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크 리, 덴젤 워싱턴과 조디 포스터.. 이 세 이름 때문에 선택한 영화였다.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스토리 라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음악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극장가서 영화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얼굴에 철판깔고 꽤 큰소리로 울어대는 핸드폰을 태연하게 받아 지금 밖이고 시끄러우니 오래 통화 할 수없다는 따위의 말을 다정하게 해대는 인간들은 볼수록 이해가 안간다. 또 영화 중간중간에 문자 확인하느라 눈부시게 환한 액정을 자주 열어주시는 양반들도 말이다. 뒤에서 계속 목소리 높여 떠드는 인간들은 내가 고개를 획 돌려 보던 말던 신경 안쓰고 계속 떠들었고.

그런 불만들을 접어 놓자면 영화는 별 다섯 중에 네개 정도는 줄 만큼 괜찮았다. 지루할 듯 하면서도 다시 긴장감을 주고, 적절한 편집과 미리미리 관객에게 정보를 주는 것 등도 나쁘지 않았다.

영혼을 판 부자는 자선 사업과 그 모든 것들로 자신의 죄를 씻고자 하고 팔았던 영혼을 어떻게든 근사하게 치장하려고 한다. 하지만 얻어지는 교훈은 단 하나. 한번 판 영혼을 다시 물러서 되돌릴 수는 없다. 그나마 양심이라는게 남아 있다는걸 기특하게 여겨야 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부유함이 해결해주는 엄청난 것들, 그 안락함은 영혼뿐 아니라 더한것이라도 팔만큼 힘이 세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돈주고 살 수 없다는 대사는 진부하지만 그래서 빛을 발한다.

결국,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걸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영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런데 조디 포스터, 정말 늙은 여우같아 보였다. 슬프다. 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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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06-04-30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영화를 자제하고 있는 중이라 리뷰 안 읽을려고 했는데. ㅜㅜ 흑흑. 보고 시프요. ;; 저도 지난주 매치포인트 보는데 옆자리에 앉은 여자들이 영화내내 떠들고 것도 모자라서 핸드폰 시끄럽게 받더니 한참 얘기하다가 결국 나가더군요. 다시 들어오고, 다시 나가고 -_- 뒷자리에 앉은 여자도 두 번 나갔다 들어오면서 그 때마다 제 머리 가방으로 때리고 -_-; 영화는 좋은데 분위기 개판-_-이다. 라는 말을 저도 모르게 그만(어멋;) 내뱉어버렸지요. -_-;;;; 뭐 어때. 라는 태도. 정말 얄미워요. 퍼런액정 번떡거리며 문자보내는 것도 엄청 짜증나요. 잉. -_-+++ 좌우지간. 음음. ;; 아아. 멋진 이름들이 즐비한 영화. 얼른 볼 수 있었음 좋겠어요. 제가 볼 때까지 계속 상영해야 할텐데요. 흑. ;;

이리스 2006-05-01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나잇님 / ㅋㅋ 제가 영화보게 부추긴 셈이 되었네요. 극장에서 몰지각한 행동하는 사람들은 벌금을 물리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지도 꽤 오래되었지만, 현실 불가능하고. 아예 시끄러워도 되는 저렴한 극장을 따로 만들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흐으...
 

스타벅스를 나와서 발걸음을 옮긴 곳은 하이퍼텍 나다였다. <꿈꾸는 카메라>는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 대신에 <데브라 윙거를 찾아서>를 보기로 했다.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었지만 영화가 중반을 지날 즈음 슬슬 하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도는 좋았으나 반복되는 같은 이야기에 짜증이 났던 다큐멘터리. 그러니까 40대를 맞이한 여배우들의 밥그릇 쟁취에 대한 이야기랄까? 좀 더 나아가야 할 부분에서는 멈칫거리고 한두번 이야기해도 충분한 것은 끊임없이 반복하는 영화였다.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엄마라는 역할과 동시에 배우라는 타이틀을 어떻게 다 놓지 않고 잘 해낼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가 주구장창 이어졌는데, 결론적으로는 그래서 뭐? 라는 생각뿐이었다. 잔뜩 부풀려 놓고는 피식 바람만 빠진 격이랄까? 다같이 이야기하고 풀어보자는 것은 좋았으나 그냥 수다로 그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유명 여배우들을 한 화면에서 본다는 것은 즐거웠고 우피 골드버그는 단연 돋보였다. 샤론 스톤은 거만하기 이를데 없었다.

