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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증보판 ㅣ 리라이팅 클래식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졸음이 몰려오는 점심시간 후의 5교시, 고등학교 국사가 나를 재우는 어느 교실. 꾸벅꾸벅. 천고마비 : 하늘이 높기만 하니 나의 머리가 마비된다는 진지한 사자성어를 실천하고 있는 한 학생에게 어김없이 분필하나가 날아든다. 딱! 부스스, "어, 시방 여긴 어디여?"
"야, 박지원." 이에, 갑자기 눈이 번쩍, 머리가 쭈삣.
"박지원. 호는 연암으로, 조선후기 이용후생학파의 일원인 그는, 과농소초로 농업생산력의 증대를 주장하였고, 열하일기로 수레와 선박의 이용 등을 주장하였으나, 그 역시 당시 집권자들에게 반영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기억되는 연암 박지원은 저런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남아 있는 박지원은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텍스트로서, 기억에 고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두뇌에 억지로 쑤셔넣어 가끔씩 뒤통수에 딱!하고 내리꽂히는 분필의 아픔과도 같은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텍스트로만 우리에게 주입되어 있는 그에게서는 도저히 생명력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밥먹고 일어나면 책보고, 또 책보고, 또 책보고, 또 또 또.. 그 노력과 광기의 괴로운 시공간을 뚫고나온 것들이 그의 저작 아니겠는가?
이런 때없는 고민을 하고 있을 차, 그녀, 고미숙이 저기 먼데서 부터 눈썹이 휘날리며 달려오고 있다. 100미터, 50미터, 30미터, 20미터. 뭐야, 그녀의 달리기 솜씨가 장난이 아닌데? 아니, 그런데 그녀의 얼굴은 왜 저런거야?
얼씨구나 들어간다. 나오구나, 나오구나. 웃음이 떼구르르르르르르, 얼굴은 삐죽삐죽 빼죽빼죽, 이리저리 우당탕탕 그거보소 가히 가관이로세, 이봐라, 들쑥 날쑥, 요리갔다 저리갔다, 오도방정 지랄방정 무얼 그렇게 방정이더냐. 가만히 있지 못할까? 어허, 휑하니 지나가니 눈깜짝할 새가 눈깜짝도 못할 시간이오. 동네사람 저좀 보소. 저좀 보소.
그렇게 헐레벌떡 뛰어온 그녀는 우리가 못내 안타깝다는 듯 만나자마자 있는 힘을 모아 손을 맞잡아 쥐어버린다. 아니, 내가 그렇게 반가운가. 왜? 내일 지구가 파업이라도 한답디까? 숨을 헐떡이던 그녀가 겨우 숨을 고르며 한마디 지른다. 심봤다!! 아니, 연암봤다!!
거대한 몸집에 매의 눈초리. 귀신도 쫓는다는 양기를 지닌 태양인. '주자 만세 불신 벼락'인 그 경직의 조선시대에 저런 풍체를 지닌 박지원. 무슨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그에게서 전형적인 양반타입이라는 단어 하나를 낚아 올린다. 그 큰 월척을 건진 우리일진데, 그에게서 또 무엇을 발견해야 한단 말인가? 각자의 생의 특이성은 있겠다만, 그들 양반이라는 자들이 또 대개 비슷하지 않은가? 도대체가 이젠 지겹단 말이지. 그 점잖들이. 하지만, 손사레를 치며 그녀가 들러주는 박지원의 일화하나를 살펴보자.
"말이 강 복판에 이르자, 갑자기 그 몸이 왼쪽으로 쏠린다. 대체 물이 말의 배에 닿으면 네 발굽이 저절로 떠서 누워 건너는 모양이다. 내 몸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른편으로 기울어지면서, 하마터면 물에 빠질 뻔 하였다. 마침 앞에 말꼬리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보고, 재빠르게 그것을 붙들고 몸을 가누어 고쳐 앉아서, 겨우 떨어지기를 면하였다. 나 역시 내 자신이 이토록 재빠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뭐냐고? 대체 물에 빠질뻔 하다가 말꼬리 겨우 붙잡는게 뭐가 재밌냐고? 잠깐,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집고 넘어가야 한다. 박지원 그는 누구인가? 거대한 몸집에 매의 눈초리를 한 전형적인 양반아니던가. 비가 와도 '어흠~' 한번 질러주고 비를 벗삼아 걸어가야 하는 양반이거늘, 대체 박지원은 그런 체통따위는 잊은지 오래다. '물에 빠질뻔 한것을 다행히 그러지 아니하였다'고 점잖게 자기의 부끄러움을 감추는게 아니라, "마침 말꼬리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보고 옳거니하며 붙잡고, 또 그렇게 자기의 몸을 겨누고는 "나 역시 이토록 재빠를 줄은 상상도 못했다"면서 그렇게 좋아라하다니, 이거 참 양반체면 말이 아니다. 또 하나,
기상재설(欺霜賽雪)사건. 그는 중국의 한 점포 문설주에 붙어 있는 이 기상재설을 이렇게 풀이했다.
'장사치들이 자기네들의 애초에 지닌 마음씨가 깨끗하기는 가을 서릿발 같고, 또한 흰 눈빛보다도 더 밝음을 스스로 나타내기 위함이 아닐까?'
