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질투
프리돌린 쉴라이 외 지음, 조현천 옮김 / 열대림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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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이런말을 합니다. "여자와 남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

동의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터지만 저는 후자쪽이었습니다. 고등학교때부터 절친하게 지내온 친구가 한 명 있기 때문이지요. 그 친구를 한 번도 여자로 생각해 본적이 없거니와, 그녀와의 우정에 참으로 뿌듯해 했습니다. 그런데도 친구란 있을 수 없다고 단정지어버리는 저 문구가 얼마나 가당찮았던지요.

얼마전입니다. 간간히 연락을 주고 받던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생긴걸 알았습니다. 직접 들은게 아니라 조금 섭섭한 마음이 고개를 치켜 드는걸 과감히 뒤통수 한대 쥐어박고 기절을 시켰지요. 왜 저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는지, 저에겐 굳이 자랑하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어떤건지는 모르겠지만 - 하긴 그런 자랑을 하는 사이는 아니였군요. 그래도 처음에는 놀랬습니다. 쉽사리 남자친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던 친구였거든요.

아, 이렇게 주위에 모두 자기의 짝들이 하나하나 생긴다는 소식들에, 새삼 기뻐하기도 했지만, 이제 이렇게 나도 늙어간다는 데에 약간은 우울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도 놀라움 다음에는 어김없이 우울감이 찾아오더군요. 커피하나 빼들고, 혼자 난간에 서 있는 시간이 부쩍 늘기 시작했고, 책보다가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는 저를 보고 놀래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횟수도 늘어났습니다. 

하루가 흘러가고, 나는 그자리에 있고, 이틀이 가고, 여전히 나는 그곳에.. 

우울감에 찌들어 갈수록 저는 정체되어 갔지만, 세월은 아랑곳하지 않고, 잘도 가더군요. 세월은 화살같다고 하다지만, 좀 같이 가면 좋으련만. 아,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제가 서있는 곳과 현실은 벌써 일주일이나 차이가 나버린 것이었지요. 뭔가가 꼬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이 핑계, 저 핑계. 그저 그냥 만나지 못해서 어떤 목적을 하나 두고서 만났습니다.  그녀의 컴퓨터가 말을 듣지 않는다군요. 그래서 대충 손을 봐주겠다는 명목으로 그렇게 가깝다고는 할 수 없는 그녀의 집으로 가기로 한 것이지요. 뭐가 어찌 되든 그냥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녀의 집으로 가서 컴퓨터를 고쳐주고, 밖에서 밥을 얻어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차시간이 늦어서, 얼른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타는 버스가 끊어져 시내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야만 했습니다. 혼자 우왕자왕 하고 있을 때, 시내버스를 잘 타지 못하는 저를 위해 제가 타야 할 버스를 지적해 주는 그녀를 보지 못하고 있다가,

"뭐해? 저 버스야!"

 뒤늦게서야 보고 급하게 버스에 뛰어 올랐습니다.

"간다"

그렇게 한마디를 툭 남겨둔채 버스는 출발했습니다. 그동안 참 할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인데도 어떤 목적을 가졌다는데에서 후회가 치밀어 올랐지요. 그렇게 말이 안나와서 괴로웠던 적은 또 없었던 적 같군요. 시내버스로 지나치는 풍경들이, 어둠에 묻혀가는 풍경들이 저하고는 딴세상처럼 느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길.

오늘따라 좌석은 만원입니다. 저들은 어디를 그렇게 다녀 오는 것일까요? 제 옆자리에는 술에 만취한 한 아저씨가 온 몸을 휘저으며 괴로워 하고 있었습니다. 신음을 내뱉는 그가 그다지 보기에 유쾌하지 않아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알았지요. 제가 왜 그렇게 우울했던지, 왜 갑자기 말문이 그렇게도 막혔던지. 눈을 감고도 계속 들려오는 신음소리는 옆에서 괴로워 하는 아저씨의 찌푸린 상이 아니라 제 마음이 신음하는 소리임을 알았습니다. 돌아오는 내내 이어폰을 크게 틀어놓았습니다. 아무 생각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버스를 내리니 빗방울이 한방울씩 떨어집니다......


김연수는 이런말을 했었다.

"질투란 숙주가 필요한 바이러스와 비슷하다. 질투란 독립적인 감정이 아니라 사랑에 딸린 감정이다. 주전선수가 아니라 후보선수라 사랑이 갈 때까지 가서 숨을 헐떡거리면 질투가 교체선수로 투입된다. 질투가 없다면 경기는 거기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13세기 사람 앙드레 르 샤플랭은 "질투하지 않는 자는 사랑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했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130p>

아, 누가 대체 남자는 질투를 하지 않는다고 하는가? 남자도 인간이다. 오죽하면 질투하지 않는 자는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이 다 나오랴. 나 역시 이렇다 할 사랑은 해 본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투란 감정은 쉽사리도 느끼면서 살아왔다. 가만히 보면 질투는 사랑이라는 숙주를 필요로 하는게 아니라 그저 마음이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스며들수 있는 지독한 바이러스인지도 모른다.