늦은 점심은 포호아에서 월남쌈으로 마무리! ㅎㅎ 돌아오는 길에는 근사한 치마 두벌과 블라우스 한벌까지 착한 가격으로 구입하였으니 참으로 알찬 토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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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06-04-23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 영화 기대했었는데! 생각보다 별로였던 모양이네요. ;; 흠흠. 근사한 치마 두 벌과 블라우스 한벌이란 말씀에 귀가 솔깃. 착용컷을 올려주심이. ^^;

마태우스 2006-04-23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관과 신사를 본 이후 데브라 윙거를 한동안 좋아했었지요...

이리스 2006-04-23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나잇님 / 중언부언해대는 통에 졸립고 지루했어요. --; 착용컷은.. 으음.. -_-;;
마태님 / 데브라 윙거가 화면에 나오는 동안은 영화가 괜찮았어요. ㅎㅎ
 

토요일 심야상영 두번째 영화.

임신 36개월 / Three Year Delivery
 
감독 : 타다노 미아코
장르 : 드라마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시간 : 99 분
제작국가/년도 : 일본/2005년도
29세의 후유코는 임신 9개월이다. 그녀는 엄마가 되기 위한 완벽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면서 하루 종일 그녀의 도쿄 근교의 집에서 소일한다. 무기력한 남편 토루 역시 아빠가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는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고 있고며 매일 밤 취한 채 집에 들어온다. 후유코는 남편의 외도를 알고 있지만 곧 끝 나기를 희망하며 그것을 맞닥들이지 않기로 결정한다. 임신 10개월이 지났지만 마치 아기가 세상에 나오기를 거부하기라도 하는 듯 출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18개월까지 후유코의 배는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다.
타다노 미아코 Miako Tadano
타다노 미아코는 1973년 10월 2일 도쿄에서 출생했다. 그녀는 무사시노 아트 컬리지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1994년부터 시노부 야구치감독과 타구지 스즈키 감독 그리고 다른 감독들에 의해 제작된 의 15 Pieces로 영화배우가 되었다.
이후 영화제작을 공부하기 위해 1996년 Tama Art 대학교의 비주얼 아트 과정에 입학했고 몇 몇 단편 영화들을 감독, 제작했다. 1997년에는 에 처음 출연을 하게 되었고 Mainichi Movie 콩쿠르와 Sponichi 그랑프리에서 신인 여우상을 거머 쥐었다. 그 이후로 그녀는 일본의 유명 감독들의 여러 작품에 출연을 해 왔다. 영화뿐만이 아니라 TV프로그램이나 광고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또한 Junior High School Diary 와 같은 TV드라마에서는 스크립터로서 활약했다. <임신 36개월>은 그녀의 감독 데뷔작으로 같은 제목의 소설도 출판했다.

# 감상평 

어쩌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밤을 꼴딱 새는 지겨운 짓(마감만 몇년 해보시라, 이 짓이 얼마나 지겨운지..)을 자청해서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심야상영 목록에 이 영화가 없었다면 아마 예매 하지 않았을 듯.

세상에, 임신 36개월이라니 제목부터가 참 남다르지 않은가? 말 그대로 영화 속 주인공은 임신 36개월을 온몸으로 체험한다. 배는 거대하게 부풀어 올라 옆에서 부축해 주지 않으면 거동이 불편하고 심지어 뱃속의 아이는 울거나 놀아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니...

자,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작품 소개에도 나와 있듯, 아이는 세상에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부모가 아직 부모가 될 준비가 안되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아내가 임신중이라는 핑계로 바람을 피운다. 실제로 아내가 임신 중일때 다른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임신중의 성관계를 터부시 하는 문화도 있고 아무래도 여성의 관심이 아이에게 많이 쏠려 있으므로 거기에서 문제가 빚어지기도 하므로..

아내는 남편의 외도를 알고 있지만 꾹 참고 모른척 하며 자기의 삶을 산다. 일명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부부인 셈. 아이를 위한 태교라고 선택한 것은 귀마개를 하고 소음을 들려주지 않는 것. 라디오도, 텔레비젼도 그 어떤 것도 아이에게 들려주지 않는다. 순수함을 보존시켜분다는 이유로. (맙소사!) 이렇게 대책없는 엄마와 아빠 때문에 아이는 세상에 나오지 않고 뱃속에서 무려 36개월을 보낸다.

이러는 동안 남편은 바람 피우던 여자에게 차이고 슬슬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다. 게다가 아내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니 회사를 관두고 시골에 작은 집을 구해서 그곳에서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돌보며 살아간다. 옷도 아무데나 휙휙 벗어제끼고 멋대로 굴던 버릇도 사라지고 이제 부엌에서 요리하는 폼이 제법 능숙하다.