그는 그런 생각으로 한 전당포에서 자신의 필치도 자랑할겸 일필휘지, 액자로 달 현판에 기상재설을 갈긴다. 아, 물론 그 찰나같은 순간에 매의 눈초리를 지닌 박지원의 레이다망을 피하지는 못한다. 처음 두자를 쓸 땐 환호하다가 막상 다 쓰고 나니 사람들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다. '"이런 궁벽한 곳의 장사치가 어찌 전날 심양 사람들만 할까. 제깐 놈이 글이 잘되고 못된 것을 어찌 안된말야" 투덜투덜.
그러다 마침 자신의 글씨를 알아보는 한 주인을 만나니, 연암은 옳다구나, 또 다시 현판에 기상재설을 휙휙 갈긴다. 어, 근데 이 주인이라는 작자라는 자가 왈, "저의 집은 부인네들 장식품을 파는 곳이지 국숫집은 아니옵니다." 아!뿔!싸! 기상재설은 심지가 밝고 깨끗함이 아니라, 국숫가루가 서릿발처럼 가늘고 눈보다 희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이에 그는 한마디 한다. "어흠, 나도 모르는 바 아니로되 애오라지 심심풀이로 써보았을 뿐이오." 크, 이 부끄러움.
연암, 그는 양반답지 않았던 것만이 아니라, 덩치에 맞지 않게 귀엽기까지 하다. 아니, 이렇게 홱 톨아졌다가, 금새 칭찬해주니, 좋다구나 자랑하다가, 결국은 저 망신. 근데 자신은 그게 재밌다고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는가? 어쩜 그 어르신 이렇게 귀엽기까지 하신가.
이렇게 웃음을 묘미를 날려주는 그는 그저 양반의 체통에서만 벗어난 그저그런 웃기기만 한 양반이냐하면 또 그렇지 않다.
"드 넓은 요동벌판을 맞이한 그는 내 오늘에 처음으로, 인생이란 본시 아무런 의탁함이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돌아다니는 존재임을 알았다. 아, 참 좋은 울음터로다. 가히 한번 울 만하구나."
아니, 이양반 그저 웃긴줄로만 알았더니, 사실 저렇게 철학적이지까지 한게 아닌가?
이렇게 심오한 그이면서도 유머를 갖춘 그이기에 그의 모든 행동과 말은 진지하면서도 아주 흥미롭다. 보통 인생을 아우르는 철학을 내뱉을 때는 다들 무게한번 잡아주고, 평상시에는 죽어라 쓰지도 않는 온갖 출처미상의 단어들을 갈기면서 기어코 상대방의 눈물샘과 하품을 자극하지만, 그는 그런 상황에서도 꼭 상대방의 눈물샘을 자극면서 하품대신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다. 심오하면서도 그 속에 갖춘 유머. 아, 이보다 더한 콤비가 어디에 있으리오, 이보다 명랑한 인물에 조선 그 어디에 있으리오.
이렇게 흥분한 어조로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 있다보면, 머릿속 어딘가 퀘퀘하게 반쯤 처박혀 있던 '연암 박지원'이라는 단어에 서서히 생명력이 갖추어 지기 시작한다. 그녀의 말마따나, 나는 천재는 싫어하지만, 이렇게 유머를 갖춘 천재라면 미워할래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명랑한 연암 박지원. 이렇게 열하일기의 밖으로 스르륵 뛰쳐 나온 그는 이시대의 인물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이렇게 다른 시대를 산 연암은 그의 시대에 일었던 문체반정, 주자학의 무게감이 없이 웃음과 가벼움으로 문체를 어지럽히는 그 무리의 괴수로 지목된다. 반성문하나 쓰면 잘 봐주겠다는 정조의 꾐에도 이리저리 내빼는 연암. 그의 내뺌은 사실 그의 유머와 역설이 그저 재미와 흥미만을 위한것이 아니라 시대를 뒤틀어 보는 것이라는 것을 암시해준다. 경직된 조선사회와 그 폐쇄성. 주자 아니면 죽음으로만 아는 그 답답함. 이 모든게 연암에게는 한심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저렇게 마구마구 비틀어버렸던 것이고, 양반체면 불구, 호기심과 유머를 내치지 않고 꼭하니 감싸 안았던 것이다.
여기 이 책은 열하일기의 여러 작품들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저렇게 연암이 가지고 있던 에피소드, 사상, 삶들만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의 실제작품은 간간히 인용구로 소개될 뿐이다. 그리고 개인적이기까지한 그녀, 고미숙씨의 시선이 책 전체의 조명으로 반짝반짝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연암 박지원, 그의 에피소드에 웃고, 그의 유머에 웃고, 그에 흥분한 고미숙씨의 언변에 웃고 울다보면, 어느새 이 얇지만은 않은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은 끝이 나고 말아버린다.
이 책을 보고 난 뒤, 연암의 문제작 <열하일기>가 새삼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터고, 연암 박지원, 그 한사람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새삼 다시 묻는다. "연암 박지원, 그는 누구인가?"
"이런, 매력덩어리."
사족 : 이 책의 뒤에는 조선 양반, 그 자체의 정수 다산 정약용과 천방지축 철학자 박지원의 비교가 나온다. 하지만 나는 이미 시선이 연암에게로 기운지 오래다. 세상 그렇게 무게 잡지 말란말이지. 웃음이 대중적이고 그래서 한차원 낮은 것이라고? 그를 보라, 연암을 보란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