장기가 다 적출되고 나면 정성스럽게 닫아드립니다. 따뜻한 손이 사망선고 후 천천히 차가워 지는데 수술실 밖의 보호자들이 생각 나며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일이라 이런 감정도 오래가지 않네요. 마취는 하니 걱정마세요

블랑코 2018-02-03 03:52   좋아요 1 | URL
저도 마취는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저 소설에서 잘못된 상황이 나온 걸로 기억해요. 읽은 지 오래되어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뇌사 판정 테스트가 여러 가지 있는데 그걸 다 안 했나 암튼 그래서 범죄로 이어지고.. 그랬을 거예요. 진짜 상황을 직업상 겪고 계시는 분을 만나니 신기해요. (꾸울차님 직업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 얘기를 들은 기억은 처음이라 ^^) 생생한 증언 고맙습니다.
 
[eBook] 살인마 잭의 고백 이누카이 하야토 형사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복창교 옮김 / 오후세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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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에 살짝 평들을 보니 그닥이라 별 기대 안 하고 어젯밤에 읽기 시작했는데

잠 줄여가며 읽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읽어 하루만에 완독했습니다.

재미있어요~~

생각할 거리도 많고, 특히 이누카이 형사와 고테가와 형사 콤비 아주 좋았습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말단 형사와 중간 관리직, 관리관인 캐리어들을 보고 있자니

춤추는 대수사선 생각도 나고 오랜만에 향수에 젖어봤네요.


약간 김빠지는 결말이긴 해요.

서둘러 결론지은 느낌도 들고요.

그래도 사회파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는 <안녕, 드뷔시>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받아 추리소설 작가로 데뷔했다고 합니다. 이후 음악과 얽힌 사건을 해결해가는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로 <잘 자요, 라흐마니노프>, <영원히, 쇼팽>등을 더 발표했다네요. 번역되어 출간된 건 <안녕, 드뷔시>와 <살인마 잭의 고백> 두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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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궁극의 아이 : The Ultimate Child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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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완독하면 바로 별점을 주는데 이 책은 며칠 묵혀뒀습니다.

점수 주기가 어렵더라고요.


이 책이 재미있다는 얘길 많이 들었습니다.

종이책으로 나와서 화제가 됐을 때 구할 길이 없어 애태우다가

전자책 출간 소식에 환호하며 바로 지르고 이제야 읽었습니다.


스케일이 큽니다. 배경도 여러 나라를 넘나들고 등장 인물들도 아주 굵직굵직해요.

시작부터 벌어지는 달라이 라마 총격, 미래를 예언한 듯한 신비한 동양 청년

그 남자와 관련이 있는 듯한 고도비만 여인 엘리스, 그녀를 찾아가는 FBI요원 사이먼

로스차일드 가문(불어로 읽으면 로쉴드 ㅋㅋ) 음모론이 생각나는 호크쉴드 가문도 그렇고.

궁극의 아이란 설정도

앞에 벌려뒀던 판을 뒤에서 꼼꼼하게 회수하는 것도

911같은 엄청난 역사적 사건을 교묘하게 잘 끼워넣은 것도

작가가 공들여 구상한 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디테일이 아쉽습니다.

매력적인 소재와 설정들을 엄청나게 사용한 건 좋은데

필요하면 사용하고 필요 없는 경우에는 어물쩡 넘어가서

일관성이 없고 개연성이 떨어지고 어설픕니다.