그렇지만 그 버릇이 어디 가랴. 이번에는 천방지축 철없기로 따지면 남편 못지 않은 처제가 그만 형부를 유혹하고 이들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다. 임신 36새월의 몸으로 침대에 그저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언니는 이 사실을 알고 가위로 여동생의 긴 생머리를 싹둑 잘라버리고 경고한다. (나 같으면 아마 머리카락이 아닌 정말 머리를 잘라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뒤이어 들어온 남편은 고개를 떨구고 아내 손에 가위를 들려주며 자신의 성기를 자르고 싶으면 잘라도 된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가 심하게 울어대자 이를 관두고 드디어 36개월만에 진통이 오면서 아이가 태어나는데...

남편과 여동생이 옆에서 호흡을 하고 산부인과 의사인 미래 제부가 아이를 받아 낸다. 어쨌거나 온 가족의 합동 출산인 셈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어 몇번이나 임신은 질병이 아니라고 말한다. 임신을 한 여성은 정기 검진을 위해서 병원에 주기적으로 가서 검사를 받게 되고 아이도 병원에서 낳으며 낳고 며칠간 입원을 한다. 그러니 겉으로 보기에는 질병의 냄새를 풍긴다. 병에 걸린 환자 취급인 셈이다.

하지만 아이를 집에서 낳는다면? 의사 혹은 경험 많은 산파가 집으로 와서 아이를 받고 온 가족이 아이를 낳는 산모 곁에 둘러앉아 힘을 낼 수 있게 도와주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시켜 준다면? 아마도 예전에는 그랬을 것이다.

아이는 태어나자 마자 한살 반이라 엄마 뱃속에서 나와서 걷고, 아빠.. 라고 말하며 아빠에게 걸어간다. 아마도 감독은 이것을 의도했겠지 싶다. 어째서 인간의 아이는 낳자마자 걷지 못하는 것일까. 만약 아기가 낳자마자 걷고 엄마, 아빠, 맘마, 등 간단한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은 모든 아이 엄마들 혹은 예비 엄마들의 상상일 수도 있다.

뭐, 9개월 만에 태어난 아이가 한 일주일 있으면 기고, 또 한달 있으면 서고, 다시 한달 있으면 걸어다니고.. 다시 한달 후에는 말을 한다면... 아마도 아이 키우는 일에 혁신적인 변화가 생기겠지. ㅎㅎ

<임신 36개월>에서는 부모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여성의 입장에서는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 남성의 입장에서는 아빠가 되기 위한 준비를 보여준다.  결혼에서 가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아마, 아이를 낳아본 경험이 있는 남녀가 봤다면 나보다 공감이 백배는 되었을 듯.

개봉되었으면 좋겠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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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4-10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데요. 부모가 되는 준비 기간이라...
사람마다 다르다면? 누구는 36개월이 걸리고, 어떤이들은 영원히 그 기간 안에 파묻힐 수도 있는 것이고...
'산고'를 가족 모두가 짊어지면 좀 더 부모답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하게 되네용.
아.. 재미있겠다.

이리스 2006-04-10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가 다 컸는데도 부모는 여전히 부모 준비가 안되어 있기도 한다지요. --;;

kleinsusun 2006-04-10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감독이 저랑 동갑이네요.감독은 아이를 낳아 봤을까요?
이 영화 참 "unique"하네요. 저도 보고 싶어요.
근데..개봉할 가능성이 그리 큰거 같진 않고....
어쨌든 꼭 보고 싶어요.^^

하늘바람 2006-04-10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이야기네요

이리스 2006-04-10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 ㅋ 그러게 말이여요. 개봉할지는 잘.. -.-
하늘바람님 / 앗, 그것은 h 카드 패러디?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죵 ㅎㅎ

gazzaa 2006-04-11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보고 싶었어.

이리스 2006-04-11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나 그대는 이것 대신에 ## 관리실을 찾은거 아녔소? ㅎㅎ
 

토요일 심야영화, 첫번째로 상영된 작품.

 

신경쇠약직전의 신부 / Good Girl
 
감독 : 소피 필리에
장르 : 드라마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시간 : 102 분
제작국가/년도 : 프랑스/2005년도
상류층 요양원에서 마취 전문의로 일하고 있는 폰테인 리글루는 삼십대 초반의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그야말로 남부러울 게 없는 여성이다. 게다가 얼마 전 남자친구 미쉘로부터 청혼까지 받은 상태. 그러나 기쁠 줄만 알았던 청혼을 받고 오히려 깊은 혼란 속에 빠진 폰테인. 그건 아마도 얼마 전 병원의 환자로 들어온 매력적인 남자 필립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녀가 자신의 현재의 삶에 더없이 만족하고 있기 &#46468;문일지도... 어쨌든 그녀는 미쉘에게 ‘예스’ 인지 ‘노’인지 청혼에 대한 대답을 해야만 한다.
소피 필리에 Sophie Fillieres
소피 필리에는 FEMIS에서 공부를 했으며, 그녀의 첫 번째 영화인 <Grande Petite>를 제작하기 전에 <Des Filles et des Chiens>를 포함하여 몇 편의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또한 시나리오 작가로 이미 Philippe Grandrieux와 Noemie Lvovsky와 공동으로 일했다. 그녀의 또 다른 작품으로 <Aie>(2000년)이 있다.

# 감상평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영화가 아니라 즐겁게, 유쾌하게 웃으면서 관람할 수 있었다. 청혼을 받은 주인공이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는 가운데 몇 가지 에피소드를 섞어 넣어 관객을 영화 안으로 흠뻑 빠져들게 만든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사람과 서로가 서로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고 한참 아는척을 하다가 나중에 무안하게 돌아서는 것이 최 절정이었달까. 어느 한쪽이 사람을 잘못 알아보는 수는 있어도 양쪽이 그러기는 힘든 일인데 말이다.

 

남자와 여자는 모두 전문 분야의 인텔리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유치하기 그지없다. 청혼 반지를 삼켜버려 자신의 배설물을 포크로 파헤쳐 가면서 반지를 찾아내 씻어서 다시 낀다니.. -_-;;;

이 장면에서 몇몇 관객들은 비명을 질렀다.

 

결혼에 대한 고찰이 가벼운 옷을 입고 관객 앞을 지나간다. 사람들은 한바탕 신나게 웃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 발길을 돌리며 마음 한쪽에 묵직하게 하나의 화두가 들어 앉아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하나, 남자들도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구나. 자신이 노숙자가 되어 길거리에서 거지꼴로 구걸을 하고 앉아 있게 되어도 자길 버리지 않을 것이냐고.. 우리가 발딛고 선 이 지구의 맨틀, 지각의 변동을 연구하는 학자도.. 자기 여자에게 그런것을 묻는 구나 싶었고, 이해가 갔다.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버림받는 공포를 동시에 품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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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6-04-10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보구싶다.

이리스 2006-04-11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나리님 / 이번 여성영화제 프로그램.. 대체로 다 괜찮더라구욤 ^^
 



기본적인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나는 무작정 이 영화를 보러가게 되었다. 그래서 어쩌면 별다른 선입견 없이 영화를 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영화의 스케일이나 볼거리가 나에게 준 감흥보다는 줄거리 자체가 갖고 있는 무게가 더 인상적이었다. 만화를 영화한 것이지만 이것은 매트릭스와는 또 다른 무게를 지녔다. 워쇼스키 형제의 각본. 민중과 자유, 신념이라는 단어들은 어떤 이에겐 지루하고 하품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앞서 나열한 저 단어들은 숭고한 것이며 동시에 가슴을 들끓어 오르게 하는 무엇이다.

투쟁과 혁명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운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두려움 앞에서 담대해지기 힘들다. 그것을 극복하는 순간, 혹은 그것을 극복할 만큼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순간 무한한 자유를 얻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나는 신념에 가득찬 몇몇 이를 알고 있다. 그들의 지난 업적은 매우 뛰어난 것이었으며 그것에 대한 어떠한 깎아내림도 하고싶지는 않다. 그들의 현재가 어떻게 타락했는지 많은 사람들이 모른채 속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들은 이제 신념의 원동력을 경제적 가치로 치환했을 따름이다.

처음에는 그들을 보면 구역질이 났다. 하얀 도포자락을 입고 도를 닦던 산신령이 이제는 탐욕스러운 협잡꾼이 되어 손에 침튀기며 돈다발을 꿰어차고 앉아 돈을 세는 것 같이 보였다. 완벽한 가면을 쓰고 그들은 자신의 본질을 속이면서 돈을 챙기는 재미에 빠져들었고 그런 모습에 나는 등을 돌렸다. 아니, 이제는 그들의 본질이 아예 바뀌었겠지 싶다.

<브이 포 벤테타>는 영화로 치자면 별이 세개 정도겠지만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만큼은 별 다섯개가 아깝지 않았다. 우리는 신념을 잊어서는 안된다. 신념을 가지지 못한자의 삶은 신념을 가진 자의 삶과 확연히 다르고, 그것의 차이는 삶 자체를 뒤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떨쳐내는 연습, 죽을때까지 끊임없이 해야할 연습이고 신념을 찾는 것과 그것을 지키는 것 역시 그러할 일이다.

(venteta 는 이태리어다. 영어로는 reve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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