뜻하지 않은 나의 질투를 발견해버린 나는 참 괴로웠다.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고, 마음 속 꾹꾹 눌러담아 놓을 수 밖에 없는 그 감정이 요즘들어 나에게 너무 친근하게 구는 것이 너무도 불편했다.

그래서 집어든 소설이 <그 남자의 질투>다. 사실 <사랑이라니, 선영아>를 본 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책이기도 한데, 그 당시에만 해도 그저 관심만 있었다 뿐이지, 크게 나를 끄집어 당기지 못한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나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나의 이 질투의 괴로움을, 나의 이 질투의 부끄러움을 나 말고도 누군가도 하고 있다는 위로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 남자의 질투>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소설이다. 한가지 있다면 모두 질투를 하고 있는 남자들이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냥 그들의 질투 이야기고, 그 이야기가 끝이다. 무슨 문학적 장치라던지, 사람을 놀래키는 반전이라든지, 인생의 동아줄이 되는 교훈도 없다. 그저 여기도 질투, 저기도 질투. 질투를 양껏 하고 있는 남정네들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조금은 위험하다.

도대체 이 따위 이야기를 왜 적어 놓고 뭐하러 보는데? 사랑의 아름다움, 아픔을 말하고자 하는건가? 너무 밋밋한데?

라는 지적이 쉽사리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존재의의는 그런 목적의식을 지니고 이것을 보는 사람에 있지 않다. 그저 '즐기기'위한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이 책의 의의다.

누구나 사랑의 아픔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터고, 또 질투의 기억도 가지고 있을터다. 그것을 추억으로 가지느냐 치욕으로 가지느냐는 순전히 개인적 문제다. 사랑하는 이가 다른 남정네와 웃고 있는 모습을 질투하는 모습은 피식웃음지어지는 추억이기도 하고, 저때의 기억은 나에게는 아픔으로만 남을 것이다. 하지만, 추억이든, 치욕이든, 아픔이든 그 질투를 미처 쫓아내버리지 못하고, 간간히 자신과 어떤 만남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 그 부류중의 한 사람이 나고, 이 소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한 소설이었고, 또 나를 위한 소설이기도 했다. 질투의 아기자기함을 즐기든, 질투의 덧없음을 즐기든, 질투의 파괴성을 즐기든, 질투의 유치함을 즐기든, 그런 질투에 대한 기억의 파편을 마음속 어딘가에 놓아 두고, 그저 질투를 기꺼이 만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소설이다.

내가 봤을 때는 이책의 문체는 특별히 아름답지도 않았고(상당히 마음에 드는 단편이 있긴하다.) 이야기 자체가 특별하다거나, 따로 사람의 주목을 끌만한 소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질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질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제도 내일도 질투를 하지만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리고 나역시 이렇게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런 그들이 민망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그들에게서는 결국 웃음을 찾아 볼 수는 없었다. 나에게도 웃음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질투는 역겨운 것이 아니고, 지금 나는 그녀의 진정한 행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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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09-13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책보다 님의 스토리가 더 얘기가 될것만 같은....차라리 님이 한번 써보셔도...^^;;;

_ 2004-09-1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저도 적다보니 애초에 짧게 적으려 했던 글이 무진장 길어져 그만둘까했는데, 아까워서 그냥 올렸습니다. 해서 카테고리도 '지극히 개인적인 리뷰'로 바꾸었지요. 어차피 서평이 아닌 리뷰야, 책에 대한 소개의 목적도 있지만, 되돌아보면서 자기자신도 아우르는것도 있기에, 그냥 그대로 썼습니다. ㅎㅎ;; (그래도 좀 길죠? >_<)

잉크냄새 2004-09-13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질투는 특별한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 오감으로 느끼는 감각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태일것 같아요. 단지 그것이 표출되는 방식이 사람에 따라 다른것 같습니다.
그래서 님의 글 [ 질투는 사랑이라는 숙주를 필요로 하는게 아니라 그저 마음이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스며들수 있는 지독한 바이러스인지도 모른다 ] 는 말이 동감이 가나 봅니다.

_ 2004-09-13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튼 바이러스는 괴롭죠ㅠ_ㅠ
저 글. 차분한 마음에 적어야 하는데, 이어폰으로는 데쓰메탈을 끼고 정신없이 적었더니
하, 어지럽군요. 위에 부분만 따로 떼어 페이퍼로 옮길까 생각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