10년 전의 일도 자세히 기억해야 하니 여주인공 엘리스를 과잉기억증후군으로 설정한 건 좋은데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과잉기억증후군인 형사를 보고 나니 엘리스는 꽤 허접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어쩌면 기억하는 정도에 따라 등급이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7살 때부터 모든 걸 기억한다면 힘들었을 텐데 10년 전 일을 기억해야 할 때 빼고는 보통 사람과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소설에서 필요할 때만 다 기억하는 여자인 거죠. 심지어 '마지막으로 데이트를 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라는 문장도 나옵니다. 다 기억한다면서!!! 사실 이 문장이 나온 건 제가 느낀 이 작가의 또 다른 단점 때문이라고 봅니다. (후술할게요)


지난 10년간의 고통스런 세월을 표현해야겠기에 엘리스를 집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고도비만으로 설정했습니다.그래서 2층에도 못 올라가고 올라가다 난간을 부숴먹은 걸로 그려놓고는 필요할 땐 소리도 내지 않고 지하실로 숨고 심지어 방공호로 대피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뉴욕을 누비며 활약(!)할 때는 힘겹다는 수식어가 들어가긴 하지만 파트너 발목 잡는 일은 없습니다. ㅎㅎㅎ


사소한 두 가지 예를 들었지만.. 이런 아쉬움들이 곳곳에 많습니다.

거대한 플롯이 주는 재미가 있지만 디테일에서 얻는 즐거움도 있을 건데

사건은 진행시켜야겠고

현실감있게 디테일을 짤 시간은 없고

설정을 지켜서 묘사하려면 생각해내야 할 게 너무 많으니

뭉뚱그려 넘어가는 곳이 참 많아요.


앞서 후술하겠다고 했던 제가 생각하는 작가의 단점은 상투적인 표현, 진부한 표현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거대한 스케일과 꼼꼼한 구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문장이랄까요.

이건 주관적이라 참고만 해주세요.

일례로 데이트한 지 오래됐음을 표현하기 위해 과잉기억증후군인 여자에게

마지막으로 데이트를 한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는 문장을 쓴 거죠.

십년 뒤에 기억해야 하니 기억에 남아야 할(!) 데이트나 각종 대사들도 클리셰로 넘쳐납니다. 드라마나 헐리우드 영화 장면들을 짜집기한 듯... 읽는 내내 오글오글거렸어요.


이런 부실한 디테일이 중간중간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충분히 속도감 있게 재미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굉장한 작품인데도 아쉬움이 남다 보니

아재 감성 충만하나 디테일까지 꼼꼼한 도진기 님 작품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꼈습니다.

(도진기 작가 의문의 1승 ㅋㅋ)


작가의 <불로의 인형>을 읽을지 말지.. 고민 중입니다. 불로의 인형이 더 낫다는 글을 어디서 봐가지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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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7 1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랑코 2016-12-07 20:10   좋아요 0 | URL
모기남 재미있어요. ^^ 아주아주 약간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적극 추천합니다.

후속은... 일단 도진기님 책 중에 아껴둔 유다의 별부터 볼래요.

양손잡이 2016-12-08 04: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자책이 나왔군요~! 굳굳!
흠, 저도 블랑코님과 똑같은 의견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매력적이나 디테일이 떨어지고 가끔 조악한 비유와 서술의 문장이 나와서 아쉬웠습니다 ㅠ
그래도 <불로의 인형>은 볼 예정입니다 ㅎㅎ

블랑코 2016-12-08 16:33   좋아요 0 | URL
ㅎㅎ 불로의 인형 보신다니 그럼 저도 따라 볼래요. ㅋㅋ 마침 같이 전자책으로 나왔더라고요. ^^

양손잡이 2016-12-08 17:34   좋아요 1 | URL
다음에 도서관 들를 때 빌려오겠습니다 ㅎㅎ
 
[eBook] 삼수탑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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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감안해도 설정 중 불편한 부분이 있고

긴다이치 시리즈만이 갖는 매력도 분명히 있으나

읽고 나면 납득이 안 갑니다.


역시나 긴다이치는 거의 활약하지 않고

범인이 의외이긴 한데 그 의외성을 위해 범행 동기가 너무 어거지이고

당시 전후(戰後) 일본의 퇴폐성을 반영했다고는 하나

선정적이기만 하고 별 개연성 없는 배경들은

여주인공의 태도 다음으로 불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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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5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랑코 2016-12-05 18:27   좋아요 0 | URL
일본 사람들 구미에 딱 맞아서 아닐까요. 근데 또 분노로 부들부들 떨며 읽었어도 술술 읽히는 재미는 있었으니.. 점수를 박하게 주기도 뭐하고.. 아무래도 이상한 드라마 욕하면서 보는 심정.. ㅎㅎㅎㅎ

하얀소망 2016-12-05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앵그리 리뷰군요~^^

블랑코 2016-12-05 23:33   좋아요 0 | URL
책을 본 모두가 분노하는 지점이 있어요. 그건 작가의 여성관이나 시대상이 다분히 반영된 거라 감안해야 하지만 ^^; 겁탈을 당하고도 그게 남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강간범을 감싸주고, 또 그 강간범에게 빠져들어 그 남자를 원하는 여자로 묘사하는 건 ㅠㅠ 읽기가 힘들더라고요

하얀소망 2016-12-06 06:48   좋아요 0 | URL
그런 심리를 어떤 의도로, 어떤 목적으로 묘사하느냐가 중요하겠지요.

다소 선정적인 이유로, 책을 독자들에게 더 어필하겠다는 정도의 목적이라면 그냥 쓰레기인거구요.

자신을 학대하며 부리는 주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도리어 심리적으로 종속되어 버리는 노예의 심리와, 며칠을 고문을 당하는 가운데 어느새인가 고문자에게 심리적으로 종속되고 마는 피고문자의 심리 등과 이 소설에 나오는 그 여자의 심리가 일치되는 부분은 있습니다. 독립적인 정신, 주체적인 정신이 약한 사람들이 훨씬 빨리 넘어가게 되는데, 그런 인간의 약점을 그린 거라면 모를까...

말씀하시는 걸 보면, 그냥 쓰레기인것 같네요~ 작품의 부족한 내용을 그런 것들로 채워서 있어보이게 하는 듯...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블랑코 2016-12-06 07:21   좋아요 0 | URL
그렇게 고차원적으로 심리를 파고든 소설은 당근 아닙니다. 하지만 당시 시대와 여성상과 분리해서 생각하긴 어려워요. 그래서 쓰레기는 아닙니다. ^^;;; 조금 선정적인 면이 있긴 하죠. 긴다이치 소설에 흐르는 색기는 이 소설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추리소설에 끼친 영향으로 보면 대부격이라 몇몇 분노하는 지점이 있을 뿐 ^^ 한번쯤 봐둘 가치가 있는 시리즈예요. 특히 추리팬이라면요. 물론 삼수탑은 이 시리즈 중에서 걸작 평가 받는 작품은 아니에요.

Gothgirl 2016-12-06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냥 맘 비우고 편히 재밌게 봤어요 2000년 밀레니엄 세상에서도 혼령이 빙의되는 드라마가 최고 시청률을 찍는 마당에 이건 옛날 구닥다리 소설의 어쩔 수 없는 흠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려구요

블랑코 2016-12-06 18:43   좋아요 0 | URL
그건 그래요. 근데도 봐주기 어려웠던 게 아마 요코미조 세이조가 초기에는 공들여 트릭 구상하더니 점점 노력 안 하는 게 느껴져서 더 밉보인 게 아닐까 ㅋㅋㅋ 했어요. ㅋㅋㅋ
 
[eBook] 반지의 비밀 - 캐드펠시리즈 11 캐드펠 시리즈 1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손성경 옮김 / 북하우스 / 201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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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다르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때론 진실을 밝히는 것보다 더 지켜줘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 시리즈는 읽을 때마다 ‘캐드펠은 사랑입니다‘를 외치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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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30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좀 더 큰 서재를 가지게 되면, 캐드펠 시리즈를 장만하고 싶습니다. ^^

블랑코 2016-12-01 00:17   좋아요 0 | URL
종이책으로 20권 갖춰놓으면 볼 때마다 뿌듯할 것 같습니다. ^^; 전 전자책으로 사이버 책장에 소